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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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8936433369 ISBN:8936433377

  • 저자:황석영(1943- )
  • 원제:오래된 정원 상,하(2000)

1 # Nominam[ | ]

가끔 우리나라의 민주화투쟁처럼 치열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생각한다. 일단은 이데올로기를 표면에 내세운, 전쟁으로 국토가 반으로 나뉜 끝나지 않은 전쟁을 계속하는 나라도 또 어디 있을까. 마구 떠오르는 잡상 가운데 - 연결끈을 찾아 보이도록 이어놓을 자신은 없지만 - 어렴풋이 전쟁과 민주화투쟁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문학에서도 전쟁은 문학계에 강한 모티브가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전쟁, '무기여 잘있거라'는 1차세계대전. 한국전쟁 후 전후문학이라 분류되는 수많은 작품은 말할 것도 없이 전쟁이 작가에게 얼마나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지를 보여준다. 70년대 이후 80년대 말까지 민주화 과정의 서사시는 전쟁만큼이나, 어쩌면 전쟁으로 받아들여지며 또한 모티브로 자리잡게 된다.

윤희는 두번의 전후를 경험한 여자다. 아버지를 통해 한국전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현우와 다른 이들을 통해 두번째 전쟁에 뛰어들었다.

윤희의 첫번째 남자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그녀의 삶의 시작이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그녀의 삶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그녀의 두번째 남자는 같은 미대를 다니는 선배였다. 술주정뱅이의 비슷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모습이 피상적으로 자신과 닮아 자기에의 동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번째 남자는 오현우다. 그의 일년간의 동거와 결과적으로 영원한 이별 뒤 아이를 낳았다. 아버지의 다음 주기에 나타난 남자라고 생각된다. 한 세대의 주기가 지나 다시 같은 파장이 시작되고 아버지와 같이 이제 전쟁을 치르고 전후의 쓰라림에 괴로워하게 될 주기성이 느껴지는 남자.

왠지 송영태는 그저 오현우의 그림자를 쫓는 존재와 같이 느껴졌다. 무엇때문에. 그역시 치열한 삶을 살았는데 정(正)이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혼자 남은 윤희의 곁에 다가간 남자에 대한 경계심일까. 주인공에 대한 의리의 발로일까. 문득 모든 대화에 따옴표가 없는 것을 깨닳았다. 모든 독백은 물론 세부묘사와 대화 역시 그의, 그리고 그녀의 회상이었다.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송영태는 윤희가 가장 경계하는 존재, 현우에 대한 미안함이나 현실에 대한 자각이나 자신에의 연민이나 모든 복합적인 이유로 경계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희수는 그 반동에 의해 만난 인연일까.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듯이 7,80년대의 민주화투쟁의 상처도 그들 세대가 눈감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소설끝까지 은결이를 통해서도 보여지는 연결성을 보면 그 상처는 언제 아물지 모르는 가려움으로 남게될 것임을 느끼게 된다. -- Nominam 2003-2-25 16:04

2 # 거북이[ | ]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조금만 잘못하면 상투적인 한국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구성이지만 그 멜로와 역사적인 사건들이 절묘하게 맞물려 들어가면서 시너지를 내는 수작이라고 하겠다.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이 두권짜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주인공 윤희부녀와 그의 딸 은결부녀의 2대에 걸친 인생유전, 부르주아의 아들로 태어나 그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송영태, 묵묵히 자연주의적인 삶을 지켜보고자 하는 이희수 등 주인공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오현우가 도피중에 만나거나 한윤희가 겪어가는 80년대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지만 각자 한 시대의 군상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남한, 독일, 러시아를 넘나드는 배경속에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한윤희가 대변하는 우리의 삶을 함께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은 단면적으로 보여지기때문에 함축적이다. 그리고 그 함축만으로도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기 때문에 황석영은 대단한 작가인게다. 15년만에 낸 신작인데 그 가치를 한다.

한윤희의 마지막 글이 나올때 눈물이 조금 났다. 아마도 그 오래된 정원을 우리는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대 전환이 그 곳으로 돌아가는 첫걸음이 되길 바랄 뿐이다.

오현우가 지키고자 했던 것, 그리고 송영태가 지켜나가고자 했던 것은 어느날 송두리채 날아가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날아가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안으로 내재되어 들어간 것일게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는 이래저래 학생운동 했던 양반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을 보면서 당혹스러웠던 것은 학생운동을 상품화시켜 팔아먹고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 때 감옥 인맥도 있다고 하니 인맥은 정말 한국사회의 고질이라 할 만 하다. 여튼 그들 덕분에 386에 대해 마냥 긍정적인 생각은 지울 수 있었다. 그들과는 조금 다른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그 아저씨는 실형을 받아 군대도 안간 아저씨다.

저 이런거 여쭤봐도 되는지 모르겠는데...그 때 그 신념을 지금 어디에 투영시켜가며 살아가시나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이것이 그렇게 아픈 질문일거라고 생각은 못해봤다. 그는 분명 아파했을거다. 그때처럼 고매한 것에 목숨을 걸고있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는 진솔하다. 김민새를 비롯한 다른 386들이 그 아저씨 만큼의 염치만이라도 있다면 좀 더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와같은 386들이 훨씬 많을게다.

나도 오현우처럼 뭔가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 있다. 그렇게 이타적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높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 지키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현우와 한윤희는 그것을 최선을 다해 지켜보고자 했고 그 모습을 조금은 알것도 같기에 나는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몇년간 읽은 소설중에 단연 최고로 꼽고싶다.

PS 이런 소설에 조선일보가 상을 주겠다고 하다니 니들도 좀 염치를 가져라. 이 우라질 놈들아. -- 거북이 2003-1-28 22:59

3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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