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AnChiHwan

1 # 고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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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의 현재를 생각해보면, 그의 위치는 왠지 어중간하다. 김광석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찾사에서의 그는 단순한 기대주 그 이상이었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 얘기이고, 한때는 락커로서의 존재감을 가질 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다. 현재 시점에서, 안치환이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내가 만일'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의 발라드 가수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안치환의 오래된 휀들은, 혹은 적어도 안치환 자신은 그렇게 자리매김 되는 것이 억울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노래판에서 그만큼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또 꾸준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곡을 부르는 가수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방송 매체와 집회장 양 쪽에서 동시에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이름이 바로 안치환 아니던가.

안치환에 대한 비난은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그가 '상업적 성공의 주위를 항상 기웃거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과 '음반이 항상 똑같아서 지겹다'는 이 두가지가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에 대해, 나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변명을 조금 늘어놓아 볼까 한다.
사실 상업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뮤지션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남들이 자기 노래를 좋아한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안치환은 누군가 취한 상태로 자신의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는 걸 듣고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지금은 복개되어버린 도림천변에서 동아리 형들과 함께 안치환의 노래를 부르던 기억을 나는 아직 가지고 있다. 상업적 성공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곡이 여러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면 상업적 성공은 이룰 수도 없는 것이다. 차라리 안치환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바로 그만큼, 안치환의 노래에는 그의 사상적 성향이나 삶의 지향이 담지하고 있는 보편적인 감성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랑 노래와 발라드 곡을 넣어서 인기를 얻었다고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인의 삶에 없는 것도 아니고, 발라드라는 장르라고 모두 그렇고 그런 가사만 담고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한 곡들을 통해 안치환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음반을 팔 수 있고, 다시 음반에 있는 다른 곡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진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상업적 성공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음악적 태도를 굽히면서 상업적인 것에 다가갔을 때 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이 부분에서 안치환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의 음반에서 상업적 의도를 가진 편곡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고 그는 근작들에서 음악적으로 조금 나태했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앨범들마다 곡들이 항상 비슷한 풍이어서 지겹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것을 만든 안치환 자신이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안치환은 다섯번째 음반인 리메이크 앨범 Nostalgia(1997)를 내놓을 때까지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있고, 우리는 그것은 인정해야한다. 그는 1, 2집에서 숱한 민중가요 명곡들을 불렀고 민중가요계에서는 확고히 자리매김을 했지만, 그때까지 그는 대중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3집 'Confession'(1993)을 통해서야 비로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종 산물인 앨범만을 놓고 볼 때, 그는 3집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 고집을 고수하기 보다는 다소간 절충적인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상업적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안치환은 다시 1, 2집을 녹음하여 한장의 CD로 내놓는다.) 하지만, 3집을 내놓고 가진 그의 라이브 공연 팜플렛을 보면, 그는 자신이 업고 다니는 무거움 혹은 엄숙함이 과연 진지함의 발현인지 심각하게 고민했고, 향후로도 상당 기간 그러한 고민을 짊어 지고 가야 할 것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내놓은 4집 '너를 사랑한 이유'(1995)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안치환은 대중들에게 가수 안치환이 아니라 밴드 '안치환과 자유'의 보컬로 새롭게 등장한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해서 그는 민중가수에서 락커로의 변신을 시도한 것이며, 대중들은 그들을 뜨겁게 환영했다. 라디오에서 부드러운 '내가 만일'이 줄기차게 흘러 나오는 동시에 공연에서의 연주와 스테이지 매너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그리고 정말 다시 불려져야 한다고 느꼈던 곡들을 다시 부른 리메이크 곡 모음집 'Nostalgia'를 내놓게 된다. 이것은 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겠다는 그의 선언이었다.
하지만 전작과 동일 선상에 있던 5집 'Desire'(1997), 그리고 다소 지리멸렬했던 6집 'I Still Believe'(1999)에 이어 최근에 나온 7집 'Good Luck'(2001)에 이르기까지 그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들만 모은 'Remember'(2000)와 'Live Best 01-02'를 내놓았지만 이 역시 'Nostalgia'만큼 당당하진 못하다. 최근 몇 년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우리시대의 목소리'라는 수식어를 거둘 정도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의 여러 음반들 중에서 이 앨범 'Confession'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유가 있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의 대부분을 담아내고 있는 원형적인 앨범이고, 상업적 성공과 음악적, 미학적 성취를 함께 거두고 있는 명곡들이 가장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곡의 절반은 조동익과 동아기획 사단이 녹음에 참여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함춘호의 리드에 의해 녹음되었다. 반면에 몇몇 곡들에서는 상업적 의도가 분명한 어색한 연주들이 담겨있어 그의 한계를 조금 엿볼 수 있기도 하다.

  1. 첫 곡 '고백'은 잔잔하게 내적인 고백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나오는 팻 메스니PatMetheny를 연상시키는 신세사이저나 마무리짓는 색서폰 소리는 조동익 특유의 그것이다. 이 앨범과 이후 앨범에서의 완성도를 보면 조동익의 공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2. 다음곡 '자유'는 그 호소력있는 가사로 수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되었으며 이후 자신의 밴드명으로까지 된 곡이다. 함춘호의 연주를 조동익의 연주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직선적이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자유'는 앨범보다는 라이브에서 더 빛을 발한다.
  3. 그 뒤를 잇는 '소금인형'은 이 앨범의 백미이자 안치환 라이브 무대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으로, 곡의 톤이 너무 높아 수많은 휀들이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가 좌절하기도 했던 곡이다. 안치환의 호소력있는 곡과 가창력에 류시화의 입김이 녹아 들어간 노랫말이 실렸고, 그것이 조동익의 완급을 조절한 편곡, 연주에 힘입어 이 곡은 단연 앨범의 절정을 이루어내고 있다. 그러한 긴장감 가운데에서, 장필순의 허스키한 코러스를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4.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안치환이 발라드 싱어로도 충분히 자질이 있음을 보여준 첫번째 곡일 것이다. 물론 어휘 선택에 있어 그는 역시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들을 골라 쓰고 있지만 이 곡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다.
  5. '귀뚜라미'는 이 앨범의 다른 곡들처럼 내적인 고백을 표현하고 있는데 나희덕의 시를 절묘하게 곡으로 표현해 낸 안치환의 작곡력은 놀라울 정도다. 암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비장미가 원래 시의 표면에 드러나는 정서라면, 세월을 통해 완숙해진 안치환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지는 귀뚜라미의 노래는 놀랍도록 차분하며 듣는 이에게 차라리 희망적인 느낌까지 갖게하고 있다. 이후 수많은 공연에서 안치환은 이 곡을 부르며 관객들을 귀뚜라미로 만들어왔다.
  6. '겨울새'는 이 앨범에서 가장 차분한 곡이 아닌가 싶은데, 묘하게 호소력이 있고 힘이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앨범에서 떼어 이 노래 한 곡만 따로 들어봐야 제 맛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7. 하지만, '또 하나의 시작을 위해'는 뭐랄까 조금 신파적이다. 1+2집에서의 냄새가 묻어 나는 이 곡은, 안치환 자신에게는 또다른 의미가 존재하는 곡일지도 모르겠으나 앨범의 완성도 측면에서 얘기하자면, 옥의 티가 아닐까 싶다. 아마 '우리가 어느 별에서'같은 곡이 완성도가 조금만 낮았으면 이런 곡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안치환은 이런 곡들을 걸러내는 것에 가끔 관대하다.

안치환의 미덕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시대의 외압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조금은 전투적인 가사에 실어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혁명이 거세된 시대, 민중가요는 모두 죽었는지 살았는지 찾기도 힘든 시대에 그는 그래도 그것을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 앞선 세대의 목소리를 정태춘김민기라고 한다면 적어도 우리세대의 목소리로 나는 안치환과 (여기에 적긴 조금 어색하지만) 신해철을 들고 싶다. 즉 안치환은 한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왠지 그는 윤도현에게 많은 것을 뺐긴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안치환이 윤도현 대신 핸드폰 광고에 나왔다면 더욱 눈에 거슬렸을거 같긴 하지만, 적어도 윤도현 이전에 청년의 이미지와 행동력을 보여주었던 것은 안치환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말이던가 안치환의 공연에 갔을때 그는 '아메리카'를 불렀다. 그가 '뻐킹 아메리카~'하고 코러스를 부르자 이미 하나였던 관객들은 서로 찌릿하게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분노하지 않는 이 현실이 더욱 이상한 것이며 적어도 그는 자신이 속한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청년이다. 아무리봐도 건실한 청년의 이미지를 안치환이 아니라 윤도현이 가지고 있는 것은 조금 억울하다.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자유', '소금인형'을 작곡하고 노래해 온 가수가 아직 현역에서 열심히 뛰고있는데 그를 벌써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포크 락커인 안치환이 다시금 뮤지션으로서 불붙기를 기대해본다. -- 거북이 2003-8-26 2:05 am

2 # 노스텔지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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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펌] 안치환 노스텔지아 관련자료:없음 [21] 보낸이:진병학 (fgjin ) 1997-11-16 19:33 조회: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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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대한 기록 혹은 노래로 그린 80년대의 벽화 안치환, 『nostalgia』

  1. 1.

이제야 광주 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어, 며 칠 전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고, 그 장 면이 전국에 생중계 될 수 있었다. 이제야? 그러나 아 직도(!) 광주항쟁은 형식적인 훈장과 지역주의와 폭도 운 운의 잔향 속에 갇혀 있다. 17년 전 있었던 피의 학살에 대항한 의로운 항거는, 국민화합이란 미명하에 논의되는 학살원흉 전두환·노태우의 사면 문제로 거듭 모욕을 당 하고 있다. 이렇게 변함없이 기만적인 봄에 새 음반이 나왔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를 부른 대표적인 민중가요 가수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내 가 만일>을 노래한 인기가수로 잘 알려진 진보적인 대중가수, 안치환의 『nostalgia(노스탤지어)』가 그것 이다.

  1. 2.

안치환은 곧잘 김광석과 비교되곤 한다. 둘다 80년대 에 새벽과 노찾사에서 개성적인 민중가요 가수로 활동했 고 이후 대중가요권으로 진입하여 성공한 데에서 보듯, 비슷한 면이 많긴 하다. 그러나 김광석이 80년대 중반 노래운동을 비교적 일찍 정리한 데 비해, 안치환은 연배 가 어리긴 하지만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마른 잎 다 시 살아나>, , <철의 노동자> 등을 만들어 민중 가요의 대중적 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하며 80년대 후반기 를 뜨겁게 달군 바 있다. 또, 대중가요 영역에서 김광석 이 동물원과 이후의 솔로 활동을 통해 개인적 세계나 사 랑노래를 주로 선보였던 데 반해, 안치환은 비록 히트곡 들은 사랑노래였지만 여전히 노래의 사회적인 관심을 병 행하였다(김광석이 사랑노래의 유령에서 벗어나 음악적 인 방향을 전환하던 길목에서 쓰러진 건 참으로 안타까 운 일이다). 이와 같이 그 둘은 많이 다르기도 하다. 80년대에 불리던 노래들로 꾸민 『nostalgia』가 김광 석의 『다시 부르기』를 떠올리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안치환의 작업은 김광석과 닮은 듯 다르고 상이(相異)한 듯 비슷한 것 같다. 모두 청(소)년 시절에 듣던 노래들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언필칭 모래시 계 세대에게 있어 『nostalgia』는 김광석의『다시 부르 기』를 손에 쥐었을 때와는 또다른 감응을 전해주는 듯하 다.

  1. 3.

1980년 광주에서 잔인한 집단 학살이 있었다. 한국 현 대사를 오욕으로 물들이고도 모자라 민중의 피를 먹으면 서 이어나간 군사독재가 80년대 내내 있었다. 이러한 "기나긴 죽음의 시절"에 맞서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치떨리는 노여움" 그리고 참세상을 향한 저항이 있었다. 그리고, "타는 목마름으로" "소리 없이" "남몰 래" 부르던, 술집에서 "숨죽여" 부르던, 거리에서 주먹을 치켜들며 다짐하던 노래들, 민중가요가 있었다.

  1. 4.

80년대에 민중가요가 제 이름을 얻게 되고 처음으로 폭발적인 수의 노래들이 조직적으로 나오게 된 동인(動 因)은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정치적인 상황에 기인한 다. 80년 짧은 서울의 봄과 5월 광주, 그리고 폭압 정치 는 필연적으로 변혁의 움직임을 낳았고 대학의 노래'써 클'들을 '노래패'로 변환시켰다. 군사독재와 거짓언론 과 왜곡된 교육과 자본의 착취를 부수고 바꾸어 해방세상 을 건설하려는 의지는 제(諸) 분야에서 지배계급과 이데 올로기에 전선(戰線)을 긋게 되었다. 거칠게 보아 요컨 대, '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며 열심히 일하는데 가난 한가'에 대한 본질적 문제제기이다. 그 질문은, 무릇 문 화예술이란 게 인간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일 진데, '지금 의 노래들은 우리의 삶을 얼마나 충실히 담고 있는가' 하 는 화두로 이어진다. 대중가요만 보아도, 압도적 다수 는 고만고만한 사랑타령이고 그나마 생활을 담은 노래는 <아, 대한민국> 류의 관제 건전가요이거나 어두운 면은 배제된 채 밝기 만한 내용으로 일관하는 획일성에 빠져있 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삶의 노 래, 진실의 노래'란 지평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1. 5.

『nostalgia』에는 너무도 유명한 , 김지하의 시에 각각 장조와 단조 조성으로 곡을 붙인 와 <타 는 목마름으로>, 비장한 가곡풍의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 든>, 절절한 밸러드 <이 세계 절반은 나>, 빨치산이 불렀 다는 , 김민기의 <서울 가는 길>의 노랫말을 계 승하는 <약수 뜨러 가는 길>, 열사추모곡 <꽃상여 타 고>, <노래 2 (죽창가)>를 연상케 하는 등 80년대를 풍미한 호소력 짙은 민중가요 17곡이 빼곡이 담 겨 있다. 80년대의 시대적 조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죽기 까지도 각오해야 할 인생을 건 결단을 요구하곤 했기 때 문에, 비장한 정서가 우선 도드라진다. 서정적이면서 격 정적이고 장엄하면서 여린 노래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 씬 날카로운 리얼리즘으로 번뜩이고 있다. 과연 80년대 는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일상에 대한 통찰을 놓치지 않 았던 시대였던 것이다. 이처럼 시대에 의해 검증 받은 완성도 높은 노래들이 가진 80년대의 투박한 질감은 원 곡의 에토스(ethos)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 세련된 솜씨의 편곡과 연주로 재현되고 있다.

  1. 6.

"라디오나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이 세상의 모든 노래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나에게 노래에 대 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고 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세계 를 만들 수 있게 뿌리를 이루어 준 고마운 노래들이 있었 다. 그 시절 그 노래들은 처절하고 엄숙했으며 정직하고 깨끗했다. 때로는 기쁘게 다가오기도 했고, 때로는 눈 물로 부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가슴으로 불렀던 것이 다.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시대는 흐르고 그 흐름 속에 노래가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다. 아니 버림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안타까운 마 음으로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두었던 노래를 이제야 불러 본다. 그 기억으로부터… 그 순수함으로부터… " - 앨범의 '편집후기' 중에서

  1. 7.

그런데 왜 하필 '노스탤지어'인가? '노스탤지어'는 본 래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아픔[비탄]'을 뜻하는 그리스어 'nostos(=return home)'와 'algos(=pain)'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80년대를 치열하게 통과하여 이제는 이 렇게 상업성과 동떨어져 보이는 앨범을 만들 수 있는 자 리에 당당하게 서게 된 것만으로도, 그는 향수에 젖고 그리워할 자격은 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0여년 안팎 을 거슬러갈 뿐인 그 시대는 이제 '전설적'이 되거나 또 는 그의 말대로 벌써 잊혀져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말 이다. 그러나 근심 많은 나는, 행여나 이 노래들이 모래 시계 세대의 향수 어린 침실음악이나 90년대 활동가들의 자위용 레퍼토리에 그치지나 않을까 염려한다. 더불어, 생뚱같은 나의 생각은 레코드점에 나란히 진열된 예민의 앨범 타이틀도 '노스탤지어'라는 사실이 자꾸 목에 걸린 다. 안치환의 역사적 노스탤지어는 예민의 순결주의적 노스탤지어와 무차별적으로 섞일 위험이 있다. 아니, 향수는 향수일 뿐이던가. 그래서 나는 '노스탤지어'란 앨범제목이 그리 현명한 작명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앨범 전체에 걸쳐 출몰하는 이주한의 트럼펫 (trumpet)과 호른(horn)의 세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점점 더 그 생각을 굳히게 된다.

  1. 8.

9시 뉴스에서 '세상 참 좋아지지 않았냐'고 은밀히 강 조하던 5월 18일 광주는, 올해 시위 도중 숨진 조선대생 류재을 군의 장례식을 둘러싸고 일어난 공방으로 (어느 표현을 빌자면) 삼일째 '전쟁 중'이었다 한다. 감옥에는 양심수들이 군사독재 시절보다 더 많이 넘쳐나고 민생은 파탄되고 인권은 철저히 유린된 문민독재의 봄, 우리는 아직도 <꽃상여 타고>를 부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도 저한 노래들을 불러야 하는가. 아직은 '노스탤지어'를 말할 때가 아니다.

3 # 공연기[편집]

제 목:"안치환과 자유" 관련자료:없음 [188] 보낸이:김명권 (kmg229 ) 1998-02-12 14:44 조회:179

웅.. 다시 여기로 옮깁니다. ^^ 이 글은 저희학교의 한 선생님께서 공연을 보고 오시구 쓴 글이에요. 교지에 실렸길래 여기에 올립니다. ^^;


"안치환과 자유" 공연을 보고...

글 : 교사 장성은

오후 내 흩뿌린 비 때문인지 거리는 이내 어두워졌으나 공기는 이내 시원했 다. 주말, 6시 40분, 체증이 만만치 않았다. 불안해진다. 망연히 날으는 자 동차의 실현 여부를 따져본다. 객석 상황을 나중서야 떠올리면, 두돌백이 민 기는 그렇다 치고 이제 다섯 살이나 된 현기는 굳이 처갓집 신세를 지지않아 도 되었을 뻔 했는데 글쎄 그 '생일무드' 때문이라나, 한사코 맡기자는 아내 의 고집이었다. 난 사실 아내의 고집을 사랑하는 편이다. 결국 20분이나 늦 어버렸다. 대공연장 입구는 건물만큼이나 회색빛이다.

그를 상업가수라 부르는 이는 아마도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다운타운의 어 느 고독한 히피성 가수도 아니다. 대학가 축제를 전전하며 "솔아 솔아 푸른 솔아"를 벨칸토 식으로 연주하는 아마추어 포크가수도 이제는 아니다. 그는 이제 확실한 프로여서, 우리같이 딱한 사정의 매니아들에게도 단 1분의 지각 을 허용하지 않는 요즘 말로 경쟁력 있는 대중가수일 뿐이다. 안치환, 그가 수원에 왔다. 우리 시대의 표크가 끝나가는 그 지점에서 다시 금 남색 청바지에 진한 감색 폴라 차림으로 고향의 무대에 섰다. 공연 수익 금의 상당 부분이 북녘동포돕기에 보내진다고 한다. 왠지 그의 공연엔 그런 슬로건이 없으면 허전하다.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하여', '시와 양심수를 위 한 밤', '일하는 사람들의 승리를 위하여' 등등의 사회성 짙은 슬로건들이 언제나 그렇듯 무대의 넉넉한 깔림이요, 때론 청중을 향한 송곳같은 찌름이 되어서 공명한다. 공연 얘기를 좀 하자. 간신히 자리잡은 사연을 뒤로 미루고, 푸른빛 메인 조 명으로 울리고 있는 저 노래는 1집에 실린 <저 창살에 햇살이> 였다.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이 내 손을 내밀면 내 목에 와서 따스해지는 햇살이 저 창살에 햇살이... 김남주의 시에 직접 곡을 붙인 노래, 그 개인으로 치자면 대중가수로의 대뷔 곡과 같은 노래이다. 애절하다 못해 쓰라린 80년대식 청춘의 사랑과 고뇌가 뱉어놓는 듯 때론 삼키는 듯, 금속성 떨림음을 타고 흐른다. 꽉 메운다. 노래는 그의 삶이요, 무기이자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언어이다. 그렇다면 그 언어의 주제는 무엇일까? 그는 주저함 없이 "자유"라고 말한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노래할 수 있으랴...... 그의 3집 최고의 힛트곡(?) 이다. 그의 자유는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 부터의 자유"와는 성격이 다르다. 개인의 안락한 생복을 위한 권리로서의 자 유도 아니다. 거기엔 땀흘려 일하는 이들의 평등세상과 그를 향한 실천이 담 겨져 있을 뿐이다. 그의 진지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흔히 ROCK하면 진보와 저항을 떠올리지만 거기엔 반대로 일탈과 무질서도 깔 려있다. 허나 이 노래 안치환의 을 들어 보시라.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알기 위해 나는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류시화의 글에 본인이 곡을 더한, 굳이 장르를 규명한다면 락발라드인 이 노 래는 30년 그의 노래 인생이 빛을 발하고 발하다 다시 그의 내면에 깊숙히 녹아든, 그의 공연 중 가장 완성도 있는 곡이었다. 정점에선 그는 너울너울 어깨를 넘어드는 춤을 추었고 음역은 무려 3옥타브를 상회할 듯 하였다. 노 래 어디에도 일탈이나 무질서는 없었다. 70만장이나 판매되었다는 <내가 만 일>은 이 곡에 비하면 전주곡쯤이나 된다고 할까? 잠시 락의 무대가 접히고 그는 다시 80년대를 연주했다. , <약수뜨 러 가는 길> 등, 정통 포크의 단순하지만 신선한 화음과 변조, 짙은 서정의 가사와 멜로디, 역시 포크음악의 진솔함이란... 한창 머리 속이 맑게 비워진 느낌이다. 보통 콘서트장에서 미발표 앨범에 담 긴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바보라 하던데, 이 멍해진 틈새를 메우기 위함일까 ? 북녘돕기라는 취지를 이쯤에서 살려보기 위함일까? 그는 연달아 네 곡씩이 나 다음 앨범 수록곡들을 불러 제꼈다.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란 곡은 그중 가장 수작이었을 것이다. 누가 시간을 흘러간다 표현했던가? 참으로 적절치 못한 표현이다. 이미 공 연은 막바지. 4집의 머릿곡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고 싶소 당당하게 살고 싶소. 나와 아내는 최근 이렇듯 목청을 높여 그 무언가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처 음에 한두 줄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한 객석은 어느덧 기쁨과 자유의 환희 로 덮이는 듯 일렁거렸다. 공연은 끝이 났지만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혹시나 그의 비정규앨범 [노스탤 지어]에 수록된 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남들을 따라 앵콜을 연호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눈치빠르고 세련된 가수는 를 선택했다. 재 중과 예술의 괴리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진 뜨거운 흙이여. 문학시간을 통해 나는 이렇게 가르쳤다. "모든 노래가 시는 아니지만 모든 시는 노래다." 나는 이 순간 이렇게 수정하고 싶다. "어떤 가수에 있어서는 모든 노래가 시다."로. 그의 노래는 곧 시이며 시란 곧 인간의 진실된 삶과 자유로운 영혼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면서 난 아내의 손을 꼬옥 잡고 내 일생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고 감사표시를 했다. 가수 안치환은 우리 시대의 흔치 않은 가수다. 그와 고등학교(유신)을 1년 남짓 함께 다녔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그 의 노래인행은 가히 눈물과 땀과 시대의 결실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 분! "안치환과 자유" 콘서트에 꼭 한 번 가 보시압. 내가 느낀 전유을 꼭 한 번 느껴 보시압.


이제 끝이네요.. ^^:; 쓰기 힘들당... --; 웅.. 근데..그 날 그 시간 그 장소에 같이 있었다니.. 들켰으면.. 죽었을까..? ^^:;;; 그럼... 꾸벅Jmnote bot (토론)!


제 목:안치환 수원공연에 다녀와서 관련자료:없음 [25] 보낸이:박윤주 (plehhg ) 1997-11-30 23:35 조회:56

여섯시반에 수원역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30분이나 늦었다. 비도 오는데...
표 구해주고 교통비까지 부담해준 친구한테 너무 미안했다.

수원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뛰어들어가 간신히 자리를 찾아 앉으니 막 공연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무대쪽에서 들리는 작은 음악소리...어두운 실내에 공연 전 특유의 흥분과 기대가 가득했다.
아..이런 분위기..얼마만에 느껴보는지..

오프닝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다른 곡들도 편곡을 좀 색다르게 해서 얼른 못 알아들었는데 이것도 전주 들으면서 무슨 노래지..? 하고 갸웃했다.
꽃다지 테이프 들으면서도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정말..정말 힘있고 멋진 노래다.
까만 모자에 청바지 차림의 치환님..
능숙하고 자연스런 진행이 공연내내 참 보기좋았다.

두번째 곡은 평행선. 가사가 잘 생각 안나서 우물우물거리며 따라 불렀다.
옆에 앉은 아저씨가 째려보는 것 같았다. -.-

가을 분위기의 노래 몇 곡을 부르신다며 귀뚜라미와 고향집에서를 부르셨다.
귀뚜라미도..참 좋아하는 노랜데...
귀뚜르르르- 하는 부분에서 치환님이 한번, 관객들이 한번, 이렇게 주고받는(?) 식으로. 참 정겨웠다.
고향집에서..는..가사가 좀 바뀐 것 같았는데.
'아직 뭘 잘 모르는 두살짜리 내아들의' 여기가..
'때로는 얄미운 네살짜리 내아들의' 이렇게.
후훗..4집이 95년 거니까 2년전이군 그러고보니..

고향집에서를 부르고 나서...치환님 고향이 수원에서 가깝단다.
화성..이랬나.지명을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고향 가까운 곳에서는 공연이 잘 안되는 징크스가 있으시다는데..
그런데 다행히 오늘은 그 징크스가 안 먹은 것 같다.^^

'저 창살에 햇살이'랑, 노스탤지아 수록곡 두곡을 부르시고 공전의 히트곡(-.-;) 내가 만일을 부르셨다.
그때까지중에서 가장 많은 환호와 따라부름이 있었던 노래다.
다음은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고...소금인형.
아..감동의 물결...*.* 눈을 감고 팔을 벌리고 어깨춤을 추는 모습이...
정말..말로 다할수 없는..느낌이었다.

요즘 감기에 걸려서 소금인형-이노래를 못부른 공연도 있었는데 오늘은 성공해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하시며 그 기념(..)으로 예정에 없던 노래를 한곡 하셨다.
5집 수록곡이라는 '얼마나 더' 라는 노래였다.

곧 나온다는 5집, 현재 열아홉곡의 노래가 녹음되어 있는데 씨디에 칠십몇분인가밖에 담을수가 없어서 몇곡이 짤릴 거란다.아쉽다.
(그런데...난 노스탤지어가 5집인줄 알고있었는데..)

게스트로 나온 사람은 왕자병에 오버액션에 썰렁에..
장난 아니었다.-.-; 노래는 잘했는데...김경호 스타일의 고음역이라 마음에 안들었다.
빨리 들어가고 다시 치환님 나오시기만 기다리는데 마이크를 안놓는다..-.- 1년전에 나온 음반이 희귀음반이 되어버린 무명가수라니..
무대에 미련이 있기도 있었겠지..--;;

2부 첫곡은 그곳으로.
멋진 하모니카 연주가 돋보였고..

그리고 이쯤에서 멤버소개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언제였는지는잘 기억이 안난다...
노래 중간중간에 여러가지 이야기도 하셨는데..
그것도 기억이 안나고; 무슨무슨 노래를 불렀나 하는 것은 적어와서 아는거다..
(노래세상 게시판에 후기 올리려고..^^) 내 머리가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신곡을 네곡 정도 부르셨다.
인상이 남는 것은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곡.

앗..
적어놓은 것을 보니 이 다음이 멤버소개였군..
-.-;

다음곡...내가 가장 사랑하는 노래..자유.
그런데 이것도 처음에 무슨노랜지 못알아들었다.--; 전체적으로 차분했던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수풀을 헤치며.치환님 자신의 이야기 같은 노래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던 이길을 왔는데 아무도 없네. 보이질 않네.
함께 꿈꾸던 참세상은 아직도 머네..."

다음곡은 당당하게.
관객들의 환호성과..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관객 전체가 일어났다.
(내 옆의 그 아저씨와 아저씨 여자친구는 안 일어나더라..)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열광의 도가니였다.
당당하게를 외치며..공연 순서는 마쳐졌다.

앵콜,재등장.
두곡을 부른것 같은데..고백 한곡밖에 기억이 안난다; 계속 흔들고 손뼉치고..너무 혹사시킨 팔이 아파서 일어선 채로 몸만 흔들며 이 가슴찡한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리고...정말 끄읕...

수원역으로 향하는 택시 속에서는 내가 만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무대에서는 처음 보는 치환님의 공연...
사실, 차분한 분위기가 좀은 낯설었다.
난 넥스트를 좋아하는데, 아시는 분들 다 아시겠지만 넥스트의 공연은 그야말로 광란 그 자체다.
목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신해철의 헤드뱅잉..
기타를 휘두르며 무대위를 날아다니는 기타리스트..
온몸을 흔들며 괴성을 질러대는 여자아이들...
(물론 나도 한몫 끼곤 한다^^) 그래서 난 공연은 다 그런 건줄 알았다-.-; 옆에 있던 친구도 나랑 비슷한 애라서...
헤드뱅할 기회만 노리고 있는것 같았는데;

그래도..정말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가슴까지 와닿는 치환님의 목소리...
그걸 직접 들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5집앨범도 빨리 나왔으면...

4 # 5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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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음반] 안치환 5집을 듣고... 관련자료:없음 [475] 보낸이:문성훈 (apulnip ) 1999-01-22 00:58 조회:178

풀하나: 안치환은 4집의 예상치않았던 대중적인 성공 이후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 해서 많은 고민을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풀 셋: 말씀하시는 건가요?

풀하나: 가 언제부터 기획되었는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만, 그 시작 시기가 어찌되었건 의 제작에 4집의 대중적 성공은 유형무형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 성찰의 흔적이 5집에서도 보입니다.

풀 둘: 다 아시다시피 4집은 많은 논란이 있었던 앨범입니다. 특히나 안치환을 알던 사람들, 예전의 안치환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변했다'는 단어로 비판을 가했죠. TV에 모습을 비추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구요.
세상에 안치환이 사랑 노래라니.... 하면서 말이죠.

풀 셋: 그 사람들은 5집의 '샤랄랄라~'를 들으면 기절하겠군요.
하지만, 전 그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를 잘 몰랐던 사람들에겐 그것이 안치환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사람들은 어떤 가수의 나중 앨범이 맘에 들면 그 전 앨범들도 들어보게 되지요. 그리고 그건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반대의 의미죠.

풀하나: 결국 4집에 대한 개개인의 평가는 '대중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에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알다시피 '대중적'이라는 단어는 80년대와는 달리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탈색되었죠.
따라서 80년대를 지내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평가가 다소 엇갈 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풀 셋: 그래도 지금은 80년대가 아니잖아요. 뭐 다 그런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세상이 변하고 자신들도 변하면서 안치환만 변하지 않길 바란다는 게 좀 웃겨요. 그 변화의 방향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말이지요.
지금은 안치환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많이 다른 것 아닌가요?
그런 시점에서 아랫목에 앉아 이불 뒤집어쓰고 과거만을 곱씹을 순 없잖아 요..

풀 둘: 4집에 부정적인 비판을 하는 이들이 아쉽다고 판단을 하는 이유는, 과거 만을 되씹으며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거나, 4집에서 보여지는 삶의 디테일의 가치를 무시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안치환이 가졌던 상징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렇게 매도할 것이 아니에요.

풀 셋: 죄송합니다. 매도하는 것은 아니에요.

풀하나: 자, 자, 감정을 가라앉히고.... 그 이야기는 조금 큰 이야기이고 결국 민중가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연결될테니 여기선 생략합시다.
어쨌든 정말 4집의 대중적인 성공, 특히나 '내가 만일'의 대중가요화는 정말 뜻밖이었을 겁니다. 결혼피로연에서도 많이 불리더군요.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만 저번에 제가 좌석버스를 타고 가는데 뒤에 한 남녀가 앉았어요. 20대 후반쯤으로 보였는데 누군가의 소개로 만난 커플인 지, 아님 아직 커플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서로 존대말을 쓰더군요.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가수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니까, 남자가 이러더군요..

"저... 아실지 모르겠지만(머뭇머뭇), 전 안치환이라는 가수를 좋아해요, 가사가 참 좋아요"

왠지 약간 코믹하더군요.

풀 셋: 제가 4집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그런 이유입니다. 솔직히 이 바닥(?) 을 모르는 사람들은 3집까진 안치환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근데 '내가 만일'이란 노래를 듣고 '야, 가사 괜찮다... 이런 노래가 내가 원하던 사랑 노래인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꽤 있습니다.
그전의 천편일률적인 사랑 노래에 질린 사람들, 의외로 많아요.

그 가사에 반해 앨범을 구입하고, 거기에 실린 다른 노래들을 듣는거죠.
고향과 회귀에 관한 노래를 들으며, '이건 여행스케치의 느낌과 비슷하네, 근데 흙냄새가 물씬 나는게 또 조금 다르군.. 이게 더 좋다.. '라고 생각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스스로의 인식이 바뀔 가능 성도 있구요. 결국 우리가 원하는 변화란 이런 변화 아닌가요? 대중과 괴리되지 않는.....

풀 둘: 4집은 안치환이 90년대의 새로운 노래형식인 락을 도입하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락도 처음에 의 형식으로 도입될 때 욕을 많이 얻어먹었어요. 어떻게 양키의 노래형식을 도입하냐구요.

풀하나: 그 얘기도 너무 길어지니 안했으면 좋겠습니다만..

풀 둘: 좋습니다.

풀 셋: 그런데, 그 처음 시도가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수풀을 헤치며>나 <당당하 게>는 그 완성도가 상당합니다.

풀하나: 지금 우리가 5집 얘기를 하나요, 4집 얘기를 하나요? 아무튼 논란에도 불구하고 저는 안치환의 음반 중 4집이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낫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자, 5집으로 가 봅시다. 일단 표지 디자인이 눈에 띄더군요.

풀 둘: 캐릭터 사업이라도 하려나보죠? 무단복제 및 사용을 금한다니...
사용할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꼭 그런 조항을 달아야 하나? 요즘에 그런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무튼 모양은 괜찮아요..해와 사람과 산, 물 등을 묘사해 놓은 것 같더 군요.

풀하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아직도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더군요.
그 의미가 다의적이어서(하긴 다 그렇습니다만) 이래저래 불리고 있어요.
이건 리메이크 곡이라고 봐야겠지요? ^^

풀 셋: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던가요? <내가 만일> 다음에 받은 영감인가 봐요.. ^^ 가사도, 곡도 직접 썼던데...

풀 둘: 그래도 안치환의 '샤랄랄라'는 좀 닭살돋더군요..

이제는 곡들의 덩치가 꽤 커졌습니다. 중간 곡들의 신디사이저는 야니를 연상시키기도 하구요. 하지만 안치환의 트레이드 마크인 쇳소리나는 목소리는 변함없더군요. 창법을 바꾼 것 같지도 않습니다.

풀하나: 곡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기 어려울 것 같고, 전반적으로 어떤 여유랄까? 그런게 느껴져요. 이제는 스스로의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어떤 노래이어야 하는지 명확한 답이 내려져 있는 느낌 같은 것.

풀 둘: 저는 그것들 때문에 이 앨범에 특별한 개성이 없어보인다는 생각입니다.

5집의 후반부는 음악적 밀도가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시끄럽기만 하고 별로 다가오지도 않더군요. 락이야말로 사회성을 담을 수 있는 장르라고 거칠게 주장하는 사람들 별로 못 믿겠어요. 락이 미국에서 가졌던 위치를 곧이곧대로 한국에 대입할 수 있다는 것은 비약 아닌가요?

풀 셋: 그건 아마 락이라는 장르에 대한 개인의 선호도와 취향에 기대지 않나 싶습니다. 전 좋기만 하던데요... 락 좋잖아요? ^^

풀 둘: 이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락은 정신인가요, 형식인가요?

풀 셋: 그런 거 물어보지 마세요. 저도 잘 몰라요. -.-;

풀하나: 저도 개인적으로 락보다는 포크류가 저에게 맞더군요. 안치환의 3,4집이나, 고 김광석씨, 정태춘씨의 음악적인 형식들이 전 좋아요. 그렇지만 락이 현재 이뤄내는 성과나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무시하고 싶지 않아요.

풀 셋: 근데 처음에 말했던 자기 정체성에 관한 질문과 대답의 흔적은 5집 어디서 발견되는 거죠?

풀하나: 글쎄요.. 그건 그냥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일단 에필로그를 보면 "나를 고정화된 눈으로 보려하지 말게. 틀속에 넣으려 하지 말게. 나는 그대가 원하는 그 무엇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노래꾼이라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동안 그가 들어왔을 질문과 갈등들이 엿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집은 음악적 형식으로도 앞뒤가 나뉘지만,가사의 내용이나 서술방식으로 도 앞뒤가 나뉘지요.4집에 비해 다소 직설적인 가사들은 4집의 대중적 성공에 대한 안팎의 질문에 스스로 답변하는 의도적인 제스츄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물론 맞을 확률은 낮습니다. ^^

풀 둘: 제가 안치환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하긴 저같은 놈이 평가하든 안하든 뭔 상관이겠습니까만, 4집의 대중적 성공에도, 잦았던 TV출연에도...

풀 셋: 열린 음악회의 단골손님이었죠. 안치환, 국민가수로 부상하다. ^^

풀 둘: 말 끊지 마세요. 아무튼 그런 것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일부에서 안치환의 노래가 아닌 안치환이라는 사람에 대한 안좋은 소리도 있습니다만 제가 들은 또다른 소리는 그것과 상반되는 이야기더 군요. 이런 부분은 오해가 일어나기 십상이니 무척 신중해야 합니다.

그에게는 흔히 나타나기 쉬운 강박도 보이지 않습니다.
변함없이 겸손하고 차분하면서도 정열적이고 강렬합니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풀하나: 그는 노찾사도, 김광석도, 윤도현도 아닌 일 뿐이지요.

풀 셋: 윤도현도 괜찮지 않나요? 전 좋던데...

풀하나: 누가 싫다고 했나요? 김광석도 윤도현도 다 좋아요. 락커랍시고 소리질러 대는 애들은 빼구요. 윤도현도 기대해 볼만한 가수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윤도현을 진정성 락커라고 부르더군요.

어디까지 말했더라.. 말끊지 말라니깐... 아, 아무튼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독자적인 캐릭터 입니다. 앞서 얘기하셨듯이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의 상징입니다.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는 다른의미에서 또 다른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우린 그를 사랑하구요...

아, 어디 안치환같은 노래꾼 또 없나요?

풀 셋: 새날맞이 있잖아요? ^^

풀하나: 몰라요 저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푸하하.. 농담입니다. 죄송... 꾸벅~)

- 어떤 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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