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 (2004)

Jmnote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3월 6일 (수) 23:0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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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epatriation, Songhwan
송환
  • 2004년 한국 영화
  •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 감독: 김동원
  • 출연: 조창손, 김선명, 김영식, 류한욱 등

2 # 자일리톨

정말 오래간만에 영화관에 갔던 것 같다. 금요일 점심시간에 영화표를 예매해서 퇴근하고 난 뒤 곧장 씨네큐브에 갔다. 가는 길 광화문 동화빌딩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탄핵반대집회 때문이었다. 가는 길에 시커먼 옷을 입은 한 백발 아저씨가 유인물 박스를 어깨에 지고 간다. 지나치고 보니 명계남이었다. 이야 딴나라당, 잔민당, 딴민련 꼴통들 때문에 사람들 참 고생이 많다. 난 군대에서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고 당시의 말을 잘 하지도 않지만, 군대에서 들었던 한가지 말만은 퍼뜩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능한 간부는 적보다 무섭다." 수구 꼴통들은 제발 여의도에서 삽질하지 말고, 빨리 지구를 떠났으면 싶다.

이 영화는 다큐집단 푸른영상의 김동원 감독이 12년간 장기수 할아버지들을 따라다니면서 찍은 필름으로 만들어졌다. 무거운 주제가 12년간의 필름속에 녹아 있는만큼 무거운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니 2시간이라는 시간은 의외로 빨리 흘러갔다. 간첩이라 불렸던 이들은 영화초반 감독의 나레이션대로 그리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월에 흔적과도 같은 깊이 패인 주름만큼이나 삶의 고단함을 간직한 폭싹 늙은 노인에 불과했다. 이런 사람들을 머릿속의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만으로 30여년간 감금한다는 게 과연 법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었다. 분단 이후, 남북한 모두 수천명의 공작원을 남파 혹은 북파했으나, 그들의 실체는 모두 당국자에 의해 공식적으로 부인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이렇게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도소에 있는 수십년 동안 전향공작이라는 이름의 갖은 고문이 행해졌고 전향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국자들에 의해 비전향이 아닌 '미전향 장기수'로 불렸다. 이 단어에서 공안당국자들은 그들이 언젠가는 전향을 할 거라는 자신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고문과 감금에도 불구하고 전향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히 사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적인 자존심 때문이었다. 전향공작이나 고문을 가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만큼은 절대로 굴복할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전향서에 사인하는 것을 막았다는 거다.

등장인물들 중에서 유난히 정이 가는 사람은 조창손 할아버지였다. 나는 그의 인격적인 모습에 끌렸다. 평소 말이 별로 없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면서, 생명을 사랑하고 한없이 겸손한 그의 모습에서 인격적인 완성이랄까 그런 것을 느꼈다. 취로사업에 나가 청소를 하면서 조창손 할아버지는 쉬는 시간에도 쉬지를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내가 쉬면 다른 사람들이 할 일이 늘쟎아. 내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다른 사람들이 할 일이 줄어드니까 이거 얼마나 좋은 거야?"라고 답했다. 할아버지들은 교도소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교도소 밖의 생활도 이들에게 가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십년의 감옥생활에서 얻은 지병으로 항상 몸은 불편했고, 자신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돈은 스스로 벌어야 했으니 말이다. 이들은 취로사업이라도 할 수 있음을 고맙게 여겼다. 할아버지들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조그만 일에 토라지기도 하고 서로 장난도 치고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먹기도 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들과 같았다. 이런 사람들이 뭐가 두려워서 30여년을 가두어 두었을까?

장기수 할아버지들은 2001년에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으로 송환된다. 북으로 송환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강제전향이력 때문에 송환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송환된 이후라도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둘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송환이 결정되자 납북피해자 단체에서 이들을 찾아오는 장면이 있었다. 분단과 냉전의 피해자인 그들 중 일부는 격한 감정을 들이밀며 송환반대를 외치기도 했고 납북자들과 연락을 부탁하기도 했지만, 장기수 할아버지들은 납북이란 없다며 납북자체를 부인했다. 이북체제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거의 광신에 가까웠다. 그들은 50-60년대 북한을 떠나온 사람이었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체제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북한 체제에 찬동하도록 만든 것은 아마도 남한에서의 야만적인 수감생활이었을 것이다. 야만은 또다른 야만을 낳는다. 납북자 가족들의 격한 감정표출과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집단 히스테리는 엄연히 분단과 냉전이라는 역사적 실재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단순한 이성으로 무자르듯이 평가할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실재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략적으로 이용해 먹는 놈들은 "무자르듯 평가한 후 몇배로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푸른영상의 김동원 감독과 북한으로 간 할아버지들이 다시 자유로이 만날 그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 자일리톨 2004-3-29 1:00 am

3 촌평

어제 7,000 주고 영화를 봤다. 볼만하다. 추천한다. -- Crystal 2004-3-29 2:23 pm

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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