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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 과테말라 대중 음악과 역사[ | ]

죠반니 카스티요 (과테말라 대사)

지속적인 문화 세미나 개최에 중지가 모아지고 이와 관련하여 음악과 무용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가 결정되었을 때에,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의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이것에 대하여 제 나름대로 내려본 답을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만약 여러분이 기대하셨던 것과 달리 다소 전문적이고 딱딱한 내용이 될지라도 이해 바라겠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딜레마는 오늘 강연의 주제에 전반적으로 걸쳐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과테말라는 이웃 나라들과 차별되는 대중음악을 가지고 있는가?
심화하자면, 과테말라는 나머지 세계가 모르는 고유한 대중 음악과 무용을 가지고 있는가? 대중 음악과 무용이 먼저 무엇인지 알아보자. 사교모임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춤을 말하는 걸까? 만약 대답이 그렇다면, 아마도 여러분들이 이미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너무도 친숙하지 않을까 싶기에, 이러한 문화적 쟝르의 주제에 관하여 굳이 언급하고자 여러분 앞에 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사견으로서, 많은 나라들이 일종의 문화전이를 겪고 있다고 보는데, 즉, 외국 문화들의 영향권 안에 서로 놓여 있다는 뜻이다. 과연, 과테말라의 음악과 무용에 대해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께 어떠한 자료들을 소개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과테말라이즘 (GUATEMALTEQUISIMO)의 근원이 되는 민속 문화를 나눠보는 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테말테끼스모는 인디오들의 문화와 풍습을 지칭하는 단어들을 합성한 새로운 단어이다. 서반아 문화 중 많은 요소들이 다른 문화권들의 영향과 함께 축적되어 과테말라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개념에 기초하여, 세가지 측면에서 본 강연을 나눠보고자 한다.

1. 과테말라 민중 음악 2. 춤과 무용 3. 과테말라 음악 역사와 16세기 음악

1. 과테말라 민중 음악

마림바를 빼놓고 과테말라 음악을 논할 수는 없겠습니다. 마림바는, 과테말라가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악기로서, 과테말라의 사회, 문화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림바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 현재 세가지 이론이 대두하고 있는데,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기원설이 그것이다. 각각의 이론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며, 지금 이 자리에서 위의 세가지 이론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삼가 할까 한다. 과테말라의 모든 연구들이 의견을 같이 하는 것은 과테말라 마림바가 매우 독창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17세기에 아프리카 노예들로부터 유입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림바의 변천 과정상 그 진보 정도에 있어서 과테말라 것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이다. 즉, 마림바는 과테말라의 고유한 악기는 아니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과테말라 것이다.
처음 과테말라에서 만들어진 마림바는 원형 또는 반원형의 모양으로 수은 정련용의 목재(hormigo)로 만들어진 건반을 소나무 또는 삼나무의 테두리 위에 올려놓은 악기이다. 개인마다 천으로 된 띄로 각자의 마림바를 몸에 걸고 혼자 연주했다. 인디오들은 또한 공명상자로서 호박이나 호리병 박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마지막 사반세기 이후, 온음계의 마림바와 단지 한 개의 건반만 갖춘 단순형의 마림바가 출현한다. Diatonic Marimba 라고 하는 것은 단지 온음만을 연주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즉, 반음 처리가 불가능하며 흰 건반들 밑에 검은 검반들의 위치를 필요에 따라 옮겨놓아 연주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마림바는 보통 서너 명의 사람들에 의해 연주된다.
네 명이 함께 연주하는 마림바도 생겨났고, 여기에 덧붙여 각각 다른 음색들을 지니며 더욱 작아진 규모로 만들어진 마림바들도 이어서 출현했으니 이것이 바로 7명까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마림바이다.
19세기 말에는 이미 이중 건반의 마림바가 선보였는데 이것들은 콘서트용 또는 반음계의 "maripiano"로 알려졌고 과테말라의 Quezaltenango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중 건반의 초대 마림바를 디자인하고 만들 때에는 악기 소리 영역이 확대되어, 두 대의 피아노 기능이 첨부되고 전체 반음계의 소리가 날 수 있도록 보완되었다.
이러한 마림바 앙상블에 음역에다 한단계 내려간 콘트라베이스 음색이 덧붙여 졌고, 또한 드럼의 음색 기능도 보태져 마림바 앙상블의 이름에 어울리는 악기들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다음의 음악 시기로 넘어가기 앞서, 특별히 다른 취주 악기들의 기능을 가미한 마림바 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은 마림바 앙상블에서 마림바 오케스트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현재, 이 악기의 전문 연주가들은 폴카, 왈츠, 행진곡, 룸바, 폭스트롯, 볼레로,발라드 그리고 손(sones) 등 폭 넓은 리듬들을 소화해낸다.

2. 춤과 무용

가장 오래된 예술들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으로 춤 또는 무용을 들 수 있다. 이는 음악, 그림 그리고 조각 등의 예술 분야에 있어 그 영감과 풍요의 원천이 되어왔으며 과테말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과테말라의 옛 선조 시대 이래로 사회 내 크고 작은 행사들은 늘 춤과 함께해왔다. 그 예로 인디오 사제들은 초자연적인 힘들을 하늘에 구하는 춤을 췄고, 승리를 기원 또는 축하하는 무용도 있었으며, 병마나 악한 영들을 내쫓는 춤들도 행해졌다. 신앙, 미신, 축제, 생일, 구애, 결혼 및 장례 등 무수히 많은 주제의 행사들 가운데에는 춤의 기원을 만들어간 많은 무용수들이 있었다.
마림바 음악과 마찬가지로 모든 과테말라 전통 무용들은 그 자체가 역사적 시기에 맞춰 축적된 산물로서, 일상을 만들어가는 요소들과 시대를 결정짓는 문화. 사회적 발달에 병합하여 민중의 깊은 정서들 및 조상의 뿌리와 전통적 유산들을 표현해왔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 집결되는 각각의 지역, 시대, 그리고 전환적 역사 안에서 새로운 해석들과 다양함-프랑스,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통하여 유럽적인 것을, 해안가에 정착한 다양한 부족 출신의 아프리카 노예들을 통해 아프리카의 것을 그리고 옛 역사상 각각 다른 문명을 이뤄가며 살았던 아메리카 토착민 선조들을 통하여 아메리카의 것을 받아들이는- 등을 보태가며 , 과테말라 만의 고유하고도 독창적인 주제들을 인식시켜 나갔다.
앞서 언급한 바에 맞추어 과테말라의 무용의 생성 과정상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문화적 뿌리들을 나열한다면 총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서반아 이전(Prehispanic) 서반아 아프로카리브 식민기 공화기

여러 시대를 걸쳐 이러한 무용들은 각각의 언어들과 풍습 등 고유한 문화적 성격들에 의해 결정되는 인구 수치 및 지역적 특색들 위에 뿌리를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은, 과테말라 서민 계층과 일부 중산 층 사이에서, "SON"으로 알려진 무용 양식이 과테말라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것과 같은 문화적 동질화를 가능하게 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런 시기로 작용하고 있다..
무용들은 앞서 언급한 분류에 따라 그 양식이 복잡하며 주제 또한 다양하다. 예를 들어, 서반아시기 이전 무용들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테마, 또는 전쟁 및 자연과 관련된 테마들을 가지고 있다. 서반아 시기에서는 그 주제가 정복, 지배, 그리고 예속에 관한 것들이 태반이었으며, 아프리카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그 테마들은 아프리카 문화와 연관 시켜야 할 것이다. 식민기 시대에서의 무용은 전반적으로 종교적이며, 선.악간의 싸움에서 선의 승리를 다루는 것이었고, 공화기에는 주로 손의 리듬과 왈츠, 폭스트롯 등이 함께 했다.
이제 춤과 무용에 관련 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마감할까 한다. 과테말라의 전통적 무용은 희생적인 시간과 장소를 기록하여, 단지 하나의 공연을 위해서도 수많은 시간과 공간 및 문학적 자료들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식민기 시절의 무명 작가들, 마림바 같은 여흥을 돋구는 악기들이나 피리, 북과 같은 악기로 연주되는 신비한 음악들도 무용에 모두 쓰인다. 춤의 동작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입에서 입으로 전수된 것이며 그럼에도 정확하게 계산되어진 몸짓들로 복잡성을 보이며 구전으로서의 전달과 모방에 기초하여 전통적인 표현이라고 명명되어진 순서에 따라 춤 동작이 구현되는 것이다.

3. 다성 음악

이 쟝르의 음악은 16세기 또는 역사 음악 연구 등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다수에게 있어서 이러한 쟝르를 정의 내리기 위해 사용되는 정의들이 다소 생소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多音) 음악이 16세기의 과테말라에서 순전히 과테말라 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연주되어졌음을 입증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복수 성가(Canto Plura) 로 이해되는 polifonia 다음곡은 단지 유럽대륙만의 산물이 아니다. 인종 음악학은 이 다음 음악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화권에서 복수 성가의 형태로 존재했었음을 입증하는 여러 증거들을 발견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 유럽의 음악은 중세의 절정기 동안 다른 문화권들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띄었다. 이성적 음색 체계의 발전과 동시에 다양한 멜로디 연주, 그리고 더 나아가 보컬들 간에 수직적 관계의 결과로 발전되어 아코디언의(acordica) 개발과 출현, 즉 화음이 쏟아져 나온 것이 그것이다.
여기까지 두 가지 측면은 명확해졌다. 첫째, 지금 여러분이 이해하시는 다음 음악은 중세의 중앙 유럽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점과 둘째로, 과테말라에서도 16세기에 이 다성 음악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어떠한 경로로 아메리카 대륙에 이 음악이 상륙했을까 그리고 왜 특별히 다음 음악이 소개된 아메리카 대륙내의 다른 국가들보다도 과테말라에 이 음악 발전이 두드러졌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이 음악 쟝르는 스페인 정복자들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와 인디오들을 복음화 시킬 목적으로 전략적으로 사용되었다. 과테말라의 경우, 프란시스코 마로낀 사제가 1530년 6월 3일 교구 모임에서 설교가로서 소개되었을 때, 전도 사역을 위해 현지에 교회를 건축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서 그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는 정복자들의 별장 수준으로만 머물렀고, 수년이 지난 뒤에서야 교황 클레멘트 8세를 위한 카를로스 5세 스페인 황제의 명령에 따라 1534년 교황 칙령 아래에서 교회는 성당의 지위로, 마을은 도시로 각각 승격할 수 있었으며, 프란시스코 마로낀은 초대 주교로 임명되었다.
마로낀은 교황의 교서를 받으면서 스페인으로부터 가져온 문서에 기초하여 교회 총회와 과테말라 교구들 설립에 따른 교회 권위와 그 역할에 대한 것들을 기록해두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원의 합창 지휘자 chantre(cantoriam)에 대한 지침도 언급되어 있다.

"성가는 오직 음악이나 단선 성가에 박식한 사람이 지휘해야 하고, 공식 석상에서는 솔로로 연주되어야 한다. 일반 축제에서 다른 성가 대원들과 함께 노래할 수 없으며, 또한 어느 장소에서나 성가대에 속한 모든 대원들을 가르치고 교정하고 지시하며 수정하는 역할을 지휘자가 담당한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기능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오르간 연주자는 경축일 동안에는 오르간 연주를 의무화 하며, 평시에도 총회의 고위 성직자들(prelate)의 뜻에 따라 연주할 수 있다"

이렇듯 최초로 서품을 받은 과테말라 주교에 의해 작성된 두 가지 규정은 과테말라의 산티아고 성당에서 다음 음악과 종교 음악을 발전시키고 도입하는데 초석이 된 셈이다.
정복기 동안에, 스페인 정복자들은 맞닥뜨리는 여러 장애물들을 이겨내고 모험을 주저하지 않도록 이끄는 세가지 동기들을 갖고 있었는데, 첫째, 낯선 대륙을 발견하고 탐험하여 엄청난 부를 획득하고자 하는 열망과, 둘째로, 왕을 위한 직무 수행이며 마지막으로는, 외적으로는 가장 고귀하고 인도주의적으로 보일 종교적 동기로서, 이는 스스로를 널리 전파되어야 할 절대적 진리의 대표자 또는 전달자의 위치로서 그 가치를 인정하게 하는 구실이 된다. 이러한 강압성은 정복 전쟁을 막 끝낸 후에 선교사들이 인디오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서 뿐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피정복자들인 인디오들이 그들 고유의 음악을 포함, 원주민들의 종교 행사의 계속적 실현을 억압하고 금하는 조치에서도 드러났다. 복종하지 않을 경우 동반하는 육체적인 형벌과 고통은 이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고, 초심자들은 종교적인 행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이다. 반면, 원주민들의 토착 음악은 교회 밖의 행사들에 꾸준히 연주되어, 3세기 간의 식민지 여건 아래에서도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에 상호 영향을 끼치며 면면히 라틴 음악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인디오들의 예술과 음악에 대한 천부적 재능은 새로이 정착한 종교와 결부되어 수도사들의 음악을 흡수하고, 수도사들은 음악에 대한 인디오들의 유난한 애착을 감지하여, 음악은 이들을 개종 시키려는 노력에 있어서 성공적인 도구가 되었다.
실제로, 과테말라의 많은 인디오들이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된 다음 음악의 자극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어떻게 그리고 언제 이 문화 유입에 관심이 집중 되었을까? 최근에 생각치 못한 획기적인 발견 덕분에, 식민기의 처음 수 십 년간 과테말라 내에 가장 외지고 접근이 힘들었던 지역에까지 들어간 다음 음악의 개척에 대해 이전에는 매우 강렬하게 의심을 받던 폭 넓은 증거들이 이제는 떳떳이 거론될 수 있게 되었다.
1963년도에 메리놀 교구의 두 사제들은 Huehuetenango 주 북서쪽 높은 평원에 위치한 San Miguel Acatan 의 한 마을에서 여러 오래된 음악 서적들을 수집했고 그 수는 총 아홉 권에 달았다. 이 원고들은 식민기 초기에 그 후세들이 이를 손으로 베끼고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세대 동안 조심스럽게 보관되어 수세기를 살아 남아온 것인 셈이다. 이것은 한 시대의 음악 전경의 재건축을 위해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음악 심리학자 Robert Stevenson은 그 해에 San Miguel Acatan을 여행하며 그 고문서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단지 16세기의 유명한 유럽 작곡가들의 광대한 다음 음악 목록 뿐만이 아니라 인디오 교회 합창대 선생들의 음악적 기여 또한 찾아낼 수 있었다. 즉, 복사의 과제를 떠맡고 위의 언급한 전집들을 끼워 맞춰온 사람들 스스로가 작곡한 작품들도 또한 있었던 것이다. Stevenson은 고문서들 하나 하나마다 그 내용 목록을 작성하였고 후에 " 아메리카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 원천" 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으며, 각 작품들에 대한 성격과 구조 등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들을 덧붙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고문서들 안에서 16세기 초의 명망 있던 유럽 작곡가들 작품들의 상당 수가 여러 번 되풀이되어 발견되는 점이 이 작품들을 인디오들이 그들의 이웃 마을들과도 공유하기 위해 여러 번이고 손으로 베끼며 즐겼다는 것을 입증해준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과테말라의 다음 음악을 다룰 때 그 동기가 된 세 가지 중요한 점은;

1. 아메리카의 정복기와 식민 체제의 정착기의 수년은 스페인에서의 음악 절정기와 매우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기간이었다. 권위 있는 성직자들 뿐만이 아니라 세속적인 권력자들까지도 한 세기의 모든 음악 쟝르들에 대한 광범위한 실제 연주를 활성화 시키며 모든 것을 우선적으로 음악과 결부시키곤 했다는 사실과.
2. 정복자들의 음악 편력은 정복기와 식민기 동안 감당해야 했던 엄청난 시련들에도 불구하고 간직해온 원주민들의 음악에 대한 비슷한 애착을 발견해냈고, 원주민들은 정복자들의 음악 유전을 소화 흡수해 냈다. 이러한 문화 경험은 결국에는 인디오들 전통의 고유한 성격들과 잘 섞였고 오늘날 과테말라 문화의 근간을 형성하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정서 표현과도 잘 어우러졌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3. 스페인 음악의 진보적 발전은 식민지들에서의 다음 음악의 연주 열기를 부추겼다. 교회 제단에서 미사를 인도하는 성직자들에게서 높은 수준의 신성한 음악을 기대하게 되었다.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청빈한 성직자든 재가승이던 간에 미사 집전을 위해서는 적어도 음악을 대강이나마 알아두어야 했는데, 이는 음악과 미사를 결코 떨어뜨려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는 점이다.
4. 이러한 모든 것들은,그 뒤 수세기 동안 음악 분 야의 집약적인 개발을 이끌어냈고, 유럽 전통 음악 위 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계속된 위대한 과테말라 음악 대가들의 작품들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듯이, 과테말라 정취가 물씬 나는 분명한 과테말라 음악 형식의 출현에 있다.

참고 서적

Sanchez Castillo, Julio Cesar, ¿Que sabemos de marimba?. Aasociacion de autores y compositores, guatemala 1997.

Saenz Poggio, Jose, Historia de la musica guatemalteca. Ddesde la monarquia espanola hasta fines del ano 1877. Editorial cultura, guatemala 1997.

Armas, Judith, Roman Alfredo y Garcia Escobar, Carlos Rene, Atlas danzario de guatemala. Editorial cultura, Universidad de san carlos de guatemala y ministerio de cultura y deportes, guatemala 1996.

Lehnoff, Dieter, Espada y pentagrama. La musica polifonica en la guatemala del siglo xvi. Universidad rafael landivar, guatemala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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