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왕, 동명성왕

1 개요[ | ]

東明王. 부여의 초대(初代) 동명왕 동명과 고구려의 초대 동명성왕 고주몽이 있다.

1.1 부여의 초대 국왕 동명왕 동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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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동명왕 동명(東明)

부여(夫餘)의 시조인 동시에, 고구려의 동명성왕 고주몽을 지칭하는 왕호(王號)이기도 하다. 두 인물의 건국설화는 거의 흡사한 면이 많으나 동일인으로 보지 않는다. 고주몽의 아버지 해모수와의 관계는 불분명.

고리국왕(영품리왕, 국내의 사서에는 해부루의 다른 왕호라 적었으나 중국의 사서에는 고리국의 왕이라 적힘)의 여자 종이 하늘의 기운을 받아 임신하여 알을 낳았는데, 알에서 사내가 태어나자 영품리왕은 그 아이를 죽이려 하였다가 실패하고 아이를 여자 종(어미)에게 기르도록 하였다. 아이의 이름은 동명(東明)으로 지었으며 동명은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활을 잘쏘는 동명에게 나라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영품리왕은 동명을 죽이려 하자 동명은 도망쳐 부여를 건국했다는 것이다.

1.2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동명왕) 고주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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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동명성왕 고주몽

생몰 : 기원전 58 ~ 기원전 19 재위 : 기원전 37 ~ 기원전 19

고구려의 초대 국왕. 위의 동명왕과는 건국설화가 매우 흡사하나 동일인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동명왕 동명의 설화를 따온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아버지는 해모수, 어머니는 유화로 유화는 해모수와 사통하여 아버지 하백에게 쫒겨났다. 쫒겨난 후 금와왕에게 발견된 후, 금와왕에 의해 궁중에 유폐당했다. 유화는 어느날 햇빛을 보고 임신하여 알을 하나 낳아 그 알에서 아이가 태어나니 그가 주몽이였다는 것이다.

주몽이 활을 잘쏘자 그를 시기한 금와왕의 아들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을 때 주몽은 도망쳐 졸본부여로 남하한 후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세웠다.

2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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