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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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의무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3회 --허경, 2001

1 <월간팝송>에서 만난 친구[편집]

지난 호에서 아버님이 미국에서 사오신 판들을 듣느라고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그에 얽힌 뒷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80년대 초 팝송을 듣던 사람들이 모두 보는 그야말로 '유일한' 잡지는 당시 나영욱 씨가 편집장으로 계시던 <월간팝송>이었다.

그런데 이 잡지의 끝 부분에는 아마 'MPS 독자 코너'인가 하는 제목으로 독자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판들을 교환하는 코너가 있었다. 나도 한 번은 이 코너에 편지를 써서 실린 적이 있다. 당시 내가 내놓았던 판들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 예스의 「Close To The Edge」, 울트라복스의 「Vienna」, 퀸의 1집 등 모두 10여장의 원반이었고, 내가 구하고자 했던 판들은 당시 내가 '미쳐 있던' 크라프트베르크, 토킹 헤즈 등의 판들이었다.

물론 양자 공히 당시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판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전국에서 거의 스무 통에 가까운 편지를 받았지만 내가 구하고 싶어하던 판들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내가 내놓은 판이 너무 갖고 싶지만 당신이 구하는 판이 없으니 녹음을 해주거나 판을 팔았으면 좋겠다는 내용들이었다. 당시 나는 그들 편지의 '애절함'과 음악 사랑에 꽤나 감동을 받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판을 팔 수는 없고 대신 무료로 녹음을 해주겠노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답장을 쓰다보니 그 중의 한 친구가 우연히도 나와 같은 아파트, 그것도 바로 옆 동에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친구는 당시 인근 중학교의 2학년이었고(나는 고2), 나는 한편으론 신기해하면서도 그냥 또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고 말았다. 그 친구 역시 내가 찾는 판이 없어서, 그냥 녹음을 해 줄테니 언제 다시 한 번 연락하라는 편지를 보내고는 한참 동안 답장이 없어 나는 그 편지를 그냥 까맣게 잊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여름 방학이어서 집에서 동생과 함께 뒹굴뒹굴하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수위실로부터 인터폰이 울렸다. 인터폰을 받아보니 수위 아저씨께서 누가 찾아 왔으니 받아 보라고 했다.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편지를 보낸 '옆 동 중학생'이었다. 나는 순간 좀 당황했지만 뭐 할 일도 없고 해서 어서 올라오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집을 들어서는데 나와 같이 문 앞에 서있던 내 동생을 보더니 서로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을 뿐더러, 지금도 반은 다르지만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여하튼 나도 그 순간 '긴장'(?)이 좀 풀어져, 나와 그 친구는 내 방으로 들어와 한 참 음악을 들었다. 그 친구는 당시 예스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당시 내가 빠져 있던 더 클래쉬(The Clash)나 애덤 앤 디 앤츠(Adam And The Ants), 스플릿 엔즈(Split Enz), 토킹 헤즈(Talking Heads), 저팬(Japan)의 판들을 막 틀어 주며, 나 혼자 '어때? 좋지? 좋지?'를 연발했는데 그 친구는 그리 큰 '감명'을 받는 것 같지 않았다. 이후 이 친구는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나와 열심히 만났고 나와는 둘도 없는 (음악) 친구가 되었다(심지어 내가 만든 인문과학 동아리의 회장까지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 아마도 그 친구가 대학을 막 졸업할 즈음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 둘이 술을 마시다 그 친구가 어느 음악 잡지에 글을 쓰게 되었으니 나에게 교정을 좀 부탁한다고 말을 했다. 잡지는 나도 잘 알고 있는 <ART ROCK 매거진>이었다. 글의 제목은 <진보적인 너무도 진보적인 - 비판적 아트록 감상을 위한 일 발언>이었다...

이제 독자 여러분은 이 '친구'가 누구인지 아실 것 같다. 이후에도 꾸준히 <ART ROCK 매거진> 등에 꾸준히 글을 써왔던 나의 '그 친구'는 바로 현재 우리 <뮤지컬 박스>의 편집장이기도 한 음악 비평가 전정기 씨이다.

내가 오늘 전정기 씨와 나와의 만남에 관한 일견 '시시한' 이야기로 본 란을 시작한 이유는 내가 그 동안 우리 나라에서 음악을 들으며 그를 포함한 우리 나라 음악 비평(계) 전반에 대해 갖게 되었던 여러 가지 느낌과 생각들을 두서없이 풀어보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은 이제 이른바 '음악 비평가'가 된 나 자신에게 보내는 글이기도 하다(사실 '음악 비평'에 대한 정의는 무척이나 복잡한 문제가 될 것이고, 음악이란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비평(비판)이란 또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상당히 복잡한 논의가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지난 호에 실렸던 나의 글 <한국 록 음악의 철학적 조건들>을 참조하시길 바라며, 여기서는 다만 누구나 이해하는 그런 '음악 비평(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도록 하자.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겠지만, 다만 본 지의 성격과 나의 지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가요·국악이나 재즈·클래식 비평보다는 팝·록 비평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밝혀 둔다).

2 본격적 한국 록 음악 비평의 일 세대 1 - 전영혁[편집]

아마도 65년 생인 내 나이의 또래들이 느끼는 최초의 '영향력' 있는 '록' 음악 비평가는 전영혁 씨인 것 같다. 물론 그 분 이전에도 김기덕·박원웅·나영욱 씨 등이 정력적인 활동을 폈지만 그 분들은 글을 쓰는 음악 비평가이기 이전에 각기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진 전문 DJ로서 더 영향력을 가졌던 것 같고, 당시 음악을 듣던 우리 또래들에게 최초로 압도적인 '전문성'을 갖고 음악 애호가들의 앨범 구입 등 모든 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분은 역시 전영혁 씨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당시 전영혁 씨는 미국으로 떠난 나영욱 씨의 뒤를 이어 <월간팝송>의 편집장으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록의 고전적 명반들을 소개했다. 전영혁 씨의 <월간팝송>은 나영욱 씨의 <월간팝송>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 차이점은 기본적으로 '빌보드 차트 위주의 미국 주류 팝'을 주된 소개 대상으로 삼던 이전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록에의 전문성'이었다.

당시 전영혁 씨의 <월간팝송>과 이후 진행하셨던 심야 라디오 프로는 확실히 이전의 프로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 방송의 경우만 따지면, 시기적으로 성시완 씨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82년 4월) 혹은 '성시완의 디스크 쇼'가 전영혁 씨의 프로를 앞서나 여기서는 대중적 인지의 시기적 선후만을 따졌다. 이전에는 어떤 프로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본격적 '록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프로에서는 다양한 기획 특집을 마련하여 한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아티스트 혹은 그룹의 명반을 선정하여 전곡을 모두 방송해주는 혁명적 시스템을 도입했다. 나 역시 전영혁 씨의 <월간팝송>과 그의 음악 프로를 통해 이전에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수많은 새로운 명곡들을 접했다.

물론 주관적인 판단의 범주를 넘어설 수는 없지만, 특히 전영혁 씨가 새로운 앨범을 소개할 때 골랐던 곡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의 놀라운 감식안에 존경심을 표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내가 직접 그 음반을 구입해 들어보면 반드시 선택되어야 할 '그 곡'이 선곡되어 있었다(예를 들면 전영혁 씨의 라디오 프로에서는 마이클 프랭크스(Michael Franks)의 「Objects Of Desire」에서는 'No-Deposit Love'가, 저팬의 「Tin Drum」에서는 'Still Life In Mobile Home'이, 스플릿 엔즈의 「Time And Tide」에서는 'Six Months In A Leaky Boat'가, 더 클래시의 「Sandinista!」에서는 'The Magnificent Seven'이 선곡되었었다).

잘 아시겠지만 이러한 감식안은 물론 곡을 골라내는 '감수성'도 중요하지만 그 앨범을 시간을 들여 주의 깊게 찬찬히 '다 들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이다. 전영혁 씨의 음악을 대하는 이러한 전문적이고 진지하면서도 '애정이 깃든' 자세는 오늘의 후배 비평가들이 배워야 할 모습인 것 같다.

결국 이런 모든 점들을 생각해 보면, 한국 록 음악 비평의 본격적 첫 세대로서 전영혁 씨는 한국에 있어서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포함한) 전문적 록 음악 수용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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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촌평[편집]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제나 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느끼는 점이 많습니다. 물론 제 문제이기는 하지만... '읽는 사람의 눈 높이에 맞추어 글을 쓴다'는 점이죠. 계속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수고하세요. <mysign(장신고,2004-2-9 10:45 am)>

4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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