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락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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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락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어느날 갑자기 정리하여 교지 '관악'에 투고했던 것이다. 이 고료로 받은 7만원은 모두 시디사는데 탕진하였다. 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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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주제넘은 짓일수도 있다. 이미 내 주위에서 음악을 무지막지하게 듣는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쓰려고 하는 이유는 이 지면이 꼭 정말 대단한 사람에게만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때문이다.
내가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부터이지만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라고 생각되니만큼 이제 한 5년정도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나는 음악을 왜 듣는거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여러가지 생각이 둥둥 떠다니길래 그냥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몇자 끄적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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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때 팝송을 좋아하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당시에도 테이프 하나가 3000원정도는 했으니까 중학생에게 음악 듣는 것은 생각보다 큰 사치였다. 결국 혼자 듣다 재력에 한계를 느낀 그녀석은 나에게 음악을 들어보라고 꼬시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을 잘 의심하던 내가 왜 그녀석 말에 순순히 응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고놈이 집어주는 테이프를 몇 개 사서 듣기 시작했고 서로 바꿔듣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른 친구 하나랑도 친해져서 우리 셋은 동네 레코드점에 자주가는 꽤 친한 친구가 되었다. 당시에는 빌보드 챠트에 잘 올라가던 바네싸 윌리엄스Vanessa Williams, 에이미 그랜트Amy Grant 등을 들었다. 지금은 다들 퇴물가수가 되었지만 그때는 날리던 가수들이었다. 그런데 팝음악이라는게 나에게는 그리 오래 들을만한 음악은 못된다고 여겼나 보다. 그러던 어느날 메탈리카Metallica의 꼭두각시의 조정자Master of Puppets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어떤 녀석이 1000원에 사라길래 '후지면 공테이프로 쓰지 뭐' 이런 생각으로 샀던 것이다. 이 음반은 지금도 쓰래쉬 메틀Thrash Metal의 명반으로 꼽히는 음반으로 정말 나의 피를 처음으로 끓게(?) 만든 음악이었던 것이다.
메틀을 듣다보니 테이프의 음질도 불만스러워서 값이 조금 비싼 LP로 듣기 시작했고(그때 시디는 무려 15000원을 육박하는 가격이었고 나는 시디플레이어도 없었다.) 팝음악을 언제 들었었냐는 듯이 손을 뗏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상당히 우수한 팝음반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음악을 들을 준비가 안되어있었던 것이다. 나는 메틀이 팝보다 더 훌륭한 음악이라고 생각했었다. 정말 좋은 팝을 못들어봤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그다지 좋아하는것은 아니지만 어떤 락뮤지션들 못지 않은 감각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마돈나Madonna를 좋아하는 락매니어들도 안다. 아마도 그때 팝을 제대로 들었으면 지금 나의 음악생활은 상당히 다른 길을 걸었겠지만 성격상 결국 지금의 위치로 왔을거 같다.
고등학교 일학년때까지 나는 메틀만 들으면서 지냈다. 메틀리카, 헬로윈Helloween 등을 들으며 광분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이때의 음반을 들으면 예전의 느낌이 난다. 메틀 듣는 분들은 다 아실텐데 괜히 기타도 못치면서 기타치는 폼 잡고 머리를 흔든다던지 공책이나 교과서 표지 혹은 여백에 좋아하는 밴드의 로고(꽤 멋있다)를 그린다던지 하던 그 느낌 말이다. 지나가다 그런 녀석을 보면 이해하시길. 물론 메틀 역시 다른것과는 또다른 저력을 가진 음악이므로 지금도 가끔 메틀만이 줄 수 있는 스피드나 격렬함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당시 나는 음악이 조금 다양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좀 색다른 것이 없나 찾기 시작했다.
통신을 하고 있던 나는 이런 저런 음악관련 게시판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프로그레시브 락Progressive Rock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매우 과장된 광고를 하는 어떤 프로그레시브 락 음반사에서 '굴지의 명반', '환상의 명반' 운운하는 광고를 보고 나는 그것에 매료되었다(물론 지금은 세상엔 좋은 음반보다는 후진 음반이 많다는 것 쯤은 안다). '저렇게 광고를 때리는데 적어도 쓰레기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샀던 것이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의 튜블러 벨Tubula Bells과 뉴 트롤스New Trolls의 콘체르토 그로쏘Concerto Grosso per 1였다. 마이크 올드필드의 다양한 악기연주와 방대한 구성(한 곡에 20분이 넘음) 그리고 뉴 트롤스(이탈리아 밴드)가 주는 이국적이면서도 클레식 편곡이 더해진 분위기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을 주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음반에 대한 정보를 찾고 그 음반을 구하는 능동적인 감상자가 되기 시작했다. 잡지와 PC통신에 올라온 글들을 읽고 그것을 중심으로 음반을 샀는데 그 와중에서 6,70년대 영미의 락음악(편의상 올드락이라고 하자)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다. 프로그레시브 락이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가 전성기였는데 이때 음악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올드락도 듣게 된 것이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비틀즈The Beatles 등은 락음악이 무엇인가를 내게 알려주었다. 락의 태동기에 형성되어 락을 완성해버린 이 밴드들은 메틀과는 또다른 파워와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뭐랄까, 왜 이들이 락의 클래식이 되었는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혹시 비틀즈를 예스터데이Yesterday나 렛잇비Let It Be같은 멜랑꼴리 한 곡이나 부른 아티스트로 알고있다면 무척 슬픈 일이다. 비틀즈는 아이돌 밴드에서 진정한 락의 프런티어로까지 진화한 엄청난 집단이었다. 그들은 영미쪽에서 가장 낭만적이었던 시대중 하나인 60년대를 몸으로 체화시켰던 그런 예술가집단이다. 그런 모습을 듣고싶다면 그들의 화이트White앨범을 사서 들어보길 바란다.
나는 고3이라는 비교적 답답한 기간을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보냈다. 운좋게 대학에 들어온 나는 통신에 있는 프로그레시브 락 모임에 들어갔고 이 곳에서 나는 또다른 충격을 받았다. 형들이 듣는 수준은 나와는 너무나 차이났던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준 매니어정도는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나는 내가 얼마나 좁은 세계에 있었던가라는 생각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었다. 형들은 다양한 장르에다가 깊이까지 더하여 음악을 듣고있었다. 이런거 들어보라고 들려주며 서로를 자극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그러한 장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곳의 분위기는 비교적 균질한(?) 집단이었던 대학 내에서의 동아리나 학회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알고보면 그렇게 다양한 것도 아니었지만)과 다양한 연령층이 존재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음악적인 것은 물론이고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다. 공통의 화제를 가진 사람들과 관심사를 얘기하는 즐거움은-특히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경우에는-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3 # .[ | ]

락은 영국에서 발생했다고 말할수 있고 따라서 영국과 미국이 세계시장을 양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지금도 영국과 미국의 락이 가장 우수한 편이다. 그러나 프로그레시브 락을 들으며 세상에는 영,미의 락만 있는것이 아니구나 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되었다. 비록 변방의 락밴드들이 영미권의 절대적 영향력하에 있었다 하더라도 얼마나 좋은 이탈리아, 스웨덴, 일본, 아르헨티나 등등의 락이 있는지, 우리나라에도 얼마나 우수한 락음악이 있었는지를 알게되었던 것이다.
락을 듣다보니 음악적 편견을 어느덧 버리게 되었다. 메틀을 듣다 처음 프로그레시브 락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내가 듣는 음악 빼고는 대체로 후지겠거니 라는 어이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팝음악쪽에는 경멸에 가까운 느낌을 가졌다(가요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데 모임에 들어와보니 사람들은 내가 전혀 관심조차 가지지 않던 것들도 듣고 있었다. 그들이 내가 듣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무시했을지도 모르지만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재즈, 클레식은 물론이거니와 팝, 뽕짝까지 즐기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 나는 어떻게 하면 더욱 깊게 더욱 난해한 것을 들을까하는 생각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생전 첨듣는 밴드들을 가져와서 틀고 별 음악같지도 않은 피곤한 것을 들을때 나는 먼저 부러움이 앞섰다. 평론가들이 극찬을 하고 구하기도 힘든 그런 음반들이었기 때문이다. 뭐 그때만해도 평론가들을 꽤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고 남이 가지지 못한걸 듣는다는것은 하나의 기쁨이니까.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되면서 어느덧 음악은 단지 귀로 듣고 느끼면 되는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득도(?)를 하고 난 뒤에 어떻게 하면 더 난해한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사실 알고보면 특정 음악이 다른것에 비해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가끔은 어이없게 좋은 것들도 있다) 좀 듣다보니 나름대로 듣는 요령도 생겼다. 남이 아무리 좋다그래도 내가 듣기에 힘이 들거나 구질구질하면 그건 똥판이니까. 그 이후 남이 뭐라고 하던지 내가 듣기에 후지면 후진거고 좋으면 좋은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악을 즐기다가 음악에 치이던 나는 다시 음악을 즐기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비교적 난해한 음악을 즐기고 있는데(사실 난해하지도 않고 나보다 훨씬 더한 사람들도 많다) 그것은 순전히 들을만하기 때문이지 현학적인 성격 탓은 아니다. 으례 그렇듯이 뭐든 찾아서 하려는 사람은 이것저것 찾게 마련이고 나도 음악에서만큼은 그런 적극적인 사람이기에 그렇게 된 것 뿐이다. 난해한 음악중에도 자기에게 맞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4 # .[ | ]

요새 락이 언론이나 여러 대중문화의 장에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는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문화 잡지들 치고 락음악코너 하나 없는걸 보기 힘들고 일간지에서도 가끔이기는 하지만 락음반평이나 락커들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몇몇 경향들을 다른 것들에 비해 부각시키고 그것을 상품화하려는 의도를 짙게 풍긴다. 소위 문민정부 수립 이후로 문화적 다양성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언론의 이슈만들기와 영합하여 수용자들을 편향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펑크Punk락과 인디 칼리지Indie Collage락이 락의 전부였던 것 처럼 부각시키는 경향이 많이 보인다. 몇몇 평론가들이 저항의 락을 들먹이면서 얼터너티브와 펑크를 팔아먹기 시작하여 이제 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너바나Nirvana정도는 다 안다. 언론의 힘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어떤 한가지를 부각시키고 다른것을 배제하면 우리나라처럼 폐쇄되었던 사회에서는 무엇이 어느정도의 위치를차지하고 있는지 등을 판단하기 매우 힘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랩도 전자음악도, 심지어는 우리의 락도 잘 모른다. 일단 이러한 현상은 부정적인 요소도 담고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이다. 그나마 락에 대한 관심을 크게하는 데는 도움을 주니까. 당신이 한겨레 신문이 죽어라 밀어주던 황신혜밴드의 빵꾸락을 듣고 이거 참신하네...라는 생각을 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권해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밴드가 나와봐야 바로 사장되는 상황이었다.
혹시 당신도 데스Death 메틀을 악마의 음악이니 뭔지로 알고있진 않겠지. 우리가 중진국(OECD가맹국이니 선진국인가?)이네 뭐네 하며 설쳐도 이런 부분을 보면 정말 절망감 외에는 아무 느낌도 안든다. 나는 데스메틀의 광팬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신들 나름대로의 방법론과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정도는 안다. 그들은 단지 세상의 음지를 노래하는(?)것 뿐이다. 죽음을 찬미하는 시나 그림은 예술이고 데스메틀은 악마의 음악이라고? 정말 점잖게 '엿이나 잡수세요'라고 하고싶다.
이러한 왜곡된 풍토를 바꾸려면 먼저 수용자가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주체적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어야하는데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아무리 평론가들이 씨부렁거려도 청자들이 알아서 듣게 되면 그들은 결국 청자들을 따라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서로 보완해가며 발전하는 것이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라고도 볼 수있다.
방법은 한가지, 열심히 듣자.

나는 내가 매니어라고 생각한다. 많이 들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나는 락과 그 주위의 일들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에 접속해서 아티스트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다니거나 메일오더샵Mail Order Shop에서 살만한 시디가 뭐 있나 하고 돌아다닌다. 물론 그냥 레코드점에도 최소한 이주일정도에 한번씩은 꼭 간다. 지나가다가 쓸만한 레코드점이 보이면 사지도 않을거면서 꼭 들어간다. 그리고 처음부터 뒤진다. 점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손님이다. 이미 나에겐 모든 금전적 단위가 시디이다. 누가 유럽에 갔다고 하면 그것은 나에게 시디 200장이라는 소리로 들리고 소개팅에 한번 나가면 시디 서너장이 날아간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물론 스스로 '마, 살아가면서 시디만 사냐? 책도 사고 놀기도 하고 그래야지.' 하고 생각도 자주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젠 머리가 그렇게 되어버린걸. 그런데 이러고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모든게 영화로, 모든게 만화책으로 환원되어버리는 사람들이랑 친하다.
정말 솔직하게 쓰는건데 나는 분명히 음악이 좋기도 했지만 남들이 안듣기때문에 듣는 경향도 있었다. 남들보다 깊게 듣고 남들보다 많이 듣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듣는다는 즐거움때문에 듣기도 한 것이다. 뭐 그것도 그렇게 나쁜건 아니지만 음악이 좋다면 그냥 음악만 듣기 바란다. 좋다고 편안하게 듣다보면 그냥 좋은것이다. '나는 판이 이백장밖에 안되는데 쟤는 판이 천장이래'이런 강박관념이나 '이것도 사야하고 저것도 사야하고...'이런 고민에 시달리면 의외로 피곤하니까. 혹 그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것이 진짜 매니어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서태웅이나 다른 동료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그것을 흡수하겠다는 웃음을 짓는 그런 모습 말이다.

5 # .[ | ]

뭐 다른 락에 대해서도 말을 할 정도가 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나는 아직 그정도의 내공이 쌓이지 않았다. 그래도 개중 많이 들었다고 생각되는 프로그레시브 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잠깐 써보려한다.
프로그레시브 락은 아트Art 락이라는 말과도 혼용된다. 글쎄 명확하게 규정을 하자면 '혁신적인 시도와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최전선에 있는 락음악'이라고 하면 좋겠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런 의미도 포함하면서 '생각보다 상당히 들을만한데 다른사람들은 그다지 듣지 않는 숨겨진 락음악'이란 의미와 '비 영미권의 완성도 높은 락음악'이라는 의미에 조금 요상한 뉘앙스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비 영미권의 주옥같은 포크락이나 팝등도 매니어들이 찾아들어서 그것이 아트락에 적당히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아트락 아티스트가 참여했다고 해서 그런 성향이 매우 적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트락에 끼워주기도 한다. 하여간 모호한 말이다.
말하자면 매우 컬트적인 요소들도 많이 있는 반면에 컬트적인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단지 몰라서 못들을 뿐이지)들도 가득찬 장르인 것이다. 이렇게 애매한 장르이니만큼 하위 장르도 다양하고 이게 아트락이냐 아니냐 라는 말도 분분하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래도 에쵸티HOT(요샌 에이치 오 티라고 읽으면 구세대라고 어떤 꼬마가 그러더구만...)를 파는게 아트락을 파는것보다는 더 잘팔릴거같거든. 그러니까 판매량을 극대화시키려고 방송사와 음반사의 합작으로 팔릴거 같은 음반이 더 잘 팔리는 판을 짠다. 그럼 당연히 아트락이나 여타 음악들의 홍보는 되지 않는다. 일례로 언젠가 까떼리나 까셀리Caterina Caseli라는 이탈리아 깐쪼네 여가수의 곡이 신은경을 띄워준 드라마 '종합병원'에 삽입되었을때 공전(?)의 히트를 쳤다. 사실 누구나 좋아할만한 낭만적인 곡이니까. 그렇지만 나중에 그 곡이 방송에 안나오자 물밀듯이 들어오던 주문이 뚝 끊기고 그동안 왕창 찍어놓은 판들이 몽창 재고가 되어버렸다는 슬픈 일화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혁신적인 흐름은 분명히 락에 존재했고 이것은 올드락이나 다른 여타 락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미약하나마 여전히 흐름을 잇고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도도한 흐름은 결국 그 저력을 드러내왔다. 그리고 이중 어떤 음악들은 아방가르드Avantgarde락과 미묘한 연계를 가지고 있기도하고 현대음악과 음악적 영향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런 프로그레시브락의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하는 밴드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킹 크림즌King Crimson을 꼽겠다. 이들은 60년대 후반에 결성되어 지금까지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영국밴드들인데 누구도 이들을 거장의 대열로 넣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은 프로그레시브락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끊임없는 혁신과 실험을 몸소 실천했던 이들이고 그 영향력을 전 세계 락커들에게 미쳐왔다. 음악적 실험을 계속해온 킹 크림즌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냉소를 블루지한 음악으로 표현한 핑크 플로이드는 정말 프로그레시브 락의 양대산맥이라고 불리울 만 하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나 이미 프로그레시브 락은 한 스타일로서 정착되었고 오히려 프로그레시브 락이 아닌 다른 장르에서 진보적 성향이 드러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였다. 요새는 언더그라운드 락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어서 현재 프로그레시브 락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가 좀 고민되기도 한다(사실 동시대를 평가한다는 것은 어렵고 생각보다 무모한 일이다). 단지 락 전체로는 인디레이블들이 예전에 비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청자들과 창작자들 모두 선택의 폭이 넓어진 반면 몇몇 슈퍼 밴드가 주류시장을 독식하는 현상은 더욱 강화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바람직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현재는 복고풍 사운드에 모던한(이렇게 아무데나 갖다 붙이기 좋은 말이!) 감각의 사운드와 신세사이저Synthesizer와 여러 전자 장비들을 끌고 장르의 혼합을 만드는 사운드가 주종을 이룬다. 요새는 장르라는 단어가 예전에 비해 더더욱 쓸모없어지는 것이다. 어쨌든 정말 지겹게 들어왔던 포스트모던한 시대라는 것이 오긴 왔나보다.
비록 프로그레시브 락이 한물 가긴 했지만 여전히 들을 것은 많다. 단지 추천음반을 믿고 살 만큼의 조그만 용기-물론 당신의-를 기다릴 뿐이다.

6 # .[ | ]

주저리 주저리 적어보았다.
정리하면서보니 결국 내가 락을 듣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좋았거든.
그리고 주위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좋아하니까.
지금도 데스메틀을 좋아한다는 어떤 40대 아저씨가 그랬다. "왜 자기들도 젊었을 때 좋아하던 락음악이나 다른 음악을 지금은 안듣는지 모르겠다. 나이먹는다는 것이 자기 자신이 변하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젊은날에 대한 배신이다." 나 역시 언제까지고 좋아하길 바랄 뿐이다.

도어즈의 라이브를 들으며...

p.s. 혹시나 프로그레시브 락에 관심이 생긴다면 하이텔(go sg150, go under 11, go mokogy 14)이나 나우누리(go smusic 2)에 들러보기를 권한다. 나우누리보다는 하이텔이 훨씬 알차다.

7 같이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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