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플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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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The People vs. Larry Flynt
래리 플린트
  • 1996년 미국의 전기적 드라마 영화, 법정영화
  • 감독: 밀로스 포먼
  • 성인잡지 '허슬러(Hustler)'를 창간한 래리 플린트와 관계된 법률 소송을 다룸
  •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수상
  • 상영시간: 129분

 

2 #PinkCrimson[ | ]

★★★☆, US

제 목:[ People vs. Larry Flynt ] 관련자료:없음 [ 21974 ] 보낸이:정철 (zepelin ) 1998-10-07 00:21 조회:84

추석때 그동안 못봤던 영화들을 좀 봤는데...
도베르만 같은 경우는 정말 왓더뻐킹헬이었고...이걸 하이퍼 테크노 액션이니 뭐니 하고 헛소리한 그지 개저질 삼류 평론가들에게는 정말 진심으로 나가 죽으라고 하고싶다.
넘버 쓰리는 꽤 재미있게 봤다. 이게 큰 플롯이 황이어서 그렇지 세세하게 디테일을 끌어내는 것은 매우 좋았다. 기대할만한 감독이다. 음악도 매우 좋다. 깔끔하고 귀에 잘 달라붙는다(난 조동익의 영화음악 모음 Movie를 영화보다 먼저 접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국민 대 래리 플린트이다.

밀로스 포먼이야 원래 안정된 연출력으로 유명한 감독이어서 안심하고 봤는데 뭐 안심할 만 했다. 과감하게 래리의 어린시절과 성공기를 짧게 짤라내고 래리와 다른 이들과의 투쟁과정이 길게 나와있는것은 매우 다행스런 부분이다. 가끔 뭐가 중요하고 뭐가 안중요한지 모르는 감독들이 있다.
웃기는건 처음에는 돈을 위한 삼류 뽀르노 출판인으로 출발한 래리가 점차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는 인물로 되어간다는 점인데 이것은 래리 자체가 안고있는 깡패적 심성이 희한한 형태로 드러난 것일수도 있지만 넓게 보아서 사회적 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게 좋다.
이녀석이 출판하는 잡지 허슬러는 사회적으로 터부시하는 여성 성기를 드러내어 남자들의 말초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 시기가 쪼끔 일렀던 것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는데 지독한 보수사회인 미국에서는 어쩌다보니 래리가 선구자가 되었고 그래서 보수파들의 집중공격을 받게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녀석 하는게 준 망나니라 하고싶은 말이건 아니건 일단 내뱉고 보아 그 대립구도를 심화시킨다.
사실 이녀석이 하는 말은 대체로 옳다. 나라도 칵테일 만드는법과 여자 수영복 사진이 있는 플레이보이보다는 노골적인 훌러덩벌러덩사진이 있는 허슬러를 산다(물론 난 시디살 돈도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거까지 사서 보진 않는다). 아주 인상깊은 연설도 한다. '살인은 불법이나 살인장면을 찍으면 퓰리쳐상을 준다. 섹스는 합법이나 섹스장면을 찍으면 불법이다....세상이 섹스를 억압하기 때문에 전쟁같은것이 넘쳐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언론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이거 아주 첨예한 문제다. 래리의 변호사는 래리의 건을 맡게된 이유가 개인의 자유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사실 허슬러에서 폴웰에게 가한 비방은 너무한 감이 없지 않다. 세상에 우리나라로 치면 김수환추기경쯤 되는 사람에게 마더뻐커라고 했으니 좀 심하지 않은가.
뭐 어쨌거나 대법원 판결은 무죄로 났다. 변호사 녀석도 자유가 존중되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을 강변했고 판사들은 만장일치로 그것을 인정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미국은 대단한 나라가 되는것이다.
여기서 그것이 무죄가 된 것은 아무도 그 비방을 믿지 않을것이며 그 목사의 반뽀르노적인 언행들에 대한 풍자였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도 래리의 편이지만 과연 공인이라는 신분때문에 폴웰이 그렇게 당해도 좋은가라는 것은 생각할 여지가 있다. 물론 래리의 입장에서는 항상 금욕적인 설교를 강요하고 사람들을 지옥에 떨어지지 말라고 협박하는 성직자들에 대한 분노가 있을것이다. 그래서 대법원까지 가기 전의 판결은 심리적 상처를 준 죄가 인정되었었다. 나는 이정도가 적당한 판결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래리도 이정도는 감수할 생각으로 공격했을것이고. 결국 항소심에서 승리함으로 래리는 개인의 자유를 수호한 인간이 되었다. 어쨌거나.

래리의 역할을 한 우디 헤럴슨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확실히 얼굴이 범죄형내지는 깡패형이다. 물론 그것을 나름대로 잘 살려서 살아가고 있긴하다. 역시 배우중에서는 커트니 러브가 인상적인데 이 개차반같은 여자는 밴드할때는 완전히 또라이같은데 여기서는 매우 섹시하면서 뭔가를 담고있는듯한 표정을 능청스레 짓는다. 충분히 상받을만한 연기였는데 뭔가를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이번에 Hole의 새앨범이 나왔던데 평이 아주 좋더만.

자유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텍스트가 될만한 영화다.


예전에 하이텔에 써뒀던 글인데, 생각나서 옮깁니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감독이 예전에 아마데우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득, 이 작품이 아마데우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지역적 배경은 틀리지만 두 작품의 주인공의 캐릭터는 비슷한 점이 있다. 아마 내 생각이 맞다면 이 감독은 인간의, 혹은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영화에 담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이미 보신분들은 잘 알겠지만, 래리 플린트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재능(돈버는...)을 키워 나간다.
스트립걸이 등장하는 술집을 운영하다, 우연히 포르노 잡지인 '허슬러' 를 창간하게되고, 색다른 충격을 원하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여 일약 부자가 된다. 미국 각 지역의 종교 및 사회단체들은 허슬러가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이유로 래리를 고소하고 법정투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대목에서 래리와 그의 변호사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면서도 단호하다. 미국은 자유주의 국가이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므로(수정헌법 1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아마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은 이러한 래리의 주장에 많은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주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옳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의 주장을 부정할 근원적인 근거를 발견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50년대라면 모르겠지만 이념과 사상이 더욱 다원화 되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는 막연히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왔던 전통적인, 또는 종교적인 도덕관념이 그 근거의 정당성을 심판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이 대목에서 등장했던 전쟁과 섹스의 비교는 너무 단순화되어있어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 는듯 느껴진다. 하지만 래리의 주장이 옳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영화상에서 그려진 래리의 삶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주장한 자유란 과연무엇인가? 과연 표현의 자유이던가? 그가 과연 수용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평가했을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가 주장하는 자유란 '돈 버는 자유'에 불과한 것 같다. 그가 진정 섹스의 자유를 부르짖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점을 인식시키고자 했다면 아마 이 영화는 그러한 점에 중점을 두고 래리의 일대기를 다뤄야 옳았을 것이다. 하지만 본 영화에서 래리의 모습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기위해 돈을 벌어야 겠다는 목적으로 평생을 살아온 속물적 장삿군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생각해보라. 래리가 허슬러를 창간한 목적이 섹스의 해방이었던가를... 그는 단지 섹스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자 했을 뿐이다.
그는 진정 섹스와 인간해방이라는 것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한 적이 없다. (영화 어디에도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삶은 무질서하고 근심 걱정에 휩싸여 있으며(그의 방문을 막고 있는 두꺼운 철문이 그런 점을 나타낸다.) 극도로 방종한 것이다. 다소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아무런 고통과 고민없이 얻어진 자유와 권력이 책임있는자의 손을 떠났을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느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만일 감독이 래리라는 인물을 통해, 래리가 주장했던 대로 아무런 반성과 정당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위선적인 도덕적 관념들을 비판하고자했다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정말 이상한 것이 되어버린다. 감독의 뜻과는 무관하게 모순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배재한다면, 아마 감독이 의도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데우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양면성이나 사회적 양면성을 다만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의 문외한인 나에게 그래도 이영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꽤 괜찬은 영화였을런지도 모르겠 다.(사실, 마음으로 그리 와 닿는 내용은 아니었다. 물론 취향 탓이겠지만...) 하지만 그러한 점을 제쳐둔다면, 그 다지 긴장감있게 진행된다거나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커트니 러브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래도 이까지 글을 쓴 이상 관심있는 분들은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http://musicisland.org/zboard/zboard.php?id=FreeBoard&page=2&category=4&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69 오찬익]

3 같이 보기[ | ]

4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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