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철학 수강소감

도가철학 시험답안
자연과학대학
지질학과(지구시스템 전공이라고 써 있거나 지질해양학과군으로 써 있을 수도 있습니다.)
95319-041 정철

1.
내가 이해하는 노자의 처세원리는 기본적으로 나서지 말라라는 것 같다. 그것은 '하지 않음으로 해서 무엇을 한다.'는 도덕경 전체의 어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예는 비일비재하다.
나는 비교적 내 자신을 잘 드러내는 성격이라 잘 '깨진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을 주저리 주저리 떠들다보면 '와 내가 이런걸 너무나도 모르는구나'하고 내 자신에게 깨지고, 그 부분에 대해서 잘 아는 이가 결정적인 부분을 한마디 던지면 나의 허술한 논리는 무참히 박살난다.
내가 비교적 다른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박한 부분이 있다면 락음악에 대한 것이다. 내가 비교적 잘 알고 있기에 내가 얼마나 더 많이 알아야 하는가도 또한 잘 알고있다. 알면 알수록 더 알게 많아지는 것을 수없이 느껴왔다.
누가 내게 락에 관한 것을 물어왔을때 그가 가려워하는 부분만을 약간 아쉽게 긁어주면 그는 내게 매력을 느끼고 뭔가 더 많이 가르쳐주기를 원한다. 반면 내가 흥에겨워 그가 물어보지도 않은 세세한 것까지 침튀겨가며 가르쳐준다면 그는 오히려 내게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내가 혀가 마르도록 떠들어 댄 부분은 그에게 씨도 안먹히고.
하지만 그 밀고 땡기는 부분을 어디까지 해야 성공할 것인가는 그 어느것도 가르쳐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도덕경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걸 배울 수 있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여자친구를 못사귀었을리가 없다. 무턱대고 잘해주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 할 줄을 모른다.
역시 내가 아직 덜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하지만 말이다.
언제까지 때를 기다리며 앉아있는다면 잘못되어 있는것을 어느 세월에 고칠 수 있단 말인가. 그 때 도덕경에 심취한 사람은 '과연 네가 때를 아느냐?', '그것이 과연 최선의 길이냐?'하는 식으로 미룰지 모르겠다.
하지만 힘을 가진 이들이 정신차리기를 기다리기에 우리는 너무 영악하다.
이미 2-30세기의 역사를 봐 왔다.
때를 기다리면서도 도피하지 않는 인간(좁히자면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항상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寵辱若驚) 밖에는 없다.

2.
도덕경 처음에 '도라 말하면 그 도는 도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것은 도덕경 자체에서 말을 필요 악으로 보는것을 뜻한다. 도덕경은 말 자체로써 도를 이해시키려 하기보다는 말을 통한 비유와 상징으로 도가 무엇인지 전하려 하고있다.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중을 지키느니만 못하다(多言數窮不如守中).'라는 말을 Herrymon Maurer라는 사람은 기가막히게 번역해놓았다.
Many words exhaust truth, and keep silence.
(변정환 역 '道德經'에서 재인용, p15, 경산대출판부)
말을 많이 하면 진실을 흐리게되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 말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더 나아가서는 무언가를 실현하려고 하기전에 무언가를 줄이려는 노력(최적화에 대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 도덕경에 나와있는 말에대한 생각이다. 말은 가장 못한 것이다.
꼭 도덕경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예로부터 전해지는 갖가지 '경'들이 꾸준히 읽히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읽는이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위에서 내 자신이 스스로를 내보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밝혔지만 종종 말을 할때마다 스스로에게 겁이난다. 과연 내가 이 말중에 얼마나 실천할 수 있는지, 말을 하고 그 말대로 실천하지 않는 내 자신을 보면 얼마나 부끄러울지.
노자는 말을 문명과 동격으로 보며 그것 자체가 없는 상태를 가장 좋게 본다고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노자를 현재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그 것을 자신의 삶에 체화시키는 것이 좋다고 이해하는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3.
역시 위의 답안과 연관되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은 감정을 형식에 맞추어 표현하는 행위를 말하며 이것은 논리보다는 직관적으로 호소하는 경향이 강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따라서 그것이 논리적으로는 명확하지 않을지 몰라도 다양한 해석을 용인하고, 생산자나 소비자 혹은 의사소통의 양 주체가 자발적,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부분이 많다.
이러한 특성은 도의 질박함, 자유로움 등과 통하는 바가 있고 이렇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이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도나 예술은 모두 탈윤리적, 탈가치판단적이라는 특징이 있고, '잘'하는 것을 (탐미적으로) 추구한다.
이러한 불확정성이야말로 도와 예술이 서로 통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4.
그동안 꾸준히 느낀 것인데 노자철학은 기본적으로 여유를 가지라는 것을 다양하게 설파하고 있다, 뭔가를 한다는 것(爲)은 반드시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다른것들에 거슬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어떻게 혼탁함을 고요히하여 서서히 맑게 할 수 있을것인가(孰能濁以靜之徐淸)를 생각하는 것이 노자철학이다.
물론 노자철학은 기본적으로 소국과민의 상태가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한 '불가능한' 지향점을 설정해놓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이상에 대한 끊임없는 추동력을 낳게한다. 그러한 추동력을 가지고 먼저 개인이 '혼탁한' 세상속에서 살아가게, 더 나아가 그 '혼탁함'을 '서서히' '고요하게' 하려는 것이다.
현대 문명이 항상 종말을 코앞에 대고있다고 느끼게 되는것은 바로 이 여유가 부족한 상태에서 극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경쟁은 성장의 원동력이지만 여유라는 것을 상실케 하여 결과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할 대로 증가하여 어떤 작용도 일어나지 않는 '열제로'의 아우토반에 올라타게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합리적으로 결합한다면 그것은 정말 이상사회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맑시스트들이 말하는대로 자본이 이 미친듯한 경쟁상태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면-슬프게도 현재까지는 그러하지만-그것은 철학의 부재가 원인이 되어 벌어진 일이다. 그 대안으로 노자의 사상을 제안할 수 있는것이다.




수강 소감
일단 8학기 째에 이런 강의를 만나서 다행이었습니다. 제가 접하기로는 동양철학은 인문과학 전반이 생활속에 녹아있는 그러한 것인데 종종 강의자에 따라 이것 자체를 학술로 삼아 아카데믹한 경향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선생님은 제가 생각하고 있던 그런 강의를 하셨던 거 갈아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선생님께서 계속 강단에 서시게 된다면 사제간의 관계가 어떻게 열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다른 교수님들-특히 자연과학계열-은 너무 권위적이어서 학생들이 다가가기에 너무 겁이 납니다. 사제간의 친구간 농담따먹기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학생이 뭔가 질문할 것을 들고 간다는 것 자체가 꽤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른 교수님들이 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 물론 선생님께는 어떤 질문도 잘 받아주실 듯 하여 기분이 좋습니다.
감의 시간에 느낀거지만 뭐랄까 번역이 엉성한 책들이 많은 것 갈은데 왜 저술은 안하시는 겁니까? 사서도 그렇고 도덕경도 그렇고 오히려 영어본 갈은 경우는 권위적인(authentic)한 번역이 있는것 같던데 우리말에는 그런것이 없는거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김용옥 선생께서 그런 일을 한다고 한권 번역했지만 제가 봐도 좀 아니다 싶더군요. 자신이 천재임을 알리고 싶다면 뭔가 학술적 업적을 남기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제가 두번정도 김선생님 강의를 들었었는데 왕자가 되려면 그정도는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근에 나온 화이트헤드의 이성의 기능 역해 정도가 어느정도 틀을 갖춘 책 같더군요. 선생님의 해석이 다 맘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어색함이나 막힘이 없이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선생님의 역주가 왕필주 만큼의 명성을 얻게될지도.
짬을 내어 다시 사서와 도덕경을 읽고 주역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읽다가 막히면 메일이나 전화로 질문을 드려도 되겠지요? 저는 영화도 좋아하는데 만나서 영화에 대한 의견을 나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태평천국의 문'을 봤을때 선생님을 뵈서 반가웠습니다. 혹시 하이텔을 쓰신다면 go cine 11하셔서 li zepelin해보세요. 제가 영화보고 썼던 촌평들이 있을겁니다. 아주 잡문들이죠...^^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답장 꼭 주세요...부탁부탁.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애너 해피 뉴~ 이어입니다.


98.12.24

제자 정철 올림.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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