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
-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 이덕일 지음
- 2004년 출간
- ISBN 8980370369
2 # 거북이의 요약[ | ]
선조-정조대까지를 당쟁으로 정리한 이 책을 읽고 다시 직접 연표를 만들어보면서 정리한 조선 중후기의 시대는 솔직히말해 망국의 시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경사가 조금만 급했으면 벌써 망한 다음 새로운 시대가 열릴 뻔 했지만 망할만 하면 조금 괜찮은 왕이 나타나서 수습 좀 하고 해서 용케 버텨나갔다고밖에 말하기 힘들다. 적절한 타이밍은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 사이가 아닐까나.
하지만 이 상황에서 살아남아 왕조를 이백년이나 이어나갔고 영정조 시대를 맞이한 것 또한 조선이다. 이백년이면 중국에서는 왕조 하나 넘어졌다가 다시 생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다. 그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싶다. 아마도 그것은 성리학의 힘일거 같은데 지금은 뭔지 잘 모르겠다. 왕중에서는 선조와 숙종이 특히 짜증난다. <mysign(거북이,2004-4-19 3:25 am)>
ISBN:897139319X
- 이이와 성혼의 인심도심론을 다룬 책은 찾지 못했다. 내 정보검색 능력이 후져서 못찾는거라고 일단 굳게 믿어보자.
- 성혼이라는 이름을 쳤을 때 검색결과가 0건이라는 사실은 꿈이라고 생각해보자. 더 기가막힌 성혼 검색결과
- 이이를 중심으로 본 이기론 : 민족문화 대백과
- 1568 선조 즉위, 조광조 영의정 추증
- 1574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으로 동서분당
- 이조전랑직은 탄핵이 가능한 삼사의 관원을 추천할 수 있는 직책이며 청요직
- 김효원의 동인쪽은 젊은이들의 명분중시 강경파 소장파적인 성격이 있었음
- 그렇다고 심의겸이나 정철이 속한 서인쪽이 더 부도덕했다고 보긴 어렵고, 단지 정치경력이 많은 인물들이었던 것 뿐임
- 1584 동서대립을 중재하던 이이 사망
- 이이는 김효원과 심의겸을 모두 외직으로 보내거나 양시론을 내놓으며 동서화합을 꾀했지만 오히려 강경한 동인에 의해 공격받음, 동인이 이황쪽의 학설을 지지했고 이이와 이황의 학설이 달랐던 것도 한가지 이유
- 선조, 이이사후 동인들 점차 등용
- 1589 동인 영수 정여립 반란사건 발생, 동인 대거 실각
- 1590 동인 김성일, 일본 침입 없을거라 보고
- 1591 정철, 광해군 세자 책봉 문제로 파직후 위리안치
- 동인, 정철 치죄문제로 남인(온건파)과 북인(강경파)으로 분열
- 1592 임진왜란
- 백성들이 몽진중인 선조를 막고 정철 석방을 읍소
- 의병장을 많이 배출한 북인 집권
- 광해군은 전란중 세자로 책봉되고 분조를 맡아 훌륭하게 조정을 이끎
- 선조, 여전히 광해군을 폐하고 적자이지만 어린 영창대군에게 후사를 물리려고 시도
- 1608 광해군 즉위
- 대북의 도움으로 즉위. 소북 유영경이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다 대북 정인홍이 발각.
- 광해군, 경기도에 대동법 실시, 청과 명 사이에서 균형적 외교감각 구사
- 1624 인조 즉위
- 영창대군 교살과 인목대비 폐서인에 반발한 남인과 서인의 연립 쿠데타, 인조반정으로 즉위
- 명분이 미약한 반정이었으며 이후 서인은 점차 수구세력으로 변질
- 1624 이괄의 난
- 일등공신에 해당하는 이괄이 논공행상에서 밀린 것에 불만을 품고 반란, 이에 서인들은 정치범들을 모두 주살하고 도주
- 1627 정묘호란
- 대북정권의 균형적 외교에 반대했던 친명사대정책의 결과로 발생, 이괄의 잔당이 후금에 넘어가서 고변한 것이 직접적 원인
- 1636 병자호란
- 정묘호란에서 형제국을 맻고 간신히 전란을 피했지만, 명과의 일전을 위해 형제국을 군신국으로 바꾸자고 한 청의 요구를 거부하여 발생, 조선에는 명장 임경업이 있었으나 효과적인 대응 실패
- 1637 삼전도의 치욕, 소현세자 인질로 심양에 잡혀감
- 소현세자는 오삼계가 청에 항복하여 이자성을 토벌하러 가는 것을 보고 대세는 청이라는 확신을 가짐
- 소현세자, 예수회 신부 아담 샬을 만남
- 1645 소현세자, 인조와 친명 사대주의자들에게 독살
- 인조, 세자일가 몰살
- 1649 효종 즉위
- 북벌준비,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 확대
- 김육, 평생을 대동법 확대실시에 힘씀, 대동법은 세제를 쌀로 단순화하여 조세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
- 청나라의 러시아 정벌에 참여, 이를 기회로 군비강화
- 1660 현종 즉위
- 1660 1차 예송논쟁으로 서인집권 남인몰락
- 당시는 예학이 성리학의 주류였으며 예학 논의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요한 일
- 남인과 서인의 공조 완전 분열
- 1666 함경도에 대동법 실시
- 1674 2차 예송논쟁으로 남인집권 서인몰락(갑인환국)
- 남인, 송시열 치죄문제로 청남(강경파), 탁남으로 분열
- 1674 숙종 즉위
- 1677 경상도에 대동법 실시
- 1680 경신환국으로 서인집권 남인몰락
- 남인의 위세가 강하다고 판단된 숙종이 기름 천막 유용 사건을 빌미로 일으킨 환국, 보사공신 책봉
- 1681 이이와 성혼 문묘종사
- 송시열의 수구화에 등돌린 윤증과 젊은 서인들, 이후 소론으로 분열
- 1689 기사환국으로 남인집권 서인몰락
- 남인의 정치적 활용을 우려해 장희빈을 기피했던 서인에게 숙종이 일으킨 환국
- 숙종이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정호했으나 서인 송시열 반발, 송시열 사사, 이이와 성혼 문묘 폐출
- 1694 갑술환국으로 서인집권 남인몰락
- 서인들이 장희빈을 축출하고 민비를 복위시키려 한다는 핑계로 서인들을 도륙하려던 남인들의 전횡을 보고 숙종이 일으킨 환국,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
- 1708 황해도에 대동법 실시
- 1720 경종 즉위
- 소론의 지지로 세자 지위 유지
- 노론, 강제로 왕세제 책봉후 대리청정 주장
- 1720 신축환국으로 소론집권 노론몰락, 임인옥사
- 목호룡의 고변으로 노론 4대신 및 노론 전반 축출
- 1724 영조 즉위
- 1725 탕평책 천명
- 1727 정미환국, 소론집권 노론몰락
- 노론이 신축환국의 보복을 하지 못하게 했는데 계속 보복을 주장하자 소론에 정권 넘김
- 1728 이인좌의 난
- 경종 독살설을 이유로 소론 강경파 이인좌의 거병, 거병전에 탄로남
- 영조는 이것으로 영남권을 배제한다면 그들은 또다시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인재를 두루 쓰려 함.
- 1736 사도세자 책봉
- 1741 임인옥안 불태움
- 노론 완전 신원
- 균역법 실시
- 1759 영조(66) 정순왕후(15)를 계비로 들임
- 1762 사도세자 사사
- 사도세자가 경종과 소론에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영조와 노론이 죽음으로 몰아감
- 노론 사도세자 사사가 정당하다고 주장한 벽파와 시파로 분열
- 1776 정조 즉위
- 규장각, 장용영 설치 후 당색에 물들지 않은 신진 문무인 양성
-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고 자신을 폐위시키려 했던 노론과 홍씨(외가)에 보복
- 홍국영을 등용하고 노론 벽파 몰아냄, 정조 암살 기도
- 1783 이승훈, 연경에서 세례
- 1791 체재공, 신해통공 실시
- 1792 영남만인소로 사도세자 신원과 남인의 부상
- 1800 공노비 해방
- 1800 순조 즉위
- 1801 신유사옥
- 1802 세도정치 시작
3 같이 보기[ | ]
편집자 Jm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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