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렁큰타이거

DrunkenTiger

#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 스핀지에 실리다.[ | ]

TIGER JK IN SPIN

THE TYGER OF WRATH ARE WISER THAN THE HORSES OF INSTRUCTION

영국의 상징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 중에 'The Tyger' 라는 시가 있다. 왜 'Tyger' 인고 하니, 'Tiger'의 오타가 아니라 이쪽이 좀 더 강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철자를 바꿨다는 것이다. 1992년 LA 흑인폭동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미국의 흑인 사회에 팽배했던 반한감정을 담은 아이스 큐브 Ice Cube의 노래 'Black Korea' 에 맞서 '나를 호랑이라 불러다오 Call Me Tiger'란 노래로 '마약대신 종교를, 폭력대신 태권도를, 증오 대신 사랑을!' 이란 메시지를 높이 올렸던 JK가 11월자 스핀지에 이름을 실었다. 그것도 작은 자투리 기사가 아니라 거짓말 조금 보태서 라디오헤드 Radiohead 의 특집기사에 필적하는 분량으로.

'한국의 힙합 씬 미국을 위협하다' - 제하와 같은 기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는, 안타깝게도 지난 5월 한국의 업타운, 드렁큰 타이거 등의 '인기 힙합 그룹 멤버들이 불미스럽게도 마약 사범으로 구속' 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이것을 단순한 스캔들로 다루는 국내 언론과는 사뭇 다르다. '침묵은 더 큰 폭력을 부른다 Silence makes the beats grow stronger' 는 헤드라인으로 실린 타이거 JK 기사 일부분을 인용해 본다.

"코리언 힙합의 개척자 JK는 뚜렷한 증거도 없이 마약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진짜 죄명은 그가 랩퍼라는 것. 힙합을 하는 것이 죄가 되는 나라,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Korean hip-hop pioneer JK was arrested, tortured, and convicted for smoking methamphetamine without a trace of hard evidence. His real crime? Rapping. Welcome to South Korea, where hip-hop is the true crime."

마녀 사냥식 사법제도와 여론몰이, 뮤지션이 아티스트로 대접 받을 수 없게 만드는 환경, 편식으로 가득찬 음악 시장 등에 대한 비판 가운데서도 재밌는 것은 제 3세계 인권문제를 다뤄왔던 일반적인 미국 언론의 태도가 스핀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타임지를 위시한 미국 언론들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미국의 정부와 민간단체의 노력이 없었으면 DJ는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랐을 것이다. 오늘의 DJ가 있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든든한 수호자인 미국의 덕분' 이라는 기사를 다투어 냈었다. 미국 내 인종차별이나 주한 미군들의 인권 침해, 자국의 힙합 씬이 폭력과 상업주의로 물들어 가는 것에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이렇게 생색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우습다. 그렇지만, 마땅히 국내 언론이 흡수하고 진실을 밝혀 냈어야 할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 만으로 우리는 스핀의 기사에 대해 투덜거릴 입장이 못 되는 듯 하다.

미국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 한국은 무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유죄

사건에 대해 제대로 모르실 분들을 위해 전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힙합 그룹 드렁큰 타이거의 MC 타이거 JK (본명 서정권)는 2집 [위대한 탄생] 활동을 하고 있던 4월 30일 서울지검으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았다. JK 측은 업타운 멤버인 칼로스와 스티브가 마약 사범으로 구속되었다는 소식도 라디오에서 듣고 처음 알았을 만큼 갑작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마약 흡입의 장소를 제공한 참고인 자격으로 자진 출두했으나, 곧 공범으로 기소되었고, 같은 혐의의 업타운 멤버이자 JK의 여자 친구인 타샤 레이드 (윤미래로 더 많이 알려진)는 몇 달간 수배를 피해 숨어 있다가 최근 소환되었다. 머리카락, 소변 검사에서 모두 음성 반응이 나온 그의 기소 근거는 오직 같이 구속된 업타운 멤버들의 증언 뿐이다.

JK는 기소 이후 줄곧 강경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고, JK 석방 운동은 그의 부모님과 팬들로부터 출발하여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졌다. 이례적으로 외국에서도 큰 관심을 보여 스핀 외에도 미국의 힙합 전문잡지 XXL 와 인터넷 방송 heavy.com 에서 이 사건을 취재해 갔다. 사건을 보는 미국 언론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증거가 있어야 구속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는 것이다. 배후에 힙합 음악의 적들 enemy of hip hop music 이 꾸민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게 그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들은 서술에 있어 외부자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스핀 기사에는 JK 사건에 대해 마스터 플랜 주인장 Donemany (이종현)씨와의 인터뷰도 실려 있는데, "네 개의 앨범을 내고 난 지금 한국 음악계에 업타운이 미친 영향력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반면 , [위대한 탄생] 이후 드렁큰 타이거는 확실히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진정한 힙합 그룹의 길을 걷고 있었다" 와 같은 증언들을 바탕으로 스핀은 드렁큰 타이거와 업타운이라는 라이벌 힙합 그룹사이의 갈등이 사건의 흑막 중 하나라고 믿고 싶어하는 듯 하다.

Donemany씨가 진짜 이런 의도로 발언을 했는지도 의문이려니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성공한 '진짜' 힙합 그룹은 누구누구다 라고 말하는 것도 쉽게 얘기할 문제는 아니다. 비록 D.T처럼 정공법을 택한 힙합 전사들은 아니었다 해도, 업타운이 우리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마약 상용 여부를 떠나 그들도 나름대로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JK에 의하면 호송 중 만난 칼로스와 스티브는 '날(UPT) 미워하지 말아달라, 어쩔 수 없었던 일이고, UPT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었다.' 고 말했다고 한다. 힙합의 발전을 위해 모두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JK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계기로 힙합씬에 편을 가르려는 모든 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TRUTH IS OVER THERE

엑스파일도 아닐진대, 누가 봐도 수상한 이 사건의 '진실'은 그럼 무엇일까? JK 사건을 담당한 박성진 검사가 속한 서울지방검찰청 마약 수사반은 5월 25일 제 10회 마약퇴치 대상의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인기 연예인 신분의 마약 사범을 적발하는 눈부신 활약상으로 우리사회가 결코 마약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을 재고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는 것이 철저하게 실적주의에 입각한 수상 이유다.

JK의 아버지 서병후씨는 우리에게 신중현을 상기시킨다. 독재 정권의 강압에 못 이겨 마약을 했다는 자백서에 서명한 신중현의 음악은 20년 동안이나 한국에서 금지곡이 되어야 했다. 한국에서 마약 사범이란 낙인은 곧 라디오와 TV 활동 금지, 더 나아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빌미로 권력가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뮤지션들을 매장하는 도구로 악용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박검사는 JK에게 "자백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너 뿐만 아니라 네 가족과 여자친구의 인생까지 불행하게 만들어 버리겠다" 고 협박했으며, 변호사를 요청하는 그에게 "이곳은 미국이 아니며, 이것은 O.J. 심슨 재판이 아니다." 라는 조롱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JK 사건을 담당하기 전까지는 이들이 음악을 하는지도 몰랐다는 박검사측의 얘기와는 달리, 처음부터 검찰이 편파적으로 사건을 다루었다는 많은 증언들이 있다. 위로는 "서정권은 오만불손한 인간이다…"와 같이 사건과 무관한 사감을 소견서에 첨부한 박검사부터 천식으로 고생하는 아들에게 담요를 반입해 주려는 JK의 어머니한테 "마약중독자에게 이불은 필요 없다."는 말로 거절한 간수까지, (딴따라) 마약사범에 대해 필요 이상의 혐오증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이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단은 과연 얼마나 공정한 것인가?

All THE SINGERS IN KOREA ARE LIKE CHEERLEADERS

JK는 모 잡지에서 '한국 음악 모두 똥이에요.' 라는 등의 자극적인 말로 한국 음악씬에 불만을 표시했었지만, 그 바탕에 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 음악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탁월한 여성 랩퍼였던 타샤는 도피생활 중 스핀과 어렵게 가진 인터뷰에서 다시는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고 심경을 밝혔다. 다행히 D.T는 이 불미스런 사건들을 딛고 생각보다 빠르게 활동을 재개했다. 보석으로 풀려난 JK는 동료 DJ 샤인과 팬들의 격려 속에 힙합 전문 클럽 소울 트레인 등에서 라이브 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해외 진출과 3집 녹음도 병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나라 언론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스핀을 비롯한 외국 언론들이 벌인 Free JK 운동은 우리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든다. 침묵이 더 큰 폭력을 부르기 전에 JK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 드렁큰 타이거 한국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난 여기서 다시 재기할거야, 여기가 나의 고향이고 나의 놀이터니까. 그리고 너희들은 나에게 중요하니까."

- 5/24 구치소에서 JK 가 팬들에게 보낸 편지 중 --vanylla,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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