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게츠

1 개요[ | ]

Shingetsu
新●月(しんげつ)
신게츠
  • 일본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 활동시기: 1976년~1981년, 2005년~

 

2 누메로 우에노의 소개[ | ]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유러피언 스타일 심포닉 록 그룹이었던 세레나데(セレナーデ)가 1975년 결성되었다. 멤버는 일본대학 예술학부 음악학과에 다니던 키보드 주자 하나모토 아키라(花本彰)를 중심으로 하여 기타야마 마코토(北山真, 보컬), 다카츠 마사유키(高津昌之, 보컬, 기타), 스즈키 시즈오(鈴木清生, 베이스), 고마츠 히로요시(小松博吉, 드럼). 세레나데의 사운드를 보다 발전시킨 하이레벨의 밴드를 목표로 리더인 하나모토 아키라는 이전부터 교류가 있었던, 러시아 근대 클래식 화성을 도입한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HAL과 중기 이후 GONG이나 Brand X 풍의 캔터베리계 재즈 록을 하고 있던 벨라돈나의 기타리스트 츠다 하루히코(津田治彦)와 의기투합하였다. 당시 츠다가 다니던 아오야마학원대학(青山学院大学)의 학생식당에서 회합을 거듭한 끝에 각자의 그룹인 세레나데, HAL, 벨라돈나를 통합시켜 수준 높은 프로그래시브 록 밴드를 결성할 것을 결의하고 세레나데로부터 하나모토 아키라(키보드)와 사쿠라이 요시유키(桜井良行, 베이스), HAL&벨라돈나로부터 츠다 하루히코(보컬&기타)와 다카하시 나오야(高橋直哉, 드럼), 그리고 도야마 유타카(遠山豊, 보컬&기타) 등 5명이 모여, 1976년말에 신게츠(新月)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도쿄 이타바시구 나리마스(板橋区成増)에 있는 지인의 스튜디오에서 주 4일간 반년 이상 리허설을 거듭한 끝에 1977년 여름 시부야의 야네우라(渋谷屋根裏)에서 데뷔 라이브를 가진다. 결성 시에 참여했던 베이스 사쿠라이 요시유키는 곧바로 탈퇴하였고, 전 하텐코(破天荒) 멤버이자 후에 맨드레이크에 참가하게 되는 베이시스트 아쿠츠 도오루(阿久津徹)가 한때 참가하였으나, 1978년 세레나데에 소속되었다가 나중에 칼레이도스코프에서 활동한 베이시스트 스즈키 시즈오로 교체된다. 시부야 야네우라나 에코타(江古田)의 마키 등 여러 라이브 하우스를 중심으로 공연을 거듭하여 실력을 높여가던 그들은, 보컬을 강화하기 위해 세레나데의 보컬리스트였던 기타야마 마코토를 설득해 1978년 가을부터는 기타야마도 가입하기에 이른다.

1978년 11월 25일 오차노미즈(お茶の水)의 젠덴츠 홀(全電通ホール)에서 Fool's Mate지와 옴니 프로덕션의 주최로 행해진 “From The New World”라는 이벤트에 비쿄란(美狂乱), 갈라파고스, 메구와이(目合), UNIT X 등과 함께 출연한다. 일본적인 정서를 섞어 짜맞춘 이야기성이 강한 컨셉트를 지닌 가사, 제네시스나 초기의 크림슨 같은 서정성을 강하게 드러낸 심포닉 록 사운드에 츠다 하루히코의 스티브 해킷 뺨치는 다채로운 기타워크와 하나모토 아키라의 화려한 키보드 플레이, 철벽 리듬파트에 의한 고도의 테크닉으로 표현된 그들의 사운드는 굉장했다. 또한 극단 ‘잉카 제국’에서 연극을 배웠고 피터 가브리엘로부터 영향을 받은 보컬 기타야마는 곡 장면에 맞추어 의상을 바꿔입거나 벤치, 전화, 괴물 마스크, 일본 전통극 노 가면 등의 갖가지 소도구를 사용하여 공연했고 이들의 퍼포먼스는 화제가 되었다. Fool's Mate지가 활발히 그들을 다룬 덕분에 일부 프로그레시브 록 마니아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면서, 선진적인 음악을 발매하기 위해 빅터 레코드 내에 신설된 ZEN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1979년 4월~5월에 걸쳐 하코네의 록웰 스튜디오에서 300시간 이상을 투자해 앨범 레코딩을 마치게 된다. 이 같은 레코딩 시간량은 요닌바야시(四人囃子)의 ‘골든 피크닉스’ 같은 일부 레코드를 제외한다면 일본의 프로그레시브 록 레코딩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좋은 조건이어서, 연주, 어레인지, 믹스 전반에 걸쳐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마감되었다. 특히 앨범 톱을 장식하는 “오니(鬼)”는 일본 프로그레시브 록 사상 명곡 중의 명곡이며, 앨범 역시 일본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말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이다.

이들의 데뷔 앨범은 1979년 7월 25일에 발매된 데 이어 7월 25일과 26일 이틀간에 걸쳐 도쿄 시바ABC회관(芝ABC会館) 홀에서 발매기념 콘서트를 펼치게 된다. 보컬인 기타야마가 자신들의 스테이지에 대해 ‘첫째 조명, 둘째 무대 세트, 셋째가 PA, 마지막이 연주’라고 어느 동인지에서 표현할 정도로 신게츠는 스테이지에서의 보다 완벽한 표현을 추구하였다. 이전부터 호평이었던 기타야마의 퍼포먼스에 더해 스테이지 위 거대한 삼면 멀티스크린까지 설치된 이 콘서트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당시 신게츠의 스테이지에는 레코딩 직전에 탈퇴하여 매니저로 전향한 보컬 겸 기타리스트 도야마를 대신하여 바하 레볼루션의 키보디스트 오쿠보 다카시(小久保隆)나 츠다 하루히코의 여동생 츠다 히로코(津田裕子, 키보드) 등의 서포트 멤버를 추가한 편성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당시의 빅터 레코드는 신게츠에 대한 매출을 높이기 위해 ABC회관에서의 콘서트를 비디오 촬영하여 “오니(鬼)”, “せめて今宵は(적어도 오늘 밤은)” 그리고 빅터 레코드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LP 미수록곡 “소녀” 등 세 곡의 프로모션 비디오를 제작하여 그들을 전폭적으로 밀었다. 1979년 12월 14일에 빅터 뮤직 프라자에서 행해진 Fool's Mate 주최의 이벤트 “과학의 밤”에 비쿄란과 함께 출연했다. 그러나 그들의 프로덕션이었던 하코네 록웰이 경영 부진을 이유로 도산하였고 이미 계획 중이었던 두 번째 앨범의 녹음은 중지되어 1980년 봄에 킬링타임의 키보디스트인 시미즈 가즈오(清水一人)를 서포트 멤버로 추가하여 기치죠지(吉祥寺) 실버 엘리펀트의 라이브를 끝내고 해산했다. 밴드의 성향은 재즈 록 지향이 강한 스즈키, 다카하시가 한축이었고 서정파 프로그레시브를 지향하던 하나모토, 기타야마가 한축이어서 음악성에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프로그레시브 록은 어떻게 해도 팔리지 않는 장르이기도 했다.

신게츠 해산 후 키보디스트인 하나모토와 기타리스트 츠다 두 사람은 Fool's Mate지의 편집장이자 현재 YBO 등에서 활약중인 기타무라 마사시(北村昌士)와 함께 포노제닉스를 결성하고, 자주제작으로 12인치 싱글과 카세트 테이프, 밥 레코드로부터 앨범 한 장을 발매한다. 현재는 멀티 플레이어인 오야마 요(大山曜)의 프로젝트 그룹 “아스트리어스”에 두 사람이 함께 참가하고 있으며 킹레코드의 크라임 레이블로부터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또한 아스트리어스의 데뷔 라이브(1988년 8월/기치죠지 실버 엘리펀트)에서는 기타야마 마코토를 게스트로 추가하여 신게츠의 명곡인 “오니”를 연주했다.

보컬 기타야마 마코토는 신게츠 해산 후 극단 잉카제국에서 활동하였고, 자주제작 카세트 ‘動物界之智曩’를 발매했지만 (1990년) 현재는 음악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드럼의 다카하시는 한때 아쿠아폴리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신게츠라는 그룹은 요닌바야시, 코스모스 팩토리, 파이스트 패밀리 밴드와 같은 당시 유행음악의 일환으로서 프로그레시브 록을 도입한 프로그레시브 제1세대의 그룹들의 사운드와는 일정한 선을 긋고 본격적인 유러피언 스타일의 심포닉 록 사운드를 일본에서 처음으로 확립한 그룹이며 70년대말~80년대에 걸쳐 일본의 프로그레시브 록 사운드가 본격적으로 그리고 다양화하여 이루어지게 한 선구자적인 존재의 그룹이었다. 그리고 또한 신게츠는 가사의 콘셉트, 사운드, 연주기술, 스테이지에서의 표현력 등 모든 점에 있어서 완성되어 일본의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점에 우뚝 선 그룹이었다.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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