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의 미래

백과사전의 미래

1 백과사전 개념의 붕괴[ | ]

이미 몇몇 대사전과 특색있는 어학사전에서는 어학사전과 백과사전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1999), 롱맨 컬처 영영사전(Longman Dictionary of English Language and Culture, 1992), 코지엔(広辞苑, 1955) 등의 사전들이 자국의 일국어사전이지만 백과사전이면서 전문용어사전의 역할까지 일부 수행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어차피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 어휘들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 급격한 변화를 겪는 것은 명사, 특히 고유명사이고 그것을 따라가다보면 필연적으로 어학사전과 백과사전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사실 백과사전과 검색서비스의 경계도 무너진 상태이다. 사람들이 백과사전을 찾지 않는 것은 굳이 백과사전을 찾지 않아도 검색엔진이 내놓는 결과가 백과사전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포탈서비스에서는 사용자들이 어떤 단어를 어떤 사전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로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백과사전 서비스에서 어학사전의 어휘를 검색하는 사례가 무수히 많다. 사실 ‘감자’를 검색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결과는 백과사전에 있지만 감자의 사투리나 감자의 은유적인 표현은 어학사전에 있다. 그런데 일반 사용자는 그것을 구분하여 검색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검색하면 한 화면에서 그 내용들이 정리되어 나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인터넷 사용자의 요구이다.

백과사전에 넣을 것인가 전문용어사전에 넣을 것인가의 문제도 간단치 않다. 전문용어로 쓰이다가도 사회적인 이슈가 되거나 하면 금새 일상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언론에 전문용어가 난무하기 때문에 그렇게 변해가는 비율이 꽤 높다. 이런 경우에도 사용자에게 어떤 어휘는 백과사전에서, 어떤 어휘는 전문용어사전에서 찾으라고 주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나의 입력창에서 검색하면 모든 것이 나오게 하는 것이 수요에 부응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표준 국어대사전의 엘피반 항목>

백과사전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한 사회의 지식을 정규화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영문판의 어떤 판본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런 의미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지식이 사회적 공신력을 인정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면이 한정되어있었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욱 각별했고 백과사전에 무엇이 포함될 것인가는 논쟁적이었다. 백과전서 참고

하지만 웹은 출판과 수정이 분리되지 않는 매체이고 용량이라는 물리적 장벽이 없어진 매체이다. 따라서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고칠 수 있으며 무엇을 넣어야 하고 무엇을 넣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나 넣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물리적 한계가 있던 책 형태의 백과사전에 비해 당연히 명징한 맛도 떨어지고 정보의 압축도도 높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매체가 가진 장점을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그리 큰 흠이 되지 않는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글 것인가. 그렇다면 옛 백과사전이 가지는 미덕을 어떻게 살려볼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옳다. 이제 온라인 사전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담는 사전이 될 것이며 일국어사전/대백과사전/전문용어사전의 개념을 모두 흡수할 것이다. (이국어사전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레코드 항목>

2 백과사전 업계의 재편[ | ]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종이와 책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여러가지 논의들이 있었다. 컴퓨터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종이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프린터의 발달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책은 그 내용에 따라 운명이 달라졌는데 소설이나 경영서 등의 서술형 단행본들은 살아남았으나 사전으로 대표되는 참고용 공구서는 책으로서의 의미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어학사전은 어학 학습시장이 있어 전자사전 형태로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백과사전처럼 큰 규모에 비해 실용적 필요성이 적은 공구서는 인터넷 사전 형태 이외에는 자생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2008년 현재 책으로 출간되는 백과사전은 어린이 학습백과류 뿐이다.


<라루스 어린이 백과 : 도마뱀 엉덩이, 새 엉덩이>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대중음악 업계와 함께 가장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붕괴된 백과사전 업계는 재생산 구조를 아직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중음악의 경우 음반에서 다시 공연쪽으로 사업모델을 변경하면서 생존을 모색중인데 백과사전은 그 어느 곳에서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백과사전의 생존 기반은 모회사의 사회기여, 도서관 B2B 납품, 포탈 백과사전의 콘텐츠 사용료 정도이며 이것으로는 현실적으로 백과사전의 개정판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백과사전이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프라이므로 없어질 수는 없다. 위키백과가 생긴 것도 공공재로서의 사전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사회의 공인된 지식창고인 백과사전이 하나만 있어서는 안되고 두 개 이상의 관점으로 서술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또 불특정 다수의 선의에 의존하는 위키백과가 생겨난 것은 참신한 현상이지만 그것 뿐 아니라 전통적 관점으로 전문가들이 집필하는 백과사전의 형태 또한 존재할 이유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백과사전 생산비용을 충당할 것인가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1913년판 브리태니커 광고>

일단 상업적 시장이 없어진 백과사전이 스스로 회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긴 어려우니 이럴 때 국가가 나서주는 것이 좋다. 기업의 사회기여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있으면 좋은 것이지 의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산그룹이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훌륭한 사회기여라고 할 수 있다. 학술진흥재단과 같은 단체에서 분야별 전문용어사전이나 백과사전을 집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인문학 뿐만 아니라 학계 전체에 활력을 주는 방안으로 효과적이리라 생각된다.

3 전문용어사전의 강화[ | ]

전문용어사전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어왔다. 법률용어사전과 경제용어사전의 경우 변화가 심하면서도 수요가 많아 매년 여러 종류의 개정판이 출간되고 있고 몇몇 학계는 자신들의 연구분야를 집대성하는 의미로 전문용어사전을 출간하곤 해왔다. 그런 추세를 반영하듯 백과사전 전체가 탑재된 전자사전은 국내에 한 종도 없지만 의학용어사전이나 법률용어사전이 포함된 전자사전은 몇 종이 있다. (브리태니커 축약본이 탑재된 전자사전은 있다.)

책 이미지 책 이미지 <매년 개정판이 나오는 경제용어사전>


<의학 대사전이 수록된 전자사전 : 메딕플러스>

하지만 몇몇 분야를 제외하곤 전문용어사전의 출간 현황은 그리 활발하지 못한데 그것은 역시 상업성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지만 사실 학계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 분야의 사전이 없다는 것은 자기분야에 대한 토대를 다지는 것에 힘을 다하지 않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개념의 공식화인데, 근래의 학술용어들에는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용어를 들여올 때 개념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토론했다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전이라는 것은 생겨났을 것이다. 국가가 프로젝트를 발주한다 하더라도 그것의 집필 주체는 학계여야 하는 만큼 학계는 하루빨리 용어를 표준화하고 번역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한물리학회가 주도한 물리학 용어 표준화/번역 사업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책 이미지책 이미지 <학술적이지만 인기있는 분야의 전문용어사전들>

사실 백과사전에 비해 전문용어사전은 나름 전망이 밝은 편이다. 백과사전은 안팔려도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이라거나 ‘20세기 미술사전’은 팔린다. 그리고 위키백과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역시 일반적인 개념에 대한 설명이 많지 전문용어를 집대성하거나 제대로 정리하는 면에서는 부족함이 있다. 일반적인 개념은 비전공자라도 곁다리로 써볼 수 있겠지만 전문용어를 다루기 위해선 전문적인 식견이 더욱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야의 특수성이 있으므로 전문가들의 영역이 확보된다. 국내에 출간된 백과사전은 4-5종 이상인데 동일 분야의 전문용어사전이 여러 종 출간되어 경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예를들어 교육학 사전이 여러종 출간된다면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여간해선 벌어지지 않는다.

사실 백과사전은 분야별 전문용어사전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모든[百] 분야[科]를 다루는 사전이 백과사전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사전은 아직 미개척 분야가 많은데 앞으로 분야별 전문화가 더욱 세분화 된다면 전문용어사전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는 확보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그 수요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라 할지라도 균형발전을 고려한다면 국가가 지원할 가치가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4 멀티미디어의 강화[ | ]

책이 주지 못한 것을 컴퓨터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차별점 중 하나로 멀티미디어가 지적된 것은 꽤 오랜 일이다. 그 동안은 용량이나 영상압축기술의 미비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해왔지만 인터넷망이 좋아지고 PC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멀티미디어의 장점을 누리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따라서 포탈서비스에서는 UCC 동영상과 같은 멀티미디어를 대거 지원하게 되었고 백과사전에서도 그러한 수요가 생겼다.

책 이미지 책 이미지 <이해를 돕기위해 지도를 동원하거나 독특하게 편집한 역사책들>

또 지식의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만화나 지도로 이해하는 지식이 각광받고 있으며 사극이나 다큐멘터리 등의 에듀테인먼트가 널리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다. 역사신문, 마법 천자문, 먼나라 이웃나라 등의 베스트셀러들이 그런 현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백과사전은 단순 멀티미디어로 채울 수가 없다. 사진은 물론이거니와 단면도, 세밀화, 일러스트 등을 이용해서 글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설명해야 하는데 이것은 일반 이용자에게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즉 UCC로 채울 수 없으면서도 인터넷에서 어느정도 수요를 가지고 있는 분야인 것이다. 앞으로 이 분야를 지속적으로 채운다면 이후 유초등학생의 교육시장에서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어느정도는 가질 것이라 생각된다.


<어린이용 주제별 백과사전을 지향하고 있는 윤석어린이백과>

관련하여 주요 저작권 소유자인 방송국은 열심히 자신의 프로그램을 디지털화 하고 있고, 일러스트와 도표를 강조한 어린이 백과사전 등도 출간되고는 있지만 이 분야는 워낙 콘텐츠 생산, 가공비용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이 그리 크다고는 볼 수 없다.

5 저작권 자유 운동[ | ]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이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것 중 하나로 복제가 쉬워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종이책 상태의 정보라면 그 정보를 이동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웹 문서나 파일 형태를 띠고 있으면 금방 복사/붙이기나 파일복사 등으로 다량의 문서를 복제할 수 있다.

이렇게 정보 유동성이 높아지면서 인터넷에서는 정보 공유운동이 생겨나게 되었다. 정보의 가치는 나눌수록 배가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원저작자의 권익을 훼손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보공유 운동은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중 몇가지의 예를 들어보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로고>

가장 활발한 것은 저작권 공개 표시인 CCL (Creative Commons License) 운동이다. 저작권자가 콘텐츠의 저작권을 6가지 중의 하나로 명시하여 사용자가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저작물을 활용할 수 있는 법률적 토대를 만든 것이다. 이 운동은 국제적인 형태로 퍼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윤종수 판사가 해당 운동을 주도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공정이용(Fair Use)은 인용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자라는 개념이다. 예를들어 음반 표지, 책 표지, 회사의 로고, 대학의 로고 등을 누군가가 활용하고 싶은데 사실 그것을 활용하려면 현행 저작권법 상에서는 일일이 사용허락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해당 활용하는 사람들이 삼성전자의 로고를 일부러 훼손하기 위해 쓴다거나 마이클 잭슨의 음반 커버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한다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저작권의 출처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 불법적인 행위를 할 경우 문제가 발생하기 매우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용의 범위를 법적으로 폭넓게 인정한다면 사용자들이 편한 마음으로 인용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공정이용이다. 미국법에서는 일반 조항으로 명문화 되어있고 다른 나라의 저작권법에도 유사한 형태로 언급되는 경우가 있지만 애매한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 저작권법에서는 제 28조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공정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있다고는 볼 수 없다.


<아오조라 문고>

공개 콘텐츠 창고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위키백과, 위키미디어 공용, 아오조라 문고,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등이 모두 그러하다. 이런 공개 콘텐츠 창고가 생기면 그것을 찾아서 활용하기가 좋아지기 때문에 이용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퍼블릭 도메인은 저작권이 소멸된 저작물을 통칭한다. 저작자가 저작권을 포기하거나, 저작권 소멸시효가 지났거나, 기타 법령에 의해 저작권이 소멸된 경우 저작물은 퍼블릭 도메인에 속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저작자 사망 후 50년이 지나면 해당 저작물은 퍼블릭 도메인에 들어간다.


국가의 정보가 퍼블릭 도메인에 속하게 되는 중요한 사례로 미국의 연방정부 저작물을 들 수 있는데 미국 저작권법 105조에서는 연방정부 공무원이 직무상 작성한 저작물은 퍼블릭 도메인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CIA 월드 팩트북과 같은 정확한 고급정보가 매년 갱신되어 공개된다.

이런 다각적인 저작권 자유운동이 활성화되면 해당 정보는 공유되기 쉬운 형태가 되는데 이런 콘텐츠들은 위키백과에 정리되어 좀 더 보기좋은 형태로 퍼져나간다. 백과사전은 기본적으로 창작이 아니라 사실을 정리, 서술하는 것이므로 저작권 자유운동은 백과사전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

6 같이 보기[ | ]

7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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