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이야기

교회 이야기

1 # 자일리톨[ | ]

이라크로 갔던 그 목사들은 제정신인가

도대체 그 목사들은 왜 이라크로 갔던 것일까? 신문에서는 니느웨에 설립된 선교쎈터의 개소식에 참석키 위해 갔던 것으로 나와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에, 특히나 전쟁을 일으켰던 장본인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석유를 둘러싼 추악한 전쟁을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극히 유아적인 이분법적 논리로 치장하는 마당에 "기독교선교원"을 만들고 버젓이 개소식을 감행하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할말이 없다. 부시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하는 연설을 들은 이라크국민들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면 이라크 국민들을 비롯한 미국에 대해 독립적인 아랍세력은 "악"이란 말인가? 아랍권이 모두 반미라는 피켓을 버리고 기독교국으로 개종해야만 이 전쟁은 끝난단 말인가.

종교란 원래 비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기에, 주변의 모든 일을 자기 나름의 안경을 끼고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건 이해한다. 하지만 종교가 자신의 나라, 혹은 자신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민족집단의 더러운 이익을 위한 방어논리로 이용된다면 이건 큰 문제랄 수 있겠다. 라는 영화에서 독일군이 소련군과 전투를 치르기 전 독일군목이 독일군사들을 축복해 주며 기도를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군대다. 저 야만인들을 쓸어버려라"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기독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야만인이 되고,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인간이 찔러 죽일 수 있는 객체가 된다는 것... 너무 무섭지 않은가.

난 지금도 예수가 걸출한 위인이라고 생각한다. 노예제라는 엄격한 신분질서가 있던 시기에 "다른" 하층민들의 인간적 가치를 인정해 준 예수야말로 정말로 "깨인" 사람이었다. 예수의 논리는 절대로 "나는 성스럽고 깨끗한 놈이고, 너희는 더럽고 추악한 악이다. 그러니 나는 너희를 깨부수고 바꿀 권리가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참다운 종교생활 하시는 분들 많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그러신 분들 여럿 봤다. 하지만, 선교쎈터 개소식에 간다고 이라크로 들어갔던 그 목사님들. 그리고 쏘련이 무너졌을 때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등에 가서 이슬람사원 앞에서 빵 나눠주며 기독교 믿으라고 고함지르다 린치를 당했던(그러나 그들은 순교라고 생각했을) 그 목사님들... 제발 그러지 말자. 기독교인들 중에서 유아적인 이분법적 논리에서 빠져나와 정말로 세상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 자일리톨 2004-4-11 6:40 pm

그렇다네. 멋진 종교인들이 구린 종교인들보다 많아질 때 내가 동네에서 일요일에 지하철 역 가는 길에 네번이나 쌍욕을 하면서 가는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싶네. (그 코스에만 교회가 네개일세, 개중 두개는 국제적인 규모...-_-) 오늘은 길에 달걀 노른자가 잔뜩 떨어져있더구먼...-_-a -- 거북이 2004-4-11 7:08 pm
유아적인 이분법만을 구사하는 찌질이 목사들이 교회에 많은 것은 실증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사실일 가망성이 매우 높죠. 그런데 머리는 모두 찌질스럽다 하더라도 그들의 물질적 토대는 다 다르다고봐요. 대략 해외 파견사업에 투입되는 찌질이들은 젊고 빽없는 먹사일 경우가 많죠. 그들은 신앙에 매몰되고, 교회자본에 착취당하고 있는게죠. 먹사들 인격에 줄을 세우는 자체가 의미없기는 하지만, 물질적 토대만으로만 본다면 자본가와 착취당하는 노동자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속된말로 먹고 살려고 하다보니, 선교사가 되고 말아버린거시죠. 하지만 이번에 이락에 간 찌질이들은 일반적인 선교사들과 달리 물질적으로 매우 좋은 편에 속하더라구요.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구요. 해턴.. 아주 짜증이 나는 찌질이들의 행렬로 부터 우리집을 지켜주소서.. 아멩...-- 지호 2004-4-11 7:08 pm
그 찌질이들을 구한것은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경락 마사지였다는... -- WooRam 2004-4-12 12:14 pm
그 찌질이들이 만든 정당 - 기독당

당 이념 - 수구 반공 찬미
창당취지 - 좌익(=사탄)이 한국 정치를 장악하고 있기때문... 북한(=사탄)이 남한을 침공할지 모르니까... 미국(=하나님)을 섬기기위해...
믿는구석 - 정당투표. "기독" 자만 보고 묻지마 투표할 광신도들
인물구성 - 박정희, 전두환시절 정권에 손바닥 비벼가며 교회 키운 목사들. 각종 반북, 반김정일, 이라크 파병 지지, 노무현 탄핵 지지 집회 주최자들
특징 - 조용기기 최소 2억, 최고 10억의 교인 헌금 투자. 17대 딴나라 공천 탈락한 조웅규의원 입당. 황산성 비례대표 1번
-- 날으는코끼리 2004-4-12 6:16 pm  

김건모 왈-'입장바꿔 생각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시간이 지나면 입장을 바꿔보자는 절규가 현실이 됩니다.

'영희야, 사랑해'라고 말하던 놈이 100일만에 '입장바뀌어' '영희야, 이제 그만 만나'
'불심으로 대동단결'나라 망친다고 비웃던 자들이 1년만에 '입장바뀌어' '기도로 대동단결'
티비토론에서 권영길을 보던 이회창의 흐뭇한 미소를 기억합니다. 부시가 고이즈미보는 눈빛이랄까요. '너 참귀엽구나. 그렇게 계속해라.. 호호호' 이회창은 권영길이 노무현표 까먹을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이때 등장하는게 비판적지지죠. 수구꼴통몰아내기위해 권영길은 물러나라. 앞으로 10년지나면 '입장바뀌어' 진보들이 '기독당 니들 참 귀엽구나. 앞으로 열시미해라.' 한나라왈: 친북반미세력 몰아내기 위해 기독인들 표를 달라. 기독표의 99.9999%는 과거의 한나라표. 앞으로 교회안에서 정치작업을 기대합니다. 므흣..
귀여운 기독당 그들은 분명 애국자임에 틀림없어요. 앞으로 기독당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 지호 2004-4-13 6:16 pm

2 # DarkTown[ | ]

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게 좀 미안한 말이지만, 가끔 밤 기차를 타고 올라오다가 선로변 소도시에 붉은 네온싸인 십자가가 어둠속에 수십개씩 떠 있는 광경을 보노라면, 거대한 공동묘지가 연상될때가 많아서 공포스러운 기분이 들때가 많다.(이건 단순한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니 오해 마시길..., 개신교를 매도하려는 뜻은 없음..)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종교가 됐던 신앙인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행복을 주면, 종교의 맡은 바 목적을 최고로 달성하는거라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해서 위안을 구하던, 절에 가서 부처님을 보며 절을 해서 위안을 구하던 근본적인 종교의 목적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리고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직업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 나이 먹고는 보통 사람보다 우월하다거나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거의 없는것 같다.
우리 집안은 외가나 친가쪽, 우리집만 빼고는 다들 개신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다.
우리 집은 어머니의 영향때문에 어릴때 부터 불교가 집안의 종교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절에 가라고 강권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나는 불교의 이상이나 철학에 대해서는 공부하고 알고 싶어하는 편이지만, 교리전달자의 역할을 하는 종교인들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절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종교인의 역할은 자신의 수행과 참선에도 목적이 있지만, 어떤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나 철학을 사람들이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것도 중요한 직업적 임무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껏 만난 종교인 중에서, 목사나, 승려나, 신부나 할것 없이 대게는 자신이 종교인이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더 인격적으로 수양이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보통 사람들 보다 더욱더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절이나 교회, 성당같은 종교적 장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나라는 인물 자체의 성격에서도 기인할 것이다. 나라는 인물 자체가 종교에서 위안을 얻는 성격의 인물이냐 하면 그보다는, 차라리 일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 쪽에 더 가깝기 때문에, 종교의 필요성을 거의 못 느끼며 살고 있는데다가, 어떤 종교인이 말한 "개 돼지와 똑같은 욕망에 파 묻혀 사는 중생들"이 세상을 떠 받치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는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무시하는 종교에 헌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
사실 요즘의 종교는 정신적인 위안을 주는 역할보다는, 기업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종교라고 하고 간판을 내걸고, 그걸로 장사를 하는 상점쪽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아서, 교회에 가서 십일조 헌금함을 보거나, 절에 가서 뭔가를 내라고 강요 받을 때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반발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종교인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믿음을 가지라"고 남에게 강요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고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독실한 종교인들에 대한 인상이 엄청 좋지 않은 편인데, 생활하면서 그런류의 사람들에게 너무 심하게 당한 적이 많아서 좋은 인상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나이 먹어서 파파 할머니가 됐을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마 종교에 대한 이런 생각은 거의 변하지 않을것 같다.
그러니 나에게, 누굴 믿으라던가, 어딜 가보라던가, 하는 이야기는 당분간 안 하는 것이 나와의 친분 관계를 망치지 않는 방법 중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DarkTown

3 # 거북이[ | ]

드디어 상계제일교회가 개축된다. 이 교회는 이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중 하나로 한때는 이 교회의 첨탑이 이동네에서 제일 높았다. 하지만 바로 옆에 대기업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 노원지부와 우량 벤처 교회인 꽃동산 교회가 생기는 바람에 이 교회의 첨탑은 빛을 바랬다. 한때 첨탑 높이느라 콧대 성형수술도 했지만 순복음과 꽃동산에는 댈 바가 아니었는데 드디어 전면 개축에 들어간 것이다. 개축이 끝나면 비슷한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반경 백미터 안에 메머드급 교회가 세개 놓이게 되었다. 대형 마트가 세개 있으면 좋기라도 할텐데 거참 기분 꿀꿀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으니 저 세 교회들은 아편굴쯤 되는건가. 볼때마다 과세하고 싶어서 죽갔다. 종교단체면 뭔가 공익적 성격이 있어야하지 싶은데 내 본거라곤 순복음교회에서 가끔 노친네들 식사대접한다고 주장하는 플래카드 뿐이다. 젠장 혼자만 구원받으려고 주변 사람들 압박하는 건물을 세우는거냐. 이 피곤한 친구들아. -- 거북이 2003-9-1 10:34 pm


아파트 틈의 유일한 가정집 군락이었던 구 우리집 자리에도 어느덧 아파트들이 들어왔다. 슈퍼마켓도 많이 생겼고 상가들도 늘고있다. 아파트 단지에는 각종 홍보성 플래카드가 붙어있는데, 그 플래카드는 두가지로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다. 하나는 학원이고 하나는 교회다.
학원과 교회는 현세 혹은 근미래에 대한 기복적인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내가 상계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면 약 십분이 소요되는데 그 사이에 보이는 교회만 열개가 훌렁 넘는다. 이쯤되면 교회는 슈퍼마켓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아보인다.
게다가 교회들의 홍보멘트도 웬만한 스포츠신문에 나오는 도색 사이트의 문구 못지 않다.
도대체 교회는 어떻게 그런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을까?

분명히 처음에는 서구의 압박(^^) 때문일 것이다. 사실 카톨릭의 도래까지 살펴보자면 좀 다른 양상이 나올수도 있지만 2차대전후 식민 모국이 된 미국이 신교의 나라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종교가 쉽게 파고드는 것은 불가항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반은 우리의 책임이다. 신교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을 모더니티로 인식했던것 같다. 왠지 뽀다구가 나는 종교로 느꼈던 것이고 나는 불교 믿소 보다는 나는 교회다니오가 더 트랜디한 자기표현이었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나는 적어도 집단적으로 봤을때는 불교도가 기독교도보다 더 신실한 신앙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기복신앙적인 면을 빼놓을수는 없겠다. 한국 교회는 정착과정에서 기복신앙으로 훌륭히 변신하였으며 그것이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너무나 한국적으로 잘 정착하는 바람에 목사가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기까지 하는 한국식 코미디를 연출하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또 정말 재미있는 것은 개신교가 매우 수구적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에서 카톨릭은 정의구현 사제단 등을 이끌며 나름대로 사회적 양심세력으로의 자리를 확고하게 한 반면 개신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거 태생적으로는 개신교가 카톨릭의 부패를 지적하고 나온 혁신세력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반대되는 현상이 아닌가 말이다.
아마 수구적이라는 것은 현재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에 관계된 것이지 태생과는 관계가 없기때문에 그럴 것이다. 유럽의 카톨릭은 역시 수구세력일 것이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한국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그 순교의 역사같은것에 비하면 개신교의 그것은 (내가 잘 모르는 것이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무척 얕아보인다.

어쨌거나 얼마나 헌금을 거두어댈 수 있으면 새로운 아파트에 사람들이 입주조차 하기전에 그 많은 플래카드가 늘어설 수 있었는지 볼수록 신기하다.
나는 교회 사정을 잘 몰라서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교회가 진정한 신앙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정해진 양의 회비를 자발적으로만 걷고 헌금대신에 물품같은 것을 기증받아 주변에 나누어주면 어떨까 하는 철딱서니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으면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노원지부가 그렇게 어마어마한 규모로 만들어졌을리가 없지. 나도 말빨이 있었으면 목사나 하는건데...흐으. --거북이

4 # PlusAlpha[ | ]

나는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유아세례를 받았다. 어릴때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고 초등학교, 중학교때에는 주일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때 약간 소홀하긴 했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는 다시 교회학교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예배 반주자도 하고 심지어는 찬양단의 보컬까지 한 적도 있다. 교회에서의 활동은 내 마음을 기쁘고 충만하고 여유롭게 해 주었다. 물론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고 있는 지금도 기독교는 나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주고 있고 내 종교도 기독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진정한 크리스천인가 하는 물음에는 긍정하기가 어려웠다. 보편적으로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크리스천의 모습이과 거기에 필요한 용기 - 즉 (약간은 뻔뻔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남들 앞에서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부끄럼 없이 큰 소리로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할 수 있는 - 가 없었고 내 생각은 언제나 차갑고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었기 때문이다. 교회생활중에는 '통성기도'라는 것이 있는데 그 시간이 가장 괴로웠다. 적게는 몇 명에서부터 많게는 수백 수천명이 한자리에서 각자 큰소리를 내면서 자기의 기도를 하는 것인데, 기도를 하면서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모두가 제각각 자신과 하나님에 몰두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다. 과연 나만 그런 것인지 다른 사람도 나같은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눈에는'오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이런 광경에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고 항상 완전한 크리스천이 되지 못하는 소외감이랄까 수치심이랄까 뭐 그런 느낌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달 전에 새로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잘 하는 것을 소위 모태신앙이라는 자가 위화감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일본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서 나는 '동지'를 만난 반가움과 기쁨에 날아오를듯 했다. 일본 교회의 예배는 한국 교회와는 영 딴판으로 바로 내가 바라던 차분하고 논리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예배가 아니라 철학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통성기도는 없었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분위기였다. 세상의 교회는 모두 똑같을줄 알고 있었는데 이런 예배도 가능하다니... 그동안의 죄의식에 가까운 수치심이나 소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알고보니 일본 사람들의 보편적 성격이 다혈질의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감정을 억제하고 논리적인 면이 있는데 그러한 국민성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기독교 전래 당시의 상황을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는 서민층을 대상으로 의료구호와 학교교육을 하면서 전파되어 기복신앙적 모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데 비하여, 일본은 귀족층인 무사계급을 대상으로 처음 전래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교회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기독교 역사가 우리나라 보다도 더 길면서도 기독교 인구는 1%에 불과하다고 한다(우리나라는 잘은 몰라도 30~40%는 되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 등 소외계층이 함부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교회로서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스스로의 비판의식도 있다.
어쨌거나... 솔직히 말해 바로 그 점이 나의 일본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크게 자극하였다. 내가 일본병에 걸린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런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이유로 일본가서 사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정도로...(결국 생각만 하다 끝났지만)

요즘 기독교계에서는 목사직의 세습과 관련해서 논란이 많은 모양이다.
사실 한국의 기독교는 대단히 가부장적이다. 목사님은 곧 하나님과 동일시되어 교인들 사이에서 목사님의 말 한마디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새파랗게 젊은 목사님에게 팔순의 노인도 쩔쩔맨다. 또 비교를 해서 안됐지만 일본교회의 목사님은 거의 친구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주제가 교회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현재는 정기적으로 예배에 출석하는 교회가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 마음에 맞는 교회를 찾아 꼭 나갈 생각이다. 내 마음에 맞는 교회라는 걸 찾기가 그리 쉽지 않지만 말이다. 또 신자가 교회에 맞춰야지 건방지게 마음에 맞는 교회를 찾으려 하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교회 신도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어느 한 대상에 맞출 수는 없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무지한(죄송) 할머니들을 주 대상으로 삼아 하는 설교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싫다. 무조건적으로 나쁜일 하면 지옥가고 착한일 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헌금 잘 내면 천당간다는 식의 내용과, 그런 내용을 주입식으로 사람의 무의식 속에 암기시키려고 하는 설교 형식은 거부한다. 부디 내가 바라는 교회를 찾아 신앙생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00 09 06) --PlusAl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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