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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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Entropy: A New World View
엔트로피

     

2 책소개 (알라딘)[ | ]

‘물질이 열역학적 변화를 일으킬 때 변화된 온도를 열량으로 나눈 값으로서, 쓸 수 없게 된 에너지’를 뜻하는 엔트로피는 가용 에너지를 초과하는 상황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를 통해서 역사를 진보로 보는 시각을 무너뜨리고, 과학과 기술이 보다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환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준다.

3 #생각[ | ]

  • 지구화학을 들을때면 학부 3학년때인가 2학년때네

지구화학
종말의 인식과 그 대응

이 책이 1980년에 처음 나왔으니 꽤나 오래되었다. 요즘같이 지식의 재생산이 활발한 시기에 20년 가까이 그 저력을 잃지 않는 책이라는 것은 뭔가 보편적인 말을 담고있다고 간주해도 무난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었을 때 처음 받은 느낌은 '어떻게 이렇게 내 생각과 똑같은가?'라는 것이었다. 이 의문은 이 책이 그동안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내 사고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반증한다.

내가 가졌던 세계관은 무척 단순한 것이어서 '인구를 줄이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지금 처해있는 가장 큰 문제는 분배의 비합리성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세상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인구는 생산에 대한 가장 큰 압력이었으므로 인구가 줄어야 기본적인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크게 느낀 실망감은 '서울대에서조차 쓰레기 분리수거가 안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양상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열악한 의식수준에 있다. 서울대인들이 가진 지식 수준은 모르겠지만 지성의 수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그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원인은 아마 서울대라는 4만가까운 개별소비자의 집합체가 가지고 있는 거대성에 있을것이다. 이 4만명의 막강한 소비군이 버리는 쓰레기의 양은 학교 전체를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학교를 찾은 내 사촌의 첫 물음이 '오빠네 학교는 왜 이렇게 지저분해? 쓰레기도 널려있고.'였다. 서울대는 관악구 쓰레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것은 거대조직의 비효율성과 인구압력이 야기하는 쓰레기 문제를 잘 대변해주는 예이다.
즉 들어오는 것(소비)이 줄어야 나가는 것(쓰레기)이 준다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고 이는 바로 이 '엔트로피'라는 책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의 생각이다.
어떻게 하던지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그러나 엔트로피의 증가속도는 줄일 수 있다. 지금과같은 고에너지 소비상태가 유지된다면 과도하게 증가한 엔트로피에 의해 빠른 시기안에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고에너지 소비 시스템을 저에너지 소비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고에너지 소비 시스템의 한계(무모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개개인의 각성이 사회적 합의에 이를 때 비로소 '태양 시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책의 요지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천천히 그러나 명쾌한 논조로 지금의 뉴턴적 세계관이 가진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해 나간다. 현대 문명의 위기를 지적하는 수많은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그것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진단하는 책이 의례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는다.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존적인 문제에 부딪히게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독특한 것은 저자가 처음부터 종말을 확실하게 밝히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열역한 제 2법칙은 미래는 열죽음heat death상태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저자가 '미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만이 그것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파국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그 행동이 두가지로 나뉠것이다. 하나는 파국이 오기전에 하고싶은걸 다 해보자는 '막가파'이겠고 다른 하나는 파국이 오더라도 그 파국이 오기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것인가에 대해서 고찰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이 딛고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도가철학과 매우 유사하다. '작고 단순한 것이 잘 돌아가고 융통성이 있다.' 노자는 사람들의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많은것을 알게하면 안된다는 입장임에 비하여 리프킨은 사람들이 그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여 자발적으로 저엔트로피 사회를 구축하도록 유도해야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것은 동서양의 인식차이를 반영한다. 동양에서는 현실에 기반한 직관적인 방법을 중요시하나 서양에서는 논리적 토론이나 합의에 의한 민주적인 방법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기에는 문제가 있다. 또 어떤것이 나은가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책에서 시대적인 한계로 인하여 저자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터넷의 대중화라는 부분이다. 나는 인터넷의 보급이 양날의 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인터넷이 그다지 쉽지도 않고 그다지 조직화되지 않은 정보가 마구 널려있는 상태이므로 단지 몇몇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인터넷은 정보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매체이며 속도가 개선되고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분명 간편해진 정보의 이동성으로 인하여 '작은 조직'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GNU선언으로 대변되는 정보의 공개와 이것을 위한 조직화는 정보의 민주화운동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 어떻게 저에너지 소비 사회로 넘어갈 것인가?
나는 비록 이것이 '철인정치'와 동일한 맥락에서 비판받을만한 말이지만 일단 각성된 엘리트들이 저에너지 소비 시스템으로 철저히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의 운영자들만이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해 온 자들이지만 그들 이외에 시스템을 변형시킬 자는 없다.
역시 컴퓨터 쪽의 예를 들어보자. 이쪽은 하드웨어의 급속한 발달로 기능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지만(물론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다) 소프트웨어의 크기만 방대해진 비효율적인 프로그램들이 양산되고있다. 이전에 시스템의 한계가 프로그래머들을 제한하였을 때는 크기가 작고 그 설계철학이 분명한 소프트웨어들이 공개되어 컴퓨터의 능력이 잘 발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개발경쟁만이 난무하여 베타테스트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소프트웨어들이 사용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하드웨어적인 한계가 멀어지자 응축되지 못한 논리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안정성이 매우 떨어지는 MS Windows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인터넷 상의 토론으로 개선시키는 양상이 나타났는데 그 대표적인 흐름이 Linux개발과 GNU선언이다. 현재 UNIX시스템에 정통한 천재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활성화되면 곧 소프트웨어 시장을 위협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좀 더 소비자 지향적이고 충분한 검증을 거친 영속성을 가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빌 게이츠가 독점하고있는 소프트웨어 시장을 분쇄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성된 엘리트가 조직화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저에너지 소비사회로 넘어가는 것은 필연이며 당위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분명 종말을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근미래가 아닐 수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파국을 충분히 늦출 수 있다. 이것을 인식하기에 저자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희망의 법칙이라고 논하였다.
이 책은 그것을 설파하고있으며 각자의 생활속에 녹아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4 같이 보기[ | ]

5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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