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시인의마을

1 # 바다와 나비(1934)[ | ]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2 # 길(1936)[ | ]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
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
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
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1936.3


 

1921 서울 보성고보 중퇴
1930 일본대학(日本大學)문학예술과 졸업.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발표,등단
1931 조선일보 평론 "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 발표. 본격적인 평단활동 시작
1933 이효석. 조용만. 박태원 등과 "구인회" 결성
1936 첫시집 『기상도』 간행
1939 시집 『태양의 풍속』(학예사) 간행
1945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조직활동 주도
1946 시집 『바다와 나비』(신문화연구소) 간행. 평론집 『문학개론』(문우인서관) 간행
1947 평론집 『시론』(백양당) 간행
1948 시집 『새노래』(아문각) 간행. 수필집 『바다와 육체』(평범사) 간행
1949 평론집 『시의 이해』(을유문화사) 간행
1950 6.25중 납북
1988 『김기림전집』(심설당) 전6권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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