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포츠 비즈니스엔 비즈니스가 없다

국내 스포츠 비즈니스엔 비즈니스가 없다[ | ]

출처: 이코노미스트/ 9월11일

시설 다른데 입장료는 동일한 것은 난센스…미국처럼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 등 창의성 발휘해야

축구장에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한다면 믿겠는가? 빠르게 움직이는 퍽이 보이기나 할까? 작년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얘기이다. 아이스하키의 명문대학인 미시간 주립대학과 라이벌인 미시간 대학의 야간 경기가 축구 경기장(사진)에서 열렸다. 결과적으로 7만4천5백54명이나 되는 관중이 입장하였다고 한다. 과거 레닌 스타디움에서 구소련과 스웨덴 국가대표팀이 벌인 아이스하키 경기의 관중 수 5만5천명이라는 세계기록을 가볍게 경신한 것이다. 경기가 열린 랜싱시의 인구가 20만명도 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옥외 아이스하키 경기를 주최한 미시간 주립대학은 평소에 비해 몇 배나 되는 입장 수입을 올렸을 것이다. 이렇듯 미국 사람들은 스포츠의 인기를 배경으로 돈을 벌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왔다. 미국에선 프로스포츠의 역사가 1백년이 훨씬 넘었으니 스포츠로 사업하는 단수가 우리보다는 몇 수 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한 수 배워보고자 한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는 미식축구·야구·농구·아이스하키가 4대 스포츠로 인기가 있지만, 대학 스포츠에서는 미식축구와 농구가 단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다음이 아이스하키이다. 대학은 이 세 스포츠팀을 운영하여 벌어들인 수입으로 체조·레슬링·수영·육상 등 순수 스포츠팀을 함께 운영한다. 그러니 인기 스포츠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 미국 오대호 연안에 위치한 미시간 주립대학은 농구·미식축구 등 대다수 스포츠 종목에서 강팀이다. 특히 아이스하키는 한 해도 빠짐없이 우승을 하거나 그 문턱까지는 가는 전통을 자랑하는 팀이다. 그러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1만명 이상이 들어가는 대규모 실내 아이스링크를 갖고 있음에도 시즌 내내 홈경기 입장권은 한번도 빠짐없이 매진된다고 한다. 더구나 숙명의 라이벌인 미시간 대학과의 경기는 시즌 최고의 빅카드이니 암표값이 수백 달러로 치솟기 마련이다. 이런 아이스하키의 인기를 이용해서 대학 관계자는 대형 이벤트를 만들었고, 수많은 관중을 끌어들인 것이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입장 수입 조금 더 벌어들인 것 때문이 아니다. 두 팀간에 벌어지는 경기라는 상품의 가치·소비자의 성향을 고려하여, 수요자·공급자 양자의 만족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발상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대학 관계자의 입장으로 가보자. 이러한 이벤트를 만들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옥외에 아이스링크를 만들어야 하고, 만약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한 옵션을 준비해 두어야 하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여러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굳이 일 만들어 고생하느니 얌전히 있는 것이 상책일 텐데.

이번에는 지금부터 반세기 전인 1948년에 미식축구리그인 NFL 얘기로 가보자. 당시는 스포츠경기가 처음으로 TV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전까지는 경기장 입장 수입이 프로구단의 주 수입원이었는데, 조금씩 TV방송 중계수입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경기장을 찾던 팬들이 집에서도 경기를 볼 수 있으니 매번 가득 차던 관중석에 빈 좌석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필라델피아시에 위치한 미식축구팀인 이글즈의 예로 보면, TV중계가 시작되면서 이글즈의 홈경기 관중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아직 TV중계권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팀 수익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입장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TV중계를 없던 것으로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구단주들이 가만히 앉아 있었겠는가? 머리를 짜낸 끝에 NFL은 소위 ‘black-out’룰이라는 묘책을 내놓았다. 직역하면 ‘깜깜하게 나갔다’는 뜻인데, TV중계가 취소됨을 의미한다. 경기장이 만원이 되지 않으면 다른 지역에는 중계되어도 홈팀의 지역에는 경기가 TV로 중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기장이 가득 메워져야만 홈경기를 TV로 중계할 수 있게 정한 것이다.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팬 입장에선 처음에는 난감했을 것 같다. TV로 보려고 집에서 기다렸는데 입장권이 다 팔리지 않았다고 중계가 취소되면 보고 싶은 미식축구 경기를 못 보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꼭 보야야겠다는 사람들이 이전처럼 경기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면서 프로구단은 예전처럼 입장 수입도 벌고, TV중계권료까지 챙기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게 되었다. 물론 이런 룰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미식축구의 인기가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참 기발하기도 하고 지독하기도 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또 이런 횡포(?)를 그대로 인정하는 미국 사람들이 어찌 보면 참 착한 사람들인 것도 같고,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꽤 시끄러웠을 것이다. 아마 한달 버티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이번에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어 잘 알고 있는 VIP박스(미국에서는 ‘호화박스’라 부름)이다. 새로 지어진 월드컵 전용경기장에도 만들어졌고, 인천의 문학구장에도 있다고 보도가 되었었다. 그 안에서는 호텔식 서비스를 받으면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이용료는 일반요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다. 이를 돈 많이 벌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시장에는 항상 다양한 소비자가 있다. 스포츠 관중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요금으로 경기를 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도 좋은 분위기에서 사업손님도 접대하면서 경기를 보려는 사람도 있다. 소비자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VIP박스는 고급 고객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상품의 개발로 볼 수 있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상품인 것이다. 미국 스포츠경기장에서 VIP박스는 오래 전부터 만들어졌고 지금은 보편화된 것이지만, 이도 처음 만든 사람이 있을 것이고 먼저 상용화를 시작할 때는 새로운 아이디어요, 새로운 시도였다. 「포브스」지는 2000년에 NFL 모든 구단의 가치를 평가하였다. 구단이 갖고 있는 자산과 팀브랜드 가치를 추정하여 평가한 것이다. 자연히 새로 지은 현대식 경기장을 소유한 구단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상위 7개 구단 중 한 개팀을 제외한 6팀은 모두 새 경기장을 갖고 있는 팀들이었다. 그런데 오래된 경기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구단가치가 상위권에 속한 팀은 다름 아닌 댈러스 카우보이스이다. 아리따운 치어리더들이 매년 주한 미군 위문차 방문하여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팀이다. 댈러스는 뉴욕·LA·시카고 등에 비해 도시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홈구장의 규모는 NFL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입장 수입이 다른 팀에 비해 더 많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팀 가치가 높은 이유는 바로 댈러스 스타디움의 VIP박스 때문이라고 한다. 댈러스팀은 80년대에 VIP박스의 경제성을 미리 예견하고 무려 3백79개의 VIP박스를 만들었다. 다른 NFL팀들의 VIP박스를 모두 합친 수보다 두 배나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일반 입장권 판매수입을 제외한 나머지 수입이 엄청나다고 한다. NFL평균의 6배이고, 2위팀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20년 전에 투자해 놓은 덕택이다.

미국 스포츠 비즈니스를 보다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천양지차를 느낀다. 한 예로 프로스포츠 경기의 입장료가 모든 구장에서 동일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기장의 시설도 서로 다르고,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소비자들도 서로 다른데 모든 팀이 동일한 요금을 받고 있다. 프로야구에선 모든 구장에서 특석 8천원, 일반석 5천원이다. 전통적으로 강팀이면 더 높은 요금을 받을 수 있고 만년 하위팀이면 요금이 낮아야 상식인데 모두 같다면 넌센스 아닌가? 새로 지은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한밭 종합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는 서로 다른 상품이다. 상품가치에 따라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은 비즈니스의 기초이다.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주5일 근무제 등으로 스포츠의 열기가 상한가를 치고 있다. 달아오른 열기를 지속하고 스포츠산업의 발전으로 연결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예에서 보았듯이 스포츠 비즈니스에 경제적 창의성을 도입해야만 한다. 스포츠 따로 비즈니스 따로가 아니고,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한 운영을 할 때 진정한 스포츠 비즈니스가 우리나라에도 정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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