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총각 사장님

날아라 총각 사장님!…“늦기전에 저질렀죠"[ | ]

출처: 이코노미스트

창업으로 사회 진출한 20대 청년들…김성남 아이스베리 사장·심재호 장수식당 사장의 좌충우돌 경영記

IMF 체제에 들어간 지 만 5년이 지난 지금 전반적인 경제 기반은 나아졌는지 몰라도 개개인이 느끼는 삶의 팍팍함은 덜하지 않다. 특히 다시 불어닥친 취업 한파 앞에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나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한 듯 보인다. 이런 때에 큰 회사에 목을 매기보다 제 스스로 일터를 만들어 자기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두 명의 청년이 있다. 취직보다는 창업을 택해 어엿한 사장 자리에 오른 김성남(29) 아이스베리 사장과 심재호(28) 장수식당 사장이 그 주인공. 이제 겨우 20대 후반인 그들의 좌충우돌 경영 일기를 들여다봤다.

■김성남 아이스베리 사장:빙수의 재발견이 일궈낸 성공…스타벅스 나와라!

타고 난 장사꾼-. 김성남 아이스베리 사장은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맨손으로 시작해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서울에만 25개 체인점을 둔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사람들은 이런 별칭 붙이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가 만들어낸 빙수 전문점 아이스베리는 이제 10∼20대 젊은이들에게 세계적인 브랜드 스타벅스만큼이나 친숙한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처음부터 경영학과 아닌 다른 과는 생각도 안 해 봤다는 김사장이 처음 사업에 손을 댄 건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4년. 그는 과외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2천만원으로 방배동에 한식뷔페를 차리려고 했다. 그러나 순진한 대학생을 만만하게 본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장사를 해보지도 못하고 뜻을 접고 말았다. 그 후에도 군대가기 전까지 비디오방·독서실 등 여러 장사를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그땐 사회를 몰랐죠. 깨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사·사업 이런 데 관심이 많았죠. 취직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제대 후에도 김사장은 사업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몇 번 사기를 당하고 실패하면서 얻은 사회에 대한 살아 있는 지식과 학교에서 배운 경영학 이론, 활황을 보인 주식 시장에서 거둬들인 자본금 2천만원이면 다시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젠 돈 될 만한 장사거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인터넷 붐을 탄 젊은 벤처 갑부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그는 허황된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실체적인 먹는 장사가 자신 있었다. 99년 5월 신촌 연세대 앞 떡볶이 가게 2층 자리의 아이스베리 1호점은 그렇게 선택된 아이템이었다. 여름철에만 먹던 별식을 사시사철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한 ‘빙수의 재발견’ 덕에 좁은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타깃 고객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었던 게 큰 힘이 됐습니다. 저 자신도 고객들과 같은 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 잘 알 수 있었죠. 무엇보다 빙수라는 아이템을 잘 잡아서 전문화·차별화된 상품으로 만들어낸 게 비결이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아이스베리는 이후 4년간 젊은 층에게 인기를 얻으며 순탄하게 성장해 왔다. 과 동기들이 흔히 택하는 CPA 시험이나 대기업 취직을 마다해 온 그를 처음에는 의아하게 여기던 친구들도 이제는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개중에는 3∼4년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껴 새 일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네들은 가진 게 너무 많은 게 걸림돌입니다. 밑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미 몇 년간 누려온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사업은 뭐 하나 잃을 게 없는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분명히 알고, 남들이 뭐라든 그 길로만 꾸준히 매진해 온 김사장은 그 근성 덕분에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유명 프랜차이즈를 혼자 힘으로 일궈냈다.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 모델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는 그는 내년에 서울과 주요 지방에 20여개의 지점을 내고, 앞으로 동남아·중국·미국 LA 등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20대 총각 사장의 그 다음 도전은 뭐가 될까?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그이기에 기대가 크다.

■심재호 장수식당 사장:20여개 아르바이트 경험이 제1 자산

“대학 나온 젊은 사람이 왜 이런 일 하냐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목표점으로 도약하기 위해 꼭 밟아야 할 계단이죠.”

배달 전문 족발집을 운영하는 심재호(27) 장수식당 사장은 지난 3월 남들 다 하는 취직 대신 창업으로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양반 동네라는 충청도 출신의 부모님은 돼지 생족(生足)을 만지며 씨름하는 그를 안타까워했고, 배달 나가는 동네에서도 안 됐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개업 1년도 안 돼 하루 매출 40∼60만원의 안정 페이스에 돌입하며 이러한 우려들을 불식했다. ‘사장’ 직함이 어색하다는 심사장이 지금의 상태에 오르기 위해 넘어야 했던 산은 높았다.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 단돈 3백만원으로 족발 삶는 설비비와 재료비를 충당했지만, 돈 들어갈 구멍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 매상은 맘처럼 오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전단지를 돌리고 직접 배달을 나가 눈 도장 찍고 다녀도 배달 족발집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폐업 직전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신제품 개발에 힘쓴 덕분에 심사장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옻 엑기스를 첨가해 만든 ‘옻 족발’과 포장 용기에 담아 저장해 놓고 먹을 수 있는 보신탕 등 독특한 새 메뉴를 내놓은 게 주효했다. 특히 가게가 있는 공릉동 인근에는 원자력병원 등 종합병원이 많아 건강식을 찾는 환자 고객들의 주문이 늘어났다.

“대학 때 꼬치구이집 등 아르바이트를 20여 가지 했는데 그 때 어깨 너머로 배운 음식 장사 노하우가 제일 큰 자산인 것 같아요.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사고도 어려울 때 일으켜 세운 힘이었죠.”

그래도 난관이 도사리는 자기 장사보다 안정된 직장생활이 더 쉬울 법한데 그에게 다시 취직을 하고 싶다는 유혹은 없었을까?

“대학 시절 계약직이긴 했지만 직장생활을 해봤습니다. 월급도 적지 않았고, 평가도 좋았는데 어차피 이렇게 회사 다녀도 10년 후에는 나와야 될 것 같더군요. 나이가 든 그 때 다시 이런 일을 시작하느니 젊은 지금 하는 게 더 감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지만 그는 좌충우돌 8개월여를 장사해 오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사업가 기질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사업을 시작하면 사업가 기질은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가끔 어리다고 얕잡아 보는 분들도 계시지만 오히려 어리광으로 대처하면 문제가 쉽게 풀리죠.”

사장이긴 해도 사회생활 초병인 심사장은 앞으로 장사 경험을 축적해 창업 컨설팅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창업에 필요한 자본·기술의 중개자 역할을 함으로써 수입도 얻고 보람도 느끼고 싶다고 덧붙였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맷집을 키워 가고 있는 총각 사장님의 더욱 흥미진진해질 모험담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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