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
- 다시 듣고싶다…그들의 노래를
- 내달1일 함께 忌日맞는 두 요절가수
- 2003-10-28
- 이승형 기자 lsh@munhwa.co.kr
요즘처럼 스산한 계절이 돌아오면 우리 곁을 떠난 두 남자가 생각난다. 유재하와 김현식. 이들의 기일(忌日)은 똑같이 11월1일이다. 유재하는 87년 스물다섯 청춘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로부터 3년뒤 김현식은 간경화로 서른둘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들이 우리에게 주고 간 것들은 너무나도 많은데, 그래서 이자까지 쳐서 온전히 다 갚고 싶은데, 이들은 벌써 우리들의 기억 저편으로 아련히 사라져 가고 있다.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변변한 추모행사도 없고, 추모기운 또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우리는 이들이 죽어서도 노래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이들은 죽어서 살아있는 우리들의 귓전에서 나지막이 노래 부르고 있다.
- 유작앨범은 자신의 ‘러브스토리’ 그자체
◈ 유재하에 얽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대부분의 사람은 유재하가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이나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정식 멤버로 연주한 걸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스무살때 처음 만나 숨질때까지 5년동안 거의 매일 함께 술을 마시며 음악 작업을 했던 대학 선배 한봉근(46) MBC 수요예술무대 PD는 “콘서트때나 녹음 때 한두번 세션으로 도와줬을 뿐이지 정식 멤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유재하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87년 3월 발매)는 서울 이촌동 서울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이 앨범의 제작비는 800만원이었다. 제작비가 적었던 이유는 유재하가 세션을 쓰지 않고 드럼과 베이스를 제외한 모든 악기를 스스로 연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인이었기 때문에 눈치보느라 연주나 노래가 마음에 안 들어도 다시 녹음하지 못하고 대부분 한두번에 녹음됐다. 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유재하가 당시 사랑했던 한 여인과의 러브 스토리 그 자체였다. 그녀를 쫓아다닐 무렵 ‘그대 내품에’를, 사랑이 맺어진 순간 ‘사랑하기 때문에’를, 사랑이 진행될 즈음 ‘그대와 영원히’를…. 앨범속 플루트 소리는 모두 그 여인의 연주였다.
이문세가 부르기도 했던 ‘그대와 영원히’의 경우 당시 심의에서 문제가 됐다. 가사 내용중 ‘붉은 바다’가 마치 빨갱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푸른 바다’로 고치라는 걸 눈물로 호소해서 가까스로 막았다. 87년 봄 드디어 앨범이 나왔고 유재하는 MBC 방송 심의를 위해 PD들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퇴짜를 맞았다. 거의 모든 노래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정박자가 아닌 엇박자로 시작되는데 PD들은 이를 듣고 그를 박자도 못맞추는 가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KBS의 ‘젊음의 행진’에서 딱한번 ‘지난날’을 부른 게 유재하의 유일한 TV 출연이었다.
사실 유재하의 앨범은 대중을 의식해 멜로디를 쉽게 만든 앨범이었다. 그럼에도 막상 연주를 하려면 전조와 변주가 심해서 연주하기가 어렵다. 제13회 유재하가요제 입상자인 동덕여대 공연예술대학원 실용음악과 유승혜(여·23)씨는 “실험적인 곡들이지만 사람들에게 쉽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는 게 놀랍다”며 “우리같은 가수 지망생들에게 그분의 음악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의 유재하 무덤 앞에는 노래 ‘사랑하기 때문에’의 악보 조각상이 있다. 사소한 얘기지만 그 악보중 2개 음표가 틀렸다. 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그의 묘비에 국화 한송이를 놓으러 가는 것은 어떨지.
- 간경화 투병중에도 예정된 무대 ‘열창’
◈ 김현식에 관한, 대부분 다 아는 이야기들〓유재하와 마찬가지로 김현식의 마지막 앨범도 그가 죽고 나서 500만장 이상이 팔렸다. 김현식 하면 먼저 걸걸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우연이지만 그와 비슷한 톤의 목소리를 가진 전인권은 그의 초등학교 2년 선배다.
김현식이 들려준, 토해내는 듯한, 지극히 인간적인 창법은 부드러운 발라드 일색이었던 당시에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블루스와 솔 창법을 한국적인 소리로 탈바꿈시킨 이 창법은 후배 가수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불행히도 아직 우리는 ‘제2의 김현식’이라 할만한 가수를 갖지 못했다. 많은 뮤지션과 인연을 맺었던 그는 생전에 유재하와도 두터운 친분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가 유재하의 곡 ‘가리워진 길’을 유재하보다 먼저 부른 건 널리 알려진 사실. 물론 둘 사이에 돈 거래 따위는 없었다. 후배였던 유재하에게 단지 전화 한 통 걸어 동의를 구했을 뿐. 요절한 천재들이 그렇듯 그는 반항기 가득한 고집쟁이였다. 그가 고교를 중퇴한 이유도 밴드부에서 선배들 몰래 트럼펫을 불다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음악에 왠지 모를 냉소와 허무가 배어있는 건 그의 이런 기질과도 관계가 있다. 그래서 그는 죽는 순간까지 노래를 불렀다. 간경화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예정돼 있던 공연을 하기 위해 병원을 몰래 빠져나갔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공연을 지켜봤던 그의 팬 이현애(여·54)씨는 “무대 위에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던 그를 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연이 끝난 뒤 다시 병원으로 실려갔다. 김현식이 생전에 가장 애착을 가졌던 노래는 ‘비처럼 음악처럼’이나 ‘내사랑 내곁에’나 ‘사랑했어요’가 아닌, 80년 데뷔앨범에 실린 ‘당신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경기도 분당 남서울공원묘지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이 노래 가사가 적힌 노래비가 쓸쓸히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