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

     

1 # 거북이[ | ]

저 현이라는 글자가 뭐지 하고 찾아봤더니 자랑할 현이다. 현학할 때 그 현자로군. 여자를 자랑하는 자라서 매춘부 도매상이 되는가보다.

복수는나의것이후 이마무라가 남긴 영화는 간장선생이 그나마 범작이고 나머지는 모두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아직 검은비좋지아니한가를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 중 이 영화는 너무나 정치적이고 너무나 신랄하여 나처럼 시니컬한 것을 즐기는 인간도 와 저 할아버지에게는 정말 졌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

일단 내가 궁금한게 뭐냐면,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영화에 돈을 댔는가 이거다. 바로 전의 작품이 나라야마부시코였고 그걸로 깐느 황금종려상을 받았긴 하지만 지금도 군국주의가 설치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면 내 상식으로는 언제 칼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동남아 사방을 오가는 이런 큰 스케일로 그렇게 극우 파시스트를 까대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악스럽다. 그리고 이 영화로 수상은 못했지만 일본내 영화제에 두개 부문이나 올라갔다는 것 또한 황당하다.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인물의 행동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이 영화는 현실과 비유와 암시가 뒤섞여있는 편이다. 사실 붉은다리아래따뜻한물에서도 그런 면이 보여지지만 그 경우는 조금 엽기적이긴 해도 우화로 충분히 읽히고, 간장선생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파시즘을 비판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소박하여 보면서 감독의 안위가 걱정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여현에서는 이마무라 영화의 이 모든 장치들이 뒤섞여 신랄함의 극을 치닫는다.

이 영화가 더 골때리는 것은 또라이 주인공들에 대해 감독이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자 도매상인 이헤이지, 중국의 여자 도매상인 왕씨, 그리고 이헤이지와 왕씨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여주인공 시호 등등 이 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 감독은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물론 웃기긴 하다. -_-) 감독은 이 세사람을 인간적인 매력으로 포장하고 있으며 인물들에게 일부 동조하는 면조차 보여준다. 그런 감독의 태도가 이 영화의 신랄함을 극도로 끌어올리긴 하지만, 이건 뭐 스톡홀름 신드롬도 아니고, 내가 여자들을 속여 매춘시키는 오야붕을 동정해가며 영화를 보게 되다니 이것은 참으로 기괴한 경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미디라서 그런가. 복수는나의것에서도 같은 배우가 주연을 맡고 있지만 거기서 연쇄살인범에게 공감하진 않았단 말이다.

그리고 이마무라의 영화를 보고있으면 이 양반도 왠지 김기덕처럼 뭔가 뒤틀린 여성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김기덕이야 지가 돈 끌어모아서 소자본으로 지 영화를 만드니까 뭐 그렇다 쳐도 이마무라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관점을 가지고 이런 대작들을 만들었을까. 하여간 영 알다가도 모를 나라가 일본이다.

하여간 이 할아버지 영화는 보다보면 탄복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인간은 원래 이런 종자들이여. 한치도 벗어날 수가 없어. 이런 생각을 이마무라 쇼헤이보다 직관적으로 표현한 예술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쿠로사와아키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참 따뜻하게 표현했는데 이마무라는 참말로 끝을 본다. -- 거북이 2007-10-23 1:42 am

2 # mamoro[ | ]

<여현 女衒> - 일본 제국주의 광기에 대한 농담

1960년 대 오시마 나기사 감독과 함께 일본 뉴웨이브를 이끈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도둑맞은 욕정 盜まれた欲情>으로 58년 감독 데뷔하여 줄 곳 극영화 작업을 해오다가 1970년부터 활동 영역을 넓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게 된다. 사실 그의 이전 극영화들에는 이미 다큐멘터리적인 지향성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1963)에서는 전직 종군위안부였던 40대 여성이 등장하며, <호스티스가 말하는 일본전후사>(1970)에서는 실제 호스티스를 주인공으로 기용했다. 당시 작업된 다큐멘터리 <가라유키상 からゆきさん>(1975)을 비롯 <미 귀환병을 찾아서> 등 그의 다큐멘터리는 태평양 전쟁이후에도 동아시아에 잔류해 있는 일본인들의 삶과 증언을 담고 있다.

이후에 만들어진 은 바로 이러한 이마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업의 실존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실존했던 인물인 무라오카 이헤지란 인물의 인생 일대기를 이마무라 감독의 전형적인 블랙 코미디 스타일로 그리고 있다.

남자는 대의를 위해 산다

1901년 무역상이 되고자 홍콩으로 건너간 무라오카 그의 별명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제겐’1)이다. 제겐은 일본 에도시대, 유곽에 여인을 조달하는 사람을 말한다.

는 그러나 빈털터리로 타지에서 의지할 곳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때마침 일본영사의 제안으로 러시아군으로부터 철도 건설 정보를 빼내어 오는 첩보 활동을 하게 되고, 첩보 활동 중에 그는 자신의 같은 고향 출신 여인이 첩보 활동으로 죽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여인의 죽음 앞에서 무라오카와 함께 첩보 활동을 한 일본군 대위는 ‘남자는 대의(大義)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을 남기며 떠나는데, 이 말은 무라오카 인생을 지배하는 좌우명이 되어 버린다.

순박하며 단순하기까지한 무라오카는 첩보 활동으로 모은 돈과 함께 홍콩으로 되돌아 와, 그의 좌우명이 되어버린 ‘남자는 대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을 실현코자 해적선에서 매춘을 하는 일본 여성들을 구하게 된다.

그러나 구출된 일본 여성들은 새로운 삶을 살 생각도, 본국으로 돌아갈 방법도 없이 빈정거리고, 이에 무라오카는 다시 한번 대의를 위해(!) 직접 이들 여성들과 함께 매춘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무라오카는 죽는 날까지 ‘국립창녀관’ 건립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

광기와 욕망에 관한 관찰기

은, 매춘을 통해 번 돈을 국가(일본)의 번영을 위해 영사관에 헌납하고, 매춘의 경쟁력을 위해 영사관에 ‘국립창녀관’을 건의하며,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안차 ‘리틀 제팬’ 건설을 위해 많은 아이를 출산하는 등 상식적으로 황당한 행동들이 영화 속에서 정당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를 태연히(!) 우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이미지 면에서는 이마무라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같은 다른 많은 작품들이 그러했던 것들처럼, 속 인물들 역시 내재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발현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해적선에서 구해진 여성들은 납치당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닌 원초적 욕망에 근질거려 하는 모습이며, 영화 속 인물들 간의 관계에도 욕망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또한 무라오카가 일본군을 봤을 때 한 말은 ‘여자는 내게 맡겨달라’는 말이다.

이렇듯 은 이마무라 감독의 견지해온 삶에 대한 우화적 표현과 욕망에 대한 찬미를 그대로 담고 있는 전형적인 이마무라 감독의 영화이다. 동시에 이는 이후에 에서 보여준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먼 여성에 대한 관점과 감독의 온정이 배재된 삶에 대한 태도나 에서 보여준 2차대전 시대에 대한 희화화한 표현 방식을 이해하게하는 단초가 되어 준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시대와 현상을 보는 관점은 지극히 ‘관찰자’적인 관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하층민들의 삶을 자주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그 방식은 사회에 대한 감독의 직접적 비판의식을 보여주기 보단, 우회적으로 블랙 코미디의 형식을 취하거나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중심을 둔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에게 있어 모순된 시대-삶-개인은 격정적인 고민의 대상이라기 보단 ‘관찰’의 대상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마무라 감독이 자신의 관찰 대상에 무책임한 것은 아니다. 이 뛰어난 관찰자는 을 통해 제국주의 광기에 대해 뼈있는 농담을 던진다. (mamoro)

3 # 촌평[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