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나그네

ISBN:6000011256

[ 서평 ] 역사속의 나그네


사실 복거일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고있던 것이라고는 이름이 특이한 양반이다라는 것과 영어공용화론과 같은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한 '괴짜'라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우연찮게 이 소설 '역사속의 나그네'가 내 손에 들어왔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게되었다. 3권이 나온지 10년이 지나도록 뒷편이 안나온다는 점과 종종 이슈거리가 된다는 점에서 김용옥, 이문열 등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역사속의 나그네를 3권까지 읽고 나니 복거일이라는 사람은 상당한 보편주의자이고 지적여흥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편주의자라는 것은 이언오라는 주인공을 항상 범세계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고찰하고자 노력하는 휴머니스트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언오는 21세기의 지식이라곤 전혀 없는 그곳에서 조금씩 자신이 지닌 지식을 풀어내는데 그것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혁명적인 것인지, 그것이 시간 줄기를 파괴하는 일이 생길지라도 다른 이들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를 생각하며 웃는 인간이다.

이언오의 이런 성격을 묘사함에 있어 복거일은 자기가 가진 해박한 지식을 넉넉하게 풀어놓는다. 이언오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행위를 보편화시킬때 나는 마치 복거일이 내 앞에서 뭔가를 강의하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종종 웃곤했다. 뭔가 진지하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그것에 대한 찬반양론을 벌이며 지적인 여흥을 즐기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며 그 여흥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여흥을 즐기면서 자기가 알고있는것과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런 상황이 좋다.

이 소설은 가아끔 등장하는 비약이 조금 거슬리기는 해도 비교적 무리가 없는데,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방대한 영역의 소재들과 재미있는 소설적 구성에 비하면 그정도 비약은 크게 흠이되지 않는다. 개의 이름을 '순우피'라고 짓는 등의 유머러스함이 종종 보이기도 하고 이언오가 가진 인간적 순진함은 이 소설의 매우 중요한 부분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역사 SF라는 구성상의 특징도 있지만 끝까지 인물들의 대화를 고어로 구성했다는 점이나 액자형식을 빌려 많은 지적 화두들을 던진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특이하다. 21세기의 사람이 타임머신(여기서의 표현은 '시낭')을 타고가다 16세기 조선에 좌초해서 먹고살기위해 사람들에게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16세기 조선말로 번안(?)해서 해주고 그것을 듣는 아이들이 웃고울고한다는 얘기가 가득있는 책이 어찌 신선하지 않겠는가.

이언오가 마을사람들, 더 나아가 세상사람들을 위해 골짜기 사람들을 설득해 둑을 쌓는 과정을 읽다보면 조금 숙연해져온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남들에게도 좋게 다가가기를 바라는 엄청나지만 소박한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언오가 민란이라는 형태로 과거의 암흑과 대결하듯 나도 상식적이지 못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상식적으로 만들기 위해 싸워야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당신도 이언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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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7, 200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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