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잡는 상호와 간판들

1 배꼽잡는 상호와 간판들[ | ]

플라스틱 관련 무역업을 하는 남성현 사장(45). 점심은 중국집 ‘진짜루’에서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고 오후에 잠깐 시간을 내 ‘빤스 터미널’에 들러 와이프에게 선물할 속옷 세트를 구입했다. ‘아파트 파는 남자’에 전화를 걸어 2년전 구입한 아파트 시세도 확인했다.

저녁 부서 회식은 여직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원빈’으로 예약했지 만 바비큐 요리에 소주 한 잔을 고집하는 남자 직원들 불평에 ‘산적들의 저녁파티’로 장소를 바꿨다. ‘로이스닭com’에 들러 치킨 안 주에 생맥주로 입가심을 한 남 사장은 3차로 ‘코스닥’ 노래방에 갔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는 ‘만두벌판’에 들러 야참거리까지 샀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홍천 스키장에 갈 생각인데 ‘이노무스키’에 들러 스키 장비를 빌리고 오랜만에 ‘뼈대있는 집’에 들러 뼈다귀 해장국을 먹어볼 참이다.

만화 같은 얘기라고? 현실이다.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상호다. 창업 시장은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더 튀는 상호를 지으려는 창업자들의 노력이 치열하다.

2 ▶날마다적자? 뼈대있는집?◀[ | ]

창업 전문가들은 ‘음식점 창업의 80%는 입지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가게 이름까지 좋으면 금상첨화다. 맛은 기본이고 여기에 ‘+α’ 역할을 상호가 맡는다.

여의도에 ‘만두벌판’을 개업한 류석근 사장(36)은 요즘 손님들로부터 ‘가게 이름 누가 지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근처 여의도고 국어 교사까지 와서 ‘이름을 참 잘 지었다’며 학생들에게 광고해 줄 정도다. 역사 속 동경의 대상인 ‘광활한 만주벌판’을 절묘하게 패러디해 지은 이름이 ‘만두벌판’이다. 메뉴도 만벌만두, 만벌김밥으로 통일시켰다. 류 사장은 “뭔가 튀는 이름을 짓기 지어야겠다고 생각해 열흘 밤낮을 고민하다 정한 이름”이라 말한다. 전화번호부를 뒤져보면 ‘놀랄만두하군’이라는 상호를 가진 만두집도 있다.

지난해 말 가락동에 개업한 중국음식점 ‘진짜루’는 개업과 동시에 동네 명소가 됐다. 인근에만 30여개가 넘는 중국집이 있지만 단연 이름이 튀기 때문이다.

중국 음식점을 뜻하는 ‘루(樓)’에다 ‘진짜’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조근순 사장은 “사람들이 한번 들으면 중국집인지 단번에 아는 데다 기억하기도 쉬워 특히 배달 주문이 많이 온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전화번호 안내에서 ‘진짜루’를 검색해 보면 무려 50여개가 넘는 중국집이 나온다.

답십리에서 ‘진짜루손짜장’을 경영하는 전종철 사장(38)도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본래 손자장을 강조하기 위해 ‘진짜루’를 가게 이름에 덧붙였는데 이게 단번에 유명 상호가 됐다. 전 사장은 “동네 애들도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진짜루 간다’고 놀릴 정도로 유명해졌다”고 말한다.

3 ▶패러디, 상호를 만드는 예술(?)◀[ | ]

음식점 가운데는 유난히 인기 연재만화 ‘광수 생각’을 패러디한 이름이 많다. 갈비 전문점 ‘갈비생각’과 횟집 ‘광어생각’, 국수집 ‘국수생각’이 대표적인 경우다. 한자를 교묘하게 이용한 양곱창집 ‘의기양양’도 논현동에서 성업 중이다.

닭집 가운데는 유난히 ‘닭’을 강조한 이름이 많다. 치킨 전문점 체인업체인 ‘로이스닭com’은 ‘닷컴’을 교묘하게 패러디 한 이름이다. 벤처 열풍이 한창 불면서 닷컴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유행처럼 번지자 치킨 전문점도 ‘닭com열풍(?)’에 동참한 셈이다. 코스닥을 패러디한 ‘코스닭’, 다큐멘터리를 본 딴 ‘닭큐멘터리’도 서울과 부천에서 각각 성업 중이다.

동국대 앞 포장마차 ‘떡도날드’는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정종성 사장(34)은 “변변치 않은 포장마차인데도 멀리서 이름만 듣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주 메뉴 가운데 맥도날드 ‘빅맥’을 본뜬 ‘빅떡’이 최고 인기 메뉴다. 돈암동 성신여대 앞 고기집 ‘피자반’은 ‘SBS, KBS, MBC 방영될 고깃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서초동 한정식집 ‘원빈’은 다른 음식점들과는 반대 경우다. 본래 이름을 지을 때 의도했던 게 아니지만 탤런트 원빈이 뜨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원빈이 특히 젊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한정식 집인데도 여자 손님이 부쩍 많아졌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도 이색 상호를 가진 식당들이 많다. 광주시 동구에 있는 ‘날마다 적자’와 전남 화순에 있는 ‘곧 망할 집’은 이름 하나만으로 지방 명소가 됐다. 대구시 달서구에서도 ‘니가 내’ ‘시집안간 암퇘지’ ‘가제는 게 편’ 등이 이색 상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경남 사천에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고추장 광고를 한 번 더 응용한 ‘알아버린 며느리’라는 분식집이 인기다.

4 ▶아파트파는남자 총알탄공인◀[ | ]

공인중개소는 서비스 내용도 비슷한 데다 등록한 매물도 거의 공유하고 있어 손님들의 발길을 잡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상호다.

시류를 반영하듯 최근 개업한 공인중개소 이름은 튀는 이름이 많다. 수원 망포동에 있는 ‘아파트 파는 남자’도 비슷한 케이스. 본래 ‘ 탑공인중개’에서 아파트 파는 남자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대학 선배가 판교에서 경영하는 공인중개사무소 이름을 따왔다.

‘아파트 파는 남자’ 원조격인 원석동 사장은 “특허청에 상호 등 록을 마쳤다”며 “프랜차이즈로 키워가겠다”고 말한다. 원 사장은 최근 용인 동백지구에 ‘아파트 파는 여자’라는 상호로 부동산 중개 업소를 한 곳 더 냈다.

노원구 ‘히딩크 공인’, 영등포구 ‘총알탄 공인’도 업계 내에서 유명한 상호로 자리잡았다. 최학진 히딩크 공인중개 소장은 “학사공 인에서 히딩크공인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전화 문의가 2배는 늘었다” 며 “이름 덕에 단번에 스타 중개사무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홍천 비발디파크 스키장 입구에는 이름 하나만으로 명소가 된 곳도 있다. 스키 장비 대여업체인 ‘이노무스키’. 지난해 첫 간판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스키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사업 개시가 늦어 상대적으로 경쟁업체에 비해 입지가 좋지 않지만 이름이 워낙 유명해지면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 이노무스키는 포천 베어스타운 스키장 입구에도 있다.

서울 신월동에도 있는 미용실 ‘버르장머리’도 인기있는 이름이다. 이 미용실에 가면 단번에 ‘버르장머리 있는 놈’이 되는 셈이다. 바다 건너 미국 LA와 뉴욕에도 ‘버르장머리’ 미용실이 있다.

박찬각 이노무스키 사장은 “고심 끝에 이름을 정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손님들 호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박 사장은 “잘 만든 상호 하나가 열 번 광고보다 낫다는 사실을 절감한다”고 덧붙 였다.

  • 자료출처 : 매경이코노미 200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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