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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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감상]나쁜영화를 보고와서 관련자료:없음 [117] 보낸이:문태준 (taejun ) 1998-03-01 13:29 조회:19

[감상]나쁜영화보고-까발림의 미학.. 08/13 18:24 129 line


-나쁜 영화를 보고와서

-들어가기전에 근 6개월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문화라는 것. 단지 먹고 살아 가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풍요 롭게 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그러나 막상 영화 한편, 연극 한편 보는 것 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니다. 민중가요 락 콘서트에 가자고 무지 노력했 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못 가본 것이 아쉽다. 문화라는 것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들, 시간들이 그렇게 쉽게 나는 편은 아니다. 더군다나 문화가 하나의 산업으로서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야 향유할 수 있는 지금의 상 황에선. 우리네 삶 곳곳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예술적으로 그려내고 또 그것을 쉽게 우리네 삶 곳곳에서 향유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 이 나의 바램이다.

세상에 반동의 칼날이 몰아치는지 작년, 올해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보 안법으로 잡혀가고 이제 하도 잡혀가서 아 또 잡혀갔구나 하는 생각마 저도 든다. 작년 영화의 사전심의제도가 철폐되었지만 등급판정이라는 것을 통해서 아직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 는 보장되고 있지 못하며 이는 최근의 영화들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내 가 본 나쁜 영화도 10분정도가 짤려나갔다 한다. 위에 있는 그 근엄한 어른네들의 고상함에 의해서 이미 우리들의 생각은 제단을 당하고 있 다. 일반 국민은 무식해서 일일이 이건 봐라, 이건 보면 안된다라고 위 에서 해주어야 영화도 볼 수 있고 음반도 들을 수 있다. 통신에도 알아 서 기어가며 글을 올려야 한다. 이젠 만화마저도 편하게 볼 수 없는 세 상이 오고 있다. 남들이 잡혀갈 때 그런가보구나 하고 그냥 물끄러미 보고 있었을 때 그 검열의 칼날은 만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달려들 어 만화책마저도 빼앗아 가고 있다. 수많은 포르노물이 난무하는데도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가 수입금지되는 나라가 이 아름 다운 자유민주주의국가 대한민국이다. 아~ 이거 앞에 말이 너무 길어졌 나...

-나쁜 영화를 보며 전체적인 흐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방황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 하는, 현실로부터 거부된 우리네 청소년들의 모습이고 한가지는 21세기 를 눈앞에 두고 OECD에 가입해서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축하는 지금도 기본적인 생존권, 살아 있을 수 있는 권리마저도 보장받지 못하고 사회 로부터 축출된 행려병자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두가지를 같이 묶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행려병자의 경우는 사회복지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의 보장 문제이고 청소년문제의 경우 는 교육의 문제인데 둘다 사회로부터 배제된 인간이라는 점에서 비슷하 게 보았던 것인가.

내용은 두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번갈아가면서 어떤 뚜렷한 주제없이 단편, 단편 찍은 이야기들이다. 갈 곳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자기가 집에 있기 싫어서 나왔는지야 모르겠지만 수많은 청소년들이 밤거리를 바글 바글 채우고 있다. 집도 털고 집단강간도 하고 뽄드도 불고 경찰서에 가서 열나게 얻어맞기도 하고 술집에 나가 몸 팔아 용돈도 벌고 오토바 이타고 폭주족도 해보고. 길거리에서 돈도 뜯고 아리랑 치기던가.. 술 먹 은 사람 돈 �기 등등. 한마디로 해서는 안될 일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나 해서 대학이나 가지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말썽만 피우는 인간 들. 그래서 사회적으로는 불량 청소년으로 낙인 찍히는 아이들. 그래, 폭 력은 나쁘고 강간도 나쁘고 집을 터는 것도 잘못 되었다. 문제는 영화 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런 나쁘다고 하는 것들이 우리네 현실에서 항상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놈들이 다 있냐가 아니라 그런 나쁜 놈들이 바로 우리네들 청소년이고 기성세대의 자식들이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만큼 나쁜 것도 없다. 있는 것을 있다고 해야 무엇 이 잘못 되었는지 판단하고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감 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잘못되었다 나빴다가 아니라 바로 그런 현실 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된다. (물론 내 가 영화감독이 뭔 생각하고 그것을 만들었는지 고민하지는 않아도 되겠 지만) 빨간 마후라를 가지고 기성세대들이 머 저런 인간들이 있냐고 실 컷 욕을 해대고 있을 때도 중학생은 화장실에서 애를 낳고 있었고 그레 이스 백화점의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부인하려고 해도 현 실은 현실 그 자체이다.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점들이 왜 생 기고 그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 그렇다고 이 영 화가 어떤 대안을 내세우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실컷 까발렸을 뿐. 적어도 현실 자체를 은폐하는 것보다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때론 욕을 먹을지는 몰라도 은페보다는 낫다. 단지 현실의 적나라함을 드러내는 것이 또하나의 상품으로서 이윤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또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겠지만.(기존의 언론이 해왔던 것처럼)

요즘 아이들 보면 불쌍하다. 그래도 우리때는 안 그랬는데(->이런 말 정말 싫어하지만) 수많은 과외와 학원에 파묻혀 풍부하게 채워나가야 할 감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부모들은 행복한가하면 그렇지 않다. 오죽하면 과외비를 댈 능력이 안 되어서 어떤 어머니는 자살까지 했던 것인가. 90년대 들어 사회가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하루하루 급변하고 있다. 최근의 청소년들은 칼라TV에 익숙해져 있음 은 물론 예전처럼 발라드풍의 노래보다는 빠르고 흥겨운 댄스음악을 좋 아한다. 어른들이 뽕작을 부르고 있을 때 그들은 어른들은 알아들을수 없을 정도로 빠른 랩을 부른다. 한편으론 80년대 중반기 이후의 발전되 어온 민주주의의 혜택을 입으면서 과거 어떤 세대보다도 자기 지향이 강하다. 그리고 자극적이고 개인적이다. 기타를 치고 노래불렀을 때와 달리 삐까번쩍한 조명에서 노래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자기 개성을 중 요하게 여긴다. 새마을운동하던 때와 달리 물질적으로도 과거보다 훨씬 풍족한 조건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80년대, 90년대의 풍요로 운 물질적 조건에서 태어난 결과로서의 이 세대들은 현실에선 싸가지 없는 아이들이 되고 버릇없고 개인적인 년놈들로 되어 버린다. 무한경 쟁의 열기로 타오르는 남한의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만을 배우도록 강요받는다. 그들은 타의에 의해서 자의에 의해서 점 점 더 사회와 멀어지고 배제되어 가고 있다. 술집에선 영계만 찾던 아 저씨들이 밖에만 나오면 성인군자가 되어지니 이런 요상한 일들이 있 나...

이 세상에는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굶어죽 을 자유가 있고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가지 못할 자유도 있다. 그래, 너무 나 자유가 많아서 문제다. 맨날 국제경쟁력강화 어쩌고 저쩌구 무한경 쟁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그렇다면 겅쟁력없는 행려병자는 없어져 야 하고 경쟁력없는 우리네 노동자들은 외국의 값싼 노동자들에 의해서 대체되면 된다.(기계로 바꾸면 더욱 좋지요. 불만없지요, 파업도 없지요, 좌경세력도 없지요, 망가지면 바꾸면 되지요. 너무 좋다~) 경쟁력없고 공부 못하는 놈들은 다 없어져야 하고 이 세상에는 강자만이 살아남아 야 한다. 그렇다면 경쟁력심사를 해서 경쟁력이 딸리는 사람들은 한강 에 가서 다 물에다 처넣어버려야 한다. 머... 어때. 자기 능력이 있어야 사는거지 능력 없으면 죽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경쟁력을 강 화하자는 것인가. 쉽게 말하면 함께 잘살아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우리 네 삶을 풍요롭게 하자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경쟁력의 논리에서 왜 우 리가 무엇 때문에 경쟁력을 강화해야하는 가라는 문제는 빠져버리고 경 쟁력의 논리만 남아버린다. 경쟁력이전에 사람의 문제는 빠져버린다. 다 정리해고 당하고 실직되어서 만들어진 경쟁력이라면 결국 그 경쟁력 향 상의 결과를 누릴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는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부정당하는 현실의 한가지 모습이 바로 행려병자 들이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쓰레기와 함께 치워지는 사람아닌 사람 들. 1인당 국민소득이 만달러가 넘는다고 하는데도 갈데가 없어 길거리 에서 하루에 몇 명씩 꼬박꼬박 죽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점심 도시 락을 싸가지 못해서 점심을 굶는 소년,소녀들이 있는게 우리네 현실이 다.

그렇지만 청소년의 문제는 행려병자와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청소 년들, 지금 자라나고 있는 그 사람들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미래를 짊어져나가야 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은 커녕 절망의 한숨만이 커질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것은 너무나 유토피아적인 생각일까... 쪽팔리 고 우리네 치부를 드러내는 일일지라도 현실은 더 까발려져야 한다. 나 쁜 영화에 어떤 심오한 의미를 두지는 않겠다. 단지 그런 까발림으로서 의 영화라고 생각할 뿐. 이런 글로서의 까발림이 아닌 구체적인 영상과 음악으로서의 까발림!

강요된 일상에 침을 뱉어라! 97. 8. 13. 수. 태준(tae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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