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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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The Last of England
대영제국의 몰락, 잉글랜드의 몰락, 잉글랜드의 마지막
  • 영국의 1987년 영화
  • 감독: 데릭 저먼(Derek Jarman)
  • 출연: 게이 게이노어, 매튜 호킨스
  • 장르: 드라마
  • 상영시간: 87분

 

2 # Sonimage[ | ]

The Last of England Soundtrack and Diamanda Galas 1986년에 완성된 데릭 저만의 는 원래 파졸리니가 만들기로 되어있던 영화였다. 데릭 저만 최초의 35미리 영화였고 그의 영화로서는 드물게 비교적 관례적인 내러티브를 차용한 이후, 데릭 저만은 다시 수퍼 8미리 카메라로 돌아간다. 파졸리니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화를 기획하였으며, 파졸리니를 위대한 시네아스트이자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로 생각했던 데릭 저만은 <잉글랜드의 몰락>에서 파졸리니의 의 장면들을 인용한다. 붉은 조명 속에서 검은 두건을 쓴 인물들이 내달리는 장면은 파졸리니에 대한 기억으로 넘쳐난다. 그는 파졸리니에게서 모범을 보았으며 쓰라린 시대의 상처를 내보이는 용기를 보았다. 데릭 저만은 원래는 ‘사멸한 바다’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잉글랜드의 몰락> 촬영 도중, HIV 양성판정을 받았고, 에이즈 시대의 예술가로서 살아가야할 자신과 시대에 대한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 될 묵시록을 완성시킨다.

1994년 콜린 맥케이브는 데릭 저만의 부고 기사에서 이 영화가 데릭 저만의 삶과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소였던 성적 정체성의 문제와 국가적 정체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데릭 저만이 그토록 사랑했으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인하고 억압하는 조국인 영국이 결국에는 몰락해가는 과정을 이 영화에서 그렸다고 보았다. 이 영화를 만들기 직전에 데릭 저만은 영국의 밴드 스미스의 뮤직 비디오를 두편 제작하게 되는데, 이 밴드의 리더였던 모리씨의 대처 시대의 잉글랜드에 대한 조소와 펑크를 결합시킨 기이한 낭만주의적 경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제작하였다고 한다. 또한 수퍼 8미리로 촬영한 스미스의 뮤직 비디오에서 데릭 저만은 프레임 촬영 기법인 픽실레이션을 통해 분절된 화면을 선보이면서 <천사들의 대화>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슬로우모션 촬영을 대체한다. <잉글랜드의 몰락>의 화면들은 픽실레이션을 통해 프레임 사이로 빠져나가는 인물들과 절망의 땅, 폐허로 남은 거리들을 보여주며 영국의 주변부를 장악한 피로와 죽음, 비탄을 호소한다.

신세계를 향해 떠나며 멀어지는 조국을 응시하는 이민자들을 그린 라파엘 전파 화가 포드 매독스 브라운의 그림에서 제목을 가져온 <잉글랜드의 몰락>은 데릭 저만의 가장 통렬한 이미저리가 날 것 그대로 드러남으로써 의 우화와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작품이 되었다. 까라바지오의 ‘세속적인 사랑’이라는 그림에 성적인 욕망을 느끼며 자위하는 인물 스프링(그 성적인 욕망은 그림에 대한 파괴행위를 동반하는데 이것은 마치 바로 직전의 작품이었던 에 대한 내밀한 부정처럼 보였다),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 위에서 성행위를 벌이는 병사와 청년, 버려진 공장지대에서 횃불을 높이 쳐든 젊은이, 마치 고야의 그림에서처럼 총살을 당하는 청년, 포클랜드 전쟁을 보도하는 신문지에 싸여있는 아기 등이 보이고, 영국 국민들이 제2의 국가로 생각할 정도로 좋아하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추어 영국 중산층의 평화로운 한때와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파키스탄 등지의 군대 행진을 병치시킨 화면, 난민, 홈리스들, 부적응자들이 검은 두건을 쓴 병사들의 총부리에 몰려 부두가에 모여앉은 장면 등은 그 어떤 리얼리즘적 서사보다도 시대의 히스테리와 비관적 전망에 가까이 다가간다.

이 영화의 음악은 더 더 등의 팝 밴드에 있다가 데릭 저만의 대부분의 영화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아방가르드 음악인으로 다시 태어난 사이먼 피셔 터너가 맡았다. 나이젤 테리의 나레이션, 보이스-오버와 더불어 이 영화의 음대를 가로지르고 있는 음악들은 사이먼 피셔 터너의, 감독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운드디자인으로 탁월한 구성을 선보이고 있으며, 버쓰데이 파티, 닉 케이브 앤 배드 시즈에서 활동하다가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영화음악인의 길에 들어서서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위한 사운드트랙을 만들기도 했던 배리 애담슨, 포스트-록 씬에서 대부로 추앙받는 뉴욕 씬의 노장 밴드 레드 크레욜라의 마요 톰슨 등이 사운드트랙에 참가하고 있다.

<잉글랜드의 몰락>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틸다 스윈튼을 보게 된다. 버려진 건물에서 행해지면서 제도적인 억압으로 형상화되는 결혼식 장면에서 불안한 신부로 등장하는 틸다 스윈튼은 이내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서 자신의 웨딩드레스를 가위로 찢어내며 세상에 대한 욕설을 퍼붓는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디아만다 갈라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틸다 스윈튼을 대신하여, 혹은 시대의 모든 곤란에 직면한 이들을 대신하여 디아만다 갈라스가 비명을 지른다.

디아만다 갈라스, 에이즈 시대의 대변인이자 운동가, 피아니스트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이며 4옥타브를 오가는 보컬리스트,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살육 행위에 대해 인정과 사과를 촉구하며, 죽은 남편, 형제, 가족의 무덤가에서 그들을 대신하여 복수를 결심하는 그리스 여인들의 전통을 되살리고 있으며, 시편과 레위기, 보들레르와 포우, 아르토, 파졸리니, 파울 첼란을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녀가 가장 좋아하며 『The Divine Punishment』 앨범에 수록된 곡인 시편 88편은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살육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자 같습니다... 주께서 인자하시다는 것이 무덤에서 선포될 수 있겠으며, 주가 성실하시다는 것이 멸망 중에서 선포될 수 있겠습니까...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숨기시나이까..’라는 기도문이다. 혹자는 디아만다 갈라스를 그 어떤 여성 보컬리스트와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차라리 도스토예프스키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산디에고에서 태어난 디아만다 갈라스는 아버지로부터 아르메니아-그리스인들이, 즉 자신의 친지들이 터키군으로부터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동시에 엄격한 그리스 정교의 종교적 전통 하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니스트로 훈련을 받았으며, 샌프란시스코의 드랙 퀸 사회에서 어울리며 친구들이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에이즈로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고, 대학에서는 생물학, 특히 면역학을 공부했다. 80년대 중반에 희곡작가였던 오빠를 에이즈로 잃고 왼손 마디에 ‘우리는 모두 HIV 양성이다’라고 새긴 그녀는 에이즈 시대의 미사곡을 만든다. 액트 업(Act Up)이라는 동성애자와 에이즈 환자 인권단체의 일원으로 격렬한 시위 활동을 벌이기도 했던 그녀가 만든 미사곡은 3부작으로 이루어진 『Masque of the Red Death』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적사병의 가면’에서 제목을 가져오고 내용에서 흑사병에 버금가는 적사병의 공포와 죽음의 풍경을 가져온 이 미사곡의 1부이자 그 첫 번째 앨범은 『The Divine Punishment』이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역병 미사(Plague Mass)’를 집행하는데(그녀는 살아남은 자를 위한 레퀴엠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원한과 목소리를 대신하는 미사를 집행한다) 1부에서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너희들에게 합당한 천형이다’라고 조소하는 억압하는 자의 신이 격리를 명하는 레위기로 시작하여, 억압받는 자를 대신하는 목소리로 변하여 시편의 기도를 노래한다, 혹은 무덤 속으로부터 퍼져나오는 비명을 지른다. 2부인 두 번째 앨범 『Saint of The Pit』는 비탄의 애가를 부르며 동시에 복수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친다. 3부인 『You Must Be Certain of The Devil』에서는 애초에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음악이었던 가스펠을 가져오며 록큰롤적인 요소도 차용하여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탄인 억압하는 자들을 겨냥한다.

 

<잉글랜드의 몰락>에서 들을 수 있는 곡은 『Saint of The Pit』에 수록된 두 곡이다. 게이 커뮤니티의 강력한 수호자로서 우리 시대의 적사병인 에이즈가 불러들인 무시와 편견을 질타하며 에이즈가 물러날 그때까지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디아만다 갈라스는 데릭 저만의 음울한 비전인 <잉글랜드의 몰락>에 더없이 합당한 동조자이다. 적사병 미사 외에도 그녀의 작품으로는 『Malediction and Prayer』, 『Vena Cava』 등이 있으며 최근 1914년에서 1923년에 걸쳐 아르메니아, 아시리아,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인에 행해진 대량학살에 대한 터키와 미군의 부인을 비난하며, 인간에 의해 인간에게 행해진 야만을 폭로하며, 죽은자들을 대신하여 노래하는 『Defixiones, Will and Testament』을 발표했다. 레드 제플린 광팬들에게는 존 폴 존스가 디아만다 갈라스와 만든 『Sporting Life』가 널리 알려졌으며, 올리버 스톤의 <내추럴 본 킬러>에도 그녀의 노래가 실려있다(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곡 「I Put A Spell On You」의 리메이크 버전). 그녀는 서구 팝 문화의 소산 중의 하나인 고딕과는 무관하다. 그 고딕이 포와 보들레르를 의미한다면 유관할 수도 있다. 그녀의 무대를 찾아 감동을 받은 웨스 크레이븐과 클라이브 바커가 자신들의 영화에 그녀의 곡을 쓰기도 했다. 디아만다 갈라스는 에이즈 환자들을 비롯한 시대로부터 좌절당한 인물들을 버리고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미사를 집전하며 일렉트로닉 시대의 마이크로폰 음악의 새로운 전기를 동시에 열어젖히고 있다. 그녀의 음악은 듣기 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망자의 원한이 이 복화술사를 통해 어떻게 울려 퍼지는지, 그 고통의 강도를 감히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 포드 매독스 브라운의 그림 <라스트 오브 잉글랜드>에 대한 또다른 기억이 있는데, 그게 왕립 아카데미 졸업 작품이었는지, 아니면 이 학교의 통상적인 과제 중 하나였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어쨌든 학생들에게 기존 작품을 재해석해서 다시 구성해서 그리라는 과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젊은 날,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의 젊은 천재 데이빗 호크니가 선택해서 재구성했던 작품이 바로 <라스트 오브 잉글랜드>였다. 데이빗 호크니가 인정받기 시작한 계기 중의 하나였던 작품이었다. 데이빗 호크니 버전의 <라스트 오브 잉글랜드>를 그의 전기인지 다큐인지 화집인지 어디에서 봤는데,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아쉽다. 그 작품도 참 대단한데.

그나저나 다시 읽어보는 이 글은 참으로 엉망진창이다. 데릭 저만과 디아만다 갈라스에 대한 그 강렬함을 도무지 표현해낼 길을 찾지 못하고, 그저 압도되어 휘둘리고 있어, 제대로 된 소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진한 글이로다. 맙소사! -- Sonimage 2004-5-2 1:06 am

3 # 촌평[ | ]


대영제국의 몰락을 본 것은 대학다닐때 학교의 영화동아리에서였다. 이것과 비슷한 시기에 '유기체의 신비'라는 영화도 같이 봤는데 나는 두 영화를 보면서 계속 신나게 헤드뱅을 한 기억이 있다. 졸려 미치겠었다 이말이다. 대영제국의 몰락은 알수없는 이미지의 과잉이었고 유기체의 신비는 나와 너무나도 유리된 맥락의 스토리(라는게 있긴 있었나)였다. 지금 보면 어떨까나. 데렉 자먼이 감동받았다는 살로소돔의120일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했던 나는 여전히 졸려할것 같다는게 지금 생각이다. -- 거북이 2004-5-12 12:44 pm

저도 <살로 소돔의 120>을 오래 전에 보았습니다(세어보니, 무려 13년 전이네요). 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옛날에 보았는데도, 그 이미지들 몇 개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비슷한 시기에 오시마 나기사의 <정열의 제국>을 졸면서 보았습니다. 이 작품 역시 지루하기만 하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가 몇 년전에 다시 보았는데, 와닿는 게 있더군요. 그렇지만, 역시 는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파졸리니를 로 다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거북군에게 와 을 추천합니다. 제 친구 중 한명은 <오이디푸스 왕>을 최고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데릭 저만의 <에드워드 2세>와 를 추천합니다. <대영제국의 몰락>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분적으로는 내러티브에 기대면서 만들어낸 영화들입니다. 데릭 저만은 영화에서 사적인 필름과 공적인 표명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그에게 파졸리니가 중요했던 것은 아마 파졸리니가 동성애자로서 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물론 영화사적으로도 파졸리니는 정말 중요한 사람입니다). 오토모 요시히데가 말했듯이 ‘당신의 귀를 단련시켜라’라는 것이 영화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때 학내 영화패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때 데릭 저만의 영화를 상영했었습니다. 제가 처음 보았던 그의 영화는 이었고, 그 당시 맥킨토시 컴퓨터로 힘들게 자막을 넣었던 것이 생각납니다(이건 중간에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자막을 넣어야했던 시절입니다). 처음 보았던 그의 영화가 내러티브와 무관하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와 사운드를 결합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토대를 보여주었을 때(예를 들어,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사주었던 8미리 카메라로 찍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과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의 그 동시적인 험난함, 그리고 암환자도 아니고, 윤리적 가치평가의 대상이 되어버린 에이즈 환자로 생존해야하는 것이 내포하는 지독한 고립의 문제들), 나는 영화가 얼마나 멀리, 다르게 나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당시 영화패의 선배들은 중국 5세대 영화제를 했었지요. 첸 카이게의 초기 영화들에서 선배들은 아마 자신들 세대의 비전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또다른 몫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데릭 저만의 영화는 하나의 도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이미지를 보는 방식 역시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텔레비전이나, 개봉관의 흥행 작품들에 의해 습득된 이미지 안에서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이미지를 꿈꾸는 자들이 있습니다. 음악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데릭 저만의 이미지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못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기 초의 아방가르드는 부분적으로는 지금도 유효한 아방가르드입니다. 또한 수십년이 지난 스톡하우젠 음악이 지금은 구시대 유물이 되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고다르나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 장 마리 스트라웁 등은 현실을 관습적으로 분석하고 표현하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체계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이고, 아마 데릭 저만은 가장 사적인 영역으로 그런 이미지를 가져온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데릭 저만은 영화사에서는 위의 세 사람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미지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반영된 현실이다. -브레히트
이것은 정확한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단순히 하나의 이미지이다. -고다르
고다르는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스승이지만, 데릭 저만을 빼면, 또한 저의 20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써내려간 글이니, 너무 흠잡지 마시고, 그러려니, 해주십시오. 어쨌든 파졸리니와 데릭 저만의 다른 영화들을 봐주세요. 제가 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 Sonimage 2004-5-12 10:22 pm

물론입니다. 전 단지 제게 남아있는 기억들을 써둔 것 뿐이구요. 대영제국의 몰락은 저만의 영화중에서도 특히 급진적인거라고 들었습니다. 그걸로 모든걸 판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
그리고 누님께서 빌려주신다면 꼭 보죠. 그리고 저는 제가 후배에게 책을 사주거나 빌려줄 때는 항상 리포트를 요구하니만큼 보고나면 제 생각을 여기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전 고다르도 잘 와닿지 않습니다. 두개정도 본게 고작이었지만요. 이상하게 프랑스 문화는 저랑 맞는게 별로 없더라구요...신기하게도...-.-
여튼 훈련이 필요한건 사실입니다. Discipline이란 앨범을 그래서 좋아하죠. :)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훈련방법과 내용이 있는 것인데 그것을 찾기는 쉽지 않은것 같아요. -- 거북이 2004-5-12 11:07 pm

4 같이 보기[ | ]

5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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