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미츠쿠니

1 개요[ | ]

徳川光圀
도쿠가와 미츠쿠니
  • 1628~1700
  • 미토번의 2대 번주

2 국학원대학[ | ]

1628~1700년. 에도(江戸)시대 전기의 미토번(水戸藩) 제2대 번주(藩主)이다. 어릴적 이름은 죠마루(長丸), 나중에 지요마츠(千代松). 자는 도쿠아키(徳亮), 간시(観之), 시류(子龍). 아호(雅号)는 닛신사이(日新斎) 등이다. 시호(諡号)는 기코(義公). 곤츄나곤(権中納言, 고몬黄門)에 임명되고 나서 일반에게 미토코몬(水戸黄門)으로 알려졌다. 간에이(寛永) 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11번째 아들인 요리후사(頼房)의 세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청년기에 『史記』 백이전(伯夷伝)에 감명을 받아서 학문의 길에 뜻을 두었다고 전해진다. 학문상의 정열은 역사 편찬사업(修史事業)에 집중되었는데, 나중에 『大日本史』 편찬의 중심이 되는 사국(史局) ‘창고관(彰考館)’을 창설하여 사료의 수집과 필사에 종사했다. 전국에서 사관(史官)으로 일할 많은 학자를 초대했는데, 결코 학파에 치우치지 않고 넓게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다. 그들은 나중에 미토(水戸)학파라고 칭해졌다. 신도와 관련된 업적으로는 번주시대에 시즈카(静)신사와 요시다(吉田)신사를 비롯하여 번내 여러 신사의 부흥에 진력을 다했고, 신불(神佛)분리를 단행하여 음사(淫祠)를 일소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원래 미토번은 아버지인 요리후사가 하기와라 카네요리(萩原兼従)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요시다신도가 강했지만, 미츠쿠니는 그 용불적교설(容仏的教説)에 의문을 가지고 번사들에게 이세(伊勢)신도를 배우게 하였다. 겐로쿠 13년 12월 6일에 사망, 향년73세. 편저서로 대표작인 『大日本史』 외, 『礼儀類典』, 『西山遺文』 등 다수가 있다. --야자키 히로유키(矢崎浩之)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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