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롤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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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364번 제 목:[아트록잡지] 2호 NEW TROLLS 올린이:boryking(정용상 ) 97/02/25 16:07 읽음:244 E[7m관련자료 있음(TL)E[0m

아트록 매거진 2호 이탈리아 슈퍼그룹 특집에서는 너무나도 사랑받는 그룹 NEW TROLLS입니다.. 위에 제목에서 S자를 빼먹었더 군요..TROLL은 요정이라고 하는 군요.. 그리고 다시한변 밝히면 이글은 계간잡지 대중예술음악 ART ROCK에 실린글을 아무런 사전 허락 없이 퍼 올린겁니다..보고 싶어하는 분은 많은데 이미 절판이라 ..양해하시길......

  • 서두

NEW TROLLS 새벽 1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시계의 초침이 보통때와는 달리 늦장을 부리며 천천히 가고 있었다. 마치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 분침처럼 움직임이 전혀 없어 보인다. 아니 출발점으로 거꾸로 되돌아 가버릴지도 모른다. 고장난 시계처럼. 흥분된 상태에서 전화번호를 누르던 몇시간 전의 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국내 모 무역회사가 New Trolls의 [Concerto Grosso Per 1]의 라이센스 음반을 곧 출반한다는 깜짝 놀랄만한 News를 접하고 나서, 이 앨범의 주배급 회사인 이태리의 Fonit Cetra에 전화를 걸었다. 그당시, 필자의 회사는 Fonit Cetra의 CD를 수입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라이센스 문제를 협의 중이었으나,그들에게 라이센스 권리가 없음을 담당자로 부터 여러차례 확인한 바 있었기에 이 소식은 너무나 뜻밖의 것이었다. 드디어 새벽 1시. 이 시각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철 모르던 학창시절, 전파를 통해 음악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던 시간, 그러나 이 시각에 또다른 긴장감이 엄습해왔다. 낮설은 전화번호를 13개나 누룬후 해외 담당자인 Dante Notti의 부하직원인 Stella Cristelli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 부서가 아닌 Art Department의 착오로 비롯된 그들의 실수라고 변명을 늘어 놓는다. 몇 시간을 기다린후의 전화 통화였지만 Dante Notti와는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때까지도 부재중이었다.

[Concerto Grosso Per 1]은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 음반이다. 나의 귀를 열리게 해주었던 작품이며, Italian Rock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던 작품이며, 또한 수집해왔던 앨범중에서도 가장 아끼던 앨범이었다. 물론, 국내 FM매체를 통해 최초로 소개된 Italian Rock작품중의 하나이다. 1982년 여름 Underground Best 7이라는 "음악이 흐르는 밤에" 코너의 시그널로 [Allegro]이 사용되었고 [Adagio(Shadows)]과 [Cadenza-Andante Con Moto]그리고 [Nella Sala Vuota]은 당시 청취자들에게 무척 사랑을 받았던 애청곡들이었다. 국내앨범으로도 이 조그만 손으로 꼭 소개하고픈 욕심이 강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밀라노에서 이태리 Virgin레코드사와 희귀음반 전문 레코드숍인 Vinyl Magic을 다녀온 후 나는 잠을 제대로 청할 수가 없었다. Vinyl Magic에서 느꼈던 이태리인들의 사악한 모습들과 기분 나쁜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내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기때문이다. 또한, 내일 찾아가게 될 Fonit Cetra사에 대한 이상한 두려움... 아무 것도 실현되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막상 택시에 앉아 종이에 적힌 주소와 창밖을 교대로 쳐다 보았을때, 포기하고 곧장 밀라노 공항으로 향할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뒤 택시는 커다란 담으로 둘러쌓인 이상한 공장 앞에서 멈추었다. 내리자마자 높은 빌딩을 찾아 보았으나 그곳엔 내가 생각했었던 크고 멋진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건물들은 낡고 지저분해 보였고, 손에 든 종이 쪽지위의 번지 수와 일치하는 건물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주위를 살피다가 드디어 발견한 곳은, 건물에 비해 너무나 작은 문을 갖고 있는 허름한 공장이었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태리 국영 레코드회사인 Fonit Cetra가 이렇게 아파트 문처럼 좁은 문을 가지고 있다니. 나는 혀를 차면서 벨을 눌렀다.

나의 방문을 전화로 미리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Dante Notti는 그의 자리에 없었다. Stella Cristelli는 동료사원과 잡담을 하면서 나에게 카다로그를 건네 주었고 그것을 보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의 행방을 전화로 찾고 있던 그녀는 또다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내가 로마행 비행기를 타려면 1시간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카다로그를 막 덮으려고 하는 순간, 60이 넘어 보이는 노신사가 유창한 영어로 인삿말을 건네왔다. 나는 서투른 이태리어로 그에게 인사를 보냈는데 그는 나의 뜻밖의 이태리어 인사말에 무척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바로 Dante Notti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New Trolls의 [Concerto Gross Per 1]앨범에 대한 나의 질문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모든 것이 실수로 이루어졌으며 그 앨범에 대한 권리는 모두 New Trolls의 리더인 Vittorio De Scalzi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 후, Vittorio De Scalzi의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그 몇개월후 일본에서 들은 이 앨범의 국내발매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내용이었다. 일본 친구의 이야기가 옳든 Dante Notti의 이야기가 진실이든 간에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하여 흥분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어떠한 형태로든지 국내시장에 New Trolls의 앨범이 소개되어서 기쁘다. 이제는 방송뿐만 아니라 커피숍이나 길거리에서도 그들의 [Adagio]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제 이 앨범은 낯설은 Italian Progressive Rock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너무나 친숙해진 Itali-an Pop이 되었다. 그러나, 몇년 후 이 앨범을 원형 그대로 재현시킨 국내앨범을 재발매 하리라 굳게 다짐해 본다. New Trolls의 기사를 써내려가기에 앞서서 나의 변변치 못한 뮤직비지네스에 관한 이야기. 가장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던 부분에 대한 넋두리를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 NEW TROLLS의 소사

이태리에서 우연한 기회에 탄생된 그룹이 있다면 확실히 New Trolls의 경우일 것이다. 1966년, 한 음악비평가가 제노바의 한 신문지상을 통해 그 해에 발표되었던 백여개의 작품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선정하면서 이와 더불어 가장 이상적인 그룹의 결성을 대중들에게 알린다. 그 그룹의 결성멤버들은 Vittorio De Scalzi(1949년 11월 4일 Genova태생, 기타), Giorgio D'Adamo(베이스), Nico Di Palo(1947년 12월 4일 Genova태생, 기타, 보컬), Mauro Chiarugi(건반), Gianni Belleno(1949년 2월 17일Genova태생, 드럼)등이었다. 이들은 New Trolls라는 독특한 그룹명을 내걸고 같은해에 제노바에서 데뷔한다.

1967년, 실력과 장래성을 인정받은 New Trolls는 Rolling Stones의 이태리 순회공연에 오프닝밴드로 참여할 기회를 부여 받는다(여기에 지금까지 감추어져 왔었던 New Trolls에 대한 일화가 있다. 지금까지 행운의 그룹으로만 알려져 왔었던 그 유명한 Rolling Stones와의 초창기 New Trolls와의 순회공연에는 부정이 있었다. 당시 Rolling Stones와의 순회공연을 위하여 New Trolls는 흥행주에게 몰래 30만리라를 지불해야만 했었던 사건이다. 당시, Rolling Stones는 막무가내였었다. 그들은 무대에 막 오르자마자 고착되어 연주했었고 그들의 드러머는 그때까지 공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즉시, 연주가 멈추어지고 청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그후 그들은 사라졌고 약 20분이 지난후에 그들은 더이상의 박수갈채도 없는 가운데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당시, 무명 그룹이었던 New Trolls는 당시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Rolling Stones의 그늘 아래서 다수의 대중들에게 시선을 받는데 급급했다).

그리고 같은해에 [Sensazioni]라고 제목이 붙은 데뷰 싱글을 취입한다. 이 싱글은 Rieti의 Festival에서 비평가상을 받았다. 그들의 음악은 당시 전유럽을 강타하고 있었던 Jimi Hendrix, Cream, Vanilla Fudge등의 영향을 받아 강한 Rock에 촛점을 맞추고 있었다. 1968년, 그들에게 최초의 성공을 안겨다 주었던 두번째 싱글 [Visioni]이 발표된다. 이 싱글은 당시 이태리에서는 경이적인 2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때부터 New Trolls는 일년동안 약 250여회의 컨서트를 개최하게 된다. Nico Di Palo는 무대위에서 Jimi Hendrix의 트레이드 마크인 치아로 기타줄을 뜯는 장면을 흉내 내기도 했다. 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5명의 요정들은 데뷰앨범 제작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들이 결성될 당시에는 Best계열의 그룹들이 명성을 얻으며 황금기를 맞고 있었지만 그들이 데뷰작을 만들었을때의 상황은 Best계열의 그룹들이 서서히 세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였다.

  • Senza Orario

그들의 데뷰앨범 [Senza Orario,Senza Bandiera(시간표없이, 깃발없이)]은 이태리 Rock역사에 있어서 영원히 기록될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이태리에서 최초로 등장한 첫번째 컨셉트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곡들이 한가지 테마로서 서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태리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으로서의 자질이 엿보이기 시작했던 작품이었다. 가사들은 이태리의 거장 Cantautore(가수겸 작곡가)인 Fabrizio De Andre의 협력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음악은 New Trolls 자신들로 부터 작곡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이태리 그룹들이 외국에서 이미 유명해진 곡들을 이태리어로 번안해서 활동하고 있었던 Best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New Trolls는 자기자신들이 작곡한 곡들과 함께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대대적인 성공과 함께 New Trolls는 7매의 싱글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이로부터 New Trolls는 이태리를 대표하는 최고의 그룹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 New Trolls

1970년 그들의 두번째 앨범이 환상적인 앨범커버와 함께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최근 Fonit Cetra로부터 재발매되기 전까지 가장 희귀한 New Trolls의 앨범으로 알려져 왔는데 사실, 이 앨범은 그들의 성공한 싱글 작품들을 모아서 단순히 [New Trolls]라고 제목을 붙여 발매된 앨범이었다.

1971년은 New Trolls에 있어서 음악적 향상과 변혁이 동시에 이루어졌던 그들의 음악적 황금기였다. 또한, 이태리 그룹의 가능성을 보여준 기간이기도 했다. 제노바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내세우며 그들은 오직 작곡에만 열중했으며 가장 아름다운 싱글들로 평가받고 있는 [Autostrada]과 [Una Storia]을 발표한다. 그 이후 이태리의 요정들은 제1회 Festival d'Avanguardia와 Nuove Tendenze에 참여하기 위하여 이태리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 Viareggio로 향한다. 공연행사 기간동안 New Trolls는 대중들에게 새롭게 그들이 착수한 음악적 변혁-이태리 Progressive Rock의 세계를 선사한다. 사실상 이 공연들을 통하여 이태리 Progressive의 진면목을 New Trolls는 유감없이 보여주었는데, 여기에서 [Concerto Grosso Per 1]에 수록될 몇몇 곡들이 연주되었다.

  • Concerto Grosso

Pianist겸 영화음악 작곡가인 Luis Enriquez Bacalov와 공동 협력으로 탄생된 그들의 세번째 앨범은 이미 국내외에서 시도되었던 록과 고전음악과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음악을 담고 있었다. 이 앨범은 발표 되자마자 80만장이라는 경이로운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이러한 상업적 성공에 고무된 Luis Enriquez Bacalov는 Osanna와 [Milano Calibro 9]을 I1 Rovescio Della Medaglia와 [Contaminazione]을 제작,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New Trolls의 명성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동안 그룹 내에는 첫번째 갈등이 시작되었다. Giorgio D'Adamo가 1972년에 그룹을 떠났고 그의 후임으로 Frank Laugelli로 대치되었고 Mauro Chiarugi는 군복무로 인하여 그룹을 등져야만 했다. 1972년에 더블 앨범인 [Searching For A Land]이 발매되었을때 그룹 내부의 분열이 더욱 깊어가기만 했다. 이 앨범은 세계시장을 겨냥, 영어가사로 부르고 있으나 대중들로부터는 커다란 호응을 얻지 못했다. 계속해서 발표된 앨범 [UT]에는 키보드 주자로 Maurizio Salvi가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앨범 [UT]은 그룹을 두개의 부분으로 갈라지게 했다. 실제로 이 앨범은 하드록에 가까운 곡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룹을 포기한 Vittorio De Scalzi가 앨범커버의 마지막 멤버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사실상 그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앨범은 제작되었다.

  • 분열

New Trolls에 있어서 1973년은 분열의 해이다. 이때부터 1975년까지 극소수의 멤버들만이 New Trolls에 의해 파생되는 여러가지 그룹들의 형성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멤버들이 주장하고 있는 분열원인(구성원들 자신의 입장에 의하면)은 그들사이에는 5개의 각기 다른 음악적인 이상,정치적 이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Vittorio De Scalzi는 Magma-Grog라는 레코드회사를 만들었고, New Trolls라는 그룹명아래 [Una notte Sul Monte Calvo]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부터 각 멤버들간에 New Trolls라는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놓고 법적투쟁까지 벌인다. 그 결과는 멤버 5명 모두, 그 아무도 New Trolls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으로 판결났다.

그러는 동안 Vittorio De Scalzi는 Giorgio D'Adamo를 새로운 그룹에 영입시켰고 그룹 이름을 "N. T. Atomic System"에서 "New Trolls Atomic System"으로 수정할 수 있었다. 이때 Gianni Belleno는 Nico Di Palo와 함께 Tritons라는 그룹명으로 Rolling Stones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이태리 감각에 맞게 번안시킨 싱글 [I Can't Get No Satisfaction/Drifter]을 발표했다. 그후 Nico Di Palo와 Gianni Belleno는 Fonit Cetra로 부터 [Nico, Gianni, Frank, Maurizio]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그러나 [Ibis]이 되는 바로 그 시기에 Gianni Belleno는 Johnny dei Tritons라는 가명아래 솔로경력을 쌓기위해 독립해버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Belleno는 Vittorio De Scalzi의 Magma에 문을 두드리고 앨범을 발표한 후 New Trolls의 새로운 재결합의 첫번째 멤버로 참가한다.

  • 재결합

1975년, Nico Di Palo가 그룹으로 되돌아오고 Nuova Idea의 전 리더인 Ricky Belloni까지 가담하면서 New Trolls라는 그룹은 다시 형성된다. 이 사실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룹은 Magma레코드를 통하여 앨범 [Concerto Grosso n. 2]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New Trolls가 재결성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가치있는 것이었지만 [. Per. 1]에 비해서 낮은 수준의 작품이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Let It Be Me]을 [. Per. 1]의 [Shadows]과 견주어 볼때 New Trolls가 Hendrix로부터 벗어나 Bee Bees에 접근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 이듬해에 발표된 앨범 [Aldebaran]역시 이러한 상업적 성향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2년후에 발표된 그룹동명의 타이틀을 지닌 앨범은 외국 특히, 스페인에서 판매고에 있어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룹의 옛 팬들로부터 New Trolls는 점차적으로 멀어져 간다. 이 앨범안에서 Nuova Usai가 그룹을 등지고 후임으로 기타리스트 Ricky Belloni가 가입하며 Nico Di Palo가 베이스파트에 주력하게 된다.

  • 몰락

같은해에 그룹은 새로운 컨셉트 앨범 [FS]을 발표했다. 1981년부터 1988년에 발표된 최근의 앨범 [Amici]에 이르는 기간동안 New Trolls는 라이브 무대에서만 존재했었다. 물론, 1983년 발표된 [America O. K.]이 그 사이에 존재한다. 오랜 침묵을 깨고 등장한 [Amici]은 Vittorio-Nico-Gianni트리오 형성-오래된 친구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평범한 앨범이었다. 나이를 속일 수 없는 중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앨범이었다.

  • 평가

New Trolls는 Italian Rock이 정착되는데 가장 커다란 업적을 남긴 그룹이다. 그들의 공헌은 그들의 음악 하나하나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것들을 일일이 나열하고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역시, 특집 "Super Groups 30"에서도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정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New Trolls의 소사라는 부분에서 스치고 지나갔었던 이야기들을 이하 지면에서 여러 인터뷰 자료들을 정리하여 보충하도록 하겠고 그 외의 이야기들은 앞으로 Art Rock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소개되리라 믿는다.

최근, Vittorio De Scalzi의 부친이 사망했다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의 부친 명의로 되어 있었던 Magma-Grog 레코드사가 그의 명의로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겠으나 그의 심적고통도 멀리서 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2 두번째[ | ]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365번 제 목:[아트록잡지] 2권 NEW TROLLS(2) 올린이:boryking(정용상 ) 97/02/25 16:14 읽음:169 E[7m관련자료 있음(TL)E[0m 새로운 요정들 NEW TROLLS!

  • ITALIAN ROCK의 산 역사 NEW TROLLS

New Trolls라는 이름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아직까지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본국인 이태리 뿐만 아니라 이 먼곳 한국이라는 땅에서까지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에 집필되고 있는 음악서적들 속에서도, 독자들의 앙케이트속에서도 그들의 이름들이 자주 발견된다. 또한, 최근에 읽을 기회를 가졌던 대단히 흥미로운 책 'Note di Pop Italiano'에서 New Trolls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을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New Trolls는 소위 말하는 Best그룹들, Equipe 84, I Rokes등이 전성기를 누렸던 1960년대와 Premiata Forneria Marconi, Banco del Mutuo Soccorso등이 황금기를 누리던 1970년대 사이에서 두개의 부류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마치, 영국의 Moody Blues와 같은 역할을 해내었던 이태리 그룹이다.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Moody Blues는 Beatles와 King Crimson의 사이에 존재했었다.

Moody Blues가 영국 최초의 Progressive Rock 그룹으로 인정을 받았다면 New Trolls는 틀림없이 최초의 이태리 Progressive Rock그룹이었다. Moody Blues가 최초의 Concept앨범 [Days of Future Passed]을 내놓아 이분야의 효시적인 그룹이 되었다면 New Trolls는 데뷰작 [Senza Orario, Senza Bandiera]을 통하여 이태리 최초의 컨셉트 앨범을 만든 그룹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역사적 그룹이 되었다. New Trolls는 적어도 15번 이상의 멤버교체와 함께 많은 음악적 전환기를 맞았다. Italian Rock을 정립했으며, 이태리 최초로 Classic을 Rock에 도입했고 또한 Jazz를 Rock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태리 그룹중에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와 인기를 누렸고 매너리즘에 빠져들면서 그들의 옛 팬들을 잃어버리고 방황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명력이 짧았었던 다른 이태리 그룹들과는 달리 1960년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까지 오랜 생명력을 지녀왔었던 장수 그룹으로서 이태리 Rock역사의 거대한 줄기를 형성하며 음악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그들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Italian Rock = New Trolls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이 걸어온 길이 바로 Italian Rock의 산 역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NEW TROLLS의 결성

리더인 Vittorio De Scalzi는 소년시절(11세때 부터 라고 말한다)부터 음악적 기초를 닦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소년일때부터 그는 두가지 일에 커다란 정열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었다. 일류의 연주자가 되느냐 아니면 수의사가 되느냐의 갈림길이 있었다. 그는 두개의 길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고 결국, 음악의 길을 택한다. 5년동안 Classic Guitar를 공부했고, 그후 2년동안 Piano연주를 배웠다.

예술가족속에서 자라난 Nico Di Palo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음악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미국등지로 연주여행을 떠나는 아버지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며 연주를 했다. 많은 객지생활 때문인지 그는 같은 또래의 어린이들에 비해 무척 비범한 어린아이였다. 소년시절 약 5년동안 Piano를 공부했고, 이태리에 Beatles가 상륙했을 때부터 기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집에 머무를때면 이웃의 항의가 빗발쳤다; "내 가족의 강력한 항의, 특히 이웃집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렸을때부터 드럼을 통해 감정을 폭발시켰다"라고 그는 회고한다. 성장한 후 그는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그후 취미로만 머물러 있었던 연주를 직업으로 선택하기에 이르른다. 그는 제노바의 지역신문을 통해서 Vittorio De Scalzi와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이로부터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연주기법을 터득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Nico, 그는 라이브 무대에서 관중들을 매혹시키는 특별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New Trolls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도 그에게 그러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기타연주와 보컬은 세계적인 실력자로 알려져 왔다. 드러머 Gianni Belleno나 베이스 기타의 Giorgio D'Adamo는 "여름이 되면 해변가에서 아주 적은 돈을 벌기위해 연주를 했다. 또한, 음반을 팔기 위하여 우리는 팬들의 신입회원을 모집하고 우리 자신을 홍보하는데 주력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건반의 Mauro Chiarugi등도 위와 같은 성장 과정을 거쳐 New Trolls에 합류하게 된다.

"우리는 우연히 결성되었다"라고 Nico Di Palo는 말한다. "이상적인 밴드의 묘사를 시도했던 제노바의 한 작은 신문이 분명히 서로 다른 여러 그룹들중에서 유능한 멤버들만 축출, 하나의 그룹멤버들로 결속시켰다. 우리가 이렇게 시작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과연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아무튼 우리는 하나의 그룹을 결성했다. 오직 그 그룹의 이름만이 결여되어 있었다." 라고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룹명을 정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들에게 그 이름은 결코 어렵지 않아야 하며 특히,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그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쉬우면서도 매력적이고 또한 신비감을 동시에 이끌어 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룹명을 정하는 것은 사람의 이름을 작명하는 것처럼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이야기처럼 그룹명도 그 그룹의 운명을 결정 짓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New Trolls의 결성멤버들 역시 그룹명 때문에 많은 시간을 고민한 것 같다. Nico Di Palo는 그룹명의 설정당시를 이러허게 회상한다. "우리가 환상적이라고 느꼈었던 단어들을 수없이 찾고 헤매이던 끝에 어느날 그룹명으로 환상 'Fantasmi'라는 단어가 좋을 것같다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표정을 살피며 서로의 의견을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 단어 역시 어둡고 무서운 이름이라고 채택되지 않았다. 그후 'Folletti(작은 요정들)'라는 단어가 더 밝고 예쁠 것 같다고 의견이 모아졌고, 오히려 이태리어 보다는 궁금증과 신비감을 덧붙이기 위해, 같은 뜻의 노르웨이어 단어인 Trolls를 그룹명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된 요정들이 아니라 프로음악계에 첫발을 내딪는 새로운 요정들, 갓 태어난 요정들의 의미로서 New라는 단어를 앞에 첨가 시켰다". 그들의 그룹명은 신중하게 검토 되어졌으며 그룹명이 확정된 이후 빠른 속도로 많은 곡들이 작곡 되어졌다.

[Nico Dipalo]그 이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New Trolls라는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8년 그들의 이름을 내걸은 첫번째 작품 [Sensazioni]이 싱글로 발표되었다. Nico Di Palo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그룹은 기타를 담당했던 Vittorio De Scalzi에 의해 주도되었다. Vittorio De Scalzi는 처음에는 기타파트를 맡았지만 그후에 건반파트로 이동했다. 드럼에 Gianni Belleno, 베이스에 Giorgio D'Adamo, 그리고 건반에 Mauro Chiarugi. 그러나 70년대 무렵 Mauro는 우리를 떠났다. 당시, 우리는 정열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의 첫 순회공연동안 Sanremo의 Club 64에서 그리고 Whisky A GoGo에서 우리가 행했었던 공연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Festival di Rieti에서 상을 받았던 첫 작품 [Sensazioni]을 싱글로 녹음했다. 그 시절에 우리가 시도했었던 방법들은 오늘날의 방법들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그 작품은 2개의 Out-Put(출력단자)만 있는 Mixer와 4트랙 녹음기에 의해서 녹음되었다.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녹음중에 갑자기 "연주를 멈춰요!. 중지!"라고 엔지니어가 즉시 우리를 중단시켰다. "젊은이들, 무엇인가 잘못되었는데..." "시그널이 일그러지는데..." 라고 그는 지적해 주었다.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결국 기타에서 잘못된 점을 찾게 되었다. 우리의 첫 작품은, 이태리에 있어서, 기술효과(Technical Effects)가 멜로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삽입되었던 녹음을 최초로 실행했었던 첫 밴드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이러한 효과음은 곡의 앞부분에 도입된다. 다소 긴장감을 던져주는 곡전개,마치 Van Morrison의 [Gloria]과 Steffan Wolf의 [Born To Be Wild]을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리듬이 이 곡을 매우 친숙한 곡으로 인식시킨다. 사운드는 당시 유행하던 미국의 West Coast-San Francisco의 사운드와 흡사하다. 또한 그들의 깨끗한 화음은 Crosby Stills and Nash의 화음과 버금간다.

"그 이후 우리는 저녁공연인 [I1 Disco per L'Estate]과 같은 행사들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런 행사를 통해 68년에는 [Davanti Agli Occhi Miei(나의 눈앞에)], 69년에는 [Visioni]을 가지고 참가했었다. 또한, 1969년에 [Prima C'Era Luce]을 들고 Sanremo의 페스티발에 Leonardo와 함께 참가했고 우리는 D'Adamo, De Scalzi, Di Palo의 [Io Che Ho Te(너를 갖게된 나)]을 연주했으나 입상은 하지 못했다." [Davanti Agli Occhi Miei]은 경쾌한 리듬을 지닌 Pop넘버이며 [Vision]은 Iron Butterfly의 In-a-Gada-Da-Vida와 같은 분위기로, 일그러지는 전기음이 서두를 장식하며 친숙한 멜로디로 전개되는 전형적인 Psychedelic넘버이다.

  • 데뷰작 [Senza Orario, Senza Bandiera]

당시 발표된 싱글들과 그들의 데뷰앨범에 담겨져 있는 사진들이 그 당시의 New Trolls를 회고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그 당시의 싱글, 앨범커버에 담겨 있는 그들의 사진들은 동시대의 다른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촌스럽다. Fabrizio De Andre와 공동 협력으로 실현한 작품 [시간표 없이, 깃발없이(Senza Orario, Senza Bandiera)]역시 때묻지 않은 원초적인-촌스러운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으로서는 그 작품이 훌륭하다고는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67,68년경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결과였으며 오직 이태리 최초의 Concept앨범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첫곡인 [Ho Veduto(나는 보았다)]은 오른쪽 채널에서 반복되는 통기타와 왼쪽채널에는 아름다운 화음과 정방향에서 메인 보컬이 등장하는 매우 평범한 넘버이나 뒷부분의 아름다운 스트링처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두번째 곡 [Vorrei Comprare Una Strada(길을 가기를 원한다)]의 등장은 이태리 초유의 콘셉트 시도로서 매우 신선하며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세번째 곡 역시 두번째 곡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Signore, Io Sono Irish(신이여 나는 아일랜드인 입니다)]으로서 여기에서는 키보드(특히 오르간)을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저음의 오르간 연주를 기반으로 호소력있는 보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곡으로 부터 이들의 후에 Progressive Rock그룹으로 변신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당시 유행하던, Stereo Sound의 과대 노출이 [Susy Forrester]라는 곡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Syd Barrett 재적 당시의 초창기 Pink Floyd를 닮은 [Duemila(2000)], Cpmcertp Grosso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다운 스트링의 도입으로서 이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Padre O'Brien], 후반부에 클래식이 도입되는 [Tom Flaherty]과 맨 처음곡과 전개 스타일이 같은 끝곡 [Andro'Ancora]등이 담겨있다.

"우리들의 경력에 있어서 데뷰작은 아름다운 음반들중의 하나였었다." 라고 Nico Di Palo가 자신있게 말한다. "그리고 그 앨범은 우리들의 음악 경력안에서 확실한 전환점을 제시해 주었다. 우리의 첫 앨범이라는 의미 외에도 우리와 Fabrizio De Andre(Gianpiero Reverberi와 함께 제작자이자 공동 작사가로 참가)가 함께 호흡했었던 뜻깊은 작품이었다. 초창기 결성멤버들은 매우 성격이 급했으며 보다 즉흥적이었다. 따라서 우리들은 녹음 스튜디오로 들어가자마자 단숨에 연주를 끝내 버렸다."라고 그는 당시를 회고한다.

그들의 음악 역사 속에서 그들의 초창기 시대는 이상할 정도의 세월이었다. 과거의 많은 신화같은 이야기들이 책들속에서, 그리고 친숙한 레코드들을 통해서 발견되고 있지만 그들의 초창기 시대는 어둠에 가려져있다. 너무나 평범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히 숨겨진 초창기 시대의 모퉁이에서 Beatles나 여러 영국 그룹들로 부터 이어 받은 "모방"이라는 좁은 오솔길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Jimi Hendrix나 그외 여러 Art Rock계열의 음악들을 이태리인 기질에 맞게 변형시킴으로써 결국 "창조"를 달성할 수 있었다. 외세의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그 오솔길이 넓고 쭉 뻗어 나가는 고속도로가 되었고, 그 고속도로는 독특한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변신으로 인하여 그들 앞에는 손에 닿을 것 같은 성공의 신기루가 보였다.

1970년대 이전까지 New Trolls는 다른 이태리 그룹들과 아무것도 다를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성이 높고 낮던지, 그들의 팬들이 많고 적던지에 관계 없이 대중들과 음악비지네스 사이에서 그들의 길을 대담하게,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계속 이어나갔다. 많은 명성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New Trolls도 다른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역경의 시간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기계고장으로 절벽에서 추락하려다 아슬아슬하게 멈추어 위기를 모면한, 절벽 가장자리 위에 올라선 자동차처럼 그들은 부속품들을 바꾸어야 했다. 어떤 부품은 쓸만했지만 다른 부품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즉시 다른 부품들로 바로 바뀌어야만 했다. 그들 역사의 "위기"라는 순간에 그 역사를 지켜나갈 우수한 부품들이. 데뷰작이 발표된지 2년이 흐른뒤. 아니 좀더 세월이 지난뒤인 1971년, Sergio Endrigo가 작곡한 [Una Storia(어떤 이야기)]라는 곡을 가지고 그들은 제 21회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했다.

  • 최고 걸작 CONCERTO GROSSO PER 1

그후,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가지고 영화음악가 Luis Enriquez Bacalov와 제작자 Bardotti가 그들을 찾았다. 그들은 New Trolls에게 Rock에 Classic을 도입하자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기발한 제안을 던졌다. 이 제안은 절대적으로 새롭고도 대담한 제안이었으며 New Trolls멤버들을 그 자리에서 유혹, 설복시켰다. 계속해서 이러한 작업을 함께 시도할 것을 서로 약속할 정도로 New Trolls에게 이 제안은 매우 매혹적인 것이었다. Classic에 정통한 Luis Enriquez Bacalov가 화려한 오케스트라 편곡을, 명제작자 Sergio Bardotti가 치밀한 제작을 담당했고 당시, 이태리 최고의 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는 Rock Group New Trolls가 Rock파트를 담당했다라는 것으로 수많은 대중들의 이 앨범에 대한 기대가 하늘로 치솟았고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세계 음악사에 남을 명반이 탄생하게 되는데 바로. [Concerto Grosso Per 1]. 이다...!

[Concertp Grosso Per 1]은 1973년 3월 23일, 25일, 26일, 27일 이렇게 4일동 안 로마의 Ortophonic스튜디오와 밀라노의 Fonit Cetra스튜디오에서 녹음, 제작되었다 . Luis Enriquez Bacalov가 리드하는 Orchestra의 튜닝이 끝나면 거친 훌륫과 일렉트??기타음이 바이올린 현을 뒤쫓는다. 아름다운 과거의 악기와 거칠은 현대의 악기가 " 어울릴 수 없다"라는 기존 관념을 무참히 깨뜨려버리듯 몇 차례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 룬다. [Allegro]란 곡을 접할 때면 Underground Best 7에 쓰이던 15i. p. s.??녹음 7i. p. s.로 재생했던 저음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귓전을 스쳐 지나 간다.

우리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Adagio(Shadows)]은 애처러??스트링이 저변에 깔리면서 Nico Di Palo를 주축으로 전멤버들의 아름다운 보컬이 Wi lliam Shakespeare의 햄릿 3막 1장에 등장하는 "To Die/To Sleep/Maybe(원래는 Percha nce) to Dream"의 어구를 반복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 당당한 바이올린 솔로로 시작되는 또하나의 아름다운 곡 [Cadenza-Andante Con Moto]은 Adagio테마를 반복하면서 더욱 강하고 보다 클래식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준다. 여기까지의 음악적 아이디어는 Luis Enriquez Bacalov에 의해 바로크의 Concerto Grosso양식에서 잠시 빌려온 것이었다. 여기에 더욱 강렬한 Psychedelic Sound에 이끌리는 [Shadows(Per Jimi Hendrix)]이 Side 1의 끝을 장식한다. 이 곡에서 Nico Di Palo의 기타웍은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당시 이태리의 기타리스트들이 추종했던 Jimi Hendrix의 것 그 자체이다. 거칠은 훌륫연주는 Jethro Tull의 Ian Anderson을 능가하며 더욱 강건한 이미지를 반사한다. 여기까지의 곡들이 영화 "La Vittima Designata"의 사운드 트랙으로 사용되었다.

뒷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Nella Sala Vuota]은 Luis Enriquez Bacalov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New Trolls의 순수한 즉흥연주로 단번에 녹음되어진 스튜디오-라이브 곡이다. 20분 30초이라는 장시간 동안 우리들의 귀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치밀한 곡구성으로 이루어진 New Trolls의 대작이며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등장하고있는 악기들 하나하나의 개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강세와 약세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앞부분에서는 단연코 거칠게 연주되는 훌륫독주가 돋보이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위세를 건네받는 악기는 인간이 몸과 영혼 속에 지니고 있는 목소리이다. New Trolls특유의 고음역의 보컬이 위력을 나타내고 나면 틈이 날때마다 일렉트릭 기타의 굉음과 우렁찬 드럼이 위세를 떨친다. 그 다음의 대권은 키보드가 맡는다. 경쾌하고 즉흥적을 띤 Free Jazz-Rock 스타일의 Anarchy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된다. 작렬하는 기타의 굉음이 잠시 Drum의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사라지면 천지를 진동시키는 Drum Solo가 장시간에 걸쳐 화려하게 펼쳐진다. 1980년대 초 이 곡의 길이가 길다는 단점을 뛰어넘어 왜 자주 방송에 올려졌는지? 왜 이 곡이 Cat's Concerto로 불리워 졌는지? 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Snare Drum이 Delay되고 하울링이 울려 퍼지면서 드럼 솔로는 크라이막스에 도달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동원되었던 모든 악기들이 총동원되면서 장대한 Cat's Concerto는 막을 내린다.

  • NEW TROLLS의 분열

그 후 싱글 [I1 Miniera(광산)/I1 Sole Nascera(태양은 탄생할 것이다)]과 [La Prima Goccia Bagno I1 Viso]라는 곡을 들고 New Trolls는 1972년에 베네치아의 페스티발에 출전한다. 그곳에는 노래가 있었고 활력소가 있었다. 영어로 된 그들 최초의 더블앨범[Searching For A Land]과 [UT]이 발표되었다. Nico Di Palo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이 순조롭게 되었던 그 시기에 우리는 이태리의 음악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1973년 그 유명한 해산상태에 이르게 된다. 우리들의 해산은 모든 신문들과 음악전문지들이 앞을 다투어 보도했었던 당시의 Big News였다. 우리 4명의 멤버들은 당시 각자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각기, 자신의 주장을 억제하려고 노력했었다. 서로 논쟁과 그리고 그 사실에 분노할까봐 염려했었다. 결국 우리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미 서로의 융합이 불가능하다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각자의 독자적인 길을 걷고 싶어 했다." Nico Di Palo가 말을 계속한다; "그당시, 우리가 행했던 그룹의 이탈은 우리가 독특한 솔로 경향을 찾기 위해서였다라는 변명을 낳았다. 더 좋은 방향을 개척하고자 했고.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했었고.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했다라는 것을 대변한다.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과 개성을 가졌고 또한 여러가지의 음역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우리각자의 개성이 우리들의 조화를 무너 트리고만 것이다." "

이 결과로 New Trolls Atomic System, Ibis(Si-Wan Series SRMS-0004 해설지 참고), Johnny & Tritons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Ibis라는 Hard Rock그룹에서 기타파트를 맡았고, Maurizio Salvi는 건반을, Frank Laugelli는 베이스를 그리고 영국그룹 Atomic Rooster의 멤버였던 Ric Parnelli는 드럼을 각각 맡았다. Ibis라는 이름은 멋있지 않는가?... Ibis는 이집트의 신성한 새이름이다. 커다란 문자로 트레일러에 새겨진 우리의 그룹명을 발견했을때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 그룹명이 마치 베이컨의 상표인양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국적인 데뷰앨범 [Sun Supreme]과 함께 74년에 우리는 조그만 성공도 거둘 수 없었다. 반면에 싱글인 [Passa I1 Tempo]과 두번째 앨범 [Ibis]은 데뷰앨범과 다른 멤버구성으로 발표되었다. Ric Parnelli는 영국으로 되돌아가 버렸고 Pasquale Venditto가 그의 후임으로 참가했다. 한편, Renzo Tortora는 Maurizio Salvi의 키보드 파트를 담당했다."

  • N.T.ATOMIC SYSTEM

Vittorio De Scalzi에 의해 주도되었던 New Trolls Atomic System은 Saxophone에 Giorgio Baiocco, 베이스에 Giorgio D'Adamo, 드럼에 Tullio De Piscopo와 건반에 Renato Rosset가 참가했다. 그들은 [N. T. Atomic System]과 [Tempi Dispari]등의 좋은 음반들을 발표한다. 당시, 더이상 아무 것도 이해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New Trolls의 분열 그자체에 팬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그룹이 뜻하지 않은 분열이 표면화 되었기 때문이었다. New Trolls는 어디로 갔고 그의 약자처럼 보이는 N. T. Atomic System은 또 무엇인가?. 음악적인 견해차이로 그룹이 해산, 두개의 그룹이 파생되었다는 사실이 팬들에게 현저한 혼란을 야기시켰다. 논쟁에서 법정투쟁에 이르기까지 많은 파문을 일으켰던 그룹명에 얽힌 사건이 일단 매듭되자마자 Vittorio De Scalzi와 Giorgio D'Adamo에 의해 결성된 New Trolls의 Atomic System이 존재한다.

반면, 다른 분리된 부분인 Nico Di Palo로 부터 지휘되는 파트는 새로운 명칭을 추구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당시 Vittorio De Scalzi는 로마의 한 식당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얼마전부터 New Trolls의 음반에 나는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 따라서 나는 Giorgio에서 그룹을 이탈할 것을 협의했고 그는 나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실제로 나는 New Trolls의 음악이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이라도 그러한 변화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를 바랄 뿐이며 [Searching For A Land]과 같은 음반을 옹호했으면 한다. 그러한 음반은 우리에게 새로운 음악적 한계의 연구를 제공한 종합적인 산물이었다. 그것은 분열직전, 파열직전의 의식적인 순간이었다.

우리가 Magma라는 독자적인 레코드사를 구상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연주자들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창작에 있어서, 자유로운 권한을 얻을 수 있다는 최고의 행운이다. 물론, 이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음반을 주의있게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우리는 다른 그룹 역시 이러한 공간에서 녹음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제공 해줄 것이다. 실험예술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성숙 시키고자 노력하면서. 물론, 이태리에서는 이러한 의도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라고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나의 의도와 결심은 시작되고 이루어질 것이다.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이태리 Rock의 환경은 아직도 매우 지역적이다. 수많은 그룹들이 개처럼 돈벌이를 한다. 음아거에 있어서도 종종 보다 더 개인적이고 토착적인 모형의 회복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 미, 영국의 록 블루스에만 사로잡힌 뮤지션들이 무수히 많다. 이태리 그룹들이 긍정적으로 이러한 장벽을 극복하는데 성공한다면 우리가 바라던 첫 진행은 이룩될 것이다. 그 후에는 보다 전문화된 음악적 환경이 그들과 우리들을 뒷받침해 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New Trolls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로 앨범 [Atomic System]을 내놓는다. 당연히, 이 앨범은 옛 New Trolls의 사운드와 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째즈적인 성격을 지닌 변화를 느끼게 될것이다. 나와 Giorgio 이 두사람 이외에 옛 New Trolls의 향기를 지닌 연주자는 없다. Piano, Organ, Moog, Mellotron등 모든 건반악기를 연주하는 Renato Rosset가 우리멤버에 끼여있고, 째즈분야에서 활동했던 관악기 주자에 Tullio Baiocco가 역시 우리들과 함께하고 있다. 드럼에는 Mario D'Episcopo가 발탁되었는데, 그 역시 째즈필드에서 활약하던 인물로 아마도 이미 그의 이름이 지명되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Mario 그는 단 한번 연습곡을 들은 후 모든 작품을 단번에 이해하고 연주해 내었다. 그에게는 연습을 되풀이 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는 New Trolls의 데뷰작에서 가장 돋보였었던 [Padre O'Brien]을 째즈감각으로 새롭게 각색한 [La Nuova Predica di Padre O'Brien(오브리엥 신부의 새로운 설교)]과 데뷰작의 첫곡으로 담겨 있었던 [Ho Veduto]에 맥을 잇는 [Ho Visto Poi]라는 두 곡을 앨범의 앞부분에 장식시켰다. 이러한 두곡은 이념적으로 데뷰앨범인 [Senza Orario, Senza Bandiera]에 맥을 잇는 것이다. [La Nuova Predica di Padre O'Brien]은 새롭게 탄생한 New Trolls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매우 도전적인 곡이었다. Synthesizer의 도입과 Flute의 솔로연주 Jazz의 Swing스타일의 리듬을 기초로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Ho Visto Poi] 언젠가 독일그룹 Amon Dull I1가 행했었던 Rock에 섹소폰을 독특하게 도입시킨 이색 분위기를 여러 각도로 연구하여 실현시킨 작품이다. 광범위한 멜로디의 선율로부터 웅장한 오르간 연주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연주를 들려주는 전형적인 Progressive Rock넘버 [Tornare A Credere]과 Mussorgsky의 고전을 Progr-essive Rock으로 멋지게 각색한 [Una Notte Sul Monte Calvo]이 앞면의 끝을 장식한다. 한편, 현대악기들로 고전의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시종일관 화려하고 노련한 연주력을 과시하는 뒷면의 첫곡은 공상과학 소설의 매혹적인 제목 [Ibernazione(동면)]달고 있다.

다음 곡은 멜로트론 연주가 홍수를 이루는 바로크식의 힘있는 [Quando L'erba Vestiva la Terra]이다. 중간의 도약부분까지 주요 멜로디는 애조를 띤 아름답고 슬픈 멜로디로 전개된다. 이 음반의 끝곡은 드럼솔로가 돋보이는 [Butterfly]이다. 이 곡이 영어가사로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음악적 언어-화법 때문이었다; 리듬의 세부적인 부분이 가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끊어지는 단어의 사용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상태로 만들어 질 수가 없었다. [Butterfly]의 가사는 내가 읽었던 한 동화작가의 글로부터 인용되었다. 따라서 매우 흥겹고 매혹적인 작품이다. 유년시절의 마술적인 풍미를 가져다 주는 동화적인 내용의 가사와 함께 드럼 Solo까지 도입, 더욱 경쾌하고 박력이 넘친다.

이태리의 음악시장에 한개의 수퍼그룹이 분열되면서 파생한 N. T. Atomic System은 이태리 Rock역사상 영원히 남을 걸작을 만들어 내었다. 정말로 중요하고 독창적인 이 음반때문에 Vittorio와 Giorgio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이 작품은 한 그룹의 음악적 전환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Italian Rock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그들은 이 작품을 완성한 후 [Concerto Grosso Per 1]이후 오랫만의 음악적 성취감을 맛보았다. 아니 그 이상의 만족감을 얻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정말 훌륭한 음악적 감각으로 이룩된 Masterpiece였던 것이다.

7. IBIS 그리고 TRITONS 아주 오랜 옛날, 고대 이집트에서 숭상되었던 이상한 새가 머리 이외에도 목, 날개의 한 부분에 순백한 깃털을 갖고 있었다. 그 반면 날개는 검은색이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이러한 새는 Ibis라고 불리워졌고 이 새는 뱀을 죽이기 위해 나일강의 범람과 함께 비로소 나타났다. 고대 애굽 사람들은 이 황새를 신으로 숭배했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이 새는 온대, 열대 지방에서 서식하는 따오기류의 새로 지칭된다. 숲속의 님프신은 바다의 신에게 사랑에 빠졌고 결국, 폭풍우를 일으켜 바다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모방하기 위해 조개류 동물을 이용, 바람따위에 날리는 이상한 존재를 탄생시킨다. Triton(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 반어의 해신)은 이러한 이상한 존재를, Trolls라고 불렀다. 이것은 또 한 노르웨이의 숲에서 뛰놀던 작은 숲속의 요정들, 왕족의 궁정 들판에서 살았던 요정들을 뜻한다.

이렇듯 New Trolls에서 파생되었던 그룹들 역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화로부터 그룹명을 채택하고 있다. 이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이태리의 서북부로부터 서남부로 아름답게 곡선을 그리고 있는 신비한 지방 Liguria의 해안위에 먹구름과 안개등이 말끔히 걷히는 것처럼 보였다. Ibis에 대한 소개는 국내에 발매된 그들의 두번째 앨범 [Ibis]의 해설지를 참고하기 바라며 여기에서는 Tritons라는 그룹을 좀더 자세히 관찰해 보자.

Johnny라는 가명으로 보다 더 유명한 New Trolls의 전 드러머 Gianni Belleno는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1950년대, 1960년대의 기존 곡들을 수용, 솔로 음반을 녹음한다. New Trolls라는 영광스러운 왕가로부터 이탈해야만 했었던 마지막 순간, 그는 독자적인 계획을 마음속에 새겨 놓아야만 했다. 그에게는 새로운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의 주위에는 이미 New Trolls Atomic System이 활약하고 있었고 서서히 Ibis가 생성되고 있었다. New Trolls왕가의 마지막 혈통인 Gianni Belleno는 다른 동료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고 서로 친밀한 교류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계획을 추진해 나아갔다.

제노바 출신의 New Trolls 전 드러머는 그리하여 [Satisfaction]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표한다. 그가 발표한 앨범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50,60년대의 유명한 곡들을 다시 편곡하여 만든 단순한 앨범이었지만 의외로 그에게 상당한 상업적 이익이 돌아갔다.마치 암닭이 황금 달걀을 낳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앨범 앞면에 담겨있는 곡들은 기존의 곡들을 독특하게 편곡한 작품들로서 대중들의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Rock & Roll의 고전들 Beatles의 [Twist and S hout]과 Rolling Stones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으로서 구성되었는데 당연히 이러한 곡들은 듣는 사람들에게 많은 호감을 가져다 주었고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는 그 외에도 Chuck Berry의 [Let It Rock]과 Beatles의 [I Saw Her Standing There] 그리고 Rolling Stones의 [Brown Sugar]등도 앨범에 삽입시켰다.

그 반면에 뒷면은 Gianni에 의해서 작곡되고 연주된 느린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타이틀 또한 모두 영어로 되어있다. 당시, 그가 New Trolls의 멤버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대중들은 거의 없었고 그의 앨범은 피로를 풀기위해, 휴식을 즐기기 위해, 애인과 춤을 추기위해 해변이나 댄스클럽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리퀘스트를 받았다. 그의 이러한 의도는 계획적이었고 성공했다.

그의 앨범은 실질적으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둔 앨범이었다. 마치 Beat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또다시 이러한 시도를 하려했던 뮤지션은 결코 없었다. 그의 의도는 잘 실현되었고, 내용에서는 다소 부족하지만 실수없이 녹음되었다. 이것은 Gianni자신의 고백이었다. Gianni는 그의 음악에 있어서 외면적인 형태(우리는 여기서 그의 의도의 완벽한 결과를 확인해야만 한다)를 어떻게 설정 했었는지에 대하여 정직하게 설명한다. 그것은 그의 치밀한 계산에 의한 매우 솔직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발견하게 된다. 어떠한 음악적인 철학의 사색을 제시하는것 없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의해 위대한 작곡자들을 가장하는 것없이 그는 자기자신의 의도를 실현했다. 결국 음반을 듣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위한 유일한 목적으로 음반을 취입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매우 좋을 것이다. Ricky Belloni와 함께 음반을 제작한 후, 이 앨범은 대중들과 비평가들 사이에서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 작품은 [Twist and Shout with Satisfaction]이라고, 그룹은 Johnny dei Tritons라고 불리우게 되었고 싱글 [Satisfaction]과 함께 그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당시로서는 아무도 그와 같은 성공을 상상하지 못했다.

  • NEW TROLLS의 재결성

[Maurozio Salvi] [Nico Di Palo] "그래. 우리는 너무 오랜 기간동안 분리되어 활약해 왔었다. 계속 이렇게 지속될 수는 없다...!" 이러한 옛 New Trolls 멤버들의 의견은 꽤 오래전부터 관철되었으며 서로간의 이해가 빨리 회복되기 시작했다. Vittorio De Sca-lzi측은 Jazz Rock지향의 [N. T. Atomic System]과 즉흥 라이브 앨범 [Tempi Dispari],그리고 여러장의 앨범과 싱글 [Una Notte Sul Monte Calvo/Somewhere]등을 발표해 왔었고, Nico di Palo측은 [Canti D'Innocenza,Canti D'Esperienza]과 [Sun Supreme], [Ibis]그리고 두장의 싱글을 발표했고, 그리고 Nico di Palo측과 밀접한 교류를 가졌던 희생양 Gianni Belleno는 한장의 앨범과 세장의 싱글들을 제작했었다. 그러나 3년간의 오랜 분열기간 후 그들이 제노바에 다시 모였을때 그들의 마음은 "함께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는 결심으로 굳어 있었다.

  • Concerto Grosso N 2

모두 New Trolls의 재결성에 동의했고 이러한 결성에 간접적으로 자극을 준것은 뚱뚱한 체구와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영화음악, 크래식 편곡자인 Luis Enriquez Bacalov와 학자 타입의 레코드 제작자 Sergio Bardotti의 [Concerto Grosso N 2]의 제작에 대한 요구 때문이었다. 이미 이 계획은 [Concerto Grosso Per 1]이 제작되기 전 부터 그들 사이에 약속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뜻하지 않은 New Trolls의 분열로 무기한 연기되어 왔었고 비로서 1976년에 도달해서야 실현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분리되었던 기간 동안에 우리 각자가 여러가지 체험을 경험 했었고, 우리가 함께 했었던 진정한 작업들을 많은 시간이 지난후에야 비로서 그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또한 그 기간동안 우리가 겪었던 예술적 포화상태의 상황을 극복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그룹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Giorgio D'Adamo가 말한다.

재결성된 새로운 New Trolls는 우선 4명으로 출발했다. Sergio Bardotti와 Luis Enriquez Bacalov가 [Concerto Grosso N 2]과 함께 공개적인 토론을 계속하자고 그들에게 제안했을때 그들은 결코 뒤로 후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알맞는 조건과 토대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쯤에서 Ricky Belloni가 가입,5인조 편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당시, Nico di Palo는 쌓인 피로때문에 휴식의 기간을 가져야만 했다. 그를 대신하기 위해 후임으로 Giorgio Usai가 선정되었다. Usai는 Nico di Palo의 음색에 흡사한 목소리를 지녔고 또한 건반 파트에 있어서도 Vittorio를 도왔다. [Concerto Grosso N 2]은 사실상 Nico di Palo의 부재하에서 발표된 앨범이었으나 앨범안에는 그의 이름이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반면 Giorgio Usai의 이름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Nico di Palo의 연주모습도 앨범속에 3Cut이나 담겨져 있다. 그러나 Nico di Palo는 그가 없는 동안 이 앨범이 제작되고 발표되었다고 확언한다.

이 앨범으로부터 부각되고 있는 이름은 Ricky Belloni이다. 그는 이 앨범으로 부터 New Trolls의 역사에서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후에,위에서 언급되었던 멤버 유동이 전혀 없이 5중주가 단기일안에 [Concerto Grosso N 2]을 창작한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Nico의 참가가 번복, 확인되었다. 이러한 좋은 출발의 추진력 위에서 Ornella Vanoni와 함께 New Trolls는 세달동안에 걸쳐 화려한 순회공연을 마친다. 여기에서 발췌한 실황이 후에 Live앨범으로 발매된다. 이 실황은 그동안 Pop이냐? Best 또는 Progressive냐?의 싸움과 그것에 연관된 두부류의 오래된 숭배자들을 잃어버리지 않고서 New Trolls는 전체적으로 영리하고 새롭고 매우 점진적인 음악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세대에게 매력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 즉, Pop을 선호하는 다수의 대중들과 Best나 Progressive-Art Rock을 옹호하는 소수의 대중들을 모두 만족시키려는 의도를 역력히 보여준다.

따라서 [Concerto Grosso N 2]은 [Concerto Grosso Per 1]에 비해 보다 가볍고, 발랄하고 경쾌한 음들로 가득차 있다. 그 음들은 전자음향이 압도적이다. Orchestra의 동원으로 Acoustic Sound가 우세했었던 전작에 비해서 이 작품은 Synthesizer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 전작이 인간적이고 자연적이라 한다면 이 작품은 매우 기계적이라 하겠다. [Concerto Grosso N 2]은 그들에게 소수의 기존 팬들을 잃는 대신 많은 대중 팬들을 끌어 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뮤직 비지네스 사회에서 하나의 오점을 남겼다. 그것은 이태리의 국영회사 Fonit Cetra와의 관계였다. Fonit Cetra는 New Trolls라는 이름을 지닌 그룹의 작품을, 제작-배포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Vittorio De Scalzi에 의해 재결성된 Nuova New Trolls는 Vittorio De Scalzi가 설립한 Magma와 Fonit Cetra사이에서 이권을 놓고 커다란 사업상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당시, Magma Label의 배포권은 Dischi Ricordi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문제는 두개의 대형기업과 수퍼그룹이 해결해야 될 난관이었다. 결국, Magma로 부터 제작된 본 작품 만큼은 Fonit Cetra에서 독점 배포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재발매부터는 Fonit Cetra의 로고 마크가 커버뿐만아니라 안의 레이블에도 새겨지게 된다.

여기에서 잠시 그들의 역사를 또다시 다른 각도에서 비추어 보기 위해 중반기 멤버 Ricky Belloni의 말을 인용해 본다; "나는 약 13년-14년 동안 연주 생활을 해왔다. 음악은 내게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내 인생을 좌우할 결정적인 것처럼 여겨지지는 않았었다. 기타에만 과다하게 몰두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 이외에 여러가지 일들을 해오고 있을때 나에게 음악에 대한 혁명이 일어났다. 그것은 Fausto Cigliano의 TV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내게 다가왔다. "Ora Vi Svelero gli Armonici(이제는 당신들에게 잘 조화된 화음을 보여드릴 것이다.)"라고 어느 순간에 Cigliano가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당시 그가 내뱉었던 단어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입술위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던 그의 모습이. 아마도 TV 화면 앞에서 두귀를 세우고 눈을 크게 뜬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그때부터 음악의 중요성을 깨닫고 연주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Cigliano는 음악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고 나를 깨닫게 했으며 그후로 음악은 서서히 나의 직업이 되었다. 내가 프로 그룹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는 이태리의 대표적인 Chamber 전위그룹 Stormy Six의 멤버들중에 친구들이 있었다. 한번은 그들이 녹음하고 있는 장소로 그들을 만나러 갔었다. 휴식시간동안 그들은 나에게 어떤 것을 들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여기에서 나는 그들의 세션맨으로 둔갑해 버렸고 그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내가 바라던 대로 세션맨으로 그들의 음악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Nuova Idea의 멤버가 되었고 그들과 함께 해산될 때까지 활약했었다. 그 이후 Gianni Belleno와 함께 Tritons에서 활약한 후 New Trolls에 가입하게 된다.

1975년에 시도되었던 New Trolls의 재결합은 거의 절박했다. 당시, 처음으로 대중들앞에 모습을 나타내기로 결정한 위대한 Cantautore Fabrizio De Andre는 그의 역사적인 첫 순회공연(이태리 대중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성공적인 공연)이 계획되고 조직되었을때, 우리는 그와함께 동반되는 첫 그룹이었다. 우리는 나와, Gianni Belleno, Giorgio D'Adamo와 Giorgio Usai 이렇게 네명 뿐이었다. Vittorio De Scalzi와 Nico Di Palo는 참가하지 않았다. New Trolls의 재결성은 그 두사람이 배제된 가운데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들은 그들에게 또다시 접촉을 시도하려 했었고 그들과 대화의 장을 갖기를 꿈꾸었다. 결국 이러한 꿈은 그 다음해인 1976년 5월에 이루어진다. 그동안의 논쟁들은 과거의 역사에 파묻혀 버리고 새롭게 부활하는 New Trolls에게는 앞으로의 전진과 수많은 계획들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첫 시도로 이루어진 [Concerto Grosso N 2].

그러나 모든 우리의 기대를 극복하면서 계속되었던 그 앨범에 대한 저녁공연에서 우리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우리가 Ornella Vanoni와 함께 만들었던 음반, 새로운 우리들의 음악적 제안과 앞으로 우리들이 지향해야 될 방향을 확인하고 싶었던 순회공연은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순회공연의 떠나기 전부터 먼저 우리는 잠시 걱정했었다. 우리들과 Ornella는 대중이 우리들에게 보여줄 두가지의 서로다른 반응을 예측해 보았으나, 그것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직접 부딪쳐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항상 차분하게 모든 공연을 마쳤고 때때로 10분동안 지속된 공개 무대에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정말, 열정적인 경험이었다.

3 앨범 총평[ | ]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140번 제 목:NEW TROLLS 앨범 가이드 올린이:yesmania(전익재 ) 96/05/21 00:53 읽음:455 관련자료 없음


지난번 오잔나와 P.F.M 에 이어서 이번에는 NEW TROLLS 앨범을 간단하게 분석해보겠다. 이들은 초지일관 같은 음악 스타일을 유지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쟝르를 건드려 봤다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이점이 이들의 점수를 깍아 내리지 않았나 싶다.

7집 tempi dispari는 대표적인 예로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으면서 즉흥연주를 펼친 예인데 뒤에 자세하게 소개해드리겠고 1집부터 간단하게 앨범평을 내려보겠다. 그러기 전에 본인의 이 그룹에 대한 전체 적인 평을 내려보면 과분한 지명도에 비해 그리 떨어지는 그룹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에 최유길씨가 모 잡지에 이 그룹을 싸잡아서 욕한 기억이 나는데 상업적으로 변모한 그룹은 비단 이 그룹만이 아닌 핑크 훌로이드나 제네시스와 같은 대그룹도 있으니 이점을 지적한것은 조금 억지인듯 싶고 조금 무리한 시도를 했던, 아까 위에 언급한 앨범에 대한 역량의 부족함과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만 대그룹이 되어버린 모순에 대해서는 동감하는 바이다. 이들의 음악을 곱씹어보면 CONCERTO CROSSO PER 1 과 같은 클래식 적인 면도 물론 훌륭하지만 UT 나 ATOMIC SYSTEM과 같은 앨범에서 이들의 진수를 느낄수 있는데 이 주요 앨범을 놓고 보았을때는 방코나 오잔나와 같은 대그룹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루이스 앙리쿠에즈 라는 인간이 편곡한 앨범들중 콘체르토.. 우노 앨범만은 본인에게 높은 평가를 받기에 아까도 언급한바 있었 지만 이태리 주요그룹으로 본인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서두가 길었는데 그럼 1집부터 주요 앨범을 살펴보기로 하자. 참고로 별은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을 환산한 것으로 객관성을 절대로 보장하지 못함을 밝히도록 하겠다. 그리고 지금 이들의 자료가 실려 있는 아트락 2호지가 본인에게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들의 디스코 그래피나 맴버변동,그리고 기타 앨범 감상에 도움이 될만한 얘기거리를 혀 알려드리지 못하는 점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면서 글을 시작할까 한다.

SENZA ORARIO SENZA BANDIERA ★★★☆ 68년 이태리의 음악계에 이만한 앨범이 나왔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 받아야될 음반이지만 전체적으로 비트 사운드가 주를 이룬 하드락적인 요소를 지닌 평작수준의 앨범이라고 생각된다. 오케스트라가 동원 되었으나 그리 만족한 수준의 앨범은 아닌듯..

CONCERTO GROSSO PER 1 ★★★★ 국내에 메가히트한 앨범으로 ADAGIO 는 이제는 일반 대중들 까지 널리 알려진 곡이 되었다. A면에 수록된 4부작은 클래식과 록의 완벽한 조화라고 생각 되며 SHADOWS는 핸드릭스에게 바치는 곡이다. 잘 들어보면 LITTLE WING 의 테마가 등장하는데 니코가 얼마나 헨드릭스의 영향권내에 있는지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 앨범의 진수는 A면보다는 B면에 있는데 20여분의 대곡인 NELLA SALA VUOTA는 하몬드 오르갠과 기타가 시종일관 주도하며 즉흥적인 재즈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는, 특히 GIANNI의 드럼이 후반부에 작렬하는 부분은 거의 압권이라고 본다. 어무튼 팬들과 평론가들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은 야누스 적인 앨범.

SEARCHING FOR A LAND ★★★ 더블 앨범으로 한장은 라이브, 한장은 스튜디오로 라이브에서는 니코가 스튜디오에서는 비토리오의 색이 나타난다. 아마 여기서 부터 내부분열이 시작된듯 느껴지는데 핑크플로이드의 움마굼마 에서 보여준 그런 각각의 파트의 완벽한 조화를 기대하시면 큰 오산.

UT ★★★★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뉴트롤즈의 중기 최고작으로 여러쟝르의 음악들이 본작에 나타나는데 재즈적이면서도 하드락적인 요소 가 군데군데 빛나고 있다. 국내팬들에게도 크게 어필할수 있는 앨범 마지막 두 트랙의 발라드 곡인 PAOLO E FRANCESCA , CHI MI PUO CAPIRE 가 실려있는 본작이기도 하다.

N.T. AUTOMIC SYSTEM ★★★★ 드디어 니코와 비또리오가 분열 비또리오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재즈에서 받은 영향이 매우 크게 느껴지며 노래보다는 연주위주의 대곡 지향의 곡을 선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밑에 본인이 올렸던 게시물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TEMPI DISPARI ★★☆ 아직까지도 본작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아무튼 74년 제노바의 알코이네 극장에서의 공연을 수록한 앨범이다. 이때는 니코가 이비스를 이끌어가고 있을 무렵 이었는데 IBIS 역시 신통찮은 앨범을 내고 맛이 가버리고 말았다. 잠시 IBIS의 앨범을 살펴보면

IBIS - IBIS ★★★ 니코 디 팔로가 이끌었던 이 그룹의 본작은 좋게 말하면 목가적 이며 서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싸잡어 말하면 지루하기 짝이없는 졸작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다행인게 RITROVARCI QUI 같은 곡인데 이곡도 몇번 들으면 질려버린다. (시완 국내발매) 그럼 다시 뉴트롤즈로 돌아와서 본작을 살펴보면 즉흥연주를 나타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데, 뭔가 산만하고 정리되지 않은 사운드가 드문드문 들리는 ADAGIO 와 CADENZA의 테마와 맞물려서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는 정체불명의 사운드를 전개 시켰던 앨범이다. 본인의 귀가 아직 고급이 아니라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명반 칭호를 받기에는 과분한 앨범이 아닌가 싶다.

이상으로 뉴트롤즈의 앨범을 부족하나마 살펴 보았는데 개인적으로 뉴트롤즈는 아트락의 깊은 수렁으로 이끌었던 원흉이기도 하다. ADAGIO 를 듣기위해 밤새 라디오를 들으며 녹음을 준비하던 그런 열정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시기는 다시 못올 아름다운 추억이었으며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요즈음에는 돈만 있으면 아트락 음반은 인터넷을 통해, 아니면 수입음반이나 라이센스 음반으로 쉽게 구할수 있지만 5년전만 해도 적은 수량으로 수입되어지는 음반을 못구해 매일마다 수입음반점을 드나들곤 했었다. 특히 NEW TROLLS 앨범을 구하려고 무척이나 애썼는데 그 기억이 생생하다. 쩝..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아무튼 음악에 대한 나의 열정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나 자신에게 빌며 글을 마치겠다.

/yesmania


[이동훈, meddle, mailto:totoro78@nuri.net]

우선 추억의 밴드 new trolls에 대한 답변.

[discography]

senza orario senza bandiera new trolls

1집은 당시에 유행하던 beat 계열의 작품으로 깐소네 분위기도 느낄 수 있구요... 2집은 전작보다 완성도가 높고... 팝적인 색채가 강해요.

concerto grosso per.1 searching for a land ut atomic system tempi dispari

뉴 트롤스의 progressive rock시절의 작품들로, 국내와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죠. 콘체르토 그로소는 오잔나와 함께 공연한바 있는 루이지 바칼로프의 숨결이 짙게 배여있는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록과 클래식의 사운드가 반반 씩 섞여 있어요. searching for a land는 본래 두 장짜리 엘피로 발표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세인트 피터스 데이가 많은 인기를 누렸구요, 앨범의 후반부는 세션을 중심으로하는 즉흥 연주곡이 실려있네요. ut는 이들의 대표작중 하나로 하드록, 클래식, 발라드, 팝 등이 고루 혼합된 변종이라 할 수 있구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예요.
atomic system은 뉴 트롤스의 작품등 중에사 가장 심포닉에 가까우며, tempi dispari는 jazz rock에 기반을 둔 즉흥 연주곡 모음집이예요. 여기에서는 아마지오의 선율을 들을 수 있죠.

concerto grosso per.2 live aldebaram new trolls fs

뉴 트롤스의 후반기 시절의 작품들로, 국내에서는 재평가가 전혀 이루어 지지 않고 있어요. 저도 작년에 일본판으로 구입하기 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fs같은 작품의 아름다운 팝에 매료되어 버렸답니다. ^^; live를 제외하고 4장 모두 적극 추천반입니다.

america ok tour amici quelli come noi

위의 작품들에 대해선 아느바가 없습니다. ^^

음... 포닛 세트라의 씨디는 공정 과정에서 값이 싼 원료를 사용해서 안쪽 테두리가 부식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구입시 국내 라이센스 판이나 일본 수입반을 추천해 드립니다.


[박영춘, sanak69, 93.8]

  • [NEW TROLLS] DISCOGRAPHY *

@ 1967년:이태리 국영 레이블인 FONIT CETRA와 계약체결.
데뷔싱글 발표(5인조 편성) @ 1968년:싱글 <Una Miniera><Una Nuvola Bianca>를 연속적으로 발표.
(감상평:사실 초기 싱글을 구할 길이 없었는데,한 4년전에 CD로 우연히 싱글들과 후기 앨범수록곡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중 초기 싱글곡들은 상당히 하드록적인 맛과 약간 괴기 스러운 맛이 함께 느껴지는,내가 알았던 의 그들 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여서 처음 상당히 놀라기도 했다.
데뷔싱글은 들을만한 곡이고 <Una Miniera>와 <Una Nuvola Bianca>등은 뛰어난 곡들이다.다만 그 당시 유행했던 음악의 분위기가 많이 들어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즉,카피성이 좀 있다고 할�엑?

  • [SENZA ORARIO SENZA BANDIERA] (FONIT CETRA LPX3)
싱글의 성공을 계기로 68년 데뷔앨범 발표

NICO DI PARO(gt,vo) VITTORIO DE SCALZI(gt,vo)

MAURO CHIARUGI(kb) GIORGIO D'ADAMO(bs) GIANNI BELLENO(ds) 프로듀서:FABRZIO DE ANDRE,GIANPIERO REVERBERI

@ 1970년:키보드주자 MAURO CHIARUGI탈퇴(4인조편성).

  • [NEW TROLLS] (FONIT CETRA LPX7):70년 두번째 앨범발표

@ 1971년:공포영화(La Vittima Designata)의 사운드 트랙의 제작을 위해,영화음악감독인 Luis Enriquez Bacalov) 와 프로듀서인 Sergio Bardotti가 NEW TROLLS와 만남

  • [CONCERTO GROSSO PER 1] (FONIT CETRA LPX8)
멤버는 2집과 동일.

@ 1972년:베이스주자 Giorgio D'adamo탈퇴.그룹 RHODES출신의 베이스주자 Frank Laugelli가입.키보드주자 Maurizio Salvi가입.

  • [SEARCHING FOR A LAND] (FONIT CETRA LPX12/13)
NEW TROLLS의 최초 더블앨범으로 한장은 스튜디오 녹음

이며,다른 한장은 라이브 녹음이다.

  • [UT] (FONIT CETRA LPX20)
같은 해.그들의 최고작이자 5집.멤버는 4집과 동일.

@ 1973년:NICO와 VITTORIO와의 불화로 NEW TROLLS분열.리더인 VITTORIO DE SCALZI를 제외한 4명의 멤버가 탈퇴함.
FONIT CETRA레이블에서 NICO,GIANNI,FRANK,MAURIZIO 라는 이름으로 앨범 [CANTA DI INNOCENZA CANTI DI ESPERANZA] (FONIT CETRA LPX22)를 발표.
VITTORIO는 2집이후 탈퇴했던 베이스주자 GIORGIO를 맞아들인후,RENATO ROSSET(kb),GIORGIO BAIOCCO(sax), TULLIO D'ESPISCOPE(ds),R.SOMUSUNDARAN(percussion)과 두명의 여성 코러스를 가입시켜 8인조롤 팀을 재정비 한다.VITTORIO는 그의 부친이 운영하는 STUDIO G의 회 사인 MAGMA레이블로 이적한다.FONIT CETRA와의 판권 문제로 NEW TROLLS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 채,그들의 공식 6집앨범을 발매함

  • [NEW TROLLS ATOMIC SYSTEM](MAGMA MAGL18003)
독일 PAN레이블에서는 [NIGHT ON THE BARE MOUNTAIN]의

타이틀로 발매된다.(우리나라에선 시완레코드 발매)

@ 1974년 : NEW TROLLS는 GENOVA의 ALICOINE극장에서 벌어진 실황 공연을 담은 라이브앨범을 7집으로 발표.
--> ## [TEMPI DISPARI] (MAGMA MAGL 18005)

NICO,GIANNI,FRANK,MAURIZIO의 앨범발매후,GIANNI탈퇴 그의 후임으로 ATOMIC ROOSTER와 SPYDER출신의 드러머 RIC PARNELL이 가입한 후 그룹명은 IBIS로 개칭함.
POLYDOR산하에서 데뷔앨범을 발표.
---> ## [SUN SUPREME] (POLYDOR 2448022) NICO DI PARO(gt,co) FRANK LAUGELLI(bs) MAURIZIO SALVI(kb) RIC PARNELL(ds)

@ 1975년 : MAURIZIO와 RIC이 IBIS를 탈퇴.후임으로 RENZO TORTORA (gt)와 PASQUALE VENDITTO(ds)가 가입하며 2집을 발표.
---> ## [IBIS] (POLYDOR 2448036)

우리나라 시완레코드발매.

앨범 발표후,불안정한 멤버구성으로 인하여 IBIS는 해산하게 됨.
NEW TROLLS는 뚜렷한 활동이 없었다.

@ 1976년 : VITTORIO DE SCALZI와 NICO DI PARO는 화해를 하고, NEW TROLLS의 VITTORIO,GIORGIO D'ADAMO와 전 IBIS의 NICO, GIANNI BELLENO(ds),그리고 RICKY BELLONI(gt)가 규합함 5인조로 재편성된 NEW TROLLS는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함.
---> ## [CONCERTO GROSSO PER 2] (MAGMA MAL02)

[CONCERTO GROSSO PER 1]의 속편적인 앨범으로

전편과 마찬가지로 음악감독엔 LUIZ ENRIQUE BACALOV,프로듀서엔 SERGIO BARDOT적.GIORGIO USAI가 입.6인조 편성.

@ 1978년 : ---->10집 [ALDEBARAN]발표(WEAT-56589)

@ 1979년 : ---->11집 [NEW TROLLS]발표(WEAT-56761)

@ 1981년 : GIORGIO D'ADAMO탈퇴.FONIT CETRA레이블로 이적.


> ## 12집 [FS]발표(FONIT CETRA LPX93)

@ 1983년 : 13집 [AMERICA OK]발표(FONIT CETRA LPX117) 신레모 가요제에 돌비와 함께 참가하여 라는 곡으 로 3위에 입상함.

@ 1988년 : DISCHI-RICORDI레이블로 이적함.


> ## 14집 [AMICI]발표(RICORDI SMRL6384)

이상으로 NEW TROLLS에 대한 글을 마칠까합니다.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마지막으로 에전에 한 잡지 기사중 최유길씨가 쓰신 NEW TROLLS에 대한 글을 올립니다.

[ NEW TROLLS의 실체는 전 멤버가 고루 갖추고 있는 우수한 기량과 작곡력,다양한 지향성안에 존재한다.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일관성이 없었던 것으로 비난의 소지가 다분하지만,긍적적인 시각 에서 보면 일단 음악적인 변화를 보다 여러 각도로 모색하였던 다 양함이 있었으며,그때마다 적절히 대처해나가는 융통성과 카멜레온 적인 경향이 남보다 뛰어났다는 것으로 단정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중심없이 흔들리는 것 같은 NEW TROLLS의 음악이 결코 공허 하지 않았던 것은 다각적인 형태의 작품들속에서도 섬광처럼 번득 이는 NEW TROLLS적인 기질-쉽게 도취하고 동화되어 가지만 항상 자 기중심적인 완고함을 잃지 않는-이 저변에 자리잡고 있었던 까닭이 며,그것은 변화무쌍한 자기완성에도 불구하고 늘 고정된 시각으로 주시하던 그들의 음악광들에게 확고한 신념을 심어 줄 수 있었던 요인인 것이다.............................................. ]

4 베스트[ | ]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531번 제 목:[감상] NEWTROLLS - NEWTROLLS 올린이:2169 (김진우 ) 98/03/02 12:50 읽음:263 관련자료 없음


NEW TROLLS - NEW TROLLS 1. SENSAZIONI 3:30 2. VISIONI 2:54 ★ 3. LEI MI DICEVA 3:08 ★ 4. UNA MINIERA 4:02 ★★★ 5. QUELLA MUSICA 3:44 ★★ 6. UNA NUVOLA BIANCA 3:32 ★★ 7. ANNALISA 3:50 ★★★ 8. CORRO DA TE 3:01 9. IO CHE HO TE ★★★★ 10. UN'ORA 2:45 ★★★★★ 11. DAVANTI AGLI OCCHI MIEI 3:12 12. VORREI COMPRARE UNA STRADA 2:05 ★ 13. HO VEDUTO 3:14 14. SIGNORE, IO SONO IRISH 3:14 ★ 15. TI RICORDI JOE? 2:48 ★ 16. QUELLA CAREZZA DELLA SERA 5:19 (LIVE) ★★★★ 17. ALDEBARAN 4:27 (LIVE) ★★★ 18. LA'NELLA CASA DELL'ANGELO 3:56 ★★★

★★★★★ : 앰범내 최고의 작품. ★★★★ ★★★  : 좋은 작품. ★★  : 들어줄만한 곡 ★  : 나쁘진 않은곡

TIME : 62:30

봄날 낮에 집에 걸오오며 이 앨범을 너무나 오랫만에 들어본다. 봄날의 향기와 햇빛에 흥분된 나 자신을 깨닫게 해준 음반이 여기있으니 그 앨범이 뉴트롤즈 - 뉴트롤즈 이다. 앨범 곡 중 이 봄과 아주 적절하게 잘 어우러지 곡들을 몇곡 소개 하기로 한다.

4. UNA MINIERA 감미롭기보다는 약단의 투박함으로 시작하는 일렉 기타의 연주와 보컬 진행상 1단이 3개로 2단도 3개..3단 도 3개... 이런 3에 3을 연거푼 뽑아 내는 뉴트롤즈의 초창기 싱글 곡 뒷 부분의 클라이막스는 마음을 짜는듯한게 이제 활짝 펼수 있다는 신호음인것 같다.

5. QUELLA MUSICA 아주아주 감미로운 멜로디와 어루러지는 멜로트론의 이쁜 음색이..어우러지며 그룹의 특색있는 코러스가 아주 맘에 든다. 중간에 들리는 관악기는 감초로 충분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뒷부분은 스켓 합창으로 끝까지 몰고 가버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좋게 볼수도 있지만...약간 어리숙하지 그지 없다. 하지만 앞부분의 인트로 로도 이곡의 진가는 창분히 발휘했다고 본다.

6. UNA NUVOLA BIANCA 역시 봄에 듣기 좋은곡. 안트로의 기타음색을 특별히 봄과 연관시킨다면. 동면에서 깨어난 동몰이 일어나는 모습이랄까? 어쨋던 싱글 앨범에는 모두 `창' 하고 빛나는 곡들이 많다.

7. ANNALISA 이곡을 듣고 나서 `아! 이앨범 정말 살 샀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트로는 앞곡의 인트로의 연장선이라고 해도 되겠다.. 하지만 앞곡과 달리 많이. 발라드틱한 곡이다. 역시. 연주 또한 감칠맛 나게 연주했다. 이렇게 팝적인 경향이 강하니 후기 뉴트롤즈가 팝에서도 성공할수 있었던 거 같다. 오르간의 연주와 피아노 연주는 누가했는지 꼭 나의 맘에 와닿아 따라하고싶은 충동을....^^ 언재나 느끼게 한다...아참..베이스 또한!! 엔딩은 고전적인 라이브식 끝맺음이다.

9. IO CHE HO TE 뜻은 모르지만 처음 가장 귀에 쏙 들어 온곡. 이곡도 발라드라고 해야하나?? 계속 되서 올라가는 건반이 새출발을 알리는듯한게 마음이 아주 가뿐해 진다. 간주에 건반연주가 일품이다.

10. UN'ORA 필자가 싱글 앨범수록곡중 왕성도가 높다고 생각한곡. 키가 매우 높은거 빼고는 다 좋다고 본다. 이곡 또한 봄과 아주 잘 어울린다. 아주아주 신나는곡. 어떻게 신나면 봄과 잘 어울릴수 있을까? 이곡을 들어 보면 안다.. ^^ 간주를 코러스로 꾸민게 돋보인다.

15. TI RICORDI JOE? 기타로 끝까지 몰고 하는 발라드다. 아마도 후기작품인듯한데. 그냥 두눈을 감고 감상하기에 좋은곡인거 같다.. 흔들의자에 두눈을 감고 햇빛을 받으며 나른히 오후를 즐긴다. 생각만해도 행복할것이다. 거기에 이곡만 더 흘러나온다면....

16. QUELLA CAREZZA DELLA SERA 오!! 후기작품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아닐수 없다..뭐...싱글 몇곡들어본게 다지만..--; 라이브곡인데. 너무나 잘 짜여진 팝송이다. 주리듬이 흐르고 기타의 이쁜 인트로 쏠로 뒤로 이은 니코의 보컬.. 환상...그자제이다. 곡이 라이브이기에 주위에 함성소리까지 들리는데 라이브이기에 이런느낌이 더 드는걸까? 라이브장에 와있는듯한 느낌.. 이곡도 봄과 연관시켜본다, 사람이 구름같이 모인 마로니에 공원에 중앙에 자신과 그의 밴드가 섰다. 그리고 이곡을 연주하며 잠시 하늘을 처다본다..앞에는 햇빛에 반사된 청중의 머리가 두눈에 들어 오며 이곡의 클라이막스에 도달했을때..함성소리. 정말....연주할맛 날텐데.....^^ 언젠가는 꼭 이곡을 연주할것이다.

17. ALDEBARAN 앞곡에 이은 라이브곡. 앞곡이 너무나 훌륭하기에 이곡이 많이 죽지만.. 이곡만으로는 더욱더 앞선 멜로디를 자랑한다. `알데바란 다' 하고 외칠때 그짜릿함.. 그래서 이곡이 타이틀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말고도 바로 뒷부분에 흐르는 보컬과 코러스가 주고 받는 부분은 정말 명곡임을 자처(?) 하는바이다...--;

18. LA'NELLA CASA DELL'ANGELO 이젠 꽃 봉어리가 벌어질만큼 벌어진 상태에서 이젠 안녕을 뜻하는것 같다. 그리 흥겹지만은 않은 곡 흐름이 아쉬움을 뜻하는거 같다. 꼭 쪽발이 곡같음...

이상 싱글 앨범 모음집을 흘터보며 때와 마추어 봄을 나타내 보았다. 어떤신가...한번 듣고 싶지 않은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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