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꿈을

언제나 꿈을

하라 히데노리의 만화는 단 두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데 한가지 분류는 '그래! 하자', '청공' 과 같은 스포츠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 집으로 와요', '겨울 이야기', '언제나 꿈을'과 같은 루져 소년과 그를 언제나 사랑해주는 소녀와의 애정물이다.

이 두종류의 만화에서 하라 히데노리는 아주 현격한 수준차를 드러낸다. 스포츠물은 단순하기 짝이없는 인물군상들이 나와 주인공의 초인적인 노력에 기대어 모든것을 해결하는 쌍팔년도에나 나올법한 쓰레기같은 구성을 보여준다. 반면 애정물에서는 탁월하게 심리묘사가 되어있으며 루져분위기의 주인공들의 상황을 여러가지 사건들을 통해 꽤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애정관계역시 단순한 감도 없지않지만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는 꽤 리얼하다.

어제 밤에는 간만에 '언제나 꿈을'을 스트레잇으로 다 읽었는데...스토리라인은 대강 이러하다.

언제나 그렇듯 얼레벌레한 만화가 지망생이 하나 있고 그 주위에는 이런저런 친구들이 있다. 그중 꽤 진지하게 만화를 그리는 여자애가 하나 있는데 그녀는 이 루져 타입의 지망생에 비해 조금씩 앞에있다. 그녀와 이녀석은 사실 별 인연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이녀석의 주위에 있게된다. 그녀가 힘들때 이녀석은 함께 있어주었거든. 그 사이에 이 루져보이는 계속 좌절감과 희열을 동시에 맛보며 만화가로 조금씩 나아가게된다. 이미 그녀는 인기가도를 달리는 유명만화가가 되었는데 만화가를 착취하는 시스템속에서 계속 지쳐가고 이녀석에게 더욱 의지하려한다. 하지만 그녀가 정서적으로 거의 괴멸상태에 이르렀을 때 이놈은 결정적으로 함께있어주지 못하고 그들의 사랑은 깨져버린다.

사실 이 다음에 스토리가 더 있지만 그것을 알려주면 재미가 반감될까봐 알려주지 않겠다.

이 만화가 특이한 점은 주인공들이 만화가라는, 작가 자신과 동일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소재보다도 훨씬 큰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애정관계와 만화가라는 자의식이 한데 물려 마지막의 대단원을 끌어내는데 이 때의 감흥이란 것은 매우 짠한 것이며 이것은 하라의 다른 애정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구성이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구성이 훌륭하군...재미있어...따위의 생각도 물론 한다.

하지만 요즘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부럽다...크흑...T_T'과 같은 생각이다.

여기 나오는 여자애는 이 루져보이에게 매우 충실하고 솔직하다. 같이 놀고싶어하고 힘들면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뭐 조금은 전형적인 설정이다. 이런 스테레오타입적이지 않은 관계는 '내 집으로 와요'에 상세히 묘사되어있으며 그렇기에 '내 집으로 와요'는 가히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남녀관계는 그렇게 썩 단순하지 않으니까.

어쨌거나 나는 솔직하게 나에게 기대고 또 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한거다. 만화주인공처럼 이쁘고 애교있으면 더욱 좋겠지. 요즘 하루에 12-15시간씩 회사에서 착취당하고 있는데 이 생활이 벌써 넉달째다. 지금까지 밤새면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바보로 여기던 내가 여기서는 머리털나고 처음 밤도 새봤다. 여름휴가는 커녕 주말도 없었다. 룰루랄라 재미있게 만나던 녀석하고도 꼼짝할 수 없는 상황때문[ 만은 아니지만...-_- ]에 박살난지 한 두달이 넘었다. 나는 만화책을 읽으며 도피와 자위행위를 일삼고 있는걸까.

빅 부라더 앤 홀딩 컴퍼니[ 보다는 재니스 조플린 ]의 곡 중에 I need a man to love라는 곡이 있다. 이 말은 '나에겐 연인이 필요해.'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나에겐 사랑할 녀석이 필요해.'라고 읽는것이 맞을것이다. 사랑하고싶은 상대가 있어 그와 사랑을 나누기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지금 내 고독감을 조금이라도 메워줄 수 있는 그런 상대가 필요한거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 같다.

2001년은 새천년의 첫번째 해인데...현재까지의 내 생활만 보면 이것은 내 인생 최대의 구멍이 될 가능성이 높다.

흔들린 관계-신병훈련-관계의 소멸-새로운 관계를 맺어보려하나 실패-악몽의 파견근무-??.

이 구멍을 어떻게든 작게 해보려고 하는데 이게 맘대로 잘 안되네. 내년에는 조금 나아지려니 하고 이 지리멸렬한 일상속에서 좀 더 시간을 죽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고작이라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가장 괴로운 것이다.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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