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이방인

ISBN:8988138406

  • 저자 : 이창래(1965-)
  • 원제 : Native Speaker(1995)
  • 역자 : 정영목

1 # 거북이[ | ]

처음에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접했을때 이건 뭐야 했었다. 나는 외국어를 직수입하여 그 외국어를 그대로 쓰는 개념들을 참 싫어하는데 그중 특히 싫어하는 것은 불어쪽 어휘들이다. 똘레랑스니 노마드니 하는 것들 있잖은가. 그래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보자마자 태생적인 알레르기 반응이 느껴졌었다. 며칠전에 연암선생 서간문첩을 읽었는데 외래어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글을 읽으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물론 모르는 한자어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좋았다. 이런 기분은 국수주의적인가? :-)

디아스포라라는 말 대신 재외한국인이라는 표현을 쓰자면 사실 재외한국인의 역사라는 것은 생각보다 길고 규모도 방대하다. 19세기 후반부터 서세동점으로 러시아니 중국이니 일본이니 미국이니 인근 나라들에 퍼진 한국인의 숫자는 엄청났고 그 이후에도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낸 역사나 베트남 전쟁때 남겨진 한국인들이나 이러구러 하여 세계에 퍼져있는 한국계는 무려 8천만명 정도이다. 남북이 분단되지 않았더라면 1억을 훌쩍 넘겼을 것이다. 남한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5천만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계 미국 탐정인 헨리 박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채워진 이 책에는 저자 이창래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느꼈을법한 여러가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수없이 담겨있다. 인종의 용광로라고 주장하는 미국사회이지만 그 안에서 결코 뒤섞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의 충돌과 증오가 있는 것이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꽤 대작이면서 중간중간 심리묘사가 많이 나와 상당히 지루하다. 어쩌면 나는 픽션에 대한 욕구를 영화로 채우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인지 긴 소설은 영 못읽겠다.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이것도 역시 현대사회의 조급함이 가져온 부작용이겠지.

나에게 먼저 다가온 부분은 헨리 박과 부인 릴리아와의 관계이다. 이 두사람은 서로를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잘 아는듯 하지만 그 심연에는 어긋남이 있다. 그것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인종이기 때문인지는 알기 어렵다. 적어도 헨리와 릴리아는 서로를 구속하려 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방식을 취하여 서로의 갈등을 조절한다. 나는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남녀관계가 아닌가 싶다. 어차피 서로는 다른 개체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다할 뿐 상대방이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하여 분노해서는 안된다. 릴리아와 헨리는 그런 면에서 힘들만큼 가까워지지도 그렇다고 섭섭할만큼 더 멀어지지도 않는 방식을 택했다. 어쩔수 없이 한없이 외로운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함께 누워있었지만 몸은 닿지 않았다...늘 나를 사로잡는 것은 접촉이 아니라 가까움이었다...나는 그녀에게 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p 224)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서는 헨리보다도 헨리가 감시중인 정치인 존 강에 의해 잘 묘사된다. 존 강은 소수민족의 대변자로서 성장하지만 점차 소수의 대변자가 되기위해 노력한다. 그는 정치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 소수의 대변자로서의 이미지를 활용하려 하면서 정치투쟁과 정치자금 확보에도 열심이고, 그 와중에 비리가 터지면서 몰락하게 되는 인물이다. 어찌보면 존 강은 그저 자기의 현상을 열심히 이용하려 한 사람일 뿐이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재외한국인들 전체가 가진 모습인지도 모른다. 살기위해 그렇게 뭉쳐서 어느새 모든 길거리의 잡화점을 사버리고 나성의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것일게다.

헨리는 주로 언어에서 타인과의 괴리를 느낀다. 그는 아버지의 서툰 영어와 자신의 유려한 영어에서 느껴지는 차이만큼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가정부의 한국 노래를 이해할 수 없고 한국 이름들이 가지는 어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은 무엇인가 하고 고민한다.

사실 헨리는 그저 색다른 배경을 가진 미국인일 뿐이다. 미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다. 남한 사람들은 재외한국인들이 뭔가 우수한 성과를 내면 그걸 그저 신문에 보도하고 좋아한다. 국수주의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 이전에 헨리와 같은 사람이 한국에 대한 것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서울서 지내는 전라도 사람이 지나가다가 전라도 사투리를 듣거나 전라도 음식점을 접했을 때 혐오감을 느끼진 않을게다. 적어도 재외한국인에게 그정도는 손을 내밀었어야 했는데 남한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아쉬움은 이창래의 책 뿐 아니라 재일한국인이나 조선족들의 기록들에서도 많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학교와 회사 등에 소속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기에 공감할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가끔 소속감을 쉽게 느끼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나에게 소속감을 부여한 것은 한국어와 사전 정도 아닐까싶다. -- 거북이 2008-3-2 6:56 pm

2 # 촌평[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