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마을

1 # 분홍지우개[ | ]

분홍지우개로 그대에게 쓴 편지를 지웁니다
설레이다 써버린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식 조금씩 지워 나갑니다
그래도 지운 자리에 다시 살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생각
분홍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그리운 그 생각의 끝을
없애려고 혼자 눈을 감아 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습니다

2 # 라면 예찬[ | ]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게 라면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요즘처럼 라면이 흔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라면은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아주 특별한 음식 중의 하나였다. 그 무렵 라면 한 개 값은 20원이었다. 우리는 곧잘 이런 사설을 중얼거리고 다녔다.

"①일반 시민 여러분 ②이것이 무엇입니까 ③삼양라면입니다 ④사용해 보시죠 ⑤오골오골한 라면에 ⑥육류 수프를 넣고 ⑦칠칠하게 끓이지 마시고 ⑧팔팔하게 끓여서 ⑨구수하게 잡수시고 ⑩십원 짜리 동전 두 개만 내십시오"

누가 지어냈는지도 모르는 이런 말들이 구전민요처럼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떠돌았다. 라면에 대한 아이들의 애착과 동경이 가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특정한 식품회사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오해할 것도 없다. 당시에는 그 회사가 유일한 라면 제조 업체였으니까. 이 사설의 내용과 표현 방식은 그저 천진하기만 하다. 면발의 선이 일반 국수처럼 일직선으로 뻗지 아니하고 구불구불하게 곡선으로 되어 있는 것을 '오골오골하다'라고 표현한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이 말은 국어 사전에는 없다.

생각나는가? 몇 해 전에 라면 수프의 첨가물 속에 공업용 소뼈를 사용했다고 해서 한동안 라면의 위상이 땅에 곤두박질을 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저 6, 70년대에 '육류 수프'라는 말은 채소 위주의 식생활을 영위해 오던 가난한 이 민족에게 뜨끈한 희망의 전언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평소에 자주 먹을 수 없는 쇠고기 국을 라면 국물을 통해 섭취할 수 있다는, 슬프지만 꽤 그럴 듯한 희망 말이다. 그래서 라면 국물을 떠먹으며 대리 만족에 이르고자 한 사람들 앞에 나중에 '쇠고기면'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스운 추억 하나 말해야겠다. 라면이 나오고 난 뒤에 라면 부스러기를 볶아 만든 과자가 '뽀빠이' 혹은 '라면땅'이라고 부르는 과자다. 나는 처음에 그게 과자인 줄 몰랐다. 라면 봉지보다 작은 앙증스러운 크기의 포장을 뜯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보나마나 어린이용 라면이다! 그래서 나는 끓여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에서 가장 작은 냄비에 큰 컵으로 한 컵 반 정도의 물을 부었다. 보통 라면 봉지에는 세 컵의 물을 부으면 된다고 쓰여 있으므로 미리 알아서 줄인 것이다. 냄비를 연탄불 위에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리며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어린이용 라면은 어른용 라면과는 달리 맵지 않은 특유의 맛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수프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아이들의 입맛에 맞춘 라면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배려를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나는 결국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밍밍한 국물을 맛보아야 했다. 그것은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고 달지도 않은, 과자를 넣고 끓인 탕일 뿐이었다.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라면에 대한 그 무지가 들키지 않을까 싶어 어릴 때는 라면만 보면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곤 하였다.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나는 라면하고 같이 살았다. 밥을 해먹기 싫은 게으른 자취생에게 라면은 부식이 아니라 훌륭한 주식이었다. 쌀은 떨어져도 라면 박스만 비어 있지 않으면 걱정이 없었다. 연탄불이나 석유곤로에다 라면을 끓여 본 사람은 안다. 연탄이나 석유의 매캐한 냄새와 뜨거운 열기 속에서 라면이 담긴 양은 냄비를 어떻게 들어올려야 하는지를. 양은 냄비의 손잡이에 숟가락을 끼우고 냄비를 나르다가 그만 부엌 바닥에 폭삭 냄비를 엎어버렸을 때의 심정도 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나는 그것을 이렇게 패러디하고 싶었다. 퉁퉁 불은 라면을 먹어 보지 않은 자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무릇 모든 음식이 다 그렇겠지만, 라면도 혼자서 먹는 것보다는 여럿이 둘러앉아 먹어야 제 맛이 난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냄비를 밥상 위에 올려놓고 둘러앉았을 때 상하좌우의 눈치를 봐가며 젓가락을 놀려야 한다. 그 눈치가 라면의 맛을 배가시킨다. 그리고 라면에는 뭐니뭐니 해도 신 김치가 따라야 하고, 국물에는 식은 밥이 제격이다. 라면 국물 앞에서 뜨신 밥은 오히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세상은 변해서 맛과 가격의 차별화로 시장을 공략하려는 업계의 전략 때문에 라면의 품종도 무척 다양해졌다. 라면은 더 이상 어린아이들의 동경의 대상도 아니고, 궁핍한 자취생의 허기를 채워주는 고맙고 눈물겨운 음식도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라면의 시대가 간 것은 아니다. 라면은 여전히 씩씩하다. 홍수와 같은 재해를 입으면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게 라면이다. 실업과 노숙의 거리를 따뜻하게 데워 주는 것도 라면이다. 겨울밤이 깊어갈 때, 라면 한 그릇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 나라에는 많다.

3 # 너에게 묻는다[ |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4 # 사랑은 싸우는 것[ | ]

내가 이 밤에 강물처럼 몸을 뒤척이는 것은
그대도 괴로워 잠을 못 이루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창 밖에는 윙윙 바람이 울고
이 세상 어디에선가
나와 같이 후회하고 있을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런 밤 어디쯤 어두운 골짜기에는
첫사랑 같은 눈도
한 겹 한 겹 내려 쌓이리라 믿으면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누우면
그대의 말씀 하나하나가 내 비어 있는 가슴 속에
서늘한 눈이 되어 쌓입니다
그대
사랑은 이렇게
싸우면서 시작되는 것인지요
싸운다는 것은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벅찬 감동을 그 사람 말고는 나누어 줄 길이 없어
오직 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인 것을
사랑은 이렇게
두 몸을 눈물 나도록 하나로 칭칭 묶어 세우기 위한
끝도 모를 싸움인 것을
이 밤에 깨우칩니다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인 것을

5 # 반쯤 깨진 연탄[ | ]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여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6 # 나와 잠자리의 갈등 1[ | ]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굳이 수숫대 끝에
그 아슬아슬한 곳에 내려앉는 이유가 뭐냐?
내가 이렇게 따지듯이 물으면

잠자리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7 # 마흔 살[ | ]

내가 그 동안 이 세상에 한 일이 있다면
소낙비같이 허둥대며 뛰어다닌 일
그리하여 세상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 튀게 한 일

씨발, 세상의 입에서 욕 튀어나오게 한 일
쓰레기 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물 한 동이 퍼 담을 수 없는 몸, 그 무게 불린 일

병산서원 만대루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와이셔츠 단추 다섯 개를 풀자,
곧바로 반성된다

때때로 울컥, 가슴을 치미는 것 때문에
흐르는 강물 위에 돌을 던지던 시절은 갔다

시절은 갔다, 라고 쓸 때
그때가 바야흐로 마흔 살이다
바람이 겨드랑이 털을 가지고 놀게 내버려두고
꾸역꾸역 나한테 명함 건넨 자들의 이름을 모두
삭제하고 싶다

나에게는
나에게는 이제 외로운 일 좀 있어야겠다

8 # 그대에게[ | ]

괴로움으로 하여
그대는 울지 말라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니
아무도 곁에 없는 겨울
홀로 춥다고 떨지 말라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세상 속으로
언젠가 한번은 가리라 했던
마침내 한번은 가고야 말 길을
우리 같이 가자
모든 첫 만남은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커서
그대의 귓불은 빨갛게 달아오르겠지만
떠난 다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더 많은 우리가
스스로 등불을 켜 들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있어
이 겨울 한 귀퉁이를
밝히려 하겠는가

가다 보면 어둠도 오고
그대와 나
그때 쓰러질 듯 피곤해지면
우리가
세상 속을 흩날리며
서로서로 어깨 끼고 내려오는
저 수많은 눈발 중의 하나인 것을
생각하자
부끄러운 것은 가려주고
더러운 것은 덮어주며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찬란한 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가난하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한 두 사람이 되자
괴로움으로 하여 울지 않는
사랑이 되자

9 # 겨울 밤에 시 쓰기[ | ]

연탄불 갈아보았는가
겨울 밤 세시나 네시 무렵에
일어나기는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안 일어날 수도 없을 때
때를 놓쳤다가는
라면 하나도 끓여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육십촉 백열전구를 켜고
눈 부비며 드르륵, 부엌으로 난 미닫이문을 열어 보았는가
처마 밑으로 흰눈이 계층상승욕구처럼 쌓이던 밤

나는 그 밤에 대해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이 존재의 밑바닥을 안다,
이렇게 썼다가는 지우고
연탄집게 한번 잡아보지 않고 삶을 안다고 하지 마라,
이렇게 썼다가 다시 지우고 볼펜을 놓고
세상을 내다본다. 세상은 폭설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금방 멈춰선 증기기관차 같다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인가를 생각하는 동안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 공단 마을
다닥다닥 붙은 어느 자취방 들창문에 문득 불이 켜진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 자기 자신을 힘겹게도 끙, 일으켜 세워
연탄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리 수출자유지역 귀금속 공장에 나가는 그는

근로기준법 한줄 읽지 않은 어린 노동자
밤새 철야작업하고 왔거나
술 한잔하고는 좆도 씨발, 비틀거리며 와서
빨간 눈으로 연탄 불구멍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 타버린 연탄재 같은 몇 장의 삭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연탄냄새에게 자기 자신이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될수록 오래 숨을 참을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것은 연탄을 갈아본 사람만이 아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도 같은 것
불현듯 나는 서러워진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발 때문이 아니라
시 몇 줄에 아등바등 매달려 지내온 날들이 무엇이었나 싶어서
나는 그동안 세상 바깥에서 세상 속을 몰래 훔쳐 보기만 했던 것이다

다시, 볼펜을 잡아야겠다
낮은 곳으로 자꾸 제 몸을 들이미는 눈발이
오늘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불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나는 써야겠다,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지금 내가 쓰는 시가 밥이 되고 국물이 되도록
끝없이 쓰다 보면 겨울 밤 세시나 네시쯤
내 방의 꺼지지 않는 불빛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릴 것이다
살아야겠다고, 흰 종이 위에다 꼭꼭 눌러
이 세상을 사랑해야겠다고 쓰고 또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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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1년 , 1984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등
우화집 ||


시인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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