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하

시인의마을

1 # 남의 신발이 나를 신고[ | ]

어제저녁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신발을 바꾸어 신고 돌아왔다
누가 먼저 내 신을 신고 갔는지,
내가 그의 신을 신고 왔는지

오던 길 멈춰 내려다보니
남의 신발을 나를 신고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잠시 서서 내 발에 힘을 주었다
아, 다른 사람의 신발이
이렇게 나의 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니

다음날 아침은 엘리베이터 타지 않고
11층에서 계단을, 그것도 두 칸씩 뛰어내려
어제와 다른 쪽 길을 향해 걸었다

누군가의 발을 옥죄었을지도 모를 신,
내게 와서 비로소 편안해진 그의 신발
누군가에게 가서 그의 발을 품고 있을
나의 신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2 # 별[ | ]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빛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허리가 휘어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 발 아래로 구르는 별빛,
어둠의 순간 제 빛을 남김없이 뿌려
사람들은 고개를
꺾어올려 하늘을 살핀다
같이 걷는 이웃에게 손을 내민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의 빛속으로
스스로를 파묻기 때문이다
한밤의 잠이 고단해
문득, 깨어난 사람들이
새별을 질러가는 별을본다
창밖으로 환하게 피어있는
별꽃을 꺾어
부서지는 별빛에 누워
들판을 건너간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새벽이면 모두 제 빛을 거두어
지상의 가장 낮은 골목으로
눕기 때문이다

3 # 금강에서[ | ]

강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앞서 간 물길이
열어놓은 그리움을
서둘러 따라가며 채울 뿐이다

세월이 흐르는 것이 아니듯이
바람이 불어가는 것이 아니듯이
앞선 물길을 밟고 가는 물결에
다만 강가 풀잎은 흔들릴 뿐이다

수없이 건너는 뱃길도
우리가 건너는 것이 아니다
금강이 우리를 건너는 것일 뿐 수시로 오가는 뱃길도
강의 무료를 달랠 뿐이다

우리 실은 배는 금강 잔 물살만 재울 뿐,
금강은 흘러 스스로를 비우고 끝없이
그곳에 물소리 가득 채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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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으로 등단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네가 밟고 가는 바다>
비평집 <한국 현대시의 지평과 심층>,<중부의 시학> 출간
계간 <시와 정신> 편집인 겸 주간, 한남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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