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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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Kitchen

1 # 99 & Yellow Kitchen[ | ]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지금부터 이 음반에 대해 여러가지 칭찬을 늘어놓을 생각인데 슬프게도 지금 이 음반은 정말 구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도대체 백 카탈로그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곳인지라 2~3년만 지나면 책이든 음반이든 금방 사라져 희귀본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음반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면 누군가 발매할 것이니 이 글을 읽고 음악이 궁금해졌다면 팬레터라도 하나 보내보는 것이 어떨까. 하지만 슬프게도 웹사이트 역시 닫혀버린것 같다. 99의 멤버였던, 지금은 3호선버터플라이를 이끌고있는 성기완씨의 이메일이 인터넷에 공개되어있으니 보내보시라. creole 앳 hitel 쩜 net이다.

한국 인디 씬의 폭발은 누가 뭐라고 해도 Our Nation vol.1(1996)이었다. 이 앨범은 두 밴드가 절반씩 나누어서 만든 음반split album이고 그 하나인 크라잉넛은 '말달리자'를 띄워서 메이저로 입성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인 옐로우키친은 아직도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인디중의 인디로 남아있다.
옐로우 키친은 크라잉 넛이 데뷔앨범을 준비할 때도 자신들만의 음반을 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금 스플릿 앨범을 준비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99 & Yellow Kitchen(1997)이다. 신생 레이블 강아지에서 만든 첫번째 음반이다. 인디레이블 '인디'가 말 그대로 인디 음악인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산파 역할을 했다면 이 강아지 레이블은 '인디'에 비해 좀 더 실험적이고 이지적인 음악인들을 꾸준히 세상에 내놓았다. 지금은 가요시장의 침체로 어디론가 가버렸지만 그들은 90년대 후반과 이천년대 초반을 멋지게 장식한 1세대 인디 레이블들이었다.

옐로우 키친의 음악은 전자음악과 효과음으로 가득차있다. Our Nation vol.1에서 소닉 유스SonicYouth를 따라 직선적이고 노이즈 가득한 락을 연주했다면 여기서는 포스트 락post rock이라 불리는 스테레오 랩StereoLab, 토터즈Tortoise와 같은 밴드를 연상시킨다. 단조로운 톤으로 신세사이저 음을 깔고 그 위에 그만큼이나 단조로운 여성 보컬을 얹거나 기타를 연주한다. 이 연주들은 단조롭게 진행되면서도 조금씩 변화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음악의 본질적인 모습중 하나이다. 음악은 음이 반복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반복되지 않으면 리듬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다.
이들의 신세사이저 톤은 부유감이 있으면서도 환상적이다. 느릿 느릿, 이들의 음악이 트립합triphop은 아니지만 분명 트립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유감은 사운드가 당신의 주위를 둘러 싸버렸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트립합 뿐만 아니라 앰비언트ambient라는 장르 또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언급한 싸이키델릭, 트립합, 앰비언트는 서로 다른 장르명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는 장르들이다. 바로 환각적인 느낌. 펑크를 키워낸 클럽 이름이 왜 '드럭'이었는지 우리는 은연중에 알고있다. 싸이키델릭은 음악으로 만들어낸 '마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약을 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맛볼 수 있으니 얼마나 건전한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돈없는 인디 음악인들이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컴퓨터로 집에서 만들어낸 소리이다. 옐로우 키친은 이러한 실험을 이후 계속 해나간다.

두번째 부분을 채우고 있는 그룹은 99이다. 99는 삐삐밴드를 나온 박현준고구마가 기타리스트(말고도 직함이 몇개 더 있는) 성기완과 만나서 만든 그룹인데 보컬인 고구마는 강아지 문화예술이라는 레이블을 세운 주축이기도 하다.
삐삐밴드(혹은 삐삐 롱 스타킹)이 만들어낸 사운드가 그랬던 것처럼 99의 사운드 역시 기존의 관습적 락음악이 아니다. 처음에는 장난기 가득하고 즐거운 곡들이 지나간다. 삐삐밴드 시절도 조금 생각나는 따라부르고 싶은 '토요일밤의 열기'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나직하게 읊조리던 '일요일'부터 뭔가 심상찮아지더니 그 다음부터는 이들만의 잼 세션이 흘러나온다. 명백하게 밴드의 구성을 가지고 있고 락음악을 하고있지만 미묘하게 기타를 연주하여 만드는 슈게이징shoegazing 노이즈와 종종 들락거리는 무그 신세사이저 사운드로 만드는 소리의 향연을 듣다보면 이들이 사운드의 실험가였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동일한 리듬을 연주하지만 점차 감정이 고조되면서 템포가 빨라지는 것을 듣다보면 아 이건 뭔가 들었던 것이구나하고 (머리가 아니라) 몸이 알게된다. 바로 앞에서 옐로우 키친이 했던 방법론이며 이런 것이 싸이키델릭 사운드인 것이다. 여기서 두개의 다른 밴드의 음악이 왜 하나의 CD에 담겨있는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옐로우 키친은 컴퓨터와 일렉트로닉스로 차갑게 싸이키델릭을 연주했다면 이들은 밴드의 구성으로 직접 연주하여 뜨거운 싸이키델릭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음반을 하나의 일관된 예술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훌륭한 아트웍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디계열 음반들 중에서 가장 멋지지 않은가라고 생각이 드는 이 커버는 하이텔에서 활동하던 민미나씨의 작품이다. 백조자리를 수채화처럼 만든 이 커버는 환상적이면서도 조금은 우울한 분위기를 띄고있어 음악을 매우 잘 표현해주고 있는 커버인 것이다.
인디는 살아남기 위해 돈을 많이 써서는 안된다. 그런 빈티나는 환경에서 이렇게 빈티지vintage한 느낌의 음악과 커버를 만들었고 이 음반은 이후의 인디 음악인들에게 한 전범이 되었다고 해도 좋다.

옐로우 키친은 얼마전에 새 음반을 냈고, 성기완은 솔로 앨범과 3호선 버터플라이를 통해 기타 실험을 계속하고있으며, 박현준도 원더버드를 거쳐 에프톤사운드까지 열심히 실험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발매된,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실험적 음반들 중에서 이 음반보다 짜임새있고 완성도가 높은 음반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들이 가진 가능성이 씨앗이 되어 짧은 시간동안 국내 인디 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역량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여 안타깝다. -- 거북이 2003-3-7 23:48

2 주석[ | ]

본문에서 외국의 장르명을 너무 많이 인용한 듯 하여 조금 어설프지만 제가 생각하는 정의를 해보았습니다. 스타일과 장르는 종종 혼용되는 것이며 음악에서 장르란 필요악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름이 없으면 우리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이름을 붙여준 것이겠지요. :)

  • 포스트 락 : post rock. 실험적인 락의 한 장르로 가사가 배제되고 리듬 파트가 강조되었으며 단조롭게 변화하는 것을 주조로 한 락음악. 독일의 60-70년대 락음악인 크라우트락Krautrock의 영향이 짙으며 현대음악, 특히 실내악과 미니멀리즘, 뉴욕 아방가르드 계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스릴 자키Thrill Jockey레이블의 토터즈Tortoise, 브로크벡Brokebeck, 크랭키Kranky레이블의 갓스피드 유 블랙 엠페러!Godspeed You Black Emperor!등이 대표적인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혼돈의 시기인 90년대이후를 잘 보여주는 하이브리드적인 장르이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누구도 이 장르에서 락이 끝날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얼터너티브alternative 락이 락의 대안이 아니었던 것 처럼.
  • 미니멀리즘 : minimalism. 현대음악의 주류중 하나로 음의 단순화와 반복, 그 안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스타일의 음악이다. 필립 글래스PhillipGlass나 스티브 라이히SteveReich와 같은 작곡가를 스타로 만든 장르이기도 하다. 원래는 미술에서 시작되었다.
  • 트립합 : triphop. 흑인들 특유의 어두운 느와르적 이미지와 힙합, 테크노가 뒤섞여 나온 느린 풍의 전자음악.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있는데 매씨브 어택MassiveAttack, 포티스헤드Portishead, 트리키Tricky 이 세 아티스트들이 동시기에 수준있는 작품을 쏟아내는 바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 앰비언트 : ambient. 흔히 환경음악이라고 하는데 환경을 생각하는 음악 그런 것이 아니라 감상자 주위에 스며들어 마치 음악을 듣지 않는듯한 느낌을 준다고 하여 앰비언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역시 미니멀리즘과 클래식에서 많은 것을 빌어왔는데 이 음악의 대가로는 단연 브라이언 에노BrianEno를 들 수 있다. 이후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테크노와 결합하여 더욱 몽롱한 사운드로 변하기도 하였다. 뉴에이지New Age음악과 방법론에서 관계가 있다.
  • 싸이키델릭 : psychedelic. 60년대 꽃의 아이들Flower Children이라 불리우던 반전세대의 시대에 약물 문화와 함께 발전했던 음악. 폭발적인 즉흥연주를 매우 길게 하면서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감상자들이 환각상태로 넘어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연주를 했다. 이러한 상태를 트랜스trans상태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음악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며 60년대 그 자체를 부르는 문화적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장르라고 할수 없고 음악적 스타일 내지는 방법론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하다.
  • 슈게이징 : shoegazing. 기타 연주자들이 뻣뻣하게 서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른채 자기 신발을 흘겨보며 연주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역시 미니멀리즘과 관계가 있으며 작지만 집요하게 내는 기타 사운드를 크게 증폭시켜 이전의 기타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주로 브릿팝 계열의 음악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연주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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