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대안공연기

1 # 1998-05-15 대학문화찾기, 연대[ | ]

제 목:[공연]대학문화찾기 공연 다녀와 관련자료:없음 [210] 보낸이:문태준 (taejun ) 1998-05-18 18:00 조회:24


5월 15일 금요일에는 연대에서 하는 대학문화찾기 공연에 갔다왔다. 대학문 화의 올바른 방향제시와 고민을 위한 문화제이며 "인간성 옹호! 다양성의 연 대!"라는 주제하에 몇개의 대학에서 진행되었고 나는 연대에서 진행한 행사에 갔다. 정말로 간만에 공연에 가는 것이었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갔던 것도 무 료이고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유로 공연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의 대학에서는 어떠한 문화공연을 하는지, 공연을 준비하는 측이 말하고 있는 대학문화의 올바른 방향제시가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연대에서 의 행사는 대동제 폐막제와 같이 진행되는 것이었다. 노래세상의 몇분과 같이 참여를 했는데 이강원님과 친구분, 그리고 동호형을 만났고 나중에 김나영님 을 끝나갈때 만났다.

참고로 연대 총학생회에서 나온 팜플렛에는 "지금까지 대동제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이후 일상에 부딪혀나갈 우리의 모습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 는 다짐의 자리"라고 되어 있다. 연세대 풍물패의 신나는 풍물이 있은뒤 폐막 제 오프닝 공연으로는 연세대학교의 힙합댄스그룹이 나와 춤 공연을 했다. 화 려한 조명에서 힙합, 테크노 댄스, 소울 등의 춤 공연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서서히 환호하기 시작했다. 공연이 진행된 곳의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공연 시작을 할 때는 한 500여명 정도?가 있었다. 댄스 공연이 끝나고 메이데이가 처음으로 나왔다. 메이데이의 노래가 시작되자 고등학생 몇명이 나와 헤드뱅 잉, 머리 흔드는 것을 시작했다. 공연이 생각보다 늦게 시작되어 무료하게 앉 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공연장 앞으로 모여 손을 흔들며 분위기에 빠져 들었다. 전선은 있다, 나가서 싸워 등등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 다음은 연 세대 문과대 노래패 시월, 프로젝트 그룹 꿀꽈배기 등이 나와 계속 공연을 했 다. 문과대 노래패 시월은 자작한 곡을 가지고 한 15명정도가 나와서 조용하 게 노래를 불렀고 꿀과배기는 연세대학교안의 락 그룹인것 같았다. 그리 호응 은 없는 듯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공연이 있다면 분위기가 조성이 되고 그 분위기가 계속 고양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연세 대학교의 중앙노래패(맞나)인 울림터가 나와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공연을 했 고 전문 풍물집단인 터울림이 나와 풍물 공연을 했다. (순서는 정확하게 기억 은 나지는 않고 가물가물함. 요즘 머리가 나빠져서)

공연 중간에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장님이 나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강제철거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학생들의 연대투쟁을 호소하였다. 그렇지만 왠 지 중간에 어색하게 끼어놓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10시정도가 되어 꽃다지가 나왔다. 그다지 신명나지도 않고 사람들도 많이 자 리를 비워 그렇게 흥이 나지 않는 공연이었는데 꽃다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 다는 듯 약간은 처져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때는 한 100명 정도 될까. 청호동 할아버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의 노래가 나 왔고 100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열정적으로 꽃다지의 공연과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마지막 노래는 가자! 노동해방으로 정리를 하였다. 왜 이렇게 순서 를 정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꽃다지 공연이 끝나고 인디밴드인 코코어 밴드가 나왔고 나는 여기서 빠져나왔다.

대학문화의 올바른 방향제시와 고민... 인간성 옹호 다양성의 연대... 이런 거창한 말들이 정말로 얼마나 공연속에서 녹아났을까? 전국철거민연합의장님 이 나와 이야기를 하는게 왜 어색하게 느껴졌을까... 그냥 들었던 느낌을 말 하자면 인간성 옹호는 잘 모르겠고 어떠한 방향 제시보다는 말그대로 다양성 을 보는 것, 다양성을 즐기는 것으로 느껴졌다. 다양성의 연대인지는 모르겠 고. 차라리 대학문화의 올바른 제시 인간성 옹호 이런 말을 쓰지 않았으면 이 런 기분이 그나마 덜 느껴졌을 것인데.

그런데 이걸 행사를 준비했던 사람들에 대한 비판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 을 듯하다. 대학문화의 위기라고 말을 하는데 문화가 상품으로 팔려나가고 학 생들이 개인주의적으로 되어간다고 말을 하는데 그렇다면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노동자와 민중에게는 제대로 누릴 수 있고 삶을 풍부하게 하는 문화가 폭넓게 존재할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대학에서만 문화의 위기를 말할 수 없다. 생존권마저 짓밟히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노동자, 민중의 문화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나도 어떠한 뚜렷한 대안을 내세우지는 못 하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하기사 나에게 대안이 있다고 그렇게 하자고 해 서 될 문제도 아니지만. 비록 많은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100여명 정도만 남 아 거의 마지막의 꽃다지 공연을 기다렸는데 꽃다지가 등장하자 열광했던 사 람들, 거기에 열광하던 나의 모습들... 여기서 또한 새로운 희망을, 아직은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이건 나만의 자족적인 모습일까.

97년초 민주노총에서 총파업투쟁을 진행했을때 2월이던가 약간은 쌀쌀한 날 씨에 종묘에서 민중문화제를 했던 적이 있다. 민중가요의 노래패들과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이 나왔다. 투쟁가를 힘차게 부르며 또한 메이데이나 윤도현, 이스크라가 나올때는 팔을 흔들며 머리를 흔들던 사람들.
그냥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고 그때 그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2 # 북한노래 콘서트[ | ]

제 목:[통일민들레] 북한 노래 콘서트 후기 관련자료:없음 [281] 보낸이:박찬규 (korea444) 1999-01-01 00:13 조회:32

[음악] 최초 북한가요 콘서트 후기

[이미선양] 국내 최초 북한가요콘서트 김일성 장군님'도 가슴 섬뜩한 원쑤의 총칼'도 없다.
단오 명절 그네뛰는 꽃과 같이 만난' 애틋한 사랑이 있고 고생 속에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의 정겨움이 있을 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꿈도 못꿨던 북한 가요가 23일 서울 한복판에서 울려퍼졌다.
구의동 테크노마트 1층의 가설무대를 찾은 100여명의 청중들은 앳 된 여자가수의 열창에 매료된 듯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반응이 너무 좋아요. 통일이 되면 남북이 가슴으로도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섯곡을 내리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온 이미선양(23)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연신 싱글벙글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지 않는 북한 가요 콘서트.
공연기획사 CMA가 마련한 공연으로 그녀는 합법적으로 북한 가요를 부른 첫 여성가수인 셈이다.
당국의 허가를 받고 공개된 북한 가요는 모두 13곡.
선동적이고 호전적인 노랫말은 단 한줄도 없고 북한 노래 특유의 높은 음도 없는, 60~70년대 한국의 포크송처럼 친숙한 느낌을 준다.
`곱게 피어난 꽃들 많아도/ 서리꽃이 나는 좋아/ 나는 사랑해 하얀 서리꽃'(하얀 서리꽃).
`친구여/ 고향냇가에 우정만 남기고 헤어졌다면/ 언제나 변치 않는 우리의 우정/친구와 나의 우정의 노래/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친구).
이 노래들은 최근 북한에서 불려지는 대중가요로 지난 4월부터 탈 북자와중국 연변의 조선족들로부터 채록해 국내 작곡가 5명이 악보를 완 성했다.
"노래를 제의받고는 당황했지요.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북한 노래를 부르겠어요. 그런데 가사가 너무 서정적이더라구요." 이양은 안양 대학교 신학과에 다니는 가스펠 가수로 찬송가 음반을 준비하던 지난 10 월 음색이 맑고 낙랑한 덕에 북한 가요와 인연을 맺었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우리 어머니'를 부를 때는 내용이 너무나 애 틋해 눈물도 흘렸다는 그녀는 리듬은 어렵지 않게 익혔지만 감정 전달은 아직까지 불만스럽다고.
그러나 그녀의 진짜 걱정은 다른데 있다.
북한과의 저작권 문제가 남아있고 정부의 음반제작 허가도 미지수 여서 자칫하면 이번 콘서트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단다.
"실향민들이 불러주면 어디든 가겠어요. 그 분들에게 노래로서 고 향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봉사거든요.".
--------- GO SG155 통일노래모임[통일민들레]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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