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ISBN:8936420011

  • 저자 : 신경림(申庚林, 1935- )
  • 원제 : 農舞(1973)

정말 억지로 쓴 티가 팍팍나는 불성실한 리포트구만...-.-


한국 현대 문학의 이해 제 3차 과제물

雜 說

                                                        95319-041
정 철


사실 나는 시에 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때 수많은 시들을 배우고 공부하고(수험용으로) 했지만 내게는 시인들의 장난으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았다. 내게 그리 찡한 감동을 준 시도 고작 몇편이었고 왜 이따위 것을 기르치면서 진을 빼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몇편의 시는 나를 조금은 움직여 놓았다. 특히 서정주의 '화사'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몇 마디의 단어를 적당히 배열함으로서 그렇게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누구의 시를 배껴먹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하지만 여전히 시는 나와는 관계가 먼 것이었다.
대학에 올라와서 왜곡된 역사를 조금씩 배우고 지금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조금씩은 알아가고 하는 통에 나도 진실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듯 하다. 비록 과제에 밀려 보기 시작한 것일지라도 시집 '농무'는 그런 시기의 나에게 시의 참맛을 조금이나마 알게한 책이었다.
먼저 시집의 제목을 살펴보자. 나는 이것을 이렁게 해석했다. 農은 농촌, 태고로부터 이어진 삶의 터전, 우리가 언제고 다시 돌아가야할 정신적 귀향처이고 舞는 기쁨에 겨워 추는 춤, 舞天이라는 고대 제천의식에서 보이는 감사의 춤, 슬플때 추는 한에 겨운 춤이라고. 즉 우리 민중의 삶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여겼다.
시를 들여다보면 갖지 못한 이들의 소박한 삶이 잘 묘사되어있다. 재치있으면서도 그 이면에는 결코 재치로만 넘겨버릴 수 없는 슬픈 현실, 고된 현실이 존재한다. '겨울밤'에서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라는 구절을 읽으며 나에게는 무척이나 많은 상념들이 떠오른다. 사실 그들의 슬픔을 우리가 읽고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리포트 작성을 위해 이러한 시를 읽고 리포트를 제출한 뒤에 기분 좋다고 당구장이나 술집을 드나드는 소위 지성인이라 불리는 우리들의 모습은 무엇일까. 과연 술집에서 노동자와 농민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에 얼마나 진실된 신념이 담겨있을까. 나는 이러한 고민을 갖고 이러한 생각을 하는데도 왜 그러한 생활을 던져버리지 못하는가. 이런 글을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기특하군 하는 생각을 하는 양면성과 가증스러움은 왜 떨쳐버릴 수 없는가. 아 모르겠다. 다시 시로 돌아가자.
기왕 '겨울밤'을 건드렸으니 조금 더 들여다보자.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이 부분은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시골적 정취가 물씬 풍긴다. 특히 장날을 앞둔 저녁에 묵내기 화투를 치는 분위기는 그 누구에게나 정겨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반면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떻헐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여기는 새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지만 그것은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그 눈들은 그들 갖지 못한 이들의 비애를 하나씩 안고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은 앞서 횡설수설 했기에 넘어가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다오 우리를 파묻어다오.

힘겨운 삶을 살아가다가 가끔씩은 생활속에서 기쁨을 찾기는 하지만 밖을 내다보고 자신을 둘러보면 항상 주위에는 어려운 일 투성이며 자포자기적인 심정이 들기도 한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하지만 그러한 탄식도 곧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잘한 행복과 다시 돌아오는 괴로움의 세계인 현실로 곧 돌아온다.
글쎄 이것이 옳은 해석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고 그럼으로서 시의 참맛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삶의 진정한 모습이 있다. 결코 현실은 도피할 수 없다는 진리가 담겨져 있다. 글쎄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뭔가를 배웠으면 그것을 실천해야 진정한 앎이 될 수 있는데 무엇이 실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알고있는 것이 하나 있다. 삶이란 결코 낭만적이지 않으며 실천이란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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