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사북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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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Dust dig or ask Sabuk
먼지, 사북을 묻다.
  • 2002년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 감독: 이미영

 

2 # 먼지, 사북을 묻다[ | ]

  • 선생들 많이 보는 월간지 에 실으며 편집자님께 찐빠^^ 많이 먹었던 글...
  • 2003년 봄, 주최로 이미영 감독의 다큐멘타리 <먼지 사북을 묻다> 상영회.. 소설가 조세희 선생과 사북 탄광의 아저씨들이 참석

‘민주화된다’는 것은 국민의 대표가 국민의 손으로 선출되고, 또 행정ㆍ사법ㆍ입법으로 분립한다는 국가의 권력이 ‘법대로’ 굴러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추상적 정치 원리일 뿐 아니라, 삶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가 인간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인간화의 한 핵심은 평등이다. 내 자유와 행복의 기초가 어떤 다른 인간에 대한 차별ㆍ학대 위에 꽃핀 것이서는 아주 곤란하다는 의미의 평등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직업과 신분, 계층과 학식 따위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적이고도 ‘공자님 말씀’적인 명제는 실천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대혁명의 나라라는 프랑스에서도 시골 농군들이 귀족 가문 출신의 지주님들에게, 어깨 제대로 펴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 68년 혁명 이후의 일이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으리~’로 시작하여 ‘~굽쇼’로 끝나는 말에 해당하는 프랑스어가 쓰이지 않게 되었다 한다.

그만큼 민주화란 어려운가 보다. 민주화를 위해서는 단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선 ‘천하고 험한’ 일을 하는 ‘못 배운’ 사람들을 ‘천한 것’이라 부르며 ‘나가 있’게 만드는 ‘세바스찬’들이 없어져야 하겠다. 그리고 그 세바스찬들이 주니어 2세, 3세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세바스찬들이 조장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멸대하는 비루한 소시민들의 의식과 언어가 고쳐져야 한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자주 듣던 ‘공돌이, 공순이’라는 비어가 이제는 죽은 말이 되어버린 과정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진전 과정 그 자체다.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라 외친 이후, 공돌이 공순이가 죽고 ‘노동자’가 탄생하기까지 십수 년이 걸렸다.

영화 <먼지, 사북을 묻다>가 해냈다는 1980년 사북항쟁에 대한 재해석은 바로 저 문제와 관계가 깊다. ‘1980년’, ‘1987년’ 같이 이름 있는 연도들에 시도되어 성공하거나 실패한 것이 바로 저 인간화로서의 민주화이다. 1980년과 1987년에는 그 전에는 ‘인간도 아닌 것들’이 개떼 같이 행진을 했다. 갑자기 수백 수천 개의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방방곡곡에서 월급을 더 달라 아우성이었다.

강원도 사북에는 말 그대로 ‘막장’에서 일하는 못 배우고 가난한 광부들과 그 가족들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공공연히 빼앗기고 기만당했다. ‘일한 만큼’ 받기는커녕, 인간 취급 못 받으면서 자본과 어용노조에 농락당했다. 회사측에 ‘붙어먹던’ 노조위원장이 희한한 기만술로 또 다시 노조위원장이 되고 노조원들이 내놓은 임금인상안을 반으로 뚝 잘라 회사와 합의하자, 광부들이 더 못 참고 일어섰다.

1980년의 4월 21일이었다. 광주 금남로에서 버스를 앞세운 시위 군중들이 계엄군과 공수부대의 집중 사격으로 무더기로 쓰러지고, 급기야 분노가 광주 시내 전역의 파출소와 예비군 무기고를 완전히 쓸어버리기 딱 한 달 전이다.

사북에서도 그랬다. 참다 참다 일어선 그들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물결이 되었다. 오래 참고 많이 기다리면 물결이 거세기 마련이다. 광부들은 곡괭이와 몽둥이로 무장하고 무기고와 다이너마이트를 접수했다. 진압에 나선 경찰은 광부들의 짱돌 세례에 후퇴했다. 분노의 표적이었던 노조위원장 대신에 그 부인이 성난 광부와 그 아내들에게 린치를 당한 사건도 와중에 일어났다.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정권 교체기에 ‘바보들의 행진’은 나타나는 것일까? 세바스찬들이나 사법 관리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런 아우성이 ‘정권교체와 선거를 틈탄 사회기강 혼란에 편승한 준동’이다. 맞다. 그들의 눈은 정확하다. 언제나 옭죄어 온 역사가 빈틈을 보였을 때, 인간도 아니던 자들은 일어서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그 빈틈은 인간을 위한 빈틈이며,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을 보호하는 영원불변할 것 같은 메커니즘이 잠시 쉬는 빈틈이다. 그때 새삼 그들은 일어설 수도 있고 항의할 수도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깨닫는 것이다. 틈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러나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1987년의 행진과 달리 1980년은 주로 패배로 기억된다. 패배한 것은 광주의 민중들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연루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사북의 사람들도 패배했다. 결국 짧게 ‘서울의 봄’을 누린 대한민국 사람들의 인간됨의 진전이 온통 함께 ‘올 스톱’되었던 거다.

사태가 진정되고 광부들의 분노가 약간 식자마자 인간을 위한 틈은 재깍 봉합되었다. 며칠 사이에 그들은 ‘가장 천한 노예’에서 ‘불순세력의 사주를 받은 폭도’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륜을 그르친 파렴치 범죄자가 되었다.

패배한 폭도 혹은 범죄자는 그 죗값에 걸맞게 다루어졌다. 남녀 없이, 광부와 그 가족들은 상상할 수 있는, 즉 ‘통닭구이’, ‘고춧가루 물’, ‘칠성판 태우기’ 등등 이름 붙여진 모든 종류의 고문과 더불어, 아직 이름도 안 지어진, 그래서 더욱 야수적인 고문을 받았다. 필름 속에서 그들은 노예답게, 낙인받은 범죄자답게 못 감은 머리를 조아리고 빛을 잃은 눈으로 가끔 카메라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빨리 잊었다. 구금과 고문은 그러한 망각을 위해 효과적으로 육신 위에 가해졌다. 원래 거기 어떤 인간이 있었으며 그 며칠 사이에 어떤 인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는지를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못했다.

뒤늦게 1975년에야, 사북과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태어나 항쟁이 있었던 때는 겨우 여섯 살이던 평범한 한 여대생이 있었다. 이미영이라는 여대생이 1997년 어느 날 마음이 ‘꿀꿀해서’ 길을 나섰다 우연히 닿은 곳이 강원도 사북이었다. 그날부터 혼자서 1980년의 사북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여대생은 6년 동안을 사북에 들락거려야 했다. 그 사이 2년 8개월을 들이고 자취방 보증금을 빼서 ‘사북항쟁에 관한 최초의 본격 다큐멘타리’를 만들었다. 여대생은 순수해서 무모했거나, 그야말로 ‘1990년대적’이었기에 탄광이 얼마나 검고 광부가 얼마나 거친지 몰랐다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는 사북이라는 지명을 얼핏 어디서 들어만 봤을 뿐,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을 수 있었기에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먼지, 사북을 묻다>는 그들이 인간됨을 회복하는 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독재가 나쁜 것은 독재자가 마음대로 헌법을 바꾸고 정권을 찬탈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을 파괴한다. 따라서 ‘박정희’ㆍ‘전두환’은, 와 시바스리걸을 좋아했거나, 공부는 못했지만 의리는 끝내주는 ‘싸나이’이자 축구팀 골키퍼였던 어떤 인간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들은, 인간 백정- 인간 마음속에 있는 가장 큰 어두움과 심연과 악마,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괴물들을 가리키는 한국어 일반명사이다.

‘인간이 아니게’ 하는 폭은 넓고 깊다. 1980년의 고문과 구속 이후에 사북 항쟁의 당사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으며, 동료와 이웃들을 증오하게 했고 등지게 했다. 병들고 앓았으며 혹 죽고 혹 미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쟁에 나섰던 스스로들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했다. 광부와 가족들은 카메라 앞에 나서지 못했고 왜 다시 그걸 묻느냐 반문했다. 그리고 그들은 말했다. 너무 당연하고도 자명하다는 듯. “사북은 민주화 운동 아이다. 민주화는 대학생들이나 하는 기지, 우리는 그런 거 전혀 모린다.”

그러나 2003년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영화 상영회에 선 당시의 광부들은 달리 말한다. “팔공년 사북은 민주화운동의 하나입니다.” 그 말 앞에 여전히 ‘우리들은 무식한 광부’라는 단서가 달렸기는 하지만, 그들은 인간임을 찾았다. 지리한 세월이 흘렀고 얼굴에는 주름이 아주 깊게 드리웠지만, 카메라 앞에서 치 떨리는 기억을 세세히 떠올리고 고문을 재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적과 동료를 똑바로 분별해냈으며, 너무 많은 슬픔과 응어리가 있었지만 동료들과 악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천하고 험한’ 일을 하는 ‘못 배운’ 사람들도 민주화를 위해 할 일이 많다. 앞서 말한 ‘선결조건’이 먼저 해결되고 난 뒤에- 즉, 그들을 노예로 취급하는 법과 제도, 또 그 집행자들이 먼저 제거되고 난 뒤에, 그들 스스로 자신을 ‘노예’라 여기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시민이나 인민의 일원으로 느껴야 된다. 못나고 가난한 ‘옥동자’처럼 세바스찬에게 두 눈 똑바로 뜨고 대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인간 사이의 인간화’ 문제는 광부와 귀족 사이처럼 신분ㆍ계층의 차이가 누가 봐도 아주 명백한 경우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20대 초반의 임시직 여성노동자가 고개 빳빳이 하고, 상대방이 돈 많은 고용주건 고매하신 교장님이건 ‘커피 먹고 싶고 손 있으면 니 손으로 타 드세요. 아님 캔커피 사 먹든가.’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민주화’에는 당신과 나의 인간됨의 문제가 함께 걸려 있다. 오늘도 계속 걸려있다. 차별은 빌어먹게 종류도 많고, 역사도 깊기 때문이다.

‘物流’를 마비시킨 화물연대 노동자 ‘人間’들도 근 10년을 기다려 참았다 한다.

3 # 촌평[ | ]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 -- 거북이 2004-8-18 1:25 pm

  • 이거 퍼슨웹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테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여요. 특히 감독과 친분이 있는 모험 양이나 균쓰에게 문의를~.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다큐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찾아서 봐야 할 것 같아요. -- 자일리톨 2004-8-4 12:0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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