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이덕

DjDOC

# The Life...DOC Blues 5%[ | ]

 

저희는 음악을 하면서 나이를 먹었어요. 만약 지금까지 우리가 대중음악을 하면서 아무 생각이 없다면 정말 한심한 놈들 아니에요?’ DJ DOC의 리더 이하늘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몇 년 동안 대중음악을 하면서 제대로 창조력을 펼쳐 보기도 전에 단물 쓴물 다 빠지는 가수들이 연예계에는 얼마나 많은가. 예전 같으면 방송국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을 친구들이 영세 하나마 힙합 전문 클럽에 모여 언더그라운드씬을 형성하고 있는 지금은 차라리 행복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슈퍼맨의 비애]로 데뷔하여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DJ DOC는 ‘삐걱삐걱’ 이 들어 있는 97년 [4th Album]을 내며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각종 루머와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3년 동안의 와신상담 끝에 나온 5번째 앨범 [The Life…DOC Blues 5%]는 보다 어둡고 드라마틱해진 힙합 사운드와 절묘한 구성, 래핑이 어울린 완성도 높은 곡들로, ‘삐걱삐걱’ 이 우연이나 치기의 소산이 아님을 입증했다.

알파벳대로만 읽으면 ‘에라이~’ 가 되는 ‘L.I.E.’와 ‘포조리’ 는 기자들과 경찰들에 대해 수위 높은 욕설이 담겼다 하여 물의를 일으켰지만, 음악은 어디까지나 음악으로 보는 것이 현명하다. ‘나 이제 옛날처럼/ 홈런 맞은 투수처럼/ 멍하니 가만히 그저 보고있진 않아/ 너희에게 펜과 종이가 있다면/ 내겐 한 맺힌 보이스와 MIC가 있다/ 씨발아 집어쳐라 닥쳐라/ 좆까라 저리 꺼져라’(‘L.I.E’)와 ‘새가 날아든다 웬갖 짭새가 날아든다/ 새중에는 씨방새/ 날지 못하는 새 짭새’(‘포조리’) 같은 기가 막힌 가사와, 입에 짝짝 들러붙는 듯한 이하늘의 랩핑은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한다.

거창하게 성수대교나 옷 로비를 소재로 한 곡(‘알쏭달쏭’)을 만들 때 보다는 자신들의 체험에 바탕한 곡(‘부익부 빈익빈’)을 쓸 때 이들의 비판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강도 높은 가사를 가진 곡들에 묻혀 주목 받지는 못했지만 ‘가위바위보들보들/ 개미똥고멍멍이가…’ 하는 익숙한 어린 시절의 노래로 시작하는 ‘Analog’의 소박한 정서가 이들 음악의 다양한 폭을 말해주며, ‘INTRO(와신상담)’-‘DOC BLUES’-앨범의 실질적인 엔딩곡인 ‘Alive’ 로 이어지는 DJ DOC 인생 3부작을 들어보면 전체가 인생을 주제로 한 컨셉트 앨범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방법론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들은 과거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는데, TV 출연이 적어진 반면, 얼마전 크라잉 넛과 성공적인 조인트 공연을 마쳤는가 하면 클럽 공연에서도 심심찮게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방송 금지로 인한 고육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DJ DOC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된 것을 안타까워 하지만 오버그라운드 뮤지션들이 언더로 허리를 숙여 동참하는 유연함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김현식 추모 앨범에 유승준이 곡을 싣는 것처럼 전혀 맥락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나, 서태지처럼 어느 한 쪽의 지명도가 너무 커서 일방적으로 흡수해버리고 마는 경우는 배제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멤버들의 반골기질을 하나로 묶어 음악적으로 승화시키는 데는 흡사 비스티 보이스의 Mike D.같은 하이톤의 랩을 구사하며 대부분의 작사작곡을 전담한 리더 이하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비스티 보이스 같은 오피니언 리더가 되기 위해선 더 많은 성장이 필요하다. 그들이 자조적으로 말했듯이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이 ‘Run to you’가 된 것은 분명 ‘약한 모습’이고, 힙합 보다는 댄스 비트를 많이 사용한 ‘Boogi Night’ 나 ‘기다리고 있어’ 같은 곡들의 관습적인 가사 쓰기는 다른 노래들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

DJ DOC의 음반이 처음 나왔을 때 시내 레코드 가게의 스피커 앞에 삼삼오오 모여 ‘포조리’에 맞춰 춤을 추던 아이들은 지금 아마 GOD의 새 앨범에 맞춰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진화하는 것은 DJ DOC 같은 일부의 뮤지션들 뿐일까? 우리나라 대중 음악계는 언제나 너무 쉽게 잊기를 반복한다. --vanylla,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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