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무엇인가에서 넘어옴)

ISBN:8972911739

# 거북이[ | ]

이건 95년 학부 1학년때 사학개론 수업의 리포트로 작성한 것.

나는 벌써 이 책을 두번째 읽었지만 아직도 이사람이 뭘 얘기하려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이유를 몇가지 생각해 보았는데 첫째로는 이사람이 꽤나 일반적인 말만을 해서 느낌이 없었던 것이고, 둘째로는 이사람이 든 사례들이 내가 잘 모르는 것이었으며, 셋째로는 내가 이 책을 지루하게 느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요즘에 김용옥 선생이 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을 반쯤 읽었는데 그가 주장하길 우리 학문 풍토에 가장 시급한 것이 번역이라했다. 나는 자연과학도라 불가피하게 죽어라 원서만 보게 되는데 확실히 제대로 된 번역의 필요를 느낀다. 엉성한 번역서는 원서보다 더 이해가 안된다. 이 '역사란 무엇인가'도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는 만큼 상당히 명료한 문장이었을 것 같은데 그리 쉽게 읽히지 않았다. 때문에 나도 그러하고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어려워한다. 실제로 과내의 소모임이나 동아리 등에서 역사철학에 관한 세미나를하면 이 책보다는 유시민씨가 쓴 '내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나중에 공부를 좀 한 뒤에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 대한 평을 할 능력이 없으며 이 책이 말하는 여러 보편적이고 절충적인 사관이나 사고방식을 하나의 지식으로 접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스스로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나는 현대사 동아리에 있다)에 대하여 쓰겠다.

이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은 관용구를 넘어서 상투어가 되었다. 이제 이 말은 쓰기도 듣기도 지겹다. 하지만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한 가장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개개인이 역사적 사실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역사 밖에 선 사람이 바라보는 관조자적인 의미가 상당히 들어있다. '대화'라는 추상적 표현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역사를 '역관계의 흐름'이라고 본다. 흔히 '투쟁의 기록'이라고 표현한 것을 고상한 어휘로 바꾼것 같지만 실제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기독교 신자인 친구가 막시즘의 근본문제는 세상을 투쟁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해서 공감한 적이 있지만 그러한 생각을 버릴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예를 보아도 가진자가 못가진자에게 순순히 준 적은 없었다. 안 주려고 바락바락 버티다가 빼앗기고 죽음을 당한적은 많았지만. 개인과 집단은 다르지만 적어도 집단은 예외없이 그랬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세상을 계급투쟁으로 본 것이고 여전히 마르크스의 관점은 유효하다. 많은 이들이 이성이나 윤리에 관하여 말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카도 이성의 확대를 진보로 보았지만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아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월러스틴같은 학자는 자본주의가 갖는 장점에 못지않게 단점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보여줌으로서 세상이 결코 진보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평등한 세상이 온다면 그 때는 정말 진보라는 말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진정한 진보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동물과 다를 바 없는 것 같기도하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일단 자기를 위하고 그 다음에 남을 위하니 말이다.

어렸을 때 위인전 읽기를 좋아했다. 그들의 삶이 역경을 딛고 위대한 업적을 성취하는 것으로 귀결지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인물로 읽는 세계사'라는 좀 나은 형태의 위인전을 읽는다. 사실 위인들을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그들이 실제로 세계를 움직여나가는 중추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로 그 위인들은 바로 상황이 만들어 준 것임을 간과하면 곤란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우리 현대사가 어떻게 꼬여왔는가를 어렴풋이 알게되자 처음에는 황당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러한 왜곡의 여파가 아직까지 내려온다는 사실, 겉만 다르지 근본적으로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학생들이 왜 들은 척도 않는 정부앞에서 데모를 하는지도 알게되었다. 왜곡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그것이었고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다.

나는 역사를 선인들의 지혜와 과오를 이해하여 개인적으로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는 더 옳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천의 문제에 이르면 난감하다. 내가 공부한 역사를 보면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학생운동이다. 그러나 그것의 힘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급격히 소멸되어가고 있으며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지 못한다. 물론 그것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이기심때문에 그것을 실천하기가 힘이든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벌써 지식인이 갖는 가장 안좋은 타성에 젖어있는듯하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실천에 옮기자라고 머리 한구석에서 얘기하지만 이미 그 체제에 속하고 거기서 특권받는 계층이 되어있을 내가 거기서 얼마나 할 수 있을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그렇다고 학생운동을 하나의 대학문화처럼 대하는 것은 싫다. 과연 거리로 뛰어나가는 애들이 얼마나 공감을 하고 나가는지 생각해보자. 그들이 얼마나 민중을 이해하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 나는 우리들은 철저히 제 3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녹두거리에서 그 비싼 술을 죽도록 마시고 토하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는 한달정도 생활비가 될 만한 돈이 신입생 환영회라는 명목으로 하룻새에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동지가'를, '철의 노동자'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학생운동이 대학문화인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런 문화속에서 산다. 이러한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느낀 고민이며 지금도 유효한 고민이다.

그래서 일단은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이 되기로 다짐해보지만 그것도 자기 합리화같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철학을 공부하고 역사를 공부한다.

지금은 내게 올바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올 지를 걱정하고 있지만 막상 그 기회가 오면 주저없이 잡을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겠다. --거북이


편집자 1.1.1.3 Jmnote bot J Jm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