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언트메리

5223 발신: 종합예술인 <eldukejh@l...> 날짜: 2003/6/6 (금) 2:27am 제목: My Aunt Mary - Debut

나는 가요를 들으며 가슴이 설레어본 적이 없다. 아니 음악을 들으면서 설레는 느낌을 느껴본 적이 그리많지않다. 격렬한 충격, 안온한 평화, 심도깊은 침잠따위를 느껴본 적이 있어도 단지 살며시 흔들리는 듯한 설레임이란 감정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My Aunt Mary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밴드의 음악앞에 나는 주책맞게 설레임이라는 감정으로 이 음반의 청취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이런 감정을 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던 것 같다. Carpenters의 편곡이 얼마나 유려한 것인지를 알게 된 날. ABBA가 가진 멜로디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문득 느낀 날. Bee Gees의 하모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은 날. 어떤 날이 지닌 서정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담백한 것인지 내안에 스며들어 온 날.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은 설레임이 아닌 충격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아름답고 탐미적인 형태를 띄고 있는 음악이더라도 그들에게 받았던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충격이었을 뿐이다. 일생의 운명의 연인을 만난듯한 그런 감전되는 듯한 느낌말이다. 이러한 잔잔한 형태의 때때로 꺼내들음에 있어서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같은 느낌을 받았던 음악은 몇 되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이 정도의 밴드는 세상에 널렸다. 예리한 가사도 완벽한 송라이팅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특별하다. 아득한 느낌보다는 아련한 느낌의 가사들, 완벽하지는 않아도 언제어디서나 들어보았음직한 중앙정서를 보여주는 멜로디도 그러하다. 이들의 음악을 접함에 있어 구도의 자세도 성찰의 자세도 필요치 않는다. 그저 앨범을 CDP의 트레이에 CD를 걸고 앰프에 불이 들어오고 이윽고 스피커를 통해서 정순용이 만지는 리켄버커 기타의 청명하고 경쾌한 톤에 텁텁하고 일상적인 목소리가 부르는 가사를 듣기만 하면 된다. 자세는 이불이 되었던 침대가 되었던 그 위에 누워서 편안 자세를 취해주면 될 것같다.

이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서정이란 정서를 취한다. 하지만 사춘기적인 서정에 깃들어 있는 우울함과 침잠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청년의 서정이 깃들어 있다. 냉랭하기보다는 온화하고 가라앉기보다는 사색적이며 분출을 넘어선 원초의 미감이 살아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솔직한 고백이 담겨있는 이 음반. 누구나에게 명반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명반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그런 음반이다. --Invic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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