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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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雍正帝 : 中國の獨裁君主
옹정제 : 중국의 독재군주

2 책 소개[편집]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 미야자키는 「주비유지」라는 자료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양심적인 독재군주' 옹정제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간다.



이 책은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이 한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호언장담하는 옹정제의 전기이자 근세 중국의 관료제, 재정, 재판, 풍속을 이해하는 역사서이다.

– 예스24

3 추천평[편집]

옹정제의 즉위는 서기 1722년, 그러니까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보다는 조금 늦고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보다는 약간 앞선다. 옹정제는 이들 군주와 충분히 어깨를 견줄 만한 치적을 이룩하였다. 아마도 수천 년의 전통을 지닌 중국 독재정치의 최후의 완성자이자 실행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그의 정치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그가 처해 있던 특수한 개인적 환경, 특히 그가 즉위하기까지의 궁중 내분에서부터 글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옹정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중국의 독재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여기에는 온통 중국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만 기술되어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나의 의도는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역사학은 과거의 세계로부터 끊임없이 예상 밖의 사실을 끄집어내어 소개함으로써 지금까지 무심히 형성되어 버린 역사의 이미지를 고쳐 나가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미야자키 이치사다

4 # 거북이[편집]

이 책은 미야자키 이치시다라는 일본인 사학자가 1950년에 쓴 얇은 전기를 번역한 책이다. 그는 청조사를 연구하던 도중 옹정제가 생전에 출판한 '옹정주비유지'雍正硃批諭旨라는 사료를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옹정제라는 한 인간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소개하는 책으로 쓴 것이다. 이 내용은 지은이의 말에 정리가 잘 되어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나를 숨막히게 만든 것은 저 미야자키 이치시다라는 양반이 주비유지를 무려 40년동안 학교 세미나 형식으로 윤독하면서 번역, 정리했다는 사실이었다. 주비유지같은 맛가는 사료를 만들어낸 기록과 성실의 화신 옹정제 역시 대단한 인간이지만 저것의 진가를 확인하고 후학을 위해, 또 스스로를 위해 그것을 정리하기 시작한 저 노학자의 자세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것이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누가 돈만 대주면 공부 열심히 해보겠다고 한 적이 몇번 있는데 저 양반의 사례를 들어주며 저렇게 해야한다는 단서를 달면 네~ 하면서도 목소리가 조금은 떨리지 않을까 싶다.

그럼 주비유지라는 사료는 뭘까. 이거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황제가 직접 적은 '사초로 읽는 세종실록'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옹정제의 시호가 세종이다.) 옹정제가 독재정치를 확립하게 되면서 취한 행동은 첩보정치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기존 시스템의 보고체계는 있는 그대로 받아보면서 동시에 자신은 각각의 행정관이 보내는 직송편지(주접)를 받아 사실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주접에는 스스로 빨간펜 선생이 되어 코멘트를 담아 돌려보내고 일독하게 한 후 다시 받아 자신이 보관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모아서 출판한 것이 바로 주비유지인 것이다. 그가 철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철인정치이자 독재정치를 펼쳐나갔다. (나는 그정도 인간이면 철인이라고 본다.)

13년동안 제위에 올라 강희제와 건륭제의 사이를 이었던 이 사람의 특징은 중국식 독재자의 정점을 구현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라고 미야자키는 지적하고 있다. 그는 '왕자의 난'을 겪다가 운좋게 제위에 오른 4남이다. 그리고 아버지 강희제가 워낙 제위를 오랫동안 깔고앉아있었기 때문에 황제가 되었을 때 45세였다. 준비된 황제로서 간신히 제위에 오른 그는 형제들을 숙청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때문에도 그는 왕권신수설에 가까운 정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독재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그는 황제를 우습게 아는 신하들과 정면대결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방법으로 그는 치밀함과 성실함이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신하들을 수족처럼 조절할 수 있었던 황제가 백성 위주의 사고방식과 청렴결백을 추구하였다면 당연히 그 시대는 태평성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옹정제는 인선과 세제정책에 신경을 많이 써서 지방정치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치밀했던 옹정제는 지방관들이 올린 모든 주접들을 읽기 위해 눈코뜰새없이 바빴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읽고 일일이 붉은 붓으로 코멘트를 달아 돌려보내 그들에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관철시켜왔다. 황제가 이런 성실성을 보이면 쉽게 신하들이 반항할 수는 없지 않을까. 옹정제는 신하들에게 종종 덤빌테면 덤벼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주비유지에는 신하들에게 개인적으로 날리는 비속어 욕설도 잔뜩 있을 정도라고 하니 확실히 쉽게 덤빌 수 있는 군주는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든 생각은 민주정과 철인정에 대한 고민이다. 저자는 옹정제가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하여 모범적으로 정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자마자 그의 최측근들에 의해 관료제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돌아갔던 청왕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대대로 이어지던 관료시스템을 완전히 혁파하지 않는다면 관료-상인 카르텔과 상대해서 결코 이길 수 없었다는 얘기다. 당시 청의 관료들이 옹정제의 죽음에 대해 받은 느낌은 '엄한 선생님이 죽어서 마음이 편하다'라는 것이었을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옹정제가 철인-독재정치를 영속적인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에는 결국 실패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정을 유지하되 철인들이 그 민주정의 꼭대기에 올라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마 역파놉티콘의 구축 외에는 아직 답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파놉티콘이고 뭐고간에 지금의 정치가 과연 파퓰리즘을 넘어설 수가 있을까? 최근 총선2004토론결과를 봐도 현재 한국의 당수라는 작자들은 파퓰리즘의 대변인에 불과하다. 특히 박근혜를 보면 속이 다 뒤집어진다.

어쨌든 옹정제는 세자 책봉을 일찍해서 벌어지는 왕권 계승 분쟁의 폐해를 막기 위해 블랙박스에 후임 황제의 이름을 적어서 봉인해둔다거나, 종종 신하들을 깜짝 테스트하는 등의 방법을 써서 그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관료제와의 충돌이었고 그 때문에 옹정제 사후 다시는 그런 방식의 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관료-상인 카르텔을 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대해 미야자키는 독재의 한계때문이라고 말한다. 옹정제는 독재가 보여줄 수 있는 긍정적인 극한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얘기를 하고있는 것이다. 군주제의 명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망할만하면 훌륭한 군주나 신하들이 등장한 바람에 왕조제는 그토록 오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옳은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강희-건륭 연간이나 영정조 시기는 이전에 비해 확실히 '모던한' 왕들이 등장했던 시기였으니 서구 열강의 침략이 아니었으면 동북아시아에서도 내재적인 역량에 의해 모순이 폭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강희제와 옹정제의 관계는 영정조의 관계와 비슷하다. 강희제와 영조는 모두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으며 자식관리에 실패했고, 유들유들한 정책으로 성대를 열었다면, 옹정제와 정조는 비교적 길지못한 치세 안에 군신관계의 재정립을 통해 왕조정치를 일신해보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도 강희-옹정 연간이 영정조 시기보다 40년정도 빠르니 비슷한 시기이다.

이 책 옹정제는 옹정제라는 '위대한 전제군주' 혹은 '선의에 넘치는 악의의 정치가'를 알게했다는 것과 미야자키 이치시다라는 한 성실한 학자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책이다. 강추다. -- 거북이 2004-4-25 7:41 pm

5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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