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보이

 

  • 원제:スチームボーイ(2003)
  • 감독:오토모 가츠히로

1 # 거북이[ | ]

  가끔 우연이 겹치는 일들이 발생하는데 요즘 나에게는 빅토리아 시대를 다룬 작품들이 자꾸 손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만화 엠마였고 그 다음에는 영화 고스포드파크였고 오늘 본 것이 바로 이 스팀보이가 그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하던 1837~1901년 사이는 대영제국이 전세계를 집어먹었던 시대이다. 산업혁명과 제반산업의 급격한 팽창이 있었고 그에따라 노동자들이 늘어나다보니 당연히 사회주의 운동도 생겨났던 그런 시대이기도 하다. 신분제의 붕괴가 시작되었고 과학과 진화를 믿는 선형적 세계관이 지식인들의 머릿속을 차지했던 그 시기는 전쟁의 세기가 다가오기 직전의 묘한 낭만주의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 같다.

엠마와 고스포드 파크의 공통점이라면 귀족과 하인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랄까. 이 당시의 메이드에 대한 묘사는 만화든 영화든 보다보면 띄엄띄엄 나오는데 꽤 매력적으로 느껴지나보다. 엠마의 작가는 노골적으로 자신이 메이드광임을 밝히기도 했는데 남자들의 경우 당시의 메이드에 대해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거 같다. 고스포드 파크에서도 메이드들이 주인의 성적 대상인 경우가 여러번 나왔었다.

스팀보이에서 다루는 것은 과학과 기술이 만나서 행복하게 증기기관과 만국박람회로 대표되는 번영,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낸 가공할만한 무기들이 판치는 그런 시대이다. 레이 스팀은 3대가 발명가 집안인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들어낸 증기의 성은 (비록 허구이지만) 당시 기술의 집적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아버지에 의해 증기의 성은 도심에서 폭발할 위험에 처하는데 그것을 강 위로 끌어내어 피해를 덜 입히고 폭발하도록 하는게 영화의 주 내용이다. 아버지의 말은 인상적이다. '이미 이것을 본 이상 누군가가 반드시 이런 것을 또 만들 것이다.' 과학의 합리성은 그런식으로 계속 증식해 나갈것이다. 반면에 낭만주의자 할아버지는 과학으로 놀이동산을 만들려고 했고 증기의 성이 무너져 내릴때 놀이동산의 일부가 나와서 함께 무너지는 모습은 상당히 낭만적이고 슬픈 느낌이 있다.

엠마와 스팀보이의 공통점으로는 만국박람회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만국박람회는 진보와 발전의 상징이었는지 어디서나 낭만적으로 그려지곤 한다. 만국박람회장 안의 유리 아래에서 엠마는 키스를 하고 레이는 재단의 아가씨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20세기소년에서도 만국박람회는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주요 모티브였다.

사실 스팀보이는 오토모 가츠히로의 작품치고는 너무 평범하다고 할까. 상투적이거나 개연성이 없는 전개가 많이 나온다. 열차 추격씬이나 증기의 성 내부를 다룬 거대한 증기기관등은 인상적이지만 그런 것으로 감독의 역량을 평가할 수는 없으니까. 아키라의 작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역시 실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오토모가 아키라 이후 십년이상 쉰 것은 잘한 일 같지 않다. 죽이되던 밥이되던 만들었어야 했지 싶다. 오토모에 대한 기대만 없다면 그럭저럭 볼거리가 없진 않다.

가끔 보면 재앙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작품들이 있다. 여기서도 증기의 성이 폭발하는 장면은 꽤나 낭만적인데, 재앙을 궤멸적으로 그리는 것 또한 그다지 바람직해보이진 않지만 그것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도 뭔가 기분이 개운치는 않다.

오늘은 왠지 피곤하다. -- 거북이 2005-5-11 2:04 am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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