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메이 코레미

1 개요[ | ]

亀井茲監
가메이 코레미, 고레미

2 국학원대학[ | ]

1825~1885년. 막부말 유신기의 이와미국(石見国) 쓰와노(津和野) 번사(藩士)이다. 분세이(文政) 8년 지쿠고국(筑後国) 구루메(久留米) 번주(藩主)인 아리마 요리노리(有馬頼徳)의 아들로 에도(江戸) 구루메번 저택에서 태어났다. 덴포 10년(天保,1839), 15세로 츠와노 번주 가메이 코레카타(亀井茲方)의 양자가 되어 관직을 계승하고, 종오위하(従五位下) 오기노카미(隠岐守)로 임명받았다. 이윽고 번주로서 번정을 개혁, 산업을 장려하고 문교(文教)에도 힘썼으며, 특히 국학을 중요시했다. 처음에 오카 쿠마오미(岡熊臣), 이어서 오쿠니 타카마사(大国隆正)를 번교인 양로관에 등용하여 사제의 교육과 지도를 시켰다. 분큐 2년(文久,1862) 정국(政局)을 급히 보고하고 번사인 후쿠바 요시시즈(福羽美静)를 상경시키고, 3년에는 자신도 상경하여 고메이(孝明)천황의 가모샤(賀茂社) 행차를 수행했다. 이후, 항상 이웃 번인 죠슈번(長州藩)의 지원에 힘썼고, 제2차 죠슈정벌 때에는 죠슈번과 막부군(幕軍)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도 위기를 잘 수습했다. 메이지 원년(明治,1868) 진기사무국(神祇事務局) 판사, 진기사무국보(神祇事務局輔), 진기칸 부지사(神祇官副知事)를 역임. 후쿠바 요시시즈를 거느리고 국시오개조서제(国是五箇条誓祭), 즉위식, 신궁친알(神宮親謁) 등을 입안, 유신정부의 진기행정을 주도했다. 메이지 2년 5월 진기관을 그만두고, 쟈코노마시코(麝香間祇候)에 임명되었다. 4년 5월 폐번치현(廃藩置県)에 앞서 자신의 번 폐지를 건의했다. 메이지 18년 3월 23일에 사망, 향년61세. 다이쇼 4년(1915)에 증정이위(贈正二位). --다케다 히데아키(武田秀章)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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