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문화혼돈시대

1 # 식문화 혼돈시대/ “오픈주방서 親환경 조리”[ | ]

출처: 동아일보 | 2004.1.20

패션 리더들 사이에서조차도 무엇을 입느냐보다 무엇을 먹느냐가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 요즘에는 옷뿐만 아니라 음식에도 ‘패션’이 있다고들 한다. 우후죽순처럼 음식점들이 생겨나는 듯 하지만 그 배후에는 ‘패션’을 주도하는 트렌드가 자리잡고 있다.

음식업계에서 손꼽히는 트렌드 세터, 신성순 윌그레이트 대표(44)를 이틀에 걸쳐 만났다. 그는 건축디자이너로 출발했지만 음식분야에 관심이 많아 음식점 컨설턴트도 겸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압구정동 논현동 일대에 중식당 ‘마리’와 ‘드 마리’, 이탈리안 식당 ‘안나비니’와 ‘일 치프리아니’, 인도 식당 ‘강가’ 등을 컨설팅하거나 직접 열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지난해 11월 강북에도 진출했다. 중구 소공동의 옛 미도파백화점 자리, 롯데 영플라자 6층에 도심 속 자연친화 식(食)공간 ‘가든 라이프’를 연 것. 이곳에서 그는 ‘자연주의’ 음식철학을 얘기했다.

○ 강남 vs 강북

가든 라이프는 ‘숲’ 같기도 하고 정원 같기도 한 공간이다. 그 속에 빵집, 카페, 일식집, 일본 라면집, 아시안 누들바, 미국식 식당, 고기집 등이 들어서 있다. 식당 사이에 벽이 없거나 천장이 트여 있는 대신 나무와 풀이 무성히 길을 덮었다. 곳곳에 재미 작가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같은 작품들이 놓여있고 화원도 있다.

―가든 라이프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강남이 아니라서 그렇다. 강남 고객은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지만 단골로서의 로열티(충성심)는 적다. 강북 고객들은 들어오지 않고 관찰부터 한다. 레스토랑 개념이나 메뉴를 설명해달라는 사람도 있다. 하하. 까다롭지만 한번 확인하면 단골이 된다. 3개월만 지나면 손익분기점을 지날 것이다.”

―건물이름에 ‘영’이 붙으니 애들 노는 공간처럼 들린다.

“영플라자의 콘셉트는 내가 컨설팅했다. ‘영’은 나이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마인드 에이지라고나 할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익숙하고 고정관념이 없다면 70대도 ‘영’하다.”

○ 아티스트 vs 촌놈

긴 웨이브 머리칼과 뉴욕 스타일의 의상을 보면 지극히 ‘아티스트’적인 그였지만 대화를 하다 보니 어쩐지 촌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어릴 적 다락에서 논 적 있으세요? 어머니는 잡동사니를 가득 채워두셨지만 저는 이곳에서 놀거나 자면서 제 보물을 숨겨놓기도 했거든요.”

가든 라이프의 디자인 개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급하게 음식을 먹어치우는 식당이 아니라 먹고 쉴 수 있는 다락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그는 음식업계에서 ‘자연주의’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안나비니만 해도 그렇다. 이탈리안 식당이라면 보통 격식을 갖춘 양식당이 떠오른다. 그는 이탈리아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로 꾸몄다. 식재료 본래의 맛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가든 라이프에는 노마디즘(유목생활)이 강하게 배어있죠. 땅과 공존하는 미덕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고정관념이 없어요. 미국식 햄버거를 파는 식당은 곧 미국풍 중국식당으로 바뀝니다. 앞으로 어떤 다른 음식을 시도할지는 알 수 없어요.”

○ 육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가 보기에 자연주의를 토대로 한 ‘웰빙’은 시대의 당연한 흐름이다.

‘1900년대 말=문명시대, 과학시대의 끝. 2000년대 초=문화시대, 인간시대의 시작.’ 그의 머릿속에 있는 공식이다.

“유기농 바람이 어디서 왔을까요? 과학문명의 폐해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적인 바람, 인간의 몸에서 우주를 보고 싶은 것, 세상의 중심인 나에 대한 관심, 이런 것들 아닐까요?”

단순히 비료를 쓰지 말자는 게 아니다. 제철에, 제 고장에서 나는 것을 먹자는 것이다.

“옛 조상들 보세요. 백리 밖에서 나는 것은 먹지도 말라고 했거든요. 밀가루가 왜 나쁘죠? 미국 밀은 한국으로 올 때 방부제 투성이가 되거든요. 건강식 통밀빵을 만들려면 우리 밀가루를 써야죠.”

그렇다면 비좁은 우리에서 사료로 키우는 육류는 사라질 것인가. ‘오가닉 고기’만 살아남는다는 게 그의 전망.

자연에서 방목한 고기를,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오픈식 주방에서, 간단한 요리법으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음식을 내놓는 식당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라고도 내다본다.

“중요한 것은 재료의 질과 조리 방법이죠. 음식점은 앞으로 한식 중식 일식 등 나라별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직화구이집’ ‘대관령 고기집’식으로 소재와 조리방법으로 구분될 겁니다.”

그는 또 이런 전망도 했다. 일본의 ‘야사이야노 니카이(야채가게 윗방)’이나 영국의 ‘프레시 앤드 와일드’처럼 식품재료를 파는 슈퍼마켓과 그 재료를 요리해 내놓는 식당이 함께 붙어 영업하는 외식업체가 유행할 것이란다. 언제쯤 그의 전망이 실현될까.

2 # 촌평[ | ]

다 좋은데 글쎄, 이 시점에서 명동 한복판에 새로 오픈하는 쇼핑몰이 "영플라자"라는건 그다지 상큼하지는 않은데...좌우간 웰빙이란게 휴머니즘을 내세우긴 하지만 결국은 이왕이면 다홍치마 식의 소비문화로 흘러버릴 여지가... -- BrainSalad 2004-1-21 11:2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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