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Jmnote bot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4월 5일 (목) 22:40 판 (Pinkcrimson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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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거북이[ | ]

드디어 큐브릭 영화를 모두 보았다. 나에겐 큐브릭처럼 영화들마다 지속적으로 이미지의 충격을 준 감독은 없는것 같다. 젊은 큐브릭의 아마도 첫번째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이 영화를 보고나니 저런 영화를 저 나이에 만든 그가 부럽다는 생각 뿐이다.

사실 영화 중반까지만 해도 큐브릭 생애 첫번째 범작이로군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의 유일한 범작은 로리타인데 이것도 지금 다시 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중반부터 갑자기 긴박감이 확 높아진다.
초반에는 뻔한 범죄영화와 다를바 없다. 나레이션으로 스토리를 조금 끌어준다거나, 침침한 질감으로 느와르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만드는 등 허리우드 영화다운 그냥 '개중 하나'의 느낌이다. 이건 킬러스키스에서도 느껴졌던 바와 같다. 초반부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면 소심한 경마장 직원과 그의 마누라가 나누는 시니컬한 대화를 들 수 있겠다. 부인은 그를 거의 말로 짓밟는데, 이런 대사를 꾸며낸걸 보면 이후 그의 행보는 여기서도 싹이 보였다고 볼 수 있겠다. 보면서 한참 웃었다. 사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함축적인 대사들이 꽤 많이 나온다. 이때야 지금처럼 발랑 까지지 않고 낭만적이었으니까.
인물이 모이고 그들이 공동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설정은 이후 오션스일레븐 등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들에서 모방되는 것인데 아마도 큐브릭이 처음은 아닐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하나의 전범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동일한 시간을 여러 시점을 통해 각각 보여주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조여가는 것은 매우 훌륭하다. 뻔한 복선들이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뻔하지 않다.

주연인 스털링 헤이든은 상당히 멋진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굳이 그를 꼬인 동성애자로 설정한 의도는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장면이 나온 이후 그의 표정들에는 퀴어한 느낌도 보이긴 하더라. 그는 치밀하고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다른 범죄영웅들과는 달리 꽤 긴장을 한다. 돈가방에 돈을 밀어넣는 모습이나, 공항에서 직원과의 기싸움에 밀려버리는 모습 등에서 그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항에서 모든 것이 좌절되는 장면에서 그가 보여주는 태도 역시 덤덤하고 좋았다. '신칸선 대폭파'에서 본 타카쿠라 켄의 모습과도 조금 겹쳐지더라.

내가 더 공감되었던 인물은 사실 주인공이 아니라 경마장 직원으로 나오던 '도미니크 삐뇽'과 빌어먹을 아들 부시랑 반반씩 닮은 엘리샤 쿡이라는 배우다. 이 양반 소심하다. 나름대로 관찰력도 있고 해서 빠지는게 좋겠다고 생각도 하지만 옆에서 섹시한 부인이 어르고 달래고 뺨치니까 꼬일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위해 따라간다. 그는 다른 누구도 이끌지 않고, 하지만 나름대로 판단력도 있지만 그저 조금 소심하고 조금 비굴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봐 적절한 시점에 총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를 동정한건 가끔씩 불가피하게 비굴해지곤 하는 나를 동정한 것일게다.

영화에서 강도단이 룰루랄라 떠났으면 좀 더 모던한(?) 영화가 되었을테지만 당시의 허리우드 영화답게 권선징악으로 적당히 마무리짓는 이 영화는 관습속에서도 얼마든지 완성도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훗날 자기 영화의 모든 것을 직접 조율하다시피 한 것으로 유명한 큐브릭이지만 그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업영화 시스템 속에서도 이정도를 꺼낼 수 있는 내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리멸렬한 군상들임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비장미 때문에 나는 언제나 느와르의 걸작중 하나로 이 영화를 꼽게될 것 같다. -- 거북이 2004-12-17 2:40 am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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