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새옹지마

아마 후배에게 쓴 메일인듯.


나는 세상은 생각보다 공평하다고 믿는 사람인데...
그 말인즉슨 나쁜 일이 있으면 그만큼 좋은 일도 있고...
좋은 일이 있으면 그만큼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여기 그 실례가 하나 있다.

나는 학부 4학년때 대학원 연구실에 자리를 하나 얻어서 짱박혀 보냈다.
대개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간다는 것은 장차 그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나는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다. 내 자리가 있고 맘대로 쓸 컴퓨 터도 있고...학교생활에 지루해하던 터라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잘 되었었다. 선배들도 모두 재미있고 좋은 사람들이었으며 후배인 나를 잘 이끌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었으니...나는 공부가 재미 없었다.
대학 공부라는 것이 생각보다 잼없다는 것은 대충 다 아실것인데...대학원 공부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것 같다. 어느 세세한 부분 하나를 맏 아서 죽어라 들여다보고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 공부 를 한다. 종종 여러가지가 잘 확립되어있는 자연과학분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야도 있는데 지구과학이라는 것이 그러한 학문이다. 워낙에 인자들 이 많아서 화학이나 물리학처럼 인자들을 제한해두고 실험하는것이 대개 불 가능하거든. 그래서 나는 지겨워졌다.
공부가 잼없으니 연구실 생활에서 활기가 살아나기는 힘들었다. 나는 은근 히 빈둥대기 시작했고 연구실의 성원답지 못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의 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렇게 되어갔다. 평소에 나를 갈궈주던 형도 하나 있었지만 결국 나를 좀 더 생각해주던(나보다 열살이나 많은) 대장 형 에게 심하게 꾸중을 듣고말았다. 대학원은 학교가 아니라 사회였는데 나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었다.
겨우겨우 덕지덕지 땜질해서 졸업논문을 발표하고 빈둥거리다가 졸업을 했 다. 내가 해놓은 것이라곤 병역특례를 노리고 따둔 정보처리기사 하나가 전 부였다. 정보처리 기사가 있다고 컴퓨터를 잘했던건 아니다. 실력있는 사람 이라면 네트웍이나 델파이정도는 잘 알아야 했었는데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엉성했다.
그리하여 졸업 조금 전부터 병역특례업체를 찾아다녔는데 너무 안구해졌다.
IMF여파로 정보산업계가 말이 아니었거든. 게다가 나는 허울만 있지 실력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죽이기를 어언 6개월.
물론 막 죽이고만 있지는 않았다. 사람들 만나면서 빈둥거리고, 못보던 비 디오 정말 실컷보고, 맘편하게 음악 듣고, 도서관에서 책 왕창 빌려다보고 그랬다. 사실 하루 왠종일 특례업체를 찾아다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면접도 여러군데 보았지만 안된곳이 많았다.
무척 아쉬웠던 것은 디지탈 조선일보였는데 경쟁자가 석사여서 그만 밀렸 던것 같다.
그렇게 인생이 꼬여가나 싶던 무렵 나는 졸업하면서 긍정적인 일을 하나 하자 싶어서 2일정도를 투자해서 도서관을 조사했다. 학교 도서관이 얼마나 비참한 시스템으로 안이하게 운영되고 있는가에 질려버린 나는 그것을 정리 해서 교지에 투고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투고하면 돈이 나오니 까 그돈으로 시디를 사자는 생각도 있었다...하핫.
그래서 그 글을 다 쓰고 내 홈페이지에 올리고 교지에 투고했다.
나는 이 글이 내 인생의 중요한 전기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평소에 존경하던 선배님께서 취업정보를 하나 알려주셨는데 그것 이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가 되었다. 그 선배님은 내가 취업준비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전공이 그쪽이었거든. 선배 어려운줄 모르고 막 물어 보구 그래도 잘 가르쳐 주셔서 난 너무 좋았다. 그 사이에 그 선배와 많은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더더욱 좋았다.
입사지원서를 이메일로 보낸지 20분만에 면접을 보자고 했다. 그날이 토요 일이어서 월요일날 면접을 봤고 앉은자리에서 거의 채용이 결정났다.
그 선배님의 도움을 얻어 미리 작성해놓았던 쇼핑몰 분석글과 내가 홈페이 지에 올려두었던 도서관 비판 글을 면접관이 잘 보아두었던 것이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기획이나 운영쪽의 일인데 그 쪽으로는 쓸만하다 싶었나보다. 알고보니 그 면접관은 학교 선배였고 내가 자발적으로 그런 글 을 썼다는 적극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출근은 7월 1일이었다.
6-8개월정도를 헉헉거려도 안되던 것이 단 1주일 새에, 심하게 말하면 하 루새에 해결된 것이다. 그것도 내가 지금껏 면접보았던 어느 곳보다도 여건 이 좋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이 나름대로 반향을 일으켜서 도서관 직원들이 위쪽에서 욕을 좀 먹었다는 애기도 들려왔다.
평소에 어느정도 알아왔던 누님 한분이 있었는데 그 누님이랑 결정적으로 친해진 것두 그 글때문이었다. 알고보니 그 누님은 문헌정보학과 출신이었 다. 친해진 이후 그 누님은 나의 장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다 알거다.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줄 때 얼마나 행복한지를. 이건 명백한 자랑이다.
이게 내가 최근 일년 반동안 해왔던 일을 간략하게 적은 것이다.

여기서 내가 예측했던 일은 정말 하나도 없다.
그저 나는 현재에 충실했다.
아일랜드에 열심히 나왔고...
내가 좋아하는 문화생활을 즐겼고...
내가 쓰고싶은 글을 썼다.

그런데...
저 위에 존경하는 선배님도 아일랜드에서 알게되었고...
또 다른 존경하는 선배님은 회사 설립자의 친구였다(우리회사는 벤쳐다).
이 두 선배님들은 내가 대학생활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
내가 음악을 잘 듣게끔 이끌어주셨다.
그리고 쓰고싶은 글을 쓴 것이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되는 열쇠가 되었다.

지난 경험들을 통해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해두면 당장은 나쁜일 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그것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영적으로 다가왔으면 내가 신앙심을 가지게 되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이성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나는 행운을 이성이라는 놈이 차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몰이성적이 되는것도 곤란하겠지만.

내자랑 한거같아서 좀 챙피하다만...
난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뿐이고 내 생각을 남들이 함께하길 바라는 것 뿐이니 좋은 눈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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