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마무리

2002 10 28 月 : 여행 마무리[ | ]

i에 가서 확인해본 결과 역시 월요일에는 모든 미술관이 닫는다. 얼치기같은 투우박물관 하나 개장하더군. 아웅 오늘은 또 뭐하고 보내나.
i에서 나에게 설명해준 젊은 친구는 우디 헤럴슨 처럼 생겨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었지만 조금 얘기해보니 말하는 것이 부드러운, 굉장히 친절한 친구였다. 정보 정리된 브로셔도 많고 열차시간이나 그런것도 잘 챙겨주고 어딜 가보라고 추천까지 해주는 내가 가본 i중에서 가장 괜찮았다. 내가 가본 곳중 가장 친절한 곳이었다라고 말해주니 쑥스러운듯 고마워한다.

바로 옆이 구시가여서 일단 한바퀴 돌았다. 유럽의 도시계획은 구시가가 원래 있고 그것이 넘쳐나면 신시가를 만들어 구시가의 트래픽을 감소시키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건물을 부수고 도로를 넓히는 방식은 여간해선 쉽게 취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시가의 파괴가 진행되지 않고 사람이 살면서도 도시문제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시가도 그냥 대충 짓는 것이 아니라 교통량과 녹지비율을 고려하여 올망졸망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야 워낙에 기구한 역사를 겪은 덕에, 그리고 대부분 목조건물이었던 탓에 그런 식으로 도시계획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그런 것들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고민할만 하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쉽게 부수고 너무나 큰 건물들을 너무나 쉽게 짓는다.
유럽에서 나는 건물들이 낮은것도 복이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낮은 건물들이 주는 아늑함과 시각적 쾌감이라는 것은 의외로 크다. 서울은 어딜가나 높은 건물들과 높은 상가들 뿐이라 눈이 갈 곳에는 어디나 광고들이 나신의 여인처럼 눈을 붙잡으려든다. 이런 삶의 여유는 언제쯤 되찾을 수 있으려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노무현아저씨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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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

구시가 아래쪽에는 기차역처럼 생긴 뽀대나는 곳이 있는데 실은 여긴 대형 정육점이다...-_- 아무래도 오래전에 있던 대형 유통공간인거 같은데 아직도 정육점들이 꽉 차있다. 하여간 유럽에 있는 건물들이 다들 뽀대가 좋아서 그렇지 한번만 들어가서 뭔지 확인해보면 이런 이상한 것들이 태반이다. 왕궁처럼 생긴 놈이 우체국이었던 케이스를 우린 이미 마드리드에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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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와 빌보의 거리.

구시가 북쪽으로 올라가서 신시가쪽으로 가는 길에도 몇개의 AFC들이 있다. 큼직큼직하다. 유럽에는 우리나라처럼 자잘한 교회들은 없다. 띄엄띄엄 큼직한 교회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붉은 네온사인 십지가도 없다. 그런것은 그들에겐 천박한 자기기만일 뿐이다. 조선에서 종교란 어려울때나 '나를 구원해주이소'라며 찾는 그 무엇이상은 못되는거 같은데 이들에게는 일상화되어 그저 소박한 삶의 안식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회통합의 역할의 크다. 왜 야소교는 그들에게는 해방이, 우리에게는 억압이 되었는가. 그들은 서울의 밤하늘을 더럽히는 십자가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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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가와 A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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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가의 공원, 그리고 거기서 내려다본 빌보강. 오른쪽 끝의 다리옆에 달린 녀석이 구겐하임 빌바오.

보기엔 그리 멀지 않은데 이거 길이 꼬불꼬불해서 상당히 시간이 오래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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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빌바오

어제 늦게도착하기도 했고 비도와서 찍지 못했던 구겐하임 빌바오를 찍다. 강과 구겐하임 미술관 사이에서 아까 사온 쿠키를 먹었다. 이동네 쿠키는 어째 다 맛있누. 아까 정육점이 많던 상가에서 요구르트를 하나 사왔는데 숟가락이 없다며 안주더라. 덕분에 새끼손가락으로 빨아가며 먹었는데 주변사람들이 동양 거지로 보지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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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인 꽃개(꽃게가 아니다...-_-). 그 앞에는 미술관 문닫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서있던 거리의 예술가. 더워보여 동전을 몇개 집어주었다.

어제 잠깐 적었지만 구겐하임 빌바오는 강가이고 다리 옆에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 바로 뒤에 인공 물웅덩이를 만들고 그 뒤에 강이 흐르고있는 것이다. 나는 이해가 안가는게 이 물웅덩이와 강의 수위차는 고작해야 30cm정도이다. 그렇다면 이 수위를 맞추어 강물이 자연스럽게 미술관 뒤로 흘러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 훨씬 자연합일적인 컨셉에 맞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굳이 안맞춘 이유를 모르겠다. 아쉬운 일이다. 그 외에 조금 무의미하게 세워진 구성물들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미술관의로서의 위용은 봐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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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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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옆에 거미처럼 생긴 조작이 있는데 그거 만든 친구의 이름이 루이 부르주아더군. 태양왕 부르죠아지인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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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도 달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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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근처의 신시가. 애들이 놀고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이렇게 평화롭지만 조금 가다보면 무장한 민병대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바스크 독립군과 연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바스크지방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꽤 거세게 했었다는 사실이 다시한번 생각났다. 내가 사진찍자고 했지만 그들은 정중히 거절했다.

객소(? Gatxo)라는 바닷가로 왔다. 여기까지 지하철이 다니는데 아마도 이 지하철의 주 목적은 도심과 바닷가의 항구를 연결하기 위한 것일게다. 이것은 더블린에 경전철이 있어 주변 해안도시들과의 연계를 추구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무리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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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소 가는 길에 있던 다리(?). 화물선이 지나갈 수 있도록 이렇게 되어있는데 유료라서 타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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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소 모습

객소는 고즈넉하긴 하지만 도노스티아처럼 이쁘거나 하진 않다. 아무래도 큰 항구 옆의 해변이니 오죽하겠나.
해변가에 할머니들이 가슴을 내놓고 선텐을 하며 잡담을 하고있다. 결코 보고싶지 않았는데 해변을 보다보니 보게되는군...-.- 여튼 이런 자연스러운 문화라도 있는것이 없는것보다야 훨씬 바람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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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파도. 가만보면 개들도 물에 들어가는 것을 꽤 좋아하는 것 같다.

신발을 벗고 바닷가에 가서 발을 담궜다. 역시 가까이에서 보는 파도는 꽤 무시무시하단 말야. 여기는 모래가 검어 파도도 같이 검고 그래서 더욱 그러하다. 해변이 길어 한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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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있던 독창적이지만 엽기적인 변기. 저기에 발을 대고 엉덩이를 구멍쪽에 맞춘다음 떨어트리는거다...-.- 아무래도 덩이 떨어지면 물이 엉덩이로 뷜거같다...-_-+

대충 땅끝에 가까워보이는 곳까지 갔다. 산책로의 끝에는 식수대가 있는 것이 마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하셨소 하는거 같다. 물을 마시다. 해가 슬슬 지니 항구에 불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한시간정도 앉아있었던 것 같다. 해지는 것도 보면서. 이정도면 여행의 끝으로는 크게 불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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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은 결코 짧지 않았다.

아웅 기차타고 좀 편하게 가보려했더니 쿠셋은 자리가 없고 침대칸은 75E나 한다. 하는수없이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는 한시 반에 출발하니까 무려 네시간이나 남아있다. 처음 한시간은 그냥 버벅대면서 보냈고 그다음 한시간은 우연찮게 찾은 PC방에서 보냈는데 나머지 시간들은 정말 할게 없어서 힘들었다. 그나마 PC장에서도 한글이 안써지는 바람에 별로 하고싶은 것도 없었다. 역시 지치면 의욕도 떨어져. 그나마 PC방 문닫는다고 해서 �겨났다. 이미 말했다시피 유럽은 밤이 되면 갈 곳은 펍밖에 없고 내가 바스크의 펍에 홀로 앉아 궁상 떨 일도 없으니 그냥 앉아서 몽상이나 하기로 했다. 아웅 힘드네 그것도.
말이 세시간이지 이정도면 왠만한 단편소설 하나쯤은 탈고하고 퇴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우라질레이션~. 확실히 이럴때는 멋진 PDA가 하나 있어 그 안에 이븐바투타여행기같은 것이 들어있으면 좋겠다. 여행자들에게 책은 너무나 무거운 아이템이라서 들고다닐 수가 없는데 사실 여행다니면서 책을 읽는 기분이야말로 이거 쉽게 놓치면 아쉬운 기분이다. 게다가 바보처럼 CDP를 준비하지 않는 바람에 음악도 들을 수가 없구나. 처음에 한국 나올때 소음을 들어도 유럽의 소음을 듣고오겠다는 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생각을 하고 오는 바람에 CDP가 지금 서울에서 놀고있는거다. 아 천추의 한이다. 여행다니면서 음악을 들으면 훨씬 행복했을거야. 훌쩍.
잠이라도 청해보려 했으나 벤취 밑에서 찬바람이 올라오는 통에 잠도 안든다. 노숙의 기본은 바닥에 라면상자를 깔고 그 위에 신문을 덮는 것인데 지금 그런것을 찾을수도 없네. 정말 마드리드에서 봤던 그 노숙꼬마는 어떻게 된 녀석일까 싶다. 다행히 아까부터 속이 안좋았던 것은 이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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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의 악사. 뭔가 귀에 익은 곡을 연주했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오른쪽은 빌보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

12시 반이 되니 표를 팔기 시작한다. 표를 사고 다시 잠을 청해 조금은 잤지만 깨고나니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하다. 버스에 올라탔는데 집시인지 인디오인지스러운 사람들이 주변에 있더라. 그들은 들어가자마자 망토를 덮고 의자에 누워 자는데 거의 선수 수준이더만. 코까지 골데. 나도 앉아서 좀 삐대다가 결국 그들처럼 자버렸다.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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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러를 황소의 뿔처럼 만든 깜찍한 디자인의 고속버스. 난 별로일거같아 과감하게 투우를 보지 않았었다. 재밌었다는 사람들도 있더라만. 그런 말 하는 사람이 다 여자라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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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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