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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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회종/사종/의종/위종 숭정제 주유검

1 개요[ | ]

Chongzhen Emperor, Zhu Youjian
崇禎帝, (묘호) 思宗, 毅宗, 懐宗, 威宗, (시호) 紹天繹道剛明恪儉揆文奮武敦仁懋孝烈皇帝
숭정제, (묘호) 사종. 의종, 회종, 위종, (시호) 소천역도강명각검규문분무돈인무효열황제
  •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그의 연호인 숭정(崇禎)을 따서 숭정제라 부른다. 묘호는 사종(思宗)이며 사촌 형 홍광제 주유숭이 올린 묘호는 사종(思宗) / 의종(毅宗)이다. 청에서는 회종이라는 묘호를 올렸다. 매우 먼 친척인 융무제가 올린 묘호는 위종(威宗)이다. 이 중에서 많이 쓰이는 묘호는 사종(思宗)이다.

 

2 제위 이전[ | ]

본래 그는 태창제의 5남이였고 천계제의 동생이였기에 제위에는 거리가 멀었으나 천계제의 유언에 따라 1627년 즉위했다.

3 제위[ | ]

당시 숭정제가 즉위하였을 때는 명나라는 이미 쇠퇴해가고 있었다. 여진에는 추장인 누르하치가 힘을 키워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운 뒤 명나라를 위협하고 있었고 또한 조정에선 환관 위충현(魏忠賢)이 권세를 부려 명은 피폐해졌지만 숭정제는 즉위 후 위충현과 그의 세력을 제거하고 개혁을 시도하였다.

4 치적[ | ]

  • 외국인이자 선교사인 아담 샬(Adam Schall)과 함께 서구처럼 근대 정치를 펼쳤다.

5 이자성의 난[ | ]

1644년 난을 일으킨 농민반란군 이자성(李自成)이 명의 수도 북경을 점령하여 숭정제는 자신의 부인들과 자식들을 죽이고 자살하였다.

6 사후[ | ]

숭정제의 시신은 청에 의해 사릉(思陵)에 매장됬고 시호를 장렬민황제(莊烈愍皇帝)라 하였다. 명의 군인 오삼계는 숭정제의 아들 주자랑(朱慈烺)을 황제로 추대하려 했으나 청의 예친왕에 의해 취소되었다.

멸망한 명의 세력들은 남경(南京)에서 숭정제의 사촌 형 복왕 주유숭(朱由崧)을 황제로 추대하였는데 역사상에는 이 정권을 남명(南明)이라 한다. 즉위한 홍광제는 연호를 홍광(弘光)이라 개원하였다.

7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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