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인의마을

1 # 귀뚜라미[ | ]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2 # 이 복도에서는[ | ]

종합병원 복도를 오래 서성거리다 보면
누구나 울음의 감별사가 된다

울음마다에는 병아리 깃털 같은 결이 있어서
들썩이는 어깨를 짚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병을 마악 알았을 때의 울음인지
죽음을 얼마 앞둔 울음인지
싸늘한 죽음 앞에서의 울음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복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울음소리가 들려도 뒤돌아보지 말 것.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 걸어갈 것

마른 시냇물처럼 오래 흘러온
이 울음의 야적장에서는 누구도 그 무게를 달지 않는다


 

조선대 국문과 교수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김수영문학상(1997),김달진문학상(2001),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1) 수상
주요시집 : 『뿌리에게』(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1997), 『어두워진다는 것』(2001)
산문집 : 『반통의 물』(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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