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문예운동

제 목:[문화]산별시대,노동자 문예운동현황/과제 관련자료:없음 [288] 보낸이:문태준 (taejun ) 1998-08-05 01:17 조회:20

[출처]전국노동단체연합 98년 7월호

산별시대,  노동자 문예운동의 현황과 과제

김철호 전국노동단체연합 정책부장

1. 들어가며

작년 6월 문예기획을 추진한 이후 우여곡절 끝에 이제야 비로소 마무리 시 점에 왔다. 애초 6개월 정도의 시기를 상정하며 작업에 착수하였지만, 필진 확 보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줄곧 힘겹게 진행했다. 더구나 원래 계획했던 노동자 문화 환경(정세) 개괄, 기획토론을 통한 노동자 문화예술운동 전반에 대한 점검 과 대안형성을 위한 갈래 등이 부분적으로만 다루어지거나 고스란히 공백으로 남게 되었다. 그 동안 기획 추진 과정에서 솔직히 주변 반응들이 그리 '환영' 분위기는 아 니었다. 몇몇 동지들은 선진노동자를 주독자층으로 하는 {노동전선}에서 이러 한 기획이 '유효'한가 하는 제기를 했고, 심지어 기획 자체의 불필요함을 말하 는 동지들도 있었다. 선진 활동가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러한 '뻑뻑하고 냉담 한' 반응은, 기획 자체의 빈약함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운동 정서와 활동이 점차 '경화'되고 있는 전반적 분위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고 필자는 판단한다.

우리는 그 동안 '문예기획'에서 부족하지만, 현재 노동자 문예운동의 전반적 상황과 문제점들을 점검하면서 산별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대안형성을 위한 과 제 정리와 주체형성'을 위한 단초를 마련하려 하였다. 이번 에서는 90년 대 문화정세에 대한 개괄적 진단과 함께 산별시대를 열어 가는 노동자 문예운 동의 새로운 요구와 과제들을 정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해 고민하 고 대안을 내다보는 직업적 문예활동가의 손에 의해 을 정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필자 확보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감성'만 갖고 있는 필자에 게 이 무거운 과제가 떠넘겨 졌다. 매우 곤혹스럽고 부담감이 커서 몇 개월 동 안 원고를 정리하지 못했다. 이번 소결을 끝으로 기획은 마감된다. 기획 초기에 밝혔던 형식의 고정란 신설은 '정기성'이 갖는 부담과 필진 확보 의 어려움 등으로 당분간 힘들 듯하다. 대신 와 문화·예술과 관련 한 '에세이' 및 교양물을 기회가 될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싣고자 한다. 독자여 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어린 참여를 부탁드린다.

2. 총자본의 문화지배 전략과 대중문화의 여러 문제

1) '문화산업화'된 자본주의 - "당신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고 있다!"

TV와 다중매체를 중심으로 한 총자본의 사회적 지배력 확대와 '표준적 대

중문화'의 정착

96년 신촌로터리에서 노수석열사 노제를 치룰 때의 일이다. 한참 굿판이 진 행되고 있는 와중에서 장례행렬에 있던 필자의 눈은 굿판과 백화점 건물 위에 있는 대형 디지털 TV 영상광고를 오가며 매우 불안한 감정에 휩싸였다. 의식 적으로 노제에 시선을 집중시키려고 했지만, TV 영상은 필자의 시선을 계속 '훔쳐가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집회나 거리를 지나다가 대형화면과 마주칠때, 내 시선이 '빨려들어가고 있음'에 대해 야릇한 섬뜩함을 느끼곤 한다.

60년대부터 급속한 경제발전을 했던 한국사회는 8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줄 기차게 진행되어온 이른바 3S(Sports, Screen, Sex)정책과 소비적 향락 서비스 산업의 팽창 속에서 포디즘적 대량생산-대량소비 양식이 정착되어 왔다. 80년 대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컬러TV, 오디오와 휴대용 카세트(워크맨), 비디오 보 급의 대중화, 상업방송사·케이블TV의 등장을 매개로 상품시장이 대중의 일상 에 미치는 영향과 자본의 사회적 규정력은 날로 확대되어 왔다. 상품광고의 기 능은 과거의 것처럼 단순히 구매력 확대기능 자체에 그치지 않고 자본의 사회 적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상징'체계를 갖추고 대중심리 와 일상생활의 상당부분을 규정(장악)해 들어가고 있다.

TV 인기드라마의 대부분이 상투적인 삼각관계와 짜릿한 '외도'를 배경으로 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왜곡된 일상과 성의식을 조장한다. 계급·계층을 초월 한 사랑구도를 설정하여 대중이 현실에서 느끼는 이질성·위화감(적대성)을 무 디게 하면서 역으로 계급상승에 대한 허위의식을 만들고, 현실에는 눈비벼도 보이지 않는 재벌과 그들 가족의 '고귀한 품격'을 상징화시킨다. 그리고 적절한 액션(폭력 장면과 성적 자극)을 가미하여 대중들의 흥분과 심 리적 이완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그들의 시선(=시청률)을 줄기차게 빨아들인다. '용의 눈물'처럼 대부분의 '사극' 단골메뉴는 '지배와 복종의 이데올로기'이다. 봉건 지배계급의 눈으로 당시 사회상황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들에 의해 자행 되는 온갖 사회적 폭력과 차별적 신분질서를 그 시대상황보다 더욱 위계화시키 면서 파쇼적 카리스마를 정당화하고 대중의 보수적 심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 다.

뉴스, 시사토론회 등 공공성, 객관성, 공정성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영역은 어 떠한가? 과거 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시기 '보도지침'에 따라 방송과 언론은 권력의 충실한 시녀(=스피커)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이러한 것은 지금도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다. 방송과 언론은 권력 크기와 권력이동에 따라 그들의 카메라와 기 사 초점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며, 영원한 해바라기 역할을 한다. 정치권력은 기업(방송과 신문 등을 포함하여)에 대한 세금납부와 '상행위'를 둘러싸고 야기 되는 비리를 매개로 일상적 지배력(세무조사 등을 통해)을 행사한다. 이들은 상 호간 특권을 보장하는 밀월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각 종의 정보와 여론, 진실을 조작한다. 하루 3만 건이 넘는 각종 사건과 정보를 방송·신문사는 화면과 신문에 사회적 권력의 크기에 따라, 사회적 특권층의 구미에 맞게 가공하여 배정한다. 과거와 같이 정권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어도 이러한 행태는 이미 자체 시스템화되어 있다. 방송 및 보도용어가 이미 규격화 되어 있고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의해 '즉흥성', '현장성'도 조절(조작)된다. 치 밀한 사전 계산에 의해 방영시간과 기사 양, 카메라의 각도, 소리 첨삭 여부, 보도 태도 등이 결정되며, 이러한 기술적 조작을 통해 대상에 대한 영상적 이 미지와 멘트를 적절히 결합시켜 편집자가 의도하는 바를 객관성을 가장하여 시 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정보와 사실성에 대한 사전조작 혐의의 문제가 지난 96 년 연세대 사태(한총련의 '과격·폭력시위')에 대한 보도 과정에서도 부분적으 로 드러났다. 당시 폭력시위로 인한 시민불편을 토로하는 '모자 쓴 초로의 시 민'은 경찰병력 투입 직후 시위물품을 압수하는 장면을 통해 '경찰'임이 확인되 었다.

TV와 언론 등의 다중매체는 이미 지배세력의 사회적 지배이데올로기를 재 생산하고 이윤을 일상적으로 뽑아내는 독점적 '무기'이다. 공중파와 지면 등 다 중매체를 통해 퍼붓는 '일방성'의 메커니즘은 이미 지배자들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공적·사적 영역의 구분없이 넘나들며 대중의 시선과 생활을 장악하고 있 다. 자본은 공공의 이름으로 치루어지는 각종의 국가 행사와 방송·언론 '협 찬', '후원'과 뒷거래(로비)를 매개로 거대한 부패 구조를 항상화시킨다. 이러한 부패 구조는 일선 행정·경찰기관까지 하나의 거대한 띠(=공생관계)를 이루며 사회를 규정하는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몇 년 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이 사회문제화된 때가 있었다. 당시 제주도 땅의 상당수를 소유한 한진그룹(대한항공)은 마구잡이로 '개발사업'을 주도하면 서 제주도의 생태계와 도민 생존권을 파괴했다. 그들은 도민들의 지탄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방송사에서 주관했던 환경보호 공익광고 프로그램에 태연하게 후원자로 나와 '환경보호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공익광고의 후원 과 '기업이미지' 광고를 통해 자본은 자신의 반인간적 이윤추구의 본성에 대한 '은폐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친근성'을 매개로 대중들의 호 주머니를 털어가며 그들의 일상을 통합·표준화시키는 것이다.

시청률은 광고(=돈)와 밀접히 연관된다. 공중파와 다중매체를 통해 발생하는 선전-구매 효과를 노리는 자본의 눈길은 쉴새없이 움직인다. 드라마 주인공이 착용한 '머리핀' 등의 장신구, 방송에 쓰여지는 온갖 소품과 무대 장식물들은 인기와 함께 바로 상점 진열대에 나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튀는 광고'에 출 현했던 연예인들은 연예프로그램에 나와 우스꽝스런 몸짓을 다시 보여주면서 '주가'(인기관리)를 올리는 한편, 사적자본의 이미지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하게 된다. 그리고 연예·스포츠계 배후에 우후죽순처럼 널려있는 잡지와 스포츠신 문은 스타들의 스캔들을 추적하여 조작 공개하고, 선정적 사진과 표제를 적당 히 담아 시장에 쏟아낸다. 그러면 피곤한 일상을 대면하고 싶지 않은 많은 사 람들은, 스포츠와 연예계 주변에서 드러나는 그날 그날의 '사건'들을 안주거리 삼아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결국 표준화된 대중문화의 형성과 이를 매개로 한 상품 수요 창출의 확대를 통해 자본은 스스로의 사회적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광고는 상품의 실질적인 유용성과 사회적 필요에 의해 소비창출을 직접 결과하기 보다는, 오 히려 '조작된 이미지'에 의해 대중의 일상적 삶과 사고 패턴을 규격화시키면서 동시에 왜곡된 소비욕구를 자극시키는 반복적 '세뇌' 효과를 발휘한다. 자본은 '스타'를 매개로 카리스마적 우상을 상징화시키고 스타의 이미지를 자기상품에 직접 연결시켜 대중들의 '열광'을 소비욕구의 에너지로 끊임없이 전환시키고 있 다. 80년대와 다르게 90년대 대중문화 현상을 특징짓는 요소는 '열린음악회', 전 국노래자랑 등 각종의 라이브 음악제의 활성화, 노래방 문화의 형성, 패스트푸 드점, 패밀리레스토랑을 매개로 한 외식 산업(문화)의 등장, 자동차 소유의 일 반화 및 레저산업의 확대이다. 과거 사회적 지배계급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위 로부터 대중을 동원하는 양식이 있었지만, 대부분 상투적인 지배이데올로기(반 공주의와 노사화합주의)를 직간접 선동하는 장으로 활용되면서 대중의 반발감 만을 불러와 효과적인 유인기제로 활용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사회 소비구조의 전반적 변화와 맞물려 대중(중간층을 중심으로)의 '문화'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는 한편, 피곤한 일상에 대한 탈주의 욕망 또한 강 화되었다. 자발적 참여와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주류적 대중문화는 80년대식 '상업'의 수준이 아닌 거대한 하나의 '산업화된 시장'으로 등장하면서 대중의 소비욕구를 분출시키도록 하는 한편, 대중의 일상에 대한 탈주 '욕망'을 해소하는 놀이 공간으로 등장하고 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양식의 일반화로 인한 상품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사회 적 관계가, 상품의 유통-교환관계처럼 물(物)과 물(物)의 사물화·도구화된 성 격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환경의 근저를 구성하는 상품질서의 전 면적 재편이 갖는 영향력은, 90년대 접어들면서 80년대 치열한 '계급투쟁의 시 대'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주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 90년대 계급투쟁 지형의 변화와 노동자 생활·운동 양식에의 영향

기업문화운동, 생산·재생산 과정의 통합적 운영을 통한 노동자 대중에 대

한 일상지배력 확대

상품-시장관계 형성의 전면화와 이를 매개로 한 생산-소비패턴의 전반적 변 화가 대중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영향은, 노동자의 경우에도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87년 투쟁을 통해 우리 노동운동은 중간관리자층을 중심으로 행사되던 자본 의 현장통제를 무력화시키며,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작업장 수준에서나마 주도 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본의 신경영전략 공세 는, 노동자의 상호경쟁과 분열을 조장하고 노조를 통한 단결을 구조적으로 위 축시켜 왔다. 이른바 '기업문화운동'으로 표현되는 자본의 노동자 통제의 새로 운 양상은 내용적으로 기업별 종업원 의식을 재확대하고, '창조성-자발성'의 이 름으로 자본의 이윤창출에 능동적 요소로 노동을 동원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 다. 기업문화운동은 '생산과정'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 확대를 목적하고 있지만, 이는 외부로부터의 '통합효과'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공장 내 생산과정과 공장 밖을 중심으로 한 생활의 재생산 과정이 노동자의 일상을 규정한다. 자본 은 광고와 상품소비를 매개로 표준화된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한편, 생산과정에 대한 지배력 형성을 통해 이윤창출의 계기를 구조화하면서 사회적 통합력을 높 여나가는 것이다.

90년대 자본의 일상에 대한 노동통제 양상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존 80년 대의 병영적 노동통제의 경직성에 국한되지 않는 다차원적인 성격을 갖고 있 다. 작업장 생산체계(팀제 등)와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관리를 통한 고용양식 의 변동, 자본편의적 인사고과 체계의 수립과 능력주의적 임금체계, 인센티브제 실시 등을 통해 작업장 수준에서 노사관계의 개별성을 더욱 확대하면서, 작업 장 내 지휘 통제체제 위계질서를 재조정한다. 특히 자본은 전산화·자동화 효 과를 활용하면서 수량화된 '데이타'를 근거로 부서 및 성원의 작업 성과와 동선 에 대한 작업통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일상관리의 양상은 작업장을 넘어 노동 자 가족의 일상사에 대한 개입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조사 축전 보내기에 서부터 각종의 생활·체육·문화시설을 매개로 한 일상적 관리와 유인효과를 통해 '가족주의'를 한층 강화하면서 결국 '노조'와 자치단위를 통한 노동자들의 단결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노동자·민중운동의 집단적 주체 형성과 이를 통한 자본과 정치권력의 전횡 에 대한 저항과 투쟁은, 대략 91∼92년까지 사회적 파급력을 갖는 큰 힘으로 작용하였다. 80년대 군사정권의 병영적 사회통제와 생존권 억압에 맞선 노동자 계급과 대중들의 저항은, 한치의 타협과 후퇴를 용인하지 않는 파시즘적 정치 권력과 자본에 대한 적대성에 기초해 있었다. 타협과 절충의 여지가 거의 없는 계급투쟁의 조건으로 인해 노동자-민중의 '집단성'에 의한 투쟁은 직접적인 물 리적 마찰 속에서 '정치권력' 자체의 문제로 전화되었고, 정권과 자본은 투쟁을 통해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열려진 계급투쟁의 공간 속에서 대중투쟁 이 '노동조합'의 합법화된 활동공간을 중심으로 일상투쟁과 사업으로 전환되면 서, 점차 자본 및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도 '타협의 여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자본과 권력에 대한 투쟁의 '직접성'은 다차원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대중 의 생활적 요구의 확산과 계급투쟁 부면의 확장 속에서 노조를 통한 합법적 활 동의 활성화는 역관계의 변화 속에서 자본 및 권력과의 '타협 공간'의 확대 가 능성을 만들었다. 특히 김영삼 '문민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진보진영 내 포진되 어 있던 지식인그룹의 상당수가 변혁운동의 전망(전략적·체제대안적 패러다 임)을 포기하고 시민운동과 보수 정치운동으로 흡수되기 시작했고, 활동의 성 격도 '체제 내적 구조개혁'을 주된 목적으로 설정하기 시작했다. '개혁'의 이슈 가 확대되고 정부와 자본이 주도하는 사회영역에 대한 '참여주의'가 활성화되는 가운데, '법적 테두리' 자체에 중심을 둔 제반의 투쟁과 일상적 사업들이 전개 되기 시작했으며, 문화운동 영역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일반된 현상으로 확대되 었다.

"총검으로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지만, (지배계급은)그것만 믿고 앉아 있을 수 는 없다"는 지적 처럼, 지배계급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기득 권을 항상적으로 유지·확대할 수 있는 최적 조건을 만들려고 한다. 90년대 초 사회적으로 병영적 통제양식의 후퇴와 함께 신경영전략과 기업문화운동의 확산 을 계기로, 자본은 노동에 대한 새로운 지배권을 '입체적'으로 확립할 수 있었 다. 90년대 초반부터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제기된 '일상활동, 현장활동의 강화' 이슈는 자본의 신경영 공세에 직면하여 역관계가 반전되는 상황에 대한 조직적 이고 일상화된 대응의 필요성에 대한 주체적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성'의 영역으로 확장된 자본의 사회적 개입양상은 생산과 유통, 소비영역 에 걸친 전일적 지배력을 구축하는 힘으로 작용한 반면, 노동자 민중운동 등 진보운동 진영의 '일상성'에의 천착은, 자본의 그것에 대한 독자화된 영역을 구 축하지 못하면서 계속되는 '분해'와 지배질서 내부로의 '흡수' 위험에 노출되어 왔다.

제 목:[문화]산별시대,노동자 문예운동현황/과제2 관련자료:없음 [289] 보낸이:문태준 (taejun ) 1998-08-05 01:18 조회:16


3. 90년대 노동자 문예운동의 현황과 문제점

노동운동의 정체 속에서 '도구론적 문화운동'의 확산과 계급적 문화정책의

부재

1) 진보적 문화예술운동의 분화와 재편

90년대 초반 특히 '문민정부'의 등장 이후 진보적 문화예술운동은 80년대 투 쟁 속에서 형성했던 성과를 힘있게 보듬어내지 못하고 운동의 전반적 혼란과 정체 속에서 자기 존립 근거와 내용적 투명성을 상당부분 잃거나, 혼돈 속에서 해체·분해되는 과정을 밟기도 했다. 87년 이후 공개적인 전선공간의 확대는 90년대 접어들면서 노동운동과 진보 진영에게 보다 일상적으로 확장된 실천활동의 필요성과 개입을 요구했고, 노동 자 문예운동 또한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왔다. 김영삼 정권의 등장 이후 민 중운동 내에서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으로의 분화와 참여를 통한 '구 조개혁주의'가 확산되면서, 진보진영 문화예술운동의 총아로 대표되던 민예총이 '사단법인화'되었다. 80년대 말 '투쟁의 바람'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노 동자·민중문예 창작집단(직업적 역량)의 경우도, 90년대 초반 '일상성'과 '전문 성'에 대한 구체적 개입과 전환의 계기를 채 확보하기도 전에 이념과 운동 정 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서 전선과 조직활동으로부터 이탈하거나, 새롭게 제도화 된 지배문화 영역으로 '흡수'되기도 했다.(주1:한편 80년대 집단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노동자 대항문화의 새로운 전형으로 꼽히던 걸개그림, 벽화, 판화운동 등은 90년대 초반을 경유하면서 거의 자취를 잃거나 명맥조차 찾기 힘들어진 상황이기도 하다. ) 물론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상성에 대한 '개입의 확장'과 '대안의 구체성'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저항·대항·대안으로 특징지어지는 진보적 예술운동의 자기 정체성의 확보와 자기 기반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와 같은 주장의 정당성은 보증되지 않는다. 90년대 초반 전반적인 운동과 맥을 같이 하며 진보적 문예운동 또한 자기 중심의 '해체기'를 맞이하면서, 민중운동으로부터 시민운동 세력의 분화가 이루 어지듯이, 비슷한 '분해'의 과정을 밟아 왔다. 운동의 근본 목표와 '현장적 근거' 를 상실한 상황에서 지배문화에 대한 저항의 한 방편으로 '문화적 게릴라주의' (주2:필자가 이를 '문화적 게릴라주의'로 지칭한 이유는 자신의 문화예술적 행 위의 이념적·전략적 근거를 '사회해방의 정치 전망'과의 상관성 속에서 위치짓 지 않거나 간과(혹은 불분명)하는 태도, 주요한 '투쟁' 대상을 사회 내부의 '주 류'로 굳어진 기성체계(기성 '운동권'의 운동노선과 활동까지 포함) 일반 자체에 놓거나, 실천의 조직화 대상을 계급적 경계와 분리시키거나 불특정 다수의 다 차원적인 '저항, 불만'(특히 신세대의 문화행태)에 근거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일 군의 경향 때문이다. 이를 대표하는 경향은 일군의 포스트주의적 문화담론주의 자들이며, ROCK의 형식이 갖는 '추상적 진보성'에 대한 평가절상을 중심으로 언더그라운드와의 결합 속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뮤직센타 21세기>의 경우도 이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현재 청소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다차원적인 '저항'과 '불 만' 그 자체로는 그 어떠한 이념적 진보성이나 대안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우 리가 80년대 투쟁 속에서 획득한 '이념'과 '계급 중심성'의 화두를 희생하면서 굳이 '해방'과 '저항'을 새롭게 제기할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도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속에서 사회적 비전과 개인의 삶을 연결시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주의적이고 '대상'이 불분명한 채 '내지름'에만 익숙해 있는 일군의 '신세대 대중문화 현상'에 대해 말이다. ) 경향이 확산되었고, '현장성'의 화두 를 유지하던 집단 또한 수세적이고 고립적인 상황을 탈피하지 못했었다.

96년 말 노동문화월례포럼 실행위원회에서 "민중가요는 죽었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제 설정을 했던 토론회는 90년대 초반 '해체와 분해'를 거듭해 온 노동자·민중문화운동에 대한 현실 진단과 발전적 위상 및 대안 확보에 초 점이 맞추어져 있었다.(주3:당시 초청 발제자로 나온 <21세기 뮤직센터(김종 휘)>는 "정치적 전망과 그 조직적 질서에 구속받는 민중가요의 내적 구조는 노래운동의 독자적 발전 구조를 갖추는 문제와 상당부분 충돌하였으며,…강렬 하고 전면적인 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발전 구조를 갖추지 못함으 로써 노래운동의 자생력과 토대를 확립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 한다. 그리고 "90년대는 80년대 민중가요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에서 출발할 것을 강제했으며…민중가요권의 경험과 비주류 대중가요권의 경험이 교류되면서 창조적 충돌을 일으킬 때, 여기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발 전적 방향의 주동력으로 연결시켜야 할 것"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뮤직센타21 세기는) 80년대 민중가요의 성과와 한계 속에서 관점, 방식, 장르의 전 방면에 걸쳐서 새로운 실험을 전면화하는 역할을 추진하기 위해 기존의 전형과 모델들 을 해체하고 새로운 양식과 메세지를 실험하는 일에 주력할 것"임을 밝혔다. )

필자는 개인적으로 90년대 ROCK을 둘러싼 문화 현상과 경향에 대해 그리 거리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7-80년대 서구의 ROCK은 청 소년과 2∼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수요층(매니아 문화)'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뮤직센타 21세기>등을 비롯해 새로운 신세대문화와 대중음악 내 비주류 저항세력(언더그라운드)의 '진보성'에 착목하는 사람들의 단골메뉴는 90 년대의 '신세대'의 화두이다. '논리보다는 감성, 집단보다는 개인의 개성과 자유, 삶의 지향에 대한 고민보다는 취향을 갖는 새로운 세대'의 형성에 주목하고, 대 중문화 속에 속한 그들이 갖는 새로운 '저항'의 요소를 중요시 한다. 그러나 우 리는 민중음악에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던 70년대 포크가 80년대 들어서면서 "단조 행진곡"에게 자리를 넘겨준 원인이 80년 광주항쟁으로 대표되는 격렬한 대중의 정서-곧 시대상황에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사회를 움직이는 주된 동인은 역시 자본의 운동이다. 80년대는 군사 파시즘의 사회에 대한 병영적 통제의 시대 상황 속에서 노동자-민중이 자신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을 통해 계급적 주체로 역사에 등장하던 시기다. 앞서 지적했듯이 자본의 사회적 규정력은 80년대보다 더욱 월등하여 마치 손도 쓸 수 없는 '거대 공룡'과도 같다. 그러나 90년대는 동시에 노동자· 민중운동의 집단적 정체가 형성되어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새로운 대안'의 문제가 이러한 사실성 자체에 착목하지 않고 대안의 근거로 '신세대'의 새로운 저항성에 착목한다면, 이는 역사를 다시 70년대 포크의 시대로 되돌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포크와 ROCK의 차이이며,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 '비주류 저항문화'는 '지배문화의 하위문화'의 의미를 크게 벗어 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97년 총파업 투쟁을 계기로 분화되었던 진보적 문화예술운동은, '총파 업 문화제' 등을 통해 새로운 조건을 마련하게 되었다. 총파업 중심으로 만들어 진 '노동자 중심의 민주주의 투쟁', 범국민적 연대투쟁은 기존 운동적으로 분화 되었던 세력 전반을 비록 단일하진 않지만, 새롭게 연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문화예술운동 또한 이러한 조건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가능 성을 확인하였다. 최도은, 꽃다지 등 노동자 민중문예운동단체와 안치환, 윤도 현밴드, 이정렬 등 대중가요의 영역으로 진출한 주체들, 민중문예운동과 기성의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ROCK을 매개로 활동하는 천지인, 메이데이, 이스 크라 등의 그룹, 그리고 다양한 문화집단들이 이 과정에서 함께 참여하는 계기 가 되었다. 그리고 96년부터 진행되기 시작한 [자유]공연 등은 분화된 노동자 민중문화와 '비주류 저항문화'의 접맥과 저변 형성을 위한 '또다른' 시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재적으로 문화예술의 사회성과 문화활동가·예술가들이 자신의 존재형태, 활동의 지향이 "무엇을 목표로,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지", '연대의 구체적 세력이 누구인지'를 묻고 답변을 만들어 가야 할 필요성을 다시 확인케 한다.

2) 기간 노동자 문예운동의 성과와 한계

70∼80년대 우리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성장에 '문화매체'가 차지하던 비중 은 매우 컸다. 당시 자주적인 노조활동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 속에서, 선진활동가들은 단사와 지역 차원에서 풍물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패'를 매개로 민주노조 건설과 노동자-민중연대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특히 87년을 전후하여 자주적 민주노조운동의 중심 근거를 획득하고 확장하는 과정 속에서 파업과 집회문화가 일상화되고 이를 중심으로 한 각종의 문화행사 등을 통해 진행된 다양한 문선활동(풍물, 투쟁가, 노가바, 율동, 연극, 영상 등을 매개로 한)은, 90년대 초반까지 대중의 투쟁 욕구와 집단적 정서를 조직·대변 하는 무기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군사파시즘 체제의 사회적 착취와 억압, 그리고 허위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지배문화에 맞서 사회적 모순과 민중현실을 적극적으로 폭로·비판하고 민중의 투쟁과 대안(주체)형성을 위한 하나의 대안적 힘으로 작용하였다. 87년 이전 시 기까지 '노조' 자체가 경원시되던 사회 상황 속에서, 대학과 진보적 지식인 집 단을 중심으로 탈춤, 마당극, 풍물 등 '민중·민족문화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지 식인 집단의 목적의식적인 현장 이전과 조직화된 실천활동의 계기 속에서 노동 자·민중들의 권리의식 자각, 조직화의 유의미한 매개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리 고 이러한 실천은 87년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등 기층 대중운동의 조직기반이 확장되는 상황에서, 대중조직운동의 '자기근거화'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지배문 화로부터 분립된 대중적인 대항문화의 일상화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노 조체계를 중심으로 문화국(부)-문선대-문화패 활동의 골간과 근거들이 세워진 것이다.(주4:한편 얼마 전 노동자문예교육협회에서 발간했던 87년 노동자 대투 쟁 10주년 기념 노동문화 자료선(노동문화실무사전, 놀이율동비디오 등)은 그동 안 진행된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노동자문화예술운동의 성과를 집약시키고 전형화된 틀로 정리해낸 소중한 성과이기도 하다. )

한편 87년 이후 노조운동을 중심으로 한 자본과 권력에 대한 투쟁이 일상화 되면서 노동자·민중문화예술운동은 구체적인 '정세에 긴박된 실천'을 강제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87년 이후 최근까지 '집회와 투쟁'을 중심으로 한 '문 선문화'의 활성화를 가져다 주었다. 이러한 문선문화 중심의 실천은 투쟁을 위 한 선전선동의 효과적인 수단과 무기로 작용하였지만, 일상에서 제기되는 대중 의 정서와 삶, 다양한 문화적 욕구 전반을 함께 아우르며 발전적인 교통 관계 를 수립하지 못하였으며, '정세의 후퇴'와 더불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90년대 초반을 경유하면서 이는 현실의 문제로 드러나고 있었다. '기동전'을 중 심으로 전개되는 문화예술활동은 결국 현장 문화패원과 전문연행집단들의 현실 적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문화예술 행위의 주체로서 갖는 문화적 욕구(창작 활 동 및 전문화 등의 욕구)가 삭감되고, 노조에서 주최하는 각급의 집회와 행사 에 일방적으로 동원되거나 '노가다 부대화'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결국 이 러한 현상은 90년대 초반 정세가 수세적인 상황으로 반전되는 상황에서 전국에 걸쳐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던 전문 문예단체와 현장 및 지역 문화패조직의 해체 를 가속화하고 일상적인 대중적 참여와 호흡을 곤란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 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문선중심의 활동' 자체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만으로는 많은 한계가 있다.

아무튼 최근까지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노동자(조합) 문예운동 내에서 제 기되는 핵심적 문제와 그 대안으로 '문화패와 문선대의 분리정립'과 문화패연합 의 건설 과제가 제출되고 있다.(주5:"조합원들의 인식에 문화패=문선대라는 등 식을 심어주게 되었고 조합원들이 문선활동에 대한 부담을 느껴, 문화에 대한 욕구는 가지고 있으면서 문화패 활동을 꺼리게 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이 것은 문화패 재생산의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고 이 문제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 다."(이창환,[민주노총-산별연맹시대의 노조문화사업의 과제], {노동전선}97년 10월호, 106∼107쪽) 노조의 문화사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김창곤, [노동조합 문화부 사업의 현황과 과제], {노동조합 내 문화사업 위상 정립을 위한 대토론 회 자료집}을 참조하기 바람.) 그리고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노동운동 내 문화에 대한 '도구론적 인식'에 대한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 산별건설과 맞물린 노동문화정책 수립의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전국노동조합 문화부장·문화패장 연합수련회>와 6월 등은 이러한 주체적 상황과 요구에 대한 해결의 필요성에 의해 적극 조직되었다.

노조집행부가 문화패를 산하기구로 바라보면서 사업을 상명하달식으로 내리 는 문제, 활동가들 내부에 문화패와 문예전문단체가 동원 대상화되고 행사를 위한 쓰임새(도구)로 활용되는 문제 등의 난맥상은 우리 운동 내에 이미 일반 화된 현상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무대 위에서는 귀족들의 만찬을 빛내는 역할 을 하지만, 신분 때문에 식당 뒷문으로 출입해야 했던 '모차르트'같은 근세 서 양음악가들의 비애처럼 집회(행사)를 위한 동원기제로 취급당하는 현실이다. 이 러한 '경화된 분위기'는 집행 간부들의 활동에 '이벤트적 발상'을 불러오고 의도 하지 않지만 활동가 내부의 분할과 대중과의 분리를 확대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중동원'에 대한 부담감은 역으로 편의적 사고로 치닫게 되어 '대중적 지명도'에 따른 주류 문화의 연예인들을 원칙없이 부르면서 노동자 문화의 기 본 정신과 조합재정을 낭비하거나, 문화행사와 프로그램을 집회의 구색을 갖추 기 위한 시간 때우기, '오락프로그램'으로 전락시키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진 다. 그리고 정세적 실천에 긴박된 결과 전술적 대응의 필요성이 강조된 나머지 총체적인 문화정책의 생산과 이를 위한 중장기적 계획과 이에 입각한 현실의 개입이 사실상 부재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산별운동과 정치세력화에 대한 주체적 요구가 확대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근거와 저변의 흐름을 일상성의 영역 속에서 구체화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노동문화정책은 노동자대중의 건강한 삶의 욕구와 정서를 함양시키고, 계급 적 단결과 사회적 대안을 만들어가는 데 주요한 에너지이다. 사회적 주류인 자 본주의의 퇴폐적·소비향락적 대중문화에 잠식되지 않고 노동의 건강한 공동체 정신과 사회적 연대, 계급적 각성과 문화적 욕구를 함양시키는 과정에서, 대중 은 자신의 일상과 '투쟁'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대할 수 있으며, '표준화된 대중 문화'에 대한 분별력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90년대 초반 이후 자본의 신경영전략 및 기업문화운동 공세 맞선 투쟁은 활 발하게 진행되었지만, 대중의 일상에 대한 개입과 대안적 실천을 전개하지 못 한 결과, 자본의 일방적이고 총체적인 공세에 밀려 작업장 안팎으로 대중의 단 결력·투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또한 민주노총 건설을 경과하면서 최근 2-3년 동안 민주노조운동 내부는 산 별과 정치세력화로 방향의 초점을 맞추어 가고 있으나, 상층 지도부를 중심으 로 관료주의와 개량주의적 경향이 확산되면서 조직운동이 경화(硬化)되는 현상 을 우리는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경화현상은 관료주의, 개량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일선 활동가층 내에서도 동시에 나타난다. 현재 노동자 문예운동은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노동운동을 사회적 대안세 력으로 발전시키는 공동체 정서를 함양시키는 교육과 선전·선동, 조직화와 더 불어 대중 및 활동가들의 문화적 욕구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활동가 내부로부터 운동 전반에 걸친 '혁신작업'과 맞물려 진행되어야 하며, 일선의 문화예술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대안의 계기를 확보할 때 가능할 것이다.

4. 산별시대, 노동자 문예운동의 새로운 전망 수립을 위한 과제와 단상

취지글에서도 밝혔듯이 산별노조운동이라는 것은 단순한 노조운동의 외형적 규모 확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동일성에 기반한 정체성의 확보와 자기 세력화에 있다. 그리고 이는 계급적 정체성 형성에 입각한 정치세력화 과제 실 현을 위한 주요한 근거로 자리매김한다. 지난 97년 1월 총파업 투쟁을 계기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산별노조 건설의 필요성이 추상적 당위의 수준을 넘어 현실의 구체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 다. 총파업을 계기로 노동운동이 전체 사회와 진보운동 내에서 차지하는 중심 적 역할과 중요성이 재삼 확인되으며, '노동자 중심의 민주주의투쟁'의 새로운 가능성은 민중운동 및 진보운동의 운동방향에 주요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노동운동에는 신자유주의라는 독점자본의 고용파괴 공세와 노동자분단 화에 직면하여 '생존권 사수'의 문제가 핵심적인 관건으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작년 말 IMF 사태 이후 400백만 명에 육박하는 실업자층의 증가와 비정규직의 확산 등 고용조건 악화와 실질 임금축소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른바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계기 속에서 사회적 양극화 현상 또한 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90년대 초반 노동자-민중운동의 침체 속에 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던 '미시적 문제'의 새로운 해체기를 결과하고 있으며, 80년대와 비슷하게 '체제의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재편의 새로운 방향 설정과 대안적(정치적) 주체의 재형성'의 문제를 새롭게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정세) 변화에 대해 능동적인 대안과 과제설정에 입각한 실천의 경주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며, 특히 노동자문예운동의 새로운 역할을 요 구하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 노동자 문예운동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사회적 지배문 화로부터 분립된 대중적인 대항문화의 일상화된 토대 마련에 있었다는 점이 다. 그러나 집회와 투쟁공간을 제외하고 이러한 성과는 상당히 유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현재 노동자 문예운동은 투쟁과 일상을 아우를 수 있는 노동문화 정책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주6:문화정책의 연구 방향의 갈래 정리는 신재걸, "노동자 문화정책의 범주와 연구방향",[노동자문화정책수련회자 료집]을 참조하기 바람. ) 특히 90년대 이후의 대중문화와 기업문화운동 등에 대한 '대안' 및 대응의 구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문화 전략과 전술의 마련이 시 급하다. 그리고 산별적 형태의 운동 형태를 구현하는데 있어 단순히 산별의 조 직과제에 문화적 요소를 끼워넣는 것이 아니라, 조직운동과 노동자 개별의 일 상적 삶과 정서를 연결시키고, 산별 정신에 입각해 노조 안팎의 경계를 발전적 으로 해체·재편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연구·교육사업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 리고 동시에 이를 위한 전문연구역량과 직업적 문예활동가들의 역량이 배가되 고 문화패, 동아리와의 일상적 교감을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앞서 제기되었던 문예에 대한 도구주의적 편향을 시급히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의 문화"가 노동운동 및 진보진영 내에서 시급히 정립되어야 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도구론적 인식은 매너리즘, 조합주의와도 밀접히 연관 된다. 87년 이후 투쟁이 일반화된 현상으로 자리매김 되면서 활동가들의 관성 화된 투쟁과 일상사업의 패턴을 구조화시켰다.(주7:규모중심의 사고는 '대중동 원'의 문제를 중심으로 즉자적인 '판짜기'를 강제하게 되며, 활동가들의 나쁜 관 성을 확대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 우선 일선 간부와 활동가들이 문화와 문예운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전 제되어야 한다. 노동자 문예운동 내부에서 현안으로 제기되었던 문선대-문화패의 분리정립 의 문제는 (조직적인 주체 형성과 관련하여) 조합주의의 관점과 틀로 축소되어 서는 안되며, '산별 및 민중연대 정신'에 입각한 대안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90 년대 초반 이후 노조운동 내에서 일반화된 관성, 즉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모 든 사업을 집중하고 노조 외부 단위를 '활용'하는 관점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노동조합을 통해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로 모든 것이 해결되 는 것이 아니며, 이같은 관점은 은폐된 기업별주의로밖에 볼 수 없다. 최근 제 기되고 있는 지역문화패연합운동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주요한 단 초이며, 새로운 계기로 볼 수 있다. 현재 단체-문화패-노조문화부의 위상 정립 은 '지역'이라는 연대의 공간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어야 하며, '문선대'와 '문화패'의 위상 정립의 문제도 이에 근거해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산별 문예운동의 주체형성과 맞물려 주요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지역문화사업이다. 작년 5월 노동문화월례포럼 실행위원회는 산별시대 노동자 문화운동 연구의 일환으로 '지역문화 발전 방향과 노동조합의 역할'을 주제삼아 포럼을 진행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노동자 문화센터' 건립의 필요성이 제출 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노동자 문예운동 내에서 제기되는 지역문화센터의 경 우 앞서 제기한 '지역문화패연합'의 활동과 상관성이 매우 크며 문예운동의 일 상적 근거를 단위현장을 넘어 지역으로 이전시키며 연대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민주노총 및 산별연맹의 조직화를 계기로 그동안 영역, 부문별 실천단위들 사이에서 '노동회관 건립' 요구가 제기되어 왔다. 산별운동은 '사회운동을 통합 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주8:예를 들어 산재추방운동의 경우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간 노조(민주노총)-피해자단체-전문단체가 결합된 '산재추방운동연합' 을 구성하기 위한 논의를 최근에 와서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운동체 를 꾸리는 것과 함께 과거에 추진했던 '산업안전보건센타'와 산재전문병원 건립 문제 등도 주요 현안이다.) 그러나 현재 노동운동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진 보진영 내 각각의 영역, 분야별 운동은 산별과 정치세력화라는 계기 속에서 상 호 조율되고 유의미한 관계로 조직화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공간 형성·통 합을 매개로 한 사회운동의 새로운 연대틀의 확장을 위한 '노동회관' 건립은 향 후 1∼2년 사이 중요한 전환점을 부여할 것이다. 현재 문화센터 건립과 관련한 문제의식은 개별성의 영역에서만 고려될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 내 공통의 과 제를 조직함을 통해 새롭게 확대될 필요가 있다.(주9:몇 년 이후를 한번 상상해 보자! 5층 규모의 노동회관(지역별) 건물 안에 산업안전 보건센터 지역추진위 가 있으며 이곳에는 산재 상담과 간단한 물리치료 시설과 산보센터 운영주체의 정기적 회합과 사업을 도모하는 회의공간을 갖추고 있다. 다른 층에는 지역 노 동자-민중들을 대상으로 교육 및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강당과 강습 공간이 있다. 또 다른 층에는 탁구와 다트, 헬스 등을 할 수 있는 실내 체육시 설과 공간이 있으며, 지하에는 매점과 차(호프) 한 잔 마실 수 있는 휴게실이 있으며, 이 휴게실 옆에는 음악감상실이 있다. 이와 같은 상상은 충분히 현실화 될 수 있는 하나의 '문화공동체' 그림이며, 운동의 교류 폭을 확대하면서 활동 가와 대중들의 일상적 문화형성의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

5. 마치며

사회의 지배적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데올로기)이다. 90년대 초반 노동 자-민중문화운동의 퇴조 현상은 한편에서 80년대 노동자-민중투쟁의 확장 및 위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노동자문예운동에 최근 제기되는 문제점은 그동 안 민주노조운동이 자기 성장 과정 속에서 노정했던 내부적 문제점들과 편향을 반영하는 것이며, 정세적 조건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중문화는 자본의 이 윤을 형성케 하는 시장인 동시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헤게모니의 장이며, 자본 과 지배권력은 시장과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체계에 대한 장악을 기반으로 대중 문화를 형성하면서 사회적 착취질서를 공고하게 만든다. 변혁의 근본적 의미는 단순한 '빅뱅'이 아니라 사회구조 자체의 완전한 재편을 의미하며, 이는 기성의 지배질서 '타파'와 대안적 '창조'행위가 상호 결합된 '현재를 지양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대안세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배세력 으로부터 분립된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조직·투쟁적, 문화적 대항기제를 형성 해야 한다. 노동자 문예운동은 대항기제, 대안의 근거이며, 이를 위한 기동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항·대안을 만들어 가는 주체는 조직된 실천을 해나가는 계급대중이며, 선진활동가들의 매개가 없으면 이와 같은 일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제 선진노동자들은 '투쟁시기에 앞서서 싸움을 조직하는 선동가만이 아니 라, 대중의 일상- 그 정적을 깨우는 '기적'이 되어야 하며, 대중에게 삶의 새로 운 의지를 안내할 '희망'이 되어야 한다.(전국노동단체연합 노동전선7월호. 98.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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