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이 선생의 교육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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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Ultimate Lesson
오세이 선생의 교육혁명
오세이 선생님의 교육혁명
  • 2003년 일본 영화
  • 섹션: 페스티벌 초이스(제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 감독: 히데키 마스다 / Hideki Masuda
  • 시간: 49 분

일본의 학교 역시 한국과 유사한 왕따현상(이지메)을 비롯해 수업거부 등으로 얼룩져 있다. 이런 교육 현실 속에서 하마노고라는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육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시아키 오세이 교장은 지난 2004년 1월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6년전부터 일본의 교육현실을 바로잡고 즐겁고 생동감 있는 수업을 학교에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암으로 투병하며 죽음의 문턱에서도 참교육을 걱정하는 오세이 교장선생님의 노력을 그린 작품

2 # 자일리톨[ | ]

EBS 다큐멘터리 페스티발에서 “오세이 선생님의 교육혁명”을 봤다. 내겐 일본의 제도교육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교육자로서의 이야기보다 죽음을 앞둔 고뇌에 찬 한 인간의 이야기로서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평소 이지메현상과 등교거부 등 일본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도시아키 오세이선생은 하마노고 초등학교의 신임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학생들을 위한 참교육을 위해 노력한다. 그에게 있어 교육의 목표란(특히 초등교육의 목표란) 아이들에게 삶의 가치와 배움의 기쁨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고 암기토록 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읽을 수 없는 붕어빵같은 존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는 아이들의 경험, 지식, 판단력을 존중함으로써 아이들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고 사고할 수 있게끔 수업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는 학교 선생님들의 잡무를 과감하게 줄이고 교사들로 하여금 정기적인 공개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수업방식을 개발하도록 했다.

다큐멘터리를 찍기 전 그는 말기 위암판정을 받는다. 수술도 했지만 몇 개월의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자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오세이 선생님의 도덕시간, 그날의 주제는 “인생”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한편의 동화를 먼저 읽어준다. 늙은 오소리가 죽자 그의 친구들이 오소리가 그들에게 가르쳐준 많은 일들(과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일화, 넥타이를 메는 법을 가르쳐준 일화 등등)을 추억한다는 내용이다.

오세이 선생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소리는 죽었냐고, 죽은 게 맞다면 오소리와 그의 친구들과의 관계가 끝난 것이냐고,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면 도대체 그들을 연결해 주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어떤 한 아이가 대답한다. 추억이라고, 그들이 함께 했던 추억이 그들을 연결해 주고 있다고 말이다. 선생님은 자신이 늘상 어깨에 메고 다니던 링거주사액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자신도 죽어가고 있고, 곧 죽을 테지만 너희들과 함께 있을거라고.

한학기가 끝날 때까지 오세이 선생은 동료 교사들과 다음 학기의 수업계획과 새로운 교재개발에 대해 열띤 논의를 한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고 짧은 방학을 맞이한지 2일 후 갑작스런 병세악화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머리맡에는 다음 학기 “인생”에 대한 수업계획안이 놓여져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몸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몹시도 두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주어진 시간동안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했고 그러한 그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겨지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추억이 오세이 선생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같은 기간 방영되었던 “어느 암환자의 해피데이”에서 주인공 쉴로미는 그야말로 발버둥을 친다. 신에게 의지하며 수술과 치료의 고통을 참다가도 어느 한순간에는 격한 감정에 휩쓸린 나머지 치료를 거부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살고 싶다며 흐느끼기도 한다. 그의 감정상태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마도 죽음을 앞둔 보통사람이라면 그리고 나라면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타인을 위해 삶의 마지막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오세이 선생 같은 삶을 보면 괜시리 눈물이 난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나의 대학시절 맑스, 체게바라, 트로츠키, 김산과 같은 혁명가들이 멋있으면서도 그들이 왜 그토록 힘든 삶의 무게를 선택했을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 당시의 인텔리였으니 자기 한 몸 건사하며 호위호식할 수 있었을테고, 더군다나 그들은 기본적으로 유물론자들이지 않는가? 내세를 믿는 것도 아니니, 현세의 모든 고통을 신이 보상해 줄 것으로 믿지도 않았을텐데. 바로 그러한 나의 물음을 해소해 준 것은 추억과 기억에 대한 문학평론가 김명인씨의 글이었다.

왕조의 역사가 대가 끊기는 것으로 종지부를 고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역사는 우리 당대에 반드시 모든 것이 실현되지도 않을 뿐더러 오래전 많은 지식인과 민중들이 희망했던 유토피아로서의 사회주의 혁명 자체가 저절로 그런 유토피아를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도 진보를 말하고 희망을 말하는가? 그것은 진보가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구체적 일상과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과 일상에 대한 하나의 자세이자 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제한된 수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왜 막 살아버리지 않는가?
루이 아라공은 말한다.
"죽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터 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있어 가장 최후의 무기는 기억이다. 우리의 기억은 곧 역사의 현장이며 잊지 않기 위한 투쟁의 현장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종이로 씌어지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할 수도 있다. 많은 이름없는 이들이 그렇게 사라졌듯이. 그러나 우리는 그 이름없는 패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기억함으로써 비록 당대에는 승리할 수 없음에도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전수해주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교사이고, 교육이다. 미래에 대한 나의 솔직한 전망은 그런 것이다. 나는 내 삶으로 나를 짊어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내가 당대에 이루지 못한 것일지라도 인간의 역사, 사람의 역사가 아이들에게서 다시 아이들에게로 이어지는 동안 언젠가는 변화될 것이라 믿는 것이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희망의 교육학”에 대한 서평에서 발췌)

-- 자일리톨 2004-9-7 10:4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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