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에 푹 빠진 인터넷

1 외모 지상주의에 푹 빠진 인터넷[ | ]

루키즘 만발…‘연예인 따라하기’에서 ‘얼짱 스타’ 탄생까지

글 고나리 기자 (mailto:rulrara@joongang.co.kr)

2년 전인 2001년 7월 개봉된 영화 ‘엽기적인 그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장이라고 일컫는 여름 시즌에 개봉돼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관객수 1위를 기록하는 국내 영화의 신바람을 일으켰다.

‘엽기적인 그녀’는 단순한 흥행작에 그치지 않았다. ‘견우’역을 맡은 차태현과 ‘그녀’ 역의 전지현은, 성 역할이 역전된 새로운 청춘남녀상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 영화를 통해 평범한 네티즌이 쓴 인터넷 소설이 영화의 훌륭한 재료가 될 수 있음이 증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영화를 본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새로운 정보들을 묻고 답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대의 ‘아프로디테’ 전지현이 작품 속에서 한 화장법에 관한 질문이었다. 한 듯 안한 듯 자연스러운 전지현의 메이크업 비밀은, 당시 국내에서는 낯설기만 했던 ‘베네틴트’라는 화장품 브랜드였다.

당장 국내에서 유일하게 ‘베네틴트’를 유통시키고 있었던 해외쇼핑 전문 쇼핑몰 위즈위드(www.wizwid.com)의 접속률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위즈위드 지충환 마케팅 팀장은 “전지현으로 인한 베네틴트 열풍은 단순한 매출 상승을 넘어 위즈위드를 네티즌에게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술회한다.

베네틴트 열풍 현상은 ‘연예인 따라하기’에서 비롯됐다. 스크린이나 TV 화면에 비치는 스타는 예전부터 미(美)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막강한 인터넷 인프라는 미의 표상을 더 이상 바라보며 흠모하게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손쉽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수의 네티즌들은 이제 스타의 메이크업, 패션, 다이어트와 성형 방법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나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네티즌의 따라하기 흐름에 편승해 방송사 홈페이지에선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했다. 가령 MBC(www.imbc.com) 홈페이지에 접속해 얼마 전 신세대 사이에서 동거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페이지에 들어가면, 주인공 역을 맡은 김래원과 정다빈이 어느 장면에서 어떤 옷과 어떤 액세서리를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스타의 옷이 고가의 명품 브랜드일 경우, 그 옷을 카피한 ‘짝퉁’ 상품들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예쁜 사람을 따라하고 싶은 욕구는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세대들은 그런 욕구를 내놓고 표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정보를 모른다는 것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 돼버렸다. 이는 ‘가꾸지 않는 것은 죄’가 돼 버린 이 시대의 새로운 코드 ‘루키즘(lookism)’에서 기인한다.

루키즘, 2년 전부터 인터넷에 본격화

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가 처음 쓰기 시작한 루키즘이란 단어는, 우리말로는 외모 지상주의, 외모 차별주의로 번역된다. 외모가 결혼과 취업, 승진 등 개인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을 뜻하는 부정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루키즘은 결코 부정적인 뜻으로만 통용되지 않는다. 매체에서 언급되고 있는 루키즘은 일면 지금의 풍조를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하나의 미덕이 돼 버린 외모 가꾸기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지 못한다. 루키즘이 이 시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얼굴과 몸매를 가꾸지 않는 것은 이제 게으름의 다른 말이다. ‘내 외모가 곧 비즈니스’라는 말을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시대다. 때문에 자신을 가꾸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을 하며, 정기적으로 피부과 클리닉을 찾는 것은 더 이상 숨길 일이 아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자기관리를 한다는 측면에서 부지런함이라는 미덕을 가진 인물로 평가된다.

루키즘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세대는 점점 폭넓어지고 있다. 미용, 패션, 성형, 다이어트 산업의 주 고객층은 물론 20대 중반∼30대 초반의 직장여성들이지만 아래로는 10대들까지, 위로는 40대까지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전문관리실의 스킨케어와 보디케어 티켓과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이 주 수익원인 뷰티포털 뷰띠앙(www.beautian.com)의 권우영 과장은 “제품의 기능이 확실하다면 10대도 기능성 화장품을 구입한다. 특히 여드름 치료에 효과가 좋다고 입소문이 난 제품이 그렇다”고 말한다.

외모에 민감한 일부 실버 세대들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여의도에 위치한 화이트닝센터(www.whiteningcenter.com)의 홈페이지를 보면, 춘천에서 살고 있는 한 노인이 수십년 간의 흡연 때문에 누렇게 변색된 치아를 미백 치료받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온 사연이 게시돼 있다. “나이 들어서 주책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늘 신경이 쓰였다”는 것이 이유다.

인터넷은 오프라인의 각종 현상들이 그대로 옮겨지는 또 하나의 ‘거울’ 세계다. 루키즘 신화는 약 5년 전부터 온라인에서 서서히 퍼지기 시작해 2년 전인 2001년부터 피크를 이루고 있다.

여성 커뮤니티 팟찌닷컴(www.patzzi.com) 신정민 대리는 “루키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매체는 TV지만 그 파급력을 급상승시키는 것은 인터넷”이라고 말한다. 따라하기의 모델이 되는 스타는 주로 TV를 통해 탄생하지만, 스타를 따라잡고자 하는 욕구는 수많은 익·실명의 네티즌이 쏟아내고 걸러내는 정보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질병 개념이 아닌 관리 개념의 피부과를 개원한 이지함피부과(www. ljh.co.kr) 강남점 이세득 원장은 이를 ‘인터넷 물방울 이론’이라고 표현한다. “연예인이나 강남의 일부 상류층에서만 폐쇄적으로 나돌았던 피부관리 관련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검색만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가 됐다”면서 “다수의 네티즌이 자신이 찾아간 피부과와 그 진료 체험기를 올리면서 정보를 교환하게 되고, 그런 하나하나의 물방울 같은 정보들이 합쳐져 네티즌이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병원 정보와 피부관리법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기만 하면 미용, 성형, 패션, 다이어트 관련 정보가 자신이 자주 애용하는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의 중앙에 배치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이 루키즘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

외모 가꾸기 콘텐츠 및 서비스는, 전문 포털의 경계를 넘어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들의 독립적인 메뉴로 자리잡았다. 이는 업체들이 먼저 주도했다기보다는,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어 외모 가꾸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네티즌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 설명이다.

10대들의 루키즘, 인터넷 ‘얼짱’ 탄생시켜

루키즘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인터넷 현상은 최근 키워드 검색 순위에서 상위에 링크되고 있는 ‘얼짱’이라는 단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얼짱은 ‘얼굴 짱’, 즉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을 일컫는 말. 검색창에 이 단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얼짱 관련 커뮤니티 및 팬사이트가 리스팅된다.

얼짱 사이트의 원조는 다음의 ‘5대얼짱’(cafe. daum.net/5i) 카페. 한 여고생이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돌아다니는 ‘얼짱’들 중 다섯 명을 ‘5대 얼짱’으로 선정하고 카페를 개설했다. 이 카페를 통해 ‘얼짱’들은 네티즌 사이에서 유명해졌고, 이들 중 일부가 배우로 진출하면서 카페의 명성은 한층 높아졌다.

얼마 전 개봉된 영화 ‘여고괴담3’의 주인공을 맡은 박한별이 5대 얼짱 중 한 명이며 ‘장화 홍련’의 주인공 임수정 역시 인터넷 얼짱 출신이다. 최근엔 인터넷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의 영화 오디션에 남성 얼짱 주인호가 참여했는데, 현장에 몰려와 응원하는 그의 팬들 때문에 영화 관계자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얼짱이 되려면 우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알려야 한다. 주변 사람이 얼짱이 될 만한 당사자의 사진을 대신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직접 올리는 경우도 많다.

외모에 자신 있는 네티즌은 이제 스스럼없이 본인의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나 웹캠으로 찍어 인터넷에 공개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인터넷을 통해 과시하려는 욕구, 이 또한 인터넷에 반영된 루키즘의 영향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제일기획에서 발표한 ‘2002년 공주들의 아름다운 이데올로기-루키즘’ 보고서를 보면, 두 명의 여고생이 “이제 공부만 잘한다고 인기를 끌 수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동성들 사이에서도 예뻐야 인정받고, 외모를 가꾸지 않으면 ‘왕따’당하기 십상이라고 고백한다.

다이어트와 피부관리, 최근 트렌드를 반영하는 패션을 갖추지 못하면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이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미소년, 미소녀들이 인터넷에 사진을 올려 자신을 PR하는 행동은, 당연하고도 자랑스러운 일로 자리잡았다.

이들에게 열광하는 네티즌은 같은 또래인 10대들이다. 아름다움의 신화에 사로잡힌 10대들은 자기 또래의 평범한 미소년, 미소녀들을 ‘스타’의 자리에 등극시켜, 그들을 기꺼이 흠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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