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서울대 도서관 개혁을 위한 작은 글

(도서관 개혁을 위한 작은 글에서 넘어옴)

대학 졸업하는 마당에 뭐 착한 일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서, 4년간 도서관을 다니면서 혈압올랐던 일들을 정리하여 교지 '관악'에 투고하였다. 이 글만 봐도 서울대가 얼마나 이름만 요란한 웃기지도 않은 대학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슬픈 것은 그나마 서울대 도서관만한 곳도 없다는 사실이긴하다. 99년 1월

1 # 들어가며[ | ]

아마 서울대학교에서 가장 내세울만한 것을 찾아본다면 그것은 '막대한 장서량'을 자랑하는 중앙도서관일 것이다. 대개의 학생들은 도서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 책들이 주는 무언의 압력에 자극받는다. 혹시 외국서 서고에 들어가게 되면 천천히 책이 삭는 냄새를 맡은 뒤 놀고있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보다 먼저 도서관 앞에서 '열씸히' 팩을 차고 있는 이들에게서 숙련자들의 무서움을 먼저 느끼게 되겠지만 말이다.
최초로 도서관에 목적의식을 가지고 들어간다면 아마도 강좌 중에 부과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한 참고도서를 찾으러 갈 때일 것이다. 그리고 놀라게 된다. '아니 어떻게 찾는 책마다 없을 수가 있단말인가?', '왜 있다고 분명히 되어있는데 그 자리를 싹 뒤져도 안나오지?' 그리고 상당수는 도서관에 대해 실망하게 된다. 아직 실망하지 않은 이들도 시간이 갈수록 꾸준히 배신땡기는 도서관에 결국 굴복하고 왠만하면 안오게 된다.
그래도 굴복하지 않고 열씸히 책을 찾아보는 이들이 있다. 역시 지적 호기심이 있는 이들은 다르다. 그러나 복병은 많다. 인기있는 책들은 항상 대출중이다. 뭐, 돈 안들이고 책보려는 학생이 참아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관련도서들이 주위에 적은걸까? 그 이유는 꽤나 나중에 알게되었는데 연극론 책이 문학비평쪽에 들어가있고 상대성이론에 관한 책이 과학총서라는 이유로 해석학 책 옆에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책읽어보려는 사람은 화난다.

2 # 문제점과 개선안[ | ]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한 생각을 번호를 붙여가며 정리해보겠다.

2.1 # 출입구의 바코드[ | ]

대학이란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띠고있는 곳이다. 특히 국립대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공부를 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대학도서관이 개방되어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장려는 못하고 그곳에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다니? 가뜩이나 학교에 들어오기도 힘들어서 오는 사람도 없는데 그런식으로 차단하는 것은 관료적 편의주의가 낳은 매우 이기적인 발상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현재 운영되고있는 방식은 매우 크게 바뀌어야한다. 즉 현재 독서실의 역할을 하고있는 많은 공간을 구조 변경을 통해서 열람실로 바꾸고 24시간 개방하여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책을 읽을 수 있게끔 하여야한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것은 점진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1850년에 대영박물관 열람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면 '자본(Das Kapital)'은 나올 수 없었다.
편의상 책을 대출하는 곳을 도서관, 공부할 수 있도록 자리가 있는 곳을 독서실, 책을 대출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곳을 열람실이라고 부르겠다.
독서실의 바코드 논의가 있을 때 상당수의 학생들이 찬성한 것으로 알고있다. 아마 그들 중 대부분은 시험기간에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고시생이 너무 많아서 시험공부 할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신경질이 났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원칙을 저버리면 안된다. 고시공부를 하려고 독서실에 진치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 바로 우리학교 학생이다. 그리고 과연 당신은 장시간 자리비울 때 독서실에 메모를 남기거나 자리를 비워주었는가? 아니면 평소에도 고시생 이상으로 독서실에서 항상 공부해왔는가? 바코드를 설치했다고 해서 시험기간에 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증을 분실했거나 집에 놓고 온 사람이 독서실에 못들어가는, 바로 당신이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한다.
도서대출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학생증이 없는 사람들은 책을 빌려갈 수도 없다. 그런데도 기존의 바코드 시스템이 못미더워 가방보관소까지 만든 것은 학생을 우롱하는 매우 모욕적인 처사였다. 그것에 조직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그러한 행위를 하는것은 바로 학교 당국이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짓이다.
출입을 통제하는 바코드 시스템을 운영하고, 학생을 믿지못하여 가방보관소를 만들고, 사람을 두어 그곳을 지키게 하고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더욱 웃기는건 학생 편의를 봐준답시고 가방보관소에 책을 반납하는 곳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는 근본적으로 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었을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 할 수는 없는가? 과연 그것이 책이 분실되는 것을 보완하는 것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가? 게다가 이미 도서마다 대출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경보음이 울리는 출구도 있지 않은가.
기우겠지만 혹시 본부에서는 바코드시스템 따위를 설치하는것이 첨단을 달리는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학생들이 (사립대생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많은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것이므로 학교측에서 그에 합당한 교육 서비스를 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학교측과 학생측에서 쌓아온 불신감이 이렇게 답답한 도서관문화를 이루어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 문제만큼은 학생들에게도 동등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2.2 # 도서확충[ | ]

정황적으로 보아 도서구입은 적당히 신간들의 목록을 뽑아 3권정도씩 구매한 뒤에 분류하여 도서관에 배치하는 듯 하다.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모르니만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적어보겠다.
구입도서의 선정과정은 일단 몇명의 교양있는 이들을 선정하여 그들에게 일임하는것이 좋다. 어느정도 분야를 나누어 각 분야에 능하다고 여겨지는 대학원생들을 유급조교로 쓰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대형 서적이나 대형 도매상쪽과 연계하여 정기적으로 신간목록을 뽑고 그중에서 조교들의 재량에 따라 구매도서의 양을 정한다. 학교 주위의 사회과학서적같은 곳에서 도움을 얻는다면 더욱 좋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모든 도서를 구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것이 좋으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책은 한권씩 구매하되 중요하게 생각되는 책이라도 처음에는 세권이상 구매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도서관이 전산화되어있으니 정기적으로 대출횟수를 종합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책들은 더 구매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과정은 전적으로 유급조교들의 재량에 속해있는 일이며 교양있는 서울대학원생이라면 대부분 그정도의 능력은 보유하고도 남는다.
여기서 도서관의 존재 목적을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도서관에 무협지와 통속소설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학생들이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전공서적이나, 화보가 많아 매우 비싸지만 유용한 책들은 없고 무협지와 통속소설이 있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특히 양서의 경우 전공서적은 미화 100달러가 넘는 것이 매우 많다. 비록 부당하긴 하지만 그러한 책들을 보고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제본용으로라도 한권정도는 비치해 놓아야 하는것이 아닌가. 비교적 책을 열씸히보는 친구에 의하면 신청한 대부분의 전공서적이 예산초과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구입 반려된다고 한다. 전공책 구입이 반려된다면 그것은 명백한 예산오용이다.

말나온 김에 논문만 해도 그렇다. 논문은 기본적으로 대출이 불가능하다. 분실되면 확충이 매우 어렵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대출용으로 한 부씩 제본해놓고 대출해주면 되는것이 아닌가. 논문을 몇 부 더 제출하라고 하면 석박사 학위예정자들이 그것을 거부할까? 대출자가 책을 분실하면 제본비 두배 이상의 금액을 벌금으로 받으면 되고. 논문 찾아서 뭔가 조사하려면 논문 열람하는데 10분이상, 복사하려면 정말 수도없이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쨌거나 우리가 당장이라도 도서확충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여기다. 서울대도서관 전산시스템에는 구입희망 도서를 적는 난이 있다. 여기에 적어넣으면 그리 오래지 않아 도서관에 책이 들어온다(국내서의 경우). 물론 그것의 분류작업이 끝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구입희망도서가 도서관에 들어오기만 하면 양해를 구하여 빨리 대여해 볼 수도 있다. 우리모두 원하는 책을 당장 구입희망 도서란에 적어넣자.

2.3 # 도서보완[ | ]

신간구입이 되었다고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에는 이미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 갱지로 이루어진 책장이 다 떨어지거나 색이 바랜 책들이 많다. 세로쓰기로 되어있는 책들도 상당수 있으며 오역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 개역판이 나온 책들도 많다. 그러나 도서관에서는 다 똑같은 책으로 취급되어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 구입신청을 해도 중복신청이라고 거부되며, 신간 중에서도 그러한 책들은 아마도 이미 소장되어있다고 판단되어 구입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고전으로 알려져있는 책 중에 그러한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또 분실되어 목록에는 올라있으나 실제로는 없는 책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것들도 확인하여 채워야한다.
따라서 발행된지 오래된 책들은 개역판이나 근간이 있는가를 확인하여 최신의 책으로 갖추여놓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면, 현재적 의미가 없다면 책을 다시 찍어낼 리가 없다.
최근에 시오노 나나미 열풍이 불어서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본 분이 꽤 많으리라 생각한다. 아마 그중 일부는 다른 권위있는 책을 읽어보고 싶을 것이고 그들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돈이 넉넉하다면 사보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는 국한문 혼용의 세로짜기로 된 61년판 '플루타크 英雄傳'을 읽어야한다.
책장이 떨어지거나, 초창기에 출판되었거나, 분실된 책들 중에는 권위있는 책들이 매우 많이 포함되어있다. 당연한 일이다. 명작을 사람들이 많이 보아 책이 너절해지는 것이고(너절하다고 명작인 것은 물론 아니다), 중요한 책이니 일찌감치 출판된 것이고(역시 일찍 출판되었다고 훌륭한 책은 아니다), 좋은 책이니 사람들이 들고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신간을 확충한 뒤에는 구간들을 따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창고같은 곳에 보관하거나 아니면 아예 폐기처분하여 거품으로 가득 찬 장서량을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 8백 페이지나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신고전주의'는 6권이나 놓여있다. 역시 사람들이 오랜시간 빌려가지 않는 책 중에 여러권이 비치되어있다면 그것들을 빼버리는 것도 �요하다. 간단하다. 대출횟수조사를 이용하면 된다. 가끔 하드디스크를 최적화(optimize)시켜보는 분은 알겠지만 최적화는 시스템이 돌아가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한다. 도서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4 # 도서분류 1[ | ]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가장 개선해야 할 것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대학교의 도서분류체계는 기본적으로 듀이 십진 분류법(DDC; Dewey Decimal Classification)을 따르고있다. Melvil Dewey(1851-1931)가 창안하여 현재 21판까지 개정되어있다. 매우 전형적인 분류법으로 도서를 10가지 큰 항목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다시 세분하여 10가지로 나누고 이런 식으로 계속 나누어 숫자로 코드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극히 서구적인 분류체계인데다 합리성이 결여되어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DDC의 첫번째 범주는 10개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2번째 범주가 종교이다.

200 종교 210 종교철학 및 이론 220 성서 230 기독교 240 기독교윤리
250 지방교회 260 기독교 사회학 및 교화론 270 기독교회사 280 기독교회와 각 교파 290 종교 및 비교종교

불교나 이슬람교는 어디에 있을까.

- 291 비교종교 292 희랍, 로마종교 293 독일종교 294 불교
295 조로아스터교 296 유태교 297 이슬람교, 회교 - 299 기타종교 및 신화
  • 출전 : Mitchell, Joan S. 편저, 김연경 편역, Dewey 십진분류법, 제 21판, p.21, 도서출판 글문, 1997

이 외에도 수많은 편협한 예들이 널려있지만 여기까지 하겠다.(혹시 더 불합리한 내용을 알아보고 싶은 분은 주에서 참고한 문헌을 찾아보길 바란다. 지구과학 부분을 전공이라서 한번 찾아보았는데 그 엉성함이 가히 압권이었다.) 그래서 서울대 도서관에서는 학생수첩 98년판에 'DDC의 한국관련 부분은 서울대 도서관용 수정전개판을 사용한다.'라고 토를 달아놓았다. 하지만 대략의 체계는 DDC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있다. 이것은 주체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 서울대에서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보자.

200 종교 210 자연신학-자연종교 220 성서 230 교리신학 240 실천신학
250 목회학 260 교회-교회론 270 기독교회사 280 기독교회와 각 교파 290 종교 및 비교종교

아마 내가 기독교인이라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불교가 강한 나라기 때문에 불교 서적이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측에서는 290아래로 많은 하부단계를 설정하여 구분을 해 놓았다.
이런 비합리성을 어느정도 개선하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 KDC(Korean Decimal Classification)이다. 십진 분류체계라는 한계는 분명히 안고있으나 그 체계가 어느정도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0 종교 210 비교종교 220 불교 230 기독교 240 도교
250 천도교 260 신도 270 바라문교, 인도교 280 회교(이슬람교) 290 기타 제종교
  • 최정태, 양재한, 도태현 공저, 문헌분류의 이론과 실제, p.300, 부산대 출판부, 1998

KDD에는 다른 많은 분야도 비교적 합리적으로 수정되어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이나 공학은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있고 학문의 분화와 통폐합을 통한 신학문이 쉴새없이 나타나고 있는 반면에 도서관에서는 그 부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 분류체계를 실정에 맞도록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에 서울대는 TEPS라는 독자적인 영어시험을 개발하여 여러 곳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몇몇 전공자와 실무자들의 도움을 얻는다면 독자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도서분류체계를 만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것이다. 그리고 어떤이들은 이러한 일의 중요성을 매우 간과하고 있는데 모든 학문의 가장 기초를 이루는 부분은 분류임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답답한 것은 이러한 체계의 무비판적 적용에 있다.
도서관 국내서 서고에 가면 들어가자마자 상당히 뒤쪽까지 '082 총서'라고 분류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DDC에 의하면 이 부분은 080 총서, 081 아시아어 전집, 081.1 한국어 전집 에 속하는 책들이다. 그러고는 대우 학술총서, 나남신서 등의 시리즈로 나오지만 각각의 연관성이 별로 없는 책들이 단지 '출판사가 같다'는 이유로 한꺼번에 '082 총서'에 속해있는 것이다.
'생명 과학 철학'(데이비드 헐)과 '사랑의 역사'(쥴리아 크리스테바), '과학적 가치관의 우선순위'(로저 스케리)와 '신화와 진실'(쿠르트 휘브너)가 나란히 놓여있다. 이렇게 되면 도서관은 단지 책창고에 불과하다. 물론 책 제목을 알면 검색 시스템을 이용하여 금방 찾아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러한 책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총서쪽에는 사회과학, 미학, 자연과학, 민속학등에 관한 책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곳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문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쩌다가 인도문학을 봐야하게 되어 인도문학 부분을 찾아보았다. 가봤더니 30년전에 출판된 '기딴잘리'하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요즘 소설 이렇게 딱 두권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쩔수 없이 포기했었다. 친구가 인도문학 중에서 '암흑'이라는 작품이 유명하다고 하여 검색해보았더니 있었다. 찾아가보니 그 책은 '오늘의 세계문학'이라는 시리즈에 끼어있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책을 읽고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문학이라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동일 어권으로 구분한 뒤에 작가별로 모아놓는 것이 옳다. 물론 '현대 한국 단편문학 선집'같은 책이라면 책 한권에 여러 작가의 작품이 들어있으니 총서로 구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마 듀이도 이러한 생각으로 운영하라고 코드체계를 만든것이 아니었을까.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지 않는 한 목차를 보고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꽤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왜 머리좋은 대학원생들 써먹을 생각을 안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들을 전공별로 채용한 다음 분류를 시킨다면 누구보다도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것이다. 또 장학금을 주는 효과도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2.5 # 도서분류 2[ | ]

Elrod의 도서분류원칙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문학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첫째로 그 책의 주제를, 둘째로는 형식을 고려해서 분류한다.
  2. 문학의 경우에는 첫째로 저자의 국적, 둘째로 문학의 형식(시, 연극, 소설 등), 다음으로는 그 작품을 쓴 시대를 고려해서 분류한다.
  3. 두개의 주제를 다룬 하나의 책은 어느 한 주제에 치중해서 취급한 경우가 아닌 한 첫번째 주제에 분류한다.
  4. 세개 또는 그 이상의 주제를 다룬 책은 이 모든 주제를 포함한 좀 더 포괄적인 주제에 분류한다.
  5. 상위의 주제가 없는 여러개의 주제를 다룬 책은 총류에 분류한다.
  6. 한 주제가 다른 주제를 수식하고 있는 경우에는 수식을 받는 주제에 분류한다. 예를들어 항공기의 기압에 대한 책은 기압에 분류하지 않고 항공기에 분류한다.
  7. 주제 또는 지리를 위주로 분류할 수 있는 책은 주제에 따라서 분류한다.
  8. 주제 또는 지리로 더 세분할 수 있는 책은 주제로 세분한다.
  9.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에서는 전기를 따로 독립해서 분류하기도 한다. 대학도서관에서는 전기를 피전자와 관련된 주제에 분류하거나 또는 국가에 분류한다.
  10. 경우에 따라서는 분류번호를 정할 때에 저자의 의도나 당 도서관의 이용면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 Elrod, J. McRee 저, 홍순영 편역, 분류연습, p.9-15, 아세아문화사, 1986; 최정태 외, 앞의 책 p218에서 재인용.

읽어보면 참 당연한 말을 써놨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는 이 당연한 것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실례를 들며 당연한 말을 한번 더 하겠다.
1번은 대전제다. 모든 책은 그 책을 읽는 목적과 그 책이 가진 주제에 따라 분류되어야한다. 컴퓨터 책이 총서에 있는것 보다는 공학쪽에 있는 것이 합리적이다. 'C로 만드는 컴퓨터게임 프로그래밍'이라는 책이 문화, 오락에 있어서는 안된다. '영원한 전설 Ultima'라면 몰라도. 심지어 환경지질학(Environmental Geology) 책이 지리학(Geography) 분야에 분류되어있는 것을 보고 정말 허탈했던 기억도 있다.(Keller, Edward A.저, Environmental Geology, 6th edition.)
2번은 1번을 보완한 것으로 문학에 대한 원칙이다. 나는 언어권, 작가별로 나누는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2번 원칙정도면 무난하다. '파우스트'는 독일문학에 있어야지 문학총서에 있어서는 안된다. 여기에 그 책에 대한 비평이나 작가론 같은것도 평론이라고 따로 구분하는 것 보다는 그 작가의 작품들 근처에 놓는 것이 합리적이다. 작품과 평론이 함께있으면 당연히 시너지효과가 발생한다.
3, 4, 5는 별로 강조할 것이 없고 6번이 아주 미묘한 부분이다. 그 책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6번 원칙을 깨기 쉽다. '의 물리학'이라면 비록 티비시리즈의 내용이 상당히 나오지만 그것을 계기로 물리학을 설명하는 책이므로 물리학 총서쪽에 있어야지 영화쪽에 있어서는 곤란하다.
7, 8도 별로 더할 말은 없고 9는 역시 시너지효과를 위해 피전자에 관련된 쪽에 두는 것이 좋다. 허균에 관한 전기라면 홍길동전 옆에, 루소의 전기라면 에밀 옆에 있는것이 바람직하다.
10이야 도서관의 재량을 의미하는 것이니 뭐 좋다. 나는 여기에 서울대학교를 위해 특별히 0번 원칙을 달고싶다. '출판사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임의로 부여한 총서는 단행본으로 취급하여 분류한다.'(최정태 외, 같은책 p226)

3 # 나가며[ | ]

일단 이정도가 이루어진다면 도서관의 상황은 매우 나아질 것이다. 책에 새로 기호를 부여한다는 작업이 얼마나 방대한 작업인가는 이미 잘 알고있다. 한꺼번에 개선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급한대로 총서에 분류된 것들을 재분류한다면 꽤 유용할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이 열려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건의사항을 받아들이고 그 건의사항을 미루기보단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재작년에 순진한 마음에 도서관측에 전자메일로 건의를 한 적이 있다. 연락이 없길래 뭐 그런가보다 하던 차에 6개월만에 답변이 왔다. 개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늦긴 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대답이 와서 나는 세로짜기로 된 도서를 새로 구입해달라고 도서구입요청을 다시했지만 처음처럼 이미 있기때문에 안된다고 처리되었다. 그것을 보고 내가 '뭐 공무원 사회가 다 그렇지.'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나쁜것일까? 물론 논리적으로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IMF한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쩍도 안하는 서울대이다. 학생들이야 취직이 안되어서 총학생회장이 노동부 장관까지 면담하러 갈 정도지만 학교를 운영하는 측에서는 별로 구조조정을 하려는 노력이 안보인다. 종종 '학사 엄정화 방안'이라거나 '학교 운영지침'등을 내어 학생들의 자유를 옥죄려고 하는것을 보면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실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에는 손도 안대고 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학교에서 얼마만큼의 학문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도서관일 것이다. 언제까지 사회 기득권으로 서울대가 오만해져 있을수는 없다. 하루빨리 서울대가 안고있는 허망한 오만감을 버려야 하겠지만 최소한 서울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싶다면 공부하는 학풍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것을 위한 첫걸음은 바로 도서관을 개혁하는 일이다.
이것을 학교측이 이끌어 주리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학생은 없으리라 믿는다. 쟁취하지 않는 한 그냥 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쟁취인가. 하지만 우리 모두 책을 아껴보고, 반납기한을 잘 지키고, 책을 읽는다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어야 비로소 도서관을 개혁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한가지 매우 어려운 문제를 내겠다.
68년 송강출판사에서 간행된 '반공전집'은 과연 어느곳에 분류되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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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로 엮는 반공상식 문답집, 반공투사 이야기, 반공논문 웅변집, 월남전쟁 이야기, 6.25실화집, 반공포로 이야기, 북으로 끌려간 재일교포, 간첩을 막읍시다, 북한실정
  • 정답은 윤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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